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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80개" 오역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욱식 칼럼] 70년 묵은 문제 외면한 채 북핵 해결 어려워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가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핵무기 80"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조선·중앙·동아 등 여러 언론이 이 책을 인용해 2017년 7월에 북한이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자 미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를 검토했고 여기에는 "80개의 핵무기 사용 계획"도 포함되었다고 보도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러자 <한겨레>는 원문을 인용해 오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해당 원문 "The Strategic Command in Omaha had carefully reviewed and studied OPLAN 5027 for regime change in North Korea— the U.S. response to an attack that could include the use of 80 nuclear weapons."을 인용하면서, "문맥상 북한이 핵무기 80개를 사용해 공격할 가능성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검토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거꾸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원문을 살펴보니 <한겨레>의 보도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7 자체가 북한의 공격시 한미동맹이 반격해 무력통일까지 달성하겠다는 것이고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핵무기도 핵무기 사용 권한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와 국방부는 "작계에는 핵무기 사용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보도가 오보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로써 이번 오역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전략사령부 사령관인 채스 리처드가 9월 14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7에 핵무기 사용도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작계와 관련된 상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면서 "미국은 한국에 대한 확장 억제와 확신 공약을 유지해왔다"며 어떤 상황이든 "미군은 그들이 요구받는 임무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확장 억제는 주로 핵우산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답변은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북한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더구나 리처드가 사령관으로 있는 전략사령부는 미국의 핵공격을 담당하는 사령부이다. 평시에는 핵전쟁 준비태세를 유지하면서 대통령의 명령 시 핵공격 통제권을 갖는 사람이 바로 전략사령부 사령관인 것이다.

이는 <격노>에 나와 있는 부분에 대한 오역 논란을 넘어 이 사안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7년 8-9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발사와 수소폭탄 실험에 분개해 "화염과 분노", "북한 완전 파괴"와 같은 말폭탄을 던졌었다. 이는 핵공격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한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격노>에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핵무기는 억제용이지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어서 "핵 사용은 미친 짓"이라면서도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고 적혀 있다.

트럼프가 북한을 상대로 핵공격 가능성을 암시하자 대통령의 독점적인 핵무기 사용 권한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법 개정이나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었다. 그러나 의회 내의 통제 장치 마련 시도는 흐지부지되었고 미국 대통령은 핵사용과 관련해 독점적인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리하자면 미국의 대북 핵공격 옵션은 5027과 같은 한미연합사 작계에는 없지만, 미국 전략사령부 소관의 작계에는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핵공격 명령권은 미국 대통령이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어 법적·제도적으로 한국 대통령의 동의를 요한다고 볼 수도 없다.

기실 미국의 대북 핵공격 옵션은 한국전쟁 때부터 오랜 논란거리였다. 미국은 195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재래식 공격에도 핵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대량보복전략'에 따라 전술핵무기를 한국에 대거 배치했었다. 1991년 전술핵 철수와 1994년 제네바 합의, 그리고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 핵공격 옵션은 계속 유지되어왔다. 트럼프 행정부 때 작성된 핵태세검토(NPR)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입장은 거듭 확인되었다.

결국 이 문제도 시야에 넣지 않으면 한반도 비핵화는 요원해진다.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의 비핵화'로 한정하면서 70년 묵은 미국의 대북 핵위협 해결을 외면할수록 정작 북핵 해결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나는 한반도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반도를 비핵지대화하면 남북한의 비핵화 의무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5대 핵보유국들의 한반도를 상대로 한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 그리고 핵무기와 그 투발수단 배치 금지를 국제법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필자의 신간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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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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