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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찢고 낙서하고...이 광고는 왜 무사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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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찢고 낙서하고...이 광고는 왜 무사하지 못할까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아이다호(IDAHO) 우여곡절 끝에 7월 말에야 게시

애초 5월부터 한 달간 걸렸어야 할 광고였다. 그것이 8월 말까지 왔다. 처음 광고를 기획할 때는 서울교통공사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거절했었다. 항의 끝에 재심의가 열렸고 광고는 7월 31일이 되어서야 게시될 수 있었다.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성소수자 517명의 얼굴로 만들어진,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게시된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아이다호(IDAHO) 광고다. 지극히도 당연한 말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게시 후에는 다섯 번 쯤 테러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칼로 찢었고 어떤 사람은 낙서를 했다. 급기야 '광고 지킴이' 당번을 만들어 지키기에 이르렀다.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게시된 아이다호 광고. 성소수자 517명의 사진을 모아 모자이크 형식으로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광고에는 응원과 연대의 메시지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프레시안(조성은)

우여곡절 끝에 광고가 공식적으로 철거되는 8월 31일, 아이다호공동행동(공동행동)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서울 서대문구 유플렉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다호 캠페인을 마무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성소수자들의 항쟁을 기념하는 6월 프라이드의 달에 맞춰 마무리하기로 계획한 프로젝트는 8월 마지막 날 마무리를 선언하게 됐다"면서 "여전히 광고 훼손자에 대한 수색과 처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 다섯 차례 광고 훼손 사건에 대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라면서 "성소수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는 중에도 언제 어떤 공격과 위협을 당할지 긴장으로 일상을 보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소수자가 공적 공간에 모습을 보이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반대하고 강제로 지우는 이런 상황은 그만큼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31일 서울 서대문구 유플렉스 광장에서 아이다호 공동행동 마무리 기자회견이 열렸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제한된 인원만 참석할 수 있었다. ⓒ프레시안(조성은)

광고 훼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동시에 위로와 연대도 함께했다. 많은 시민이 광고를 찾아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신촌역 인근을 지날 때 광고 게시 상황을 확인하는 사람들, 광고 사진을 찍어 해시태그와 함께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람들. 수차례 찢겨지고 지워졌던 광고는 이제 응원의 포스트잇과 스티커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넝쿨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처음 성소수자들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모아 광고를 만든다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며 "그런데 '광고에 활용되길 바란다'며 적극적으로 동참해준 성소수자들 덕에 마음이 벅차올랐다"고 했다.

그는 "존재를 혐오하면 안된다는 당연한 이야기에도 아직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라면서도 "훼손을 비웃듯 다시 살아나고 더욱 덧대어지는 광고를 보면서 '우리는 이제 준비가 됐다'는 걸 느꼈다"고 소회를 전했다.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성소수자 차별은 성소수자가 매일 겪고 있는 우리의 일상"이라며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은 5월 17일 하루이지만 성소수자가 평등할 수 있는, 부당한 차별에 부딪히지 않은 매일이 되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다호는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국제질병분류(ICD) 목록에서 삭제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현재는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경종을 울리고 성소수자 인권 증진의 필요성을 알리는 날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성소수자 단체가 주도해 아이다호를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소셜미디어와 지하철 광고로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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