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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조물 보전 … 거제시는 길 잃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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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조물 보전 … 거제시는 길 잃었나

통영시, 근대건조물 보전 조례 만들어 문화자산 지켜

건축물이나 조형물 자체로 보전 가치가 높거나 역사적 상징성을 간직한 근대건조물에 대한 보전 의지를 담아내는 지자체의 대응이 문화자산을 대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근대건조물 보전과 관련 경남에서는 창원시가 지난 2013년 '창원시 근대건조물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것이 도내 최초다.

창원시는 이를 근거로 2년 뒤 ‘진해 충무공 이순신 동상’과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 ‘진해탑’, ‘흑백다방’을 경남 최초의 근대건조물로 지정했다.

▲마지막 건조물로 남은 통영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 ⓒ프레시안(서용찬)

이같이 자치단체의 근대건조물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조례 제정과 자체 심의위원회 구성은 국가지정문화재인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건조물을 보전하는 길을 터주고 있다.

지자체들은 근대문화재 보호를 위해 19세기 개항기부터 본격적인 산업화 시기까지 세워진 건조물로 보전대상을 폭 넓게 적용하는가 하면 그 후라도 50년 이상 된 건조물을 심의대상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2016년 8월 ‘근대건조물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경남 통영시도 최근 원도심 공동화 현상과 건물 신축 등으로 철거위기를 맞았던 항남동 ‘경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를 살려냈다.

이달초 잔존하는 마지막 건축물인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예고(문화재청공고 제2020-308호) 됐기 때문이다.

‘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는 조선시대 통제영 12공방의 맥을 잇는 나전칠기 공예의 현장이다. 해방과 전쟁기를 거치며 나전칠기 전문 공예교육이 실시된 곳이다. 과거 한 집 건너 공방이 있었을 정도로 나전칠기는 통영을 대표하는 산업이었고 자랑이었다.

양성소에서는 한국 나전칠기의 거장 김봉룡 선생이 교습생에게 전통 및 최신 나전칠기법을 전수했다. 때마침 통영에 머물던 천재 화가 이중섭도 강사로 활동하며 황소, 달과 까마귀, 통영풍경 등 걸작을 남긴 의미 있는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지자체의 대응으로 보는 문화자산을 대하는 태도

‘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를 철거위기에서 구하게 된 가장 큰 역할을 ‘통영시 근대건조물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조례’가 해냈다. 이 조례는 김미옥 통영시의원이 발의했다.

조례의 핵심은 시가 근대건조물을 사들일 수 있는 근거, 보조금 지원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해 근대문화유산 보존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 마련이었다.

김 의원은 통영시 근대건조물(서호동 장공장) 학술용역(2018년), 통영시 근대건조물 기본계획 수립 전수조사(2019년)를 제안했던 인물이다.

또 한 사람은 강석주 통영시장이다.

강 시장은 2019년 통영시 근대건조물 기본계획 마련을 지시하는 한편, 14억 원의 통영시 자체예산으로 항남동 ‘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와 서호동 ‘장공장’을 매입하는 등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 보존 및 관리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지난해 10월 건물을 매입한 통영시는 문화재청에 문화재 등록을 신청, 현지조사를 거쳐 지난달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위원회 회의에서 등록 예고사항이 가결됐다.

시의 노력이 없었다면 마지막 남은 건조물도 사라질 판 이었다. 양성소가 있는 곳도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해 새로운 통영 관광의 효자상품 등극의 기대도 높이고 있다.

지난 3월 문화재청은 통영시 중앙동과 항남동 일대 원도심 1만4473제곱미터를 ‘통영근대역사문화공간 ’국가등록문화재 제777호로 지정하고 이 공간 내 위치한 ‘통영 김상옥 생가’, ‘구 통영목재’ 등 9건을 개별등록문화재(국가등록문화재 제777-1(호)로 등록한 바 있다.

통영이 문화 예술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로 충분했다.

▲한국전쟁 당시 장승포에서 피난민을 치료하던 세브란스 병원 잔존 건물. ⓒ프레시안(서용찬)

이웃 거제시도 근대건조물 보존에 대한 여론이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또다시 등록문화재지정이 유력한 고현동사무소의 철거여론까지 나돌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현동사무소는 역사박물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오래된 염원도 잊혀진 모양이다. 거제시의 문화적 자산에 대한 고민에 물음표가 달린다.

장승포항을 중심으로 흥남철수작전을 모티브로 한 도시재생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남아있는 세브란스병원 건물은 아직 보전 논의 조차 없다. 한국전쟁의 암울한 시기, 거제에서 문을 연 세브란스병원은 흥남철수로 북새통이 된 피난민들의 의료를 책임졌던 상징적인 장소다.

서울이 함락된후 세브란스병원은 거제도에 구호민병원을 세워 피난민들에게 무료로 의료활동을 펼쳤다.

거제시민 이장명씨는 “병원을 난 기억 한다. 지금 부터 50년 전 우리 어머니가 부엌에 일하시다 빈혈로 쓰러져 목에 심한 화상을 입어 저 병원에 실려 갔다. 내 나이 국민학교 2학년때 일이다. 나는 울면서 따라갔다”고 기억했다.

세브란스 병원 건물 옆에는 거제시가 사유지를 매입해 장승포도시재생사업 지원센터를 건죽 중이다. 아쉽게도 거제시는 세브란스 병원 부지는 매입대상에서 제외했다.

최근 강제이주 논란을 불러일으킨 거제 동백섬 지심도에도 일제 시대 가옥들이 남아있지만 섬 개발을 둔 자치단체와 주민들의 갈등에 휘말리면서 주객이 전도된 상태다.

거제시는 근대건조물 보존을 위한 조례제정에 대해 현재까지 회의적이다. 장기적으로 검토는 해보겠지만 당장 기존 지정문화재 관리도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근대건조물 보존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거제와 통영의 차이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근대건조물을 대하는 거제시의 현주소는 문화자산의 가치 평가를 통해 건널 수 있는 문화도시의 문 턱에서 방황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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