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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임신중지를 죄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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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임신중지를 죄로 만드는가?

[인권으로 읽는 세상] 정부는 낙태죄 개정 입법예고안 폐기하라

지난 10월 7일 정부는 낙태죄 개정 입법예고안을 발표했다. 예외적인 사유를 제외하면 임신중지를 시술한 의사와 시술받은 여성을 모두 처벌하는 기존 법안이 헌법재판소에서 불합치 판결을 받은 데 따른 결과였다. 이번 정부안은 임신 14주까지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24주까지도 사회경제적 이유에 따라서 임신 중지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허용범위의 증가는 일견 기존보다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 같지만, 여성들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허용범위만을 확대하는 입법 예고안은 여전히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임신중지 허용범위 확대와 낙태죄 완전폐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이토록 다른 반응을 불러오는 것일까?

낙태가 아니라 낙태'죄'가 문제다

흔히 낙태죄에 관련한 입장은 자동으로 낙태, 즉 임신을 중단하는 행위에 대한 생명윤리적 판단에 종속된 것처럼 이해되어왔다.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대립 구도 아래에서 한 가지 입장을 선택하면 낙태죄에 대한 입장도 결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임신중지라는 행위'와 '낙태죄가 작동하는 사회의 문제'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낙태죄 존폐 논의에서는 임신중지라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낙태죄'가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낙태죄는 1953년 형법의 역사와 같이 시작했지만 실질적으로 67년 내내 일관되게 집행되진 않았다. 한국전쟁 직후 낙태죄는 인구수 증가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작용했지만, 1970년대 산아제한정책이 펼쳐지고 정부가 임신중지를 권장하면서 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이후에도 정부의 인구정책에 따라 낙태죄의 집행 여부는 고무줄처럼 달라지기를 반복했다. 사적인 영역에서 낙태죄가 받아들여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남아를 선호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아를 선별하며 임신중지가 강요될 때, 낙태죄는 전혀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헤어진 연인이나 남편이 여성을 괴롭히고자 할 때 낙태죄는 그들의 무기가 되어줬다. 낙태죄는 남성중심의 국가와 사회가 인구를 조절하거나 여성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낙태죄의 역사는 국가와 사회가 임신·출산이 가능한 여성의 '몸'에 대해 관리하고 통제하며 처벌해온 역사, 여성을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아온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며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라고 말했다. 낙태죄가 작동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채 태아의 권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직시한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진지 1년 반 만에 문재인 정부는 낙태죄 개정 입법예고안을 통해 낙태죄의 지난한 역사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정부는 임신 주수에 따라 임신중단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개정 방향이 곧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이라고 말하지만, 핵심은 여전히 임신중지를 처벌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 있다. 임신 14주까지는 허용하지만 14주 이후부터는 관리와 통제를 받아야하고 24주 이후에는 처벌하겠다는 프레임은 기존 낙태죄가 여성을 관리, 통제, 처벌해온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오히려 더욱 촘촘하게 제도를 설계하여 여성의 몸을 분할하여 통제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또한 정부 입법예고안에는 의무상담 과정과 상담 사실 확인서 발급 절차, 상담 후 임신중지까지 숙려 기간이라는 이름의 강제 대기 절차, 의사의 거부 권한을 규정하는 조항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절차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임신중지 결정을 가로막는 편향적 접근으로 작동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더욱이 위 절차들은 임신 중지 결정에 따른 책임을 전부 여성 개인에게 전가하는 효과를 낳는다. 여성은 임신중지를 위해서 스스로 자신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증명해야 하고, 상담을 통해 임신중지의 필요성을 역설한 끝에 확인서를 발급받아야 하며, 숙려 기간을 거쳐, 거부하지 않고 임신중지 시술을 해줄 의사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 혼자서만 임신하지 않는다는 사실, 나아가 국민의 건강과 안녕을 보장할 국가의 책임은 드러나지 않는다.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시민들의 외침은 그저 '자유로운 임신중지 시술'만을 말한 것이 아니다. 임신중지를 자유롭게 선택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조건과 사회적 배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여성의 몸을 임신과 출산의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을 폐기하고,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는 토대 위에서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세워나가야 한다는 요구인 것이다. 이는 남성 중심의 국가가 지금껏 방기해온 여성의 권리는 무엇이었는지 묻고, 지금이라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임은 무엇인지 제대로 물을 때 가능하다.

여성의 권리를 보장할 국가의 책임

여성의 권리를 보장할 국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임신 중지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하고 의료의 질을 높여야 한다. 임신중지는 모든 여성에게 필요할 수 있는 의료행위 중 하나다. 완벽한 피임방법은 없기에 임신 가능성을 완벽하게 조절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낙태죄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임신중지 약물 유통이 금지된 것은 물론, 임신중지 시술이 대부분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의료진의 교육수준, 비용, 이후 돌봄의 과정까지 모두 천차만별인 상황이었다. 그저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지며 여성의 건강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이상 임신중지를 의료 바깥의 영역에서 다루어선 안 되며, 국가가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필수적 의료서비스로 인식을 옮겨와야 한다. 공적 의료의 영역에서 임신중지를 고민할 때 비로소 의료보험 적용, 적정한 의료 수준과 비용, 시술 이후 적절한 돌봄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또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권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이다. 여전히 성을 금기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5년 교육부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했지만 그 시작부터 '여성은 무드에 약하고 남성은 누드에 약하다'와 같은 문구를 포함하며 성차별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문제제기가 지속되었다. 최근에는 청소년 성교육을 위한 도서가 성관계를 '재미있는 일'로 묘사한다는 이유로 전량 회수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성교육을 '정자와 난자의 만남' 수준에서 진행하며 제대로 된 정보전달조차 하지 못할 때, 임신중지는커녕 성관계, 피임, 임신과 출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이해는 요원해진다.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 인간의 생애에서 마주할 수 있는 성적 경험들에 대한 포괄적 교육은 곧 성적 권리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나아가 임신과 출산만이 아니라 양육을 포함한 재생산 전반의 과정에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은 여전히 취직의 실패나 포기의 이유가 되고, 임신한 여성은 승진에서 배제당하며, 이는 곧 퇴사 압박으로 작용한다. 낙태죄는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고, 아이를 낳으면 결국 주 양육은 또다시 여성의 몫으로 전가된다. 임신, 출산, 양육이라는 재생산 과정의 전 영역에서 여성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사회에서 여성에게 자기결정권이 주어졌다고 말할 수 있으며, 재생산 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재생산 구조의 설계이다. 임신이 곧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이어지지 않는, 출산이 강제되지 않는, 양육의 책임이 가족 단위부터 국가 단위까지 고르게 분배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스템 말이다.

다시는 낙태죄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68년 낙태죄의 역사 속에서 국가는 낙태의 죄를 묻는 심판자를 자처해왔다. 하지만 이 긴 시간동안 실상 국가는 여성에게 낙태를 강제하다가, 또 다른 때는 낙태를 이유로 여성을 처벌하며 여성의 권리를 침해해온 행위자다. 낙태가 죄라면 그 범인은 국가라고 외쳐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헌법불합치 판결에 따른 낙태죄 폐지 시한을 3개월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지난 낙태죄 운용의 역사에 대해 사과하고,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아온 낙태죄의 역사를 종결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사과는커녕 여전히 낙태죄 존치를 꺼내들며 “최선의 노력을 다해 입법안을 마련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당시 여성들은 '한 명의 인간으로 산다는 기쁨'을 말했다. 이 사람들 앞에서 정부는 과연 낙태죄를 존치하는 입법예고안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국가가 낙태죄 폐지에 나서지 않는다면, 국가는 68년 낙태죄의 역사에 사과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갈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다시는 낙태죄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외쳐온 시민들의 힘은 끝내 낙태죄를 폐지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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