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벌써부터 전국 각지에 폭염경보와 폭염주의보가 울리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올해가 가장 더울 확률이 7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었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0.5~1.5℃ 높고 평년 9.8일이던 폭염일수는 올해 20~25일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올해가 역대 가장 더운 해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2018년 여름이 소환되고 있다. 올해 여름엔 예년과 달리 또 다른 악재가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체감 더위가 더 심해질 것이 우려된다. 이러한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폭염에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현실이다.
26개국의 기후변화분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네트워크인 '글로벌 전략 커뮤니케이션협의회'(GSCC)는 지난 2018년 11월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은행, 런던대 등 세계 27개 기관으로 구성된 연구공동체 '랜싯 카운트다운'이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기후변화와 보건 관련 연구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결과로 나타난 지구 기온 상승이 이미 심각한 수준의 건강 위험을 초래하고 있으며, 현재의 추세로 기온이 계속 상승할 경우 공공보건 의료체계는 곧 한계를 맞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랜싯 카운트다운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이례적으로 더운 날씨를 보인 2018년 조사 대상 478개 도시의 51%에서 폭염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보고서는 조사된 지역의 65%가 이미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한 검토를 마쳤거나 현재 진행 중이지만, 기후변화 적응에서 보건과 관련된 예산 비중은 전체의 4.8%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8년 폭염에 노출된 사람은 2000년에 비해 1억5700만 명 많았고 2016년보다는 1800만 명 많았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폭염은 전 세계적으로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한국에서도 2018년 48명이 폭염으로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폭염에 의한 사망자가 프랑스에선 1500명, 덴마크 250명, 캐나다에선 70명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국내에서 최근 5년간 연도별 온열환자는 2014년 556명에서 2015년 1056명, 2016년 2125명으로 매년 2배 정도 증가했다. 2017년 1574명으로 감소했으나 2018년에는 3배 가까운 4526명으로 급증했다. 온열로 인한 사망자는 2014년 1명, 2015년 11명, 2016년 17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다가 2017년 11명으로 감소하는 듯했으나 2018년 48명으로 4배가량 증가했다.
온열질환으로 숨진 사람 중 절대 다수는 노인 인구다. 빈곤률이 높은 노인층은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도 많아 폭염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노인들이 온열질환으로 가장 많이 쓰러져 목숨을 잃은 장소는 논밭이었다. 홀몸노인의 죽음은 온열질환 사망자에 제대로 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고독사는 숨지고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발견될 때가 많다. 이 경우 온열질환 발병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 온열질환으로 숨진 노인 수는 질병관리본부가 파악한 수치를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
온열질환은 일터에서도 많이 발생한다. 특히 토목·건설 현장 등 폭염에 열악한 노동환경인 작업장은 온열질환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다. 건설노조가 2018년 7월 20일~22일 토목·건축 현장 노동자 2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폭염 특보 발령 때 규칙적으로 쉬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8.5%에 불과했다. 폭염경보가 뜬 날 오후 2~5시에 작업을 중단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14.5%였고, 19.3%는 작업 중단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답했다. 건축 현장의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 등이 보태져 실외 작업장은 온열질환 환자가 가장 많이 생기는 장소였다. 여기에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작업해야 하는 악조건이 추가되었다.
코로나19는 보건의료 인력을 폭염 취약계층으로 만들었다. 지난 6월 9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검사 지원 업무를 하던 보건소 직원 3명이 온열질환 증상을 보이며 쓰러진 사건이 발생했다. 더운 날씨에 학교 내 야외에 설치된 워킹스루 형태의 선별진료소에서 업무지원을 하다가 쓰러졌다. 이날 인천은 같은 시간대 낮 기온이 28도를 기록했으며, 최고기온은 31도까지 치솟았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3㎏ 무게의 방호복을 입고 야외 땡볕 아래에서 천막으로 지어진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방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올여름 내내 사고가 반복될 공산이 크다. 질병관리본부는 선별진료소 운영과 관련해 휴식시간과 휴게공간 마련, 보호복 가볍게 하기 등 몇 가지 지침을 마련해 발표했다.
실외 작업장 다음으로 가장 많은 온열질환자가 발생한 장소는 집이었다. 이른바 쪽방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계층은 폭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올해 여름 코로나19가 덮쳤다. 바이러스를 피해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은 주거 취약계층에게 이중의 위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폭염을 피할 수 있었던 은행이나 시청 같은 무더위 쉼터에도 갈 수 없게 되었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냉방이 가능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책이지만 쉽지 않은 과제다.
올해 여름 폭염에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현실은 코로나19 방역과 폭염 대응의 딜레마라는 난제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기후위기 시대에 코로나19는 블랙스완(예외적이고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이 실제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을 부르는 용어)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될 뉴노멀(새롭게 보편화된 사회·문화·경제적 표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화석연료 사용, 무분별한 개발과 산림파괴, 생태계 교란 등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은 코로나 19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 발생과 확산을 촉발해 인류의 건강을 끊임없이 위협할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사람과 동물, 생태계의 건강은 하나라는 '원 헬스(One Health)'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한 기후변화 적응 정책을 긴급하게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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