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국, 일본에 이어 드디어 대한민국에서도 2050 넷제로 선언이 발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여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밝혀, 우리나라에서도 탄소중립이 구체적인 정책 이슈로 부각됐다. 크게 환영할 일이다. 국내도 모자라 해외에 석탄발전소를 지어가며 '기후악당'으로 불렸던 나라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는 것 자체로도 상당히 놀라운 일 아닌가.
이 선언의 의미와 가치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는 지는 의문이다. 넷제로는 선언만이 아니라 이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후속조치에 달려 있기에, 이제부터는 앞으로 어떠한 조치와 행동이 이루어질 지를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사회는 정부와 기업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국가 내에서 국민이 온전히 받아들여 실행으로 옮겨야 가능한 목표지점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탄소중립사회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 지 각자가 상상해보고, 우리 모두가 각각 어떠한 책임을 지고 어떠한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지, 그로 인해 무엇을 얻을 지 토론하고 합의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상상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원에 따라 대응 방향을 나누어 생각해보자.
연료로 쓰이는 탄소원은 어떻게 변화할까? 이들은 우선적으로 탄소 배출이 0인 에너지로 바뀌어야 한다. 즉, 재생에너지로 모두 채워져야 할 것이다. 일부는 탄소가 배출되는 에너지이겠지만, 이들은 배출된 온실가스를 포집하는 형태로 순배출 0으로 수렴할 것이다. 다만, 온실가스의 포집에도 에너지가 듦으로,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도 온실가스를 배출해서는 안 된다.
쉬운 상상부터 시작해보자. 우리나라 수출의 많은 부분을 반도체가 차지하는데, 반도체는 큰 전력 소모를 필요로 한다. 반도체 제조 대기업이 두 개나 있는 경기도의 전력 소비량이 전국에서 가장 큰 원인이다. 이만큼의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을까? 그 때 전력의 가격은 부담 가능한 수준일까? 전력의 가격이 비싸지면 반도체의 국제 경쟁력이 유지될까? 반도체 기업이 경쟁력 유지를 위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를 싸게 팔아달라고 요청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이들은 재생에너지가 싼 해외로 진출하게 될까? 그럼에도 고급인력을 써야 하니 국내에 머무르리라는 희망은 있을까? 슬프게도 요즘 생산공정에는 사람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무인화는 점차 늘어만 간다.
이 상황을 산업 전반으로 확대해서 살펴보자. 우리나라 전력과 에너지의 60%가량은 산업부문에서 소비된다. 화석연료가 전력으로 대부분 이동하고, 전력은 완전히 재생에너지로 충당되어야 하는 산업 구조에서 전력의 가격과 산업부문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RE100이 우리나라 기업에 엄청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달리, 해외의 기업들은 오히려 RE100을 통해 더 싼 전기를 공급받는 경우가 꽤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RE100 선언이 이어지고, 그에 따라 실행이 더 쉬워지는 면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토지 가격과 현재 투자비를 고려했을 때 해외와 같은 재생에너지 저가 공급은 임대료가 없는 일부 수상 태양광과 풍력 정도에서 가능할 것이며, 이 역시 지역 주민의 반발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만약 재생에너지 전력이 여전히 비싼 상태에서 전력의 국가 간 구매가 가능해진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해외 전력 구매에 눈을 돌릴 것이다. 몽골이나 중국의 전기를 국가 간 전력망으로 구매하거나 그린수소를 사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생산 시장은 성장하기 어렵다.
2050년까지 우리는 어떻게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어떠한 제도를 만들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유혹을 받게 될까? 과연 에너지 소비량은 점차 줄어들 수 있을까, 오히려 늘어날까? 무엇이 에너지 소비를 줄여줄까? 절망적인 것은 이 가정에 선박이나 비행기를 통한 온실가스 배출은 고려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세계 물류는, 대륙 간 이동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두 번째 상상은 원료로 쓰이는 탄소원에 있다. 원료로 쓰이는 탄소원에 비하면 연료로 쓰이는 화석연료의 전환은 오히려 쉽게 느껴질 지경이다. 제철과 시멘트, 석유화학은 모두 탄소원 또는 이들의 부산물을 원료로 사용하는데, 이들 3대장은 현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물질이다. 문제는 그것이다. 현대 사회가 앞으로 철과 시멘트, 석유화학제품을 쓰지 않을 수 있는가. 철과 시멘트가 주거의 근간이 되고, 석유화학제품이 의복과 생활의 근간이 되고, 석유화학제품에 기반한 농업이 식품의 근간이 된다는 면에서 원료로 쓰이는 탄소원의 제거는 더더욱 난관에 봉착한다.
각각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철과 시멘트는 도시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기 어렵다. 대체 가능성도 매우 낮다. 이들 산업은 수소 환원, 재생에너지 활용, 온실가스 사후 포집, 바이오 원료 활용 등의 방법을 통해서 살아남고자 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조치로 인해 가격이 상승한다면 주택 또는 건물 가격도 상승할 것이고, 그에 따라 저소득층의 주거 환경이 매우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는다면 도시 내의 재개발, 재건축, 리모델링 등도 어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더 어려운 것은 석유화학이다. 석유화학제품은 각종 플라스틱 제품 외에도 의복, 세제 및 화장품, 건축 소재, 농약과 비료 등에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들은 만들어질 때 온실가스를 배출할 뿐 아니라, 사용과정에서 점차 분해되며 온실가스를 배출하거나 자연생태계(특히 해양)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대체도 쉽지 않다. 나무로 콘센트를, 청소기를, 세탁기를 만들 수 있을까? 바셀린 대신 아교를 바를까? 3D 프린터는 무엇으로 가동할까? 내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금속만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 모든 물건을 대체할 만큼 천연원료는 충분한가? 농약과 비료대신 무엇을 통해서 작물을 키우고 병충해를 예방할까? 유기농업으로 우리 모두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까? 그 가격은 충분히 지불할 만 한가?
마지막 상상은 이 사회에 살게 되는 우리들이다. 넷제로는 결코 저절로 오지 않으며,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필요로 한다. 화석연료가 전기로 바뀐다고 해서 연탄 아궁이나 경유·가스 보일러가 저절로 전기난방 되는 것이 아니며, 트럭과 오토바이가 저절로 전기차가 되는 것이 아니며, 낡은 집의 외풍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슬프게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료의 질과 반비례하고, 저질의 연료일수록 저렴하면서도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현재의 제도와 가격 구조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넷제로 사회로 이행하는 동안 시민이 져야 할 부담은 더 커지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 제품은 더 비쌀 것이기에 소비자의 저항도 커질 것이다.
사실상 경제 규모를 축소해야 가능한 목표가 탄소중립사회일 것인데, 전국민의 경제규모 감소가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미래사회는 점차 자본집약적 산업구조로 바뀔 것이며 점점 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로 이행하게 되는데, 직업을 잃은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며, 비싸진 물가 수준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미래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경제규모를 축소해야 하고, 삶의 질 저하를 감수하고, 기존의 풍요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후 위기의 심화로 사회가 궤멸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탄소 배출을 계속 줄여나가야만 한다. 이 과정은 결코 성장이기 어려우며, 발전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문명의 종말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지난한 과정은 물론 정치적인 반발을 겪을 수 있고, 넷제로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실패를 겪을 수도 있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 탄소를 지속적으로 배출해 경제적 풍요를 누린다면, 이 계획은 절반의 성공과 실패가 될 수도 있다. 스스로 더 어려워지는 길을 자발적으로 택하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구성원 전체의 합의하에 이 길을 가기는 무척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에게 선택지가 몇 남지 않았다. 생존하느냐, 궤멸하느냐는 기로에서 우리는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탄소중립 선언의 의미는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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