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이 법정에 등장할 무렵,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법원 복도를 장악하다시피 도열했다.
채용비리 피고인 함 부회장은 남성들과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법정으로 들어갔다. 법정 방청석도 이 남성들이 거의 차지했다. 함 피고인은 재판에 끝난 뒤에도 이들의 호위를 받으며 법원을 떠났다.
기자의 접근은 쉽지 않았다. 지난 11월 11일, 서울서부지방법원 308호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함영주 부회장은 2015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하나은행장을 지내면서, 채용비리를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하나은행은 당시 신입직원 공개채용에서 여성보다 남성을 더 뽑기 위해 점수를 조작했다. '남성과 여성을 4대1' 비율로 뽑으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재판부는 남녀를 차별해 채용한 하나은행에 유죄를 선고했다. 12월 9일 열린 하나은행 인사담당자 채용비리 1심 재판에서, 서울서부지법은 하나은행에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당시 남녀를 차별해 뽑도록 지시한 사람은 함영주 전 하나은행장이다. 함 은행장은 2015년 2016년 하반기 신입직원 공개채용 당시, 인사부장에게 특별 주문을 했다.
두 인사부장은 함 은행장 지시대로 움직였다. 이들은 남녀 합격자 비율을 약 4:1로 정해놓은 후 절차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사부장은 인사부 직원들에게도 서류전형부터 임원면접까지 모든 절차에서 남녀 지원자를 정해진 비율에 따라 뽑도록 했다.
인사부장 송○○는 2015년 공채에서 남성과 여성 비율을 5:1로 맞췄다. 그는 2015년 하반기 최종합격자는 남자 375명, 여자 75명이라고 함 은행장에게 보고했다.
2016년 인사부장 강○○도 마찬가지다. 남성과 여성 비율을 4:1로 딱 맞췄다. 2016년 하반기 신입직원 채용에서 남성 120명, 여성 30명을 최종 합격시켰다고 은행장에게 말했다.
사업주는 노동자를 모집할 때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하나은행은 공고를 낼 때 남자를 더 뽑을 예정이라고 밝히지 않았다. 하나은행 여자 지원자들은 남자 지원자보다 훨씬 높은 문턱을 넘어야 했다. 점수가 좋은데도 탈락하는 여자 지원자들이 속출했다.
학벌 차별도 심했다. 하나은행은 노골적으로 학벌로 줄을 세웠다. 2018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소위 SKY 대학(서울대, 고대, 연대)과 해외 대학 출신자를 뽑기 위해 다른 대학 출신 지원자 점수를 의도적으로 깎았다.
건국대, 동국대, 명지대, 카톨릭대 등의 학생들은 임원면접점수가 하향 조정됐다. 이들의 임원면접 점수는 원래 합격권이었으나, 점수 조정을 통해 불합격 대상자가 됐다. 임원면접이 끝난 후에 인사부가 점수를 조정해 합격자가 뒤바뀌었다.
이를 접한 학생들은 분노했다. 건국대 학보인 <건대신문>은 당시 "건국대라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하나은행의 채용비리를 비판했다. 건대신문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건국대라 죄송합니다' 기사를 공유하며 '#건송합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은행장 말 한마디에 합격된 사람도 많았다. 함 은행장은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를 비롯한 지인으로부터 인사 청탁을 받고 인사부장에게 인적사항을 알려주며 "잘 살펴보라" 지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은행장이 콕 집은 지원자 이름 옆에 인사부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長(장)'
하나은행 경우 채용비리 피해자 특정.. 함영주, 재판 끌고 있다?
하나은행 채용비리 사건은 여느 다른 은행 채용비리 사건과 조금 다르다. 피해자가 정확히 특정된다. 금감원이 심상정 의원실에 제공한 '2016년 신입행원 채용 임원면접 점수 조작 현황'에 따르면, 점수 조작으로 불합격한 7명이 누군지 정확히 확인된다.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몰랐던 A 씨는 하나은행 채용비리 수사과정에서 우연히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A 씨는 동국대 출신으로, 최종 임원 면접에서 4.3점을 받아 합격권이었지만 면접 점수가 3.5점으로 조정되면서 불합격 처리됐다.
A 씨는 지난 5월, 하나은행을 상대로 1억 원의 위자료와 1억1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난 달 11일, 기자는 법정에서 나오는 함영주 부회장에게 "(채용비리) 피해자가 특정되는데, 구제 계획이 없는지" 물었다. 기자를 막은 사람 중 한 명은 안영근 하나은행 중앙영업1그룹 부행장이었다.
하나은행 채용비리 재판의 경우 인사담당자 사건과 함영주 전 은행장 사건이 병합되지 않았다. 2018년 4월 기소된 하나은행 인사담당자 채용 비리 사건은 기소된 지 2년 8개월만인 12월 9일, 1심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강OO 전 인사부장과 송OO 전 인사부장에게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100만 원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피고인 오OO 전 인사팀장, 박OO 전 인사팀장에게는 각각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됐다.
2018년 6월 기소된 하나은행 함영주 전 은행장 채용비리 사건은 기소된 지 2년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1심 중이다. 비슷한 시기에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됐던 대구은행과 부산은행 사건은 대법원으로부터 이미 확정 판결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많이 늦은 셈이다.
"2억 줄테니 기사 쓰지마"… 기자가 제안 거절하자 소송전
채용비리 의혹을 부정하며 기자에게 "기자가 대수야?"라고 외친 사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안영근 부행장은 하나은행 홍보팀장 출신으로 오랫동안 언론대응을 도맡은 인물이다. 대외협력본부 본부장을 거쳐, 소비자브랜드그룹 전무를 지냈다.
안 부행장의 행적을 보면 하나은행의 언론대응 방식을 알 수 있다. 안 부행장은 돈으로 기사를 막으려고 했던 인물이다.
2017년 한 인터넷신문은 하나금융지주사의 의혹에 대해 연속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하나금융지주, 회장 재선임 앞두고 사외이사와 거래…"상법 위반" 논란' 기사가 이 중 하나였다.
경영지원그룹 전무였던 안 부행장은 2017년 11월 13일 B 기자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안 부행장은 기자에게 "이번 달 하나, 다음 달 하나?" 물으며, 광고비와 협찬을 내세워 기사를 내려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안 부행장은 다음날 또 기자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더 큰 제안을 했다. B 기자에게 임직원 자리를 제안했다.
이 자리에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도 있었다고 <미디어오늘>이 보도했다. 당시 김 회장은 세 번째 연임을 준비하고 있고,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어서 비판적 언론 보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B 기자와 해당 매체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나은행의 공격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2017년 11월 하나금융지주 측은 김앤장을 내세워 해당 매체와 기자를 상대로 압박에 들어갔다.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고소, 억대의 손해배상 청구,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신청, 기사게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끈질긴 소명 끝에 B 기자는 억울함을 벗었다. 안 부행장과의 나눈 대화 녹취록을 경찰에 제출한 결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사건이 불기소 처분으로 끝났다고 B 기자는 전했다. 그 후 하나은행 측은 B 기자와 해당 매체에 대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취하했다.
안영근 부행장은 지난 11월 22일 MBC에 방영된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에서 등장했다. <스트레이트>는 "지난 11일 함영주 부회장 재판에서 MBC 스트레이트 취재진을 막아섰던 그 인물“이라면서 안영근 부행장을 지목했다.
하나은행은 <스트레이트> 제작진을 상대로 형사고소와 5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나은행 비리 의혹을 보도한 MBC 스트레이트 제작진 개인을 상대로 하나은행 측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MBC는 지난 달 20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하나은행이 기자 개인을 상대로 형사 고소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후속 보도를 위축시켜 보려는 협박성 소송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셜록>은 지난 달 25일부터 반론권 보장을 위한 질문지를 보내기 위해 하나은행에 메일주소를 요청했지만, 하나은행 측은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내용증명을 통해 인사부에 질문지를 보냈는데, 일주일째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안영근 부행장은 <셜록> 기자의 취재를 막은 행위에 대해 "과도한 취재에 대한 항의의 표기 차원이었지, 기자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는 없었다"고 문자로 입장을 밝혔다.
프레시안-셜록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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