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페미니스트 크리스천'은 한국에서 과연 가능한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페미니스트 크리스천'은 한국에서 과연 가능한가

[프레시안 books] <언니네 교회도 그래요?>

교회를 다니는 젊은 여성이라면 몇 년 사이 이런 괴리를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교회의 익숙한 풍경이 너무나도 낯설어 지는 순간 말이다.

언젠가부터 의문이 들었다. 왜 장로는 거의 남성인지. 그 아래 권사는 대부분 중년의 여성들이었는데, 아니 교회는 항상 여성이 더 많았는데 왜 최상위 직분인 장로는 다 남성이었을까. 심지어 교회를 쓸고 닦고 예배 후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교회를 위해 바자회를 열고 이웃들에게 봉사하는 주체는 바로 여성 권사들이었다. 물론 남성 장로들도 일을 했다. 운영위원회라든가 당회 등 '주요 직책'에서 말이다. 그래도 뭔가 이상한 건 마찬가지다.

여성 권사들이 성실하게 교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면 그 남편이 장로가 됐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느냐"는 내 물음을 사모님은 단 한마디로 잘랐다. "순종해야한다."

교회, 여성혐오로 유지되고 운영되는 곳

책 <언니네 교회도 그래요?>(이민지 지음. 들녘 펴냄)는 여성 크리스천의 이런 고민과 의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페미니즘 담론이 우리 사회의 중심 화두로 떠올랐다. 여성들은 변화했고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교회의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여전히 여성혐오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순종하라"는 교회 내 정언명령이 이런 비판조차 틀어막아 버린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교회 안에서 습득한 가치에 문제의식을 가지지만 침묵을 강요당하며 내적인 고민과 충돌을 겪는다. 이는 지식의 습득이나 개인의 변화를 넘어 신앙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 책은 교회 내 여성혐오로 고민한 저자가 일 년여에 걸쳐 자신과 같은 고민을 가진 여성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성경 텍스트를 취사선택해 여성혐오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적인 한국 기독교 문화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교회 안팎에서 시대착오적인 성경 텍스트와 신앙적 진리를 분별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한다.

책은 4장으로 구성돼있다. 1장 '더 이상 잠잠할 수 없는 여성들, 페미니스트 교회 여성의 등장'에서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사회의 주요 담론으로 떠오른 페미니즘과 전통적인 기독교 가치관에서 충돌과 혼란을 겪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장 '이제는 안다, 그건 여성혐오라는 걸'에서는 본격적으로 교회 내 여성혐오의 문제를 짚는다. 남성의 시각에서 기록된 성경의 한계를 지목하며 그 대안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성경을 해석한 '여성신학'을 소개한다.

3장 '혐오의, 혐오에 의한, 혐오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지는 교회'에서는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하도록 설계된 한국 교회의 구조를 지적한다. 이 장에서는 여성혐오에서 나아가 교회가 다양한 형태의 혐오와 차별을 확산하는 구조를 살핀다. 4장 '전에 없던 페미니즘, 교회 여성들 일어서다'에서는 '크리스천 페미니스트'들의 등장과 이들이 주도하는 기성 교회 내에서의 변화를 소개한다.

신앙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성차별

저자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한국 특유의 가부장적인 문화로 성경을 해석함으로써 여성혐오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교회 안에서는 여성이 차별받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이며, 이를 억울해하거나 항변하는 건 사탄마귀의 유혹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저자는 나아가 성경 자체도 '남성에 의해 기록되고 남성에 의해 해석된' 텍스트라고 평가함으로써 수천 년 동안 축적되어 온 여성혐오의 서사를 짚는다. 물론 여성혐오 사상은 기독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이어져 온 여성혐오의 역사 속에서 기록된 성경과 이 맥락에서 성경을 해석한 교부신학자들은 여성에 대해 '열등하면서 악한 존재'라는 부정적 이해를 강화해나갔다.

이런 인식은 최초의 여자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인류에게 원죄를 안겨주게 되었다는 성경의 진술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하와는 아담의 마음까지 흔들어 선악과를 먹게 한 장본인이다. 교부신학자들은 이 일화를 해석하며 모든 여성을 하와와 동일시하며 '잠재적인 유혹자',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었다.

저자는 이러한 기독교 여성관이 후대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중세 신학,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으로 대변되는 종교개혁 시대의 신학에까지 그대로 전승되면서 교회 내 여성혐오의 사상적 토대를 이루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후 개신교 전통 신학은 여성을 원죄와 연결하면서 여성은 죄악의 원인 제공자이자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라고 규정했다.

남성이 기록하고 남성이 해석한 성경의 한계

저자는 오늘날의 교회가 성경 구절들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면서 여성을 배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성경 구절과 실제 역사적 사실을 예시로 든다. 일례로 성경에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14:34)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근거로 교회는 여성에게 중요한 직책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바울은 여성들을 제자 사도 집사 선지자 등 여러 동역자로 세웠다. 게다가 '잠잠하라'고 명한 부류는 여자뿐 아니라 방언으로 말하는 자(고전 14:27~28), 예언하는 자(고전14:29~33)까지 포함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 교회는 '여성'에게만 잠잠할 것을 고집하고 있다.

저자는 "교회의 성경 해석에 오류가 있고 잘못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더 많이 언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런 역사적 맥락을 비판하는 여성신학을 일부 소개하며 여성주의적인 성경 해석을 제시한다.

가령 창세기에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됐다. 여자는 응당 돕는 자가 돼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저자는 구약학자 필리스 트리블의 해석을 소개한다. 필리스 트리블은 여기서 '돕는'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에 대해서만 사용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시편 70장 5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시오, 구원자"라고 말하거나 시편 121장 2절에 "우리의 도움이 여호와께로부터 온다"는 등이다.

필리스 트리블은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보다 낮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여자는 본질적인 면, 즉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남자와 대등한 돕는 자', '함께 지내며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렇듯 여성신학은 남성의 시각에서 기록되고 해석된 기존의 성경을 재해석하여 성경이 가진 보편적 가치에 한걸음 다가간다. 좀 더 많은 여성신학의 사례와 예수의 일화를 소개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성경의 해석도 변해야..."차별받는 약자 편에 서는 게 예수의 정신"

저자는 교회가 여성혐오에서 나아가 여성혐오를 가능하게 하는 교회의 매커니즘이 타자에 대한 배척과 맹목성으로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한국 교회가 타종교를 배척하고 공격하는 요인으로 여성혐오에서 시작하는 '이분법적 인식'을 꼽는다.

교회 내 혐오와 차별의 구조를 설명하며 사회 문제를 지적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보수 기독교계로부터 가장 심하게 공격받는 '성소수자'를 언급하지 않은 점은 이 책이 가장 맥이 풀리는 부분이다.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책이 가지는 신앙의 한계로도 보인다.

저자가 말하는 예수는 2000년 전 사회에서 매우 진보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이였다. 예수 시대는 매우 성차별적이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는 남성성을 과시하지 않으며 여성을 상대로 가르침을 전하며 가르침 안에도 반드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일례로 예수는 남자에게는 다중혼을 허용하지만 여자에게는 그러지 않았던 당시 문화에 문제를 지적했다. 남자와 여자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밝히며 일부일처제를 주장했다. 당시 제자들조차 이 가르침에 너무 놀라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말할 정도로 진보적인 발상이었다. 무엇보다 여성이 선생이 되거나 법정의 증인이 될 수 없었던 시대에 여성을 부활의 첫 증인이 되게 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부분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성경은 열린 텍스트...다양한 해석과 소통 이뤄져야

텍스트에만 갇힌 성경의 해석은 결국 충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여성의 의무라면 성경의 수많은 독신자와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인물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게 된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다른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예레미야에게는 홀로 살라고 계시를 내리지만 호세아에게는 결혼하여 그 삶으로 메시지가 되라고 했다.

이렇듯 성경은 열린 텍스트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을 담고 있다. 복음서가 네 개인 점만 해도 그렇다. 예수의 삶에 대해 네 명의 저자가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서술했다. 다양한 해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읽고 해석하는 자들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을 통틀어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지 말고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자고 말한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보석 같은 가르침이 있다고. 그리고 교회 내 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예수가 몸소 보이며 가르친 삶과 일치한다고. 여성이 소와 양과 같이 하나의 재산 정도로 여겨졌던 시대에 쓰인 텍스트에서 벗어나 그 안에 담긴 기독교의 참 정신을 살리자고 한다. '차별받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 저자가 말한 기독교 정신이다.

▲<언니네 교회도 그래요?>(이민지 저, 들녘 펴냄, 값 1만 4000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