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것이 있다. 바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둘러싼 갈등이다. 이를 두고 35년간 미군으로 근무하면서 대다수 연합훈련에 참가했던 로버트 콜린스는 "2백만 명에 가까운 군인들이 근접해 있는 한반도에서 세 나라가 벌여온 강도 높은 군사훈련과 이에 따른 긴장은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고 일갈했다.
북한은 연합훈련을 대표적인 적대시정책으로 간주하곤 중단을 요구해왔다. 특히 북한은 2018년 6월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을 "도발적인 전쟁게임(war game)"이라고 부르면서 중단키로 약속한 것이 잘 지켜지지 않자 더욱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이에 대해 한미동맹은 "연례적·방어적 훈련"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연합훈련과 연습을 강행하곤 한다. 대북 군사태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과 미국의 각자의 필요도 반영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위해서는 연합훈련이 필수적이라고 간주한다. 미국에게 한미군사훈련은 '전지훈련'의 성격도 있다. 1년 단위로 순환배치를 하는 미군에게 한반도만큼이나 실전에 가까운 군사훈련을 할 수 있는 장소도 마땅치 않은 것이다.
지난 1월 28일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연합훈련 실시 여부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 "우리는 군사 태세 유지를 위해 훈련과 연습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고 한반도보다 더 중요한 장소도 없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2021년을 비롯한 향후 한반도 정세의 중대 변수도 연합훈련 문제가 되고 있다.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을 "근본 문제" 가운데 하나로 일컬으면서 이 훈련의 실시 여부에 따라 북한의 대응도 달라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남북대화에서 군사훈련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하면서도 "연례적·방어적 훈련"임을 강조한다. 바이든 행정부와 주한미군 사령부도 예정대로 실시하겠다는 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군대가 있으면 훈련을 해야 하고 한미연합방위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연합훈련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으로 연합훈련을 연례적으로 실시하면 한반도 긴장도 연례적으로 고조되고 만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그리고 남북관계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의 유실을 동반하면서 말이다.
특히 임기 막바지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에게 대규모 연합훈련 취소는 좌초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유럽에서 작아지고 한반도에서 커지다
한미연합훈련은 정전협정 체결 2년 후인 1955년부터 본격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해 작전권을 연합사로 이양될 때까지 연합훈련은 유엔사령관의 주관이었다. 훈련 명칭은 '추기(秋期)', '봄비', '반격', '강력한 방패' 등 다양한 이름하에 실시되었고 유사시 정전체제를 회복하는 방어적 성격이 짙은 것이었다.
1960년대 후반 들어서는 미국 내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의 도발과 이에 따른 물리적인 충돌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엔사는 연합훈련의 명칭을 '포커스 렌즈'로 변경해 미국의 역외 전력을 신속하게 한반도로 전개하는 연습을 강화시켰다. 이러한 변화에는 베트남 전쟁에 따른 북한의 오판 가능성과 군사 모험주의를 억제하고자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미연합훈련이 대폭 강화되자 북한은 포병을 비롯한 상당량의 군사력을 전진 배치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당시 미국은 전술핵무기를 대거 한국에 배치하고 있었는데, 북한 군사력의 전진 배치는 '적 끌어안기'의 의도도 있었다. 북한군을 휴전선에 근접시키면 미국이 아군의 피해를 우려해 쉽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한미동맹은 연합훈련을 더더욱 강화시켰다. 1976년 여름부터 한국의 을지연습과 기존의 포커스 렌즈를 통합해 '을지포커스 렌즈'를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이었다.
이 와중에 '풍선 효과'가 일어났다. 유럽에선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는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해 군사 훈련을 대폭 축소키로 했다. 유럽 데탕트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런데 그 불똥이 한반도로 튀었다. 대규모의 군사훈련을 할 수 없게 된 미국이 한반도와 그 인근에서 1976년부터 '팀 스피릿'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매년 봄에 실시된 이 훈련에는 약 20만명의 병력과 다양한 핵 투발수단이 동원되었다. 이 역시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야외 기동 훈련이었다.
북한은 팀 스피릿 훈련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1993년에 김일성을 면담한 개리 아커맨 미국 의원은 "그가 팀 스피릿을 거론할 때,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고 말했고, 제임스 클래퍼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의회에서 "북한은 팀 스피릿 훈련에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북한은 팀 스피릿이 실시될 때마다 사실상의 전시 체제로 전환했고, 때로는 협박으로 때로는 읍소에 가까운 호소로 이 훈련의 중단을 요구했다.
앞서 소개한 콜린스는 북한이 핵무기를 비롯한 "비대칭" 무기 개발을 본격화한 것도 세계 최대 규모로 강해진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대응의 성격이 짙다고 분석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훈련과 북핵 문제의 오랜 악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만 것이다.
1991년에 접어들면서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중대 변수가 등장했다. 북한의 핵개발이 논란거리로 부상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중단 압력을 높이고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북핵 시설 파괴를 위해 연합훈련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는 작전계획 5027에 영변 핵시설 파괴 및 평양 점령까지 반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외교적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연합훈련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당시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안전조치협정 체결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팀 스피릿 중단을 협정 체결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결국 한미 양국의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연합훈련을 둘러싼 갈등도 해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미 국방장관들이 1992년 10월 팀 스피릿 재개를 발표했고 북한의 강력한 반발 속에 이듬해에 이 훈련이 실시되었다. 1993년 하반기 들어 북미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1994년 팀 스피릿을 취소되었고 그해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가 체결되면서 이 훈련은 종식되었다.
대신 한미동맹은 매년 봄에는 지휘소 훈련인 '연합전시증원(RSO&I)' 훈련과 야외 기동훈련인 '독수리 훈련'을, 매년 여름에는 지휘소 훈련인 을지포커스 렌즈를 실시했다. 2007년에는 RSO&I가 '키 리졸브(Key Resolve)'로, 을지포커스 렌즈는 '을지프리덤 가디언'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훈련
명칭은 변경되었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일례로 2017년 봄에 실시된 키 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에는 약 33만명의 병력이 참가했다. 같은 해 늦여름에 실시된 을지 프리덤 가디언에는 미군 13,000명과 한국군 10,000명이 참가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연합지휘소 훈련에도 상당한 병력이 참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한미연합훈련은 '양자' 훈련이 아니라 '다자 훈련'이다. 2009년에 유엔 사령부 산하에 다국적 협조센터(Multi National Coordination Center)가 설립되어 유엔사 전력공여국들이 한미연합훈련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14년에 다국적 협조센터 부소장을 맡았던 크리스 오스틴 대령은 "최근에 전력공여국의 역할이 참관단을 보내는 수준에서 더 확대되어왔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은 일본이 유엔사의 깃발 아래 한미연합훈련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한미일 3자 훈련으로 이를 만회하려고 해왔다.
그 이후 한미연합훈련은 트럼프가 중단을 선언하면서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는 2018년 6월 12일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전쟁 게임(war game)을 중단할 것"이라며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하나는 "큰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매우 도발적"이어서 대북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 국방부와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사전 협의 없이 나온 것이었다. 트럼프는 2019년 6월 30일 김정은과의 판문점 회동에서도 연합훈련 중단을 거듭 약속했다.
그 이후 한미연합훈련은 여러 가지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매년 8월에 실시되던 을지프리덤가디언은 2018년에 취소되었다. 그러나 2019년 3월에는 기존 '키 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이 '동맹 연습'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어 실시되었고, 8월에도 한미연합지휘소훈련(CPX)가 실시되었다. 2020년 3월에는 지휘소훈련을 준비하다가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어 무기한 연기되었고 8월에는 지휘소 훈련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한미연합훈련이나 연습은 3월과 8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3월과 8월에는 전면전을 상정해 한미 '연합(combined)' 및 육해공 '합동(joint)', 그리고 미국의 증원전력을 포함한 전구급 훈련의 성격이 짙다.
이외에도 한미공중훈련인 '맥스 선더'와 '비질런트 에이스', 한미연합해병대훈련, 한미 미사일방어통합 훈련도 존재한다. 아울러 대규모 훈련의 취소되거나 축소되면서 소규모 연합훈련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8년 91회였던 것이 2019년에는 186회로, 2020년 상반기에만도 100회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트럼프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졌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2020년에 훈련 연기나 축소는 트럼프의 약속보다는 코로나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트럼프의 약속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남북미 3자의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한 트럼프를 비난한 바 있고, 또한 바이든의 국정 기조는 트럼프가 한 것을 뒤집는 데에 맞춰져 있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트럼프의 약속을 지킬 이유가 없다고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8차 당대회에서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에서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한 것을 "총결기간(2016-2020년)에 이룬 성과들"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그리고 한미 양국을 향해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은 트럼프와의 '단절'을, 김정은은 '계승'에 방점을 찍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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