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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만들어진 법들은 왜 정인이 죽음을 막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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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만들어진 법들은 왜 정인이 죽음을 막지 못했나

'아동학대' 전문가 키워야…부족한 보호시설 확충도 필요

16개월 아기가 끔찍한 학대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아기의 상태는 처참했다. 영양 상태가 나쁘고 체구는 또래에 비해 왜소했다. 온몸은 멍투성이였고 두개골, 양쪽 팔과 다리 모두 골절된 상태였다. 뱃속은 장기가 파열돼 피가 차 있었다.

부검 감정서에 드러난 아기의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강한 외력으로 췌장이 절단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복부 안쪽 깊숙이 있는 췌장은 단순 폭행으로 절단되긴 어렵다"며 "지속적으로 복부를 발로 밟는 등 충격을 줄 때 그런 손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16개월 아기, 정인이는 지난 10월 그렇게 숨을 거뒀다.

사건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여아를 막론하고 학대방지 대책을 쏟아냈다. 사흘 동안 11개 법안이 나왔다. 지난 8일에는 '정인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됐다.

법안은 아동학대 신고 접수 즉시 수사를 의무화했다. 현장 조사 시 경찰과 전담공무원의 출입이 가능한 장소를 확대하는 등 조사·수사 책임자의 의무와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 조사에 비협조적인 아동학대 혐의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조항도 마련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률 강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법안, 기존의 시스템이 제대로 집행되는 것만으로도 아동학대의 상당 부분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보건복지부는 직무유기한 홀트아동복지회 특별감사 실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정인이 사건' 관련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때 만들어진 법들은 왜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나

공혜정 대한아동방지협회 대표는 "총체적인 시스템의 부실이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며 "우선 입양기관이 사후관리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경찰은 세 번이나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갔지만 수사하지 않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도 신고 이후 모니터링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인이 사건' 이전에도 아동학대 사건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세상은 분노했고 부랴부랴 대책을 만들었다. 지난 2013년 칠곡의 의붓딸 학대 사망 사건 후 아동학대치사죄가 만들어졌다.

같은 해 울산에서 '서현이'가 학대로 사망했고 2017년에는 학대 끝에 사망한 뒤 암매장된 '준희' 사건이 알려졌다. 이에 취학 전 아동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제도도 강화됐다. 그럼에도 지난해 6월, 학대 당하던 아이가 끝내 여행 가방에 갇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학대 의심 신고가 2회 누적되면 무조건 분리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이런 시스템은 정인이에게 작동하지 않았다. 정인이가 사망하기 전까지 3차례 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수사도, 적절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인이는 매번 학대 가해자들에게 돌아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학대 판단 제각각

전문가들은 정인이가 사망하기까지 "시스템이 있으나 작동하지 않는" 문제점을 지목했다. 공 대표는 "법과 제도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현장에 투입되는 사람의 문제가 크다"며 "매뉴얼도 있고 법도 있고 정인이 사건은 충분히 분리조치 할 수 있었던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아보전 조사원과 학대예방경찰관(APO)가 현장에 출동한다. 아보전 조사원이 학대 여부와 정도를 파악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학대 정도에 따라 심각할 경우 72시간 분리에 들어간다. 분리 이후에 가해자는 수사 결과에 따라 처벌을 받고 피해 아동은 학대피해 쉼터 등 보호시설로 이동한다.

시스템의 사각지대는 가장 중요한 현장조사에서 발생한다. 아보전의 한 관계자는 "명백히 학대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며 "눈으로는 뺨 한 대 맞은 것 같기는 한데, 부모도 반성한다 하고 아이도 여기 있기 원한다 하면 무조건 학대라고 수사 의뢰를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아보전과 경찰의 판단이 다를 때도 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상처가 심하지 않으면 아보전에서 학대라고 판단해 수사 의뢰하자고 하는데 경찰은 집에서 이 정도 훈육은 할 수 있다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며 "수사의뢰를 하고 경찰이 수사를 했는데 무혐의 처분이 난다면 분리 보호를 진행하는 게 어렵다"고 전했다.

공 대표는 "아직 우리 사회에는 훈육의 일환으로 체벌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경찰도 마찬가지"라며 "그러나 누군가가 학대 의심 신고를 하기까지 수많은 학대의 정황이 있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대 전담한다지만...'아동학대'에 전문성 없어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변호사도 "아동의 특성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고 민감성이 낮았다고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다"면서 "제도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제도 안의 사람들이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역할을 맡은 사람들에게 아동인권 감수성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지목했다.

이런 '구멍'은 정인이가 숨지기 전 세 차례 신고에서 드러난다. 정인이의 학대 의심 신고는 지난해 5월 처음 이뤄졌다. 정인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교사들이 정인이의 양 허벅지 안쪽에서 멍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그러나 학대 가해자들은 "아이의 오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마사지를 해줬다"고 변명했다. 아보전에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경찰은 내사 종결했다.

6월엔 정인이가 오랫동안 차 안에 방치되고 있는 걸 발견한 이웃의 신고가 있었다. 학대 가해자는 "아이를 혼자 두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아보전 조사원은 정인이의 쇄골에 금이 갔다는 점 등을 들어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러나 수사는 더뎠다. 경찰은 사건 발생 한 달 후에나 차량이 주차됐던 인근 건물을 찾았다. 사건 당일의 폐쇄회로(CC)TV는 이미 지워진 뒤였다. 학대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경찰은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마지막 신고는 정인이 사망 한달 쯤 전인 9월에 있었다. 정인이의 어린이집 원장은 한 달 만에 본 정인이를 보고 학대를 확신하고 양부모 몰래 병원에 데려갔다. 정인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영양 상태가 나쁘고 혼자 걷지도 못했다.

정인이를 진료한 소아과 의사는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하며 아이를 빨리 부모와 격리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아보전 조사원 2명과 경찰관 4명이 즉시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분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학대 가해자인 양부모가 반발했다. 그들은 "정인이의 입 안에 염증이 나 이유식과 물을 잘 먹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조사원과 경찰은 협의 뒤 "신체상 학대 정황이 발견되지 않는다"며 분리가 아닌 모니터링 결정했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경찰과 아보전 조사원이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었다. 전문성이 부족해 생긴 일"이라며 "16개월 아기면 말을 제대로 못한다. 대신 표정이나 몸으로 학대 사실을 드러낸다. 학대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대체로 학대 가해자들은 거짓말을 잘 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이를 엄청 사랑하는 척한다. '세상에 저런 부모가 어떻게 학대를 하나' 싶을 정도다"라며 "가해자는 학대하지 않았다 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는 부모 눈치만 보고 있는데 그런 것만 보고 '학대가 없었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부족한 인력과 예산...전문성 가진 인력 키워야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조사원과 APO의 전문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10월, 지방자치단체 소속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생겼다. 민간기관인 아보전에 위탁했던 아동학대 현장조사를 맡는다. 전문성이 매우 중요한 분야지만 아직 인력부터가 부족하다. 서울시만 해도 전담 공무원은 61명에 불과하다.

아동학대 사건을 맡은 APO도 인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전국의 APO는 669명으로 한 경찰서당 평균 2~3명 수준이다. 아동학대뿐만 아니라 노인·장애인 학대, 가정폭력 사건도 맡는데다 재발 방지를 위해 사후 점검까지 해야 해 업무 강도가 매우 높다.

공혜정 대표는 "학대 당하는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건 현장의 사람들의 적극성, 그리고 전문성"이라면서 "그러나 아동학대전담공무원도, 아보전 조사원도 사회복지자격증만 있으면 된다. 아동학대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어 "경찰서마다 아동학대를 맡은 부서가 있지만 아동학대만 맡지 않는다. 맡은 일이 너무 많다"면서 "순환보직이라 전문성을 쌓기도, 경험을 쌓기도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공 대표는 "학대 신고가 이뤄지면 즉시 분리하고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자는 이야기는 늘 나온다"며 "시스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력이 충분히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제 즉시 분리한다고 하는데 어디에 분리하나. 분리된 아이를 24시간 보살필 인력은 어디 있나. 심리치료할 전문가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공 대표의 말처럼 학대피해아동쉼터나 위탁가정 등은 이미 포화상태다. 2019년 아동학대 의심 신고는 4만1389건. 이 중 3만45건이 최종 학대로 판단됐다.

그러나 학대 아동을 위해 마련된 쉼터는 전국에 75개에 불과하다. 한 곳의 정원이 5명~7명임을 고려하면 전국 쉼터의 정원은 500명 수준이다. 피해 아동 대부분이 가해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안에 쉼터는 91곳까지 늘릴 계획이지만 이 역시 부족한 건 마찬가지다.

공 대표는 "전문성 있는 인력을 구축하고 이를 위한 예산 확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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