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의한 인권 침해가 알려질 때마다 경찰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국정원, 검찰, 경찰과 같은 공권력의 권한 남용 문제가 심각했고, 이에 문재인 정권은 권력기관 개혁을 주요 국정 과제로 설정했다. 경찰개혁위원회와 경찰인권침해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을 이어오다 각각 2018년, 19년에 활동을 마무리했다. 경찰개혁위원회는 활동을 종료하며 경찰의 민주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경찰위원회 실질화와 경찰 옴부즈맨 설치를 권고했으며, 경찰인권침해진상조사위원회는 용산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등 8개 사건에 대한 경찰의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독립적이고 상시적인 진상조사위원회 설치를 권고했다.
그러나 경찰개혁위와 진상조사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대 국회에서 여당은 자치경찰제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경찰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경찰 권력을 분산하겠다는 명분을 들었지만, 정작 그 내용은 자치경찰을 국가경찰에 종속시키는 내용으로 권력 분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찰 개혁에 대한 오랜 요구가 경찰의 권한과 조직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진 않을까 우려하게 되는 상황이다.
경찰의 셀프개혁 가능한가?
경찰은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공권력이다. 흔히 떠올리는 범죄 수사뿐 아니라 경비, 교통, 생활안전, 방대한 정보 수집과 사찰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에나 경찰은 있으며 무슨 일이던지 수행한다. 13만여 명에 이르는 경찰력의 대부분은 범죄 수사가 아니라 경비·생활안전·교통·정보수집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경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위험'과 '범죄'에 대처한다는 이름 아래 시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수행한다. 이러한 행정경찰은 집회시위 현장이나 시민분향소와 같은 부당함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가로막아오기도 했다. 또한 정보경찰은 범죄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국정기조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내부 업무 매뉴얼에서 드러나듯이 그렇게 모은 정보를 이용해 정권에 복무함으로써 스스로의 권력을 키워 왔다. 역대 경찰청장 21명 중 12명이 정보경찰 출신이며, 현재 경찰청장 내정자 역시 정보과장으로 재임한 바 있다.
누군가는 현 정권에 들어서서 경찰에 의한 인권 침해 문제가 줄어들지 않았냐고 반문하지만, 이번 정권에서도 고 문중원 열사 분향소나 성주 사드 배치 현장 등 경찰이 시민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일은 반복되었다. 더군다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경찰 권력을 그저 정권의 성향에 맡겨둘 수는 없다. 지금까지 경찰이 보여 온 문제는 경찰이 알아서 자정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가 이미 큰 권력이며 또한 국가 권력에 복무하는 경찰은 그 속성상 언제나 더 큰 권력을 향해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민주적 운영이나 시민의 권리는 항상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강제력이 권력자의 의도에 따라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민주적 통제 속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집행력이 현장에서 적용되는 과정을 일일이 법률에 따라 규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경찰 권력의 크기와 방향 자체를 통제할 수 없을 때 개혁은 불가능하다.
번지수를 잘못 짚은 집권여당의 경찰 개혁안
지난 7월 9일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결성한 경찰개혁네트워크는 경찰 개혁 방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민주적 통제와 권한 분산·축소라는 두 가지 방향을 개혁의 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여당의 경찰 개혁안은 권한 분산만을 명목으로 삼으며, 민주적 통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민주성과 공정성을 위한다는 목적과 달리 그 실효성을 의심받아온 경찰위원회를 실질화하기 위한 방안은 없고, 경찰력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에 관한 내용도 부재하다. 국정원과 검찰의 권한 일부가 경찰로 이관될 경우 경찰 권력이 비대해지는 것을 우려한 자치경찰제 도입 확대 정도를 경찰 개혁안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숱한 문제가 되었던 정보경찰에 대해서도 '치안 정보' 수집이라는 경찰직무수행법 상의 문구를 '공공의 이익과 안전'으로 대치하는 것 외에는 어떤 구상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이 지닌 거대한 물리력 자체가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식으로 남용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필수업무를 제외한 경찰권한 분산과 축소는 필요하다. 이는 자치경찰제의 실질화와 정보경찰 폐지를 통해 가능하다. 특히 자치경찰제는 국가경찰로부터 독립적으로 해당 지자체의 치안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때 권한 분산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당이 제시한 경찰 개혁안은 자치경찰을 국가경찰에 종속시키는 방식이며, 이러한 경우 오히려 국가경찰의 권한은 커지고 지자체를 통한 경찰력 통제도 불가능해진다. 여기에 정보경찰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정부여당의 계획까지 염두에 둔다면, 도대체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적 통제가 경찰개혁의 핵심
대통령-행정안전부 장관-경찰청장으로 이어지는 일원화된 상명하복 체계가 13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경찰을 독점적으로 운용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 도입 논의는 여전히 없다. 최근 젠더폭력에 대한 경찰의 미온적 대응에 분노한 시민들이 있었지만, 현재 경찰 조직에 대한 개입과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경찰에 항의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대한 항의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분노를 담아 경찰 조직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곧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수단 마련 요구이다. 이를 위해 경찰청장이 독점한 권력은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반영한 합의제 행정기구인 경찰위원회로 대체되어야 한다. 경찰위원회는 치안정책수립, 예산 편성, 인사권 등을 행사하면서 경찰에 대한 내부적인 통제와 지휘감독기능을 할 수 있다. 이는 행정권력의 집행력으로 독점되어 온 경찰력에 대한 최소한의 개입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혁방향이다.
그럼에도 경찰력 행사는 언제나 남용의 가능성을 가지기 때문에, 사후에라도 독립적인 조사와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한 통제장치 역시 필요하다. 이명박-박근혜 시기 선거 개입에서 드러났던 정치경찰화, 쌍용자동차와 용산참사부터 밀양과 강정 등 수많은 현장에서 드러난 경찰의 폭력적 진압, 강남역 살인사건의 원인을 조현병에 돌리며 이후 젠더폭력 문제를 편파적으로 수사해온 모습 등 그간 경찰이 보여 온 문제는 수도 없이 많다. 시민사회는 지금까지 개별 문제들에 대해 항의하고 대응해왔지만 경찰 권력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기는 힘들었다. 경찰의 사과와 진상조사에 따른 재발방지책 마련을 아무리 요구해도 경찰은 모르쇠로 일관했으며, 시민사회에서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를 진행하더라도 권한이 뒷받침되지 않기에 구체적 진상을 밝혀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경찰인권침해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해 8개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경찰은 정작 조사에 따른 권고 이행 의무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독립적인 상설 조사위원회 마련을 통해 경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경찰 개혁을 다시 설계하자
경찰력 행사에 따른 인권침해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 경찰은 자신들은 상부의 명령을 따를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오히려 정권이 자신들의 책임을 경찰에게 떠넘긴다는 불만도 내부에서는 제기되곤 했다. 하지만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물리력이자, 행사과정에서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이 큰 경찰력은 권한 행사에 따른 책임을 더 분명히 져야 할 필요가 있다. 단지 지시를 내리는 정치권력의 책임 차원을 넘어, 경찰력의 구체적인 집행과정에서의 민주적 통제가 필수적이다. 또한 검경 수사권 조정의 결과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확보하게 된 상황에서, 경찰이 단지 상부의 지시만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니기도 하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경찰의 권한-물리력 자체가 행사되는 과정과 방식이 변화하지 않을 때, 정권의 성향에 따라 그 권력의 방향은 언제든지 시민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곳으로 향할 수 있다. 현재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창룡 부산지방경찰청장은 "경찰 개혁에 대한 기대를 잘 안다"며 "속도감 있게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경찰이 지난 세월동안 강제진압 피해자들에게 제기한 국가손해배상소송 취하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정권의 선의나 경찰의 의지에만 기대는 경찰 개혁을 개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정부여당의 경찰 개혁안은 개혁이라 부를 수 없다. 시민에 의한 권력 통제, 그를 위한 제도화를 중심으로 경찰 개혁을 다시 설계하자.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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