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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교류와 협력을 통한 점진적 통일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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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교류와 협력을 통한 점진적 통일 가능한가?

[프레시안 books] <빗나간 기대 - 준비되지 않은 통일>

2016년 2월, 개성공단이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4년 뒤, 북한은 개성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교류와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던 개성은 20년이 지난 2020년 현재,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 채 을씨년스러운 공간으로 바뀌어버렸다.

개성에서 일어난 이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남한 국민들과 개성공단 입주기업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을 상대로 일을 해왔던 공무원, 북한 문제를 연구해 온 학자, 취재했던 기자 등 북한과 관련된 일을 해오던 이들에게도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개성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체념부터, 향후 남북 간 교류가 가능한 것이냐는 근본적인 회의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2006년부터 북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온 안정식 SBS 북한전문기자 역시 최근 저서 <빗나간 기대>(안정식 지음, 늘품플러스 펴냄)에서 당시의 일을 언급하며,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이 책을 펴낸 이유가 됐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보며 대한민국에서 대북정책이라는 것은 가능한가 라는 회의에 빠졌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본격화됐던 남북교류의 시대가 16년 만에 완전히 물거품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은 수십년 동안 일관성을 유지해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10년 넘은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 대북정책을 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들 뿐이었다"

이후 안 기자는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에서 '기대'가 아닌 '현실'을 들여다보게 됐다고 밝혔다.

"10년 넘은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것.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닐까. 지금까지 공든 탑이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해온 것은 아닐까?

통일에 대한 준비도 나의 '기대' 보다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다는 고민이 이때부터 머리를 파고들었다"

안 기자가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북한 문제를 취재하면서 직면한 현실은 남한의 대북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었다. "진보와 보수가 적대적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대북정책의 일관성은 지켜질 수 없으며, 우리의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 또한 과도한 기대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저자는 이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한반도에서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통해 남북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소프트랜딩'(Soft Landing, 연착륙) 통일, 우리의 예상 하에 점진적인 통일의 경로를 밟아가는 준비된 통일을 이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돼버린 것"이라며 남북한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의 공간을 넓힌 뒤 충분한 준비를 통해 '연착륙'하는 통일을 만들어내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 <빗나간 기대> (안정식 지음, 늘품플러스 펴냄) ⓒ늘품플러스

그는 "남한에서는 진보-보수 간 정권교체에 따라 대북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북한이 무엇을 믿고 변화를 시도할 생각을 하겠는가. 핵을 포기하면 체제안전을 보장하고 경제발전을 돕겠다는 약속을 믿었다가 남한의 정권이 바뀐 뒤 공수표가 되면 손해보는 것은 북한"이라며 "이제 북한은 남한의 대북정책을 믿으면 안된다는 것을 학습효과로 알고 있다. 북한은 '역시 믿을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으며 쉽사리 외투를 벗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자는 "포용정책이든 압박정책이든 몇 년 단위로 바뀌는 대북정책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견인하기는커녕, 북한이 남한의 가변적인 대북정책을 어떻게 이용해먹을 것인지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북한의 내성만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반도에서 준비된 '소프트랜딩' 통일이 어려운 것은 남한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에도 중요한 원인이 있다. 북한 체제의 경직성, 다시 말해 북한 체제가 적극적인 개혁 개방을 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라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라며 북한의 현 체제 역시 '소프트랜딩' 통일로 가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상태라고 규정했다.

저자는 남북의 이같은 현실 속에 준비된 통일이 아닌, 준비되지 않은 통일이 올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치밀한 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기자는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준비된 통일이 이뤄진다면 필자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지만 "'하드랜딩(Hard Landing, 경착륙)' 통일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면 이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안 기자는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부문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통일이 온다면 그 부작용과 혼란이 상당히 클 것이라며, 갑작스러운 통일이 다가오더라도 과도기를 거치는 '하드랜딩 속 소프트랜딩 통합'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이 과정에 대해 "하드랜딩 통일로 혼란과 충격이 불가피하다면 완충장치를 찾아야 한다. 충격을 완화시킬 방법은 갑작스런 통합의 속도를 늦추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인위적인 소프트랜딩 단계를 설정해보는 것"이라며 "이는 남북 지역을 한시적으로 분리해 점진적인 통합의 절차를 밟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으로는 하나의 통일국가가 형성됐다 하더라도 남북한 지역을 기존처럼 한시적으로 분리해 통일정부가 통합의 속도를 제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일을 꼭 해야 한다면,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하드랜딩'보다는 지난 70년 동안 벌어진 남북 간 차이를 좁히고 단계적으로 통일을 이룩하는 '소프트랜딩'이 가장 이상적인 방안임을 분명하다. 저자 역시 이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통일의 방법이 이론적인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남북한의 '사람'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방법에 대한 연구도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그래야 '기대'가 번번히 '빗나가는' 비극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가야할 길이라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선의로 하는 행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행동의 결과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것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좋은 뜻을 가지고 일을 추진한다고 해도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러한 행동에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 선의를 갖고 노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통일이라는 사안도 우리가 선의에만 기대 일을 추진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 소프트랜딩 통일에 대한 선의로만 일을 추진했다가 그와는 다른 상황, 즉 하드랜딩 통일이라는 상황이 준비 없이 갑자기 펼쳐지면 우리 사회에는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선의보다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으로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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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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