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했다. 거대한 송전탑과 송전선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밀양 할매들의 눈물만이 아니다. 고압송전선이 관통하는 지역 곳곳의 눈물이 배어있고, 그 전기의 대부분은 수도권으로 수렴된다.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고 경제, 정치, 교육, 문화가 집중되어 있다. 기형적인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된 국가 균형발전, 분산정책은 공공기관 정도가 지역으로 이전하는 데 그쳤다.
편중 현상은 전력 생산과 소비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에서 소비할 전력을 위해 해안가에 지어진 석탄과 원자력발전소들이 철탑을 세워 장거리 송전을 하고 있다. 전기를 타고 흐르는 도중 눈물은 마르고 마는 것인지,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 눈물을 감지하지 못한다. 대규모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와 고압송전망을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마주할 일이 없어서인지, 이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은 눈물을 추체험하기조차 힘들다. 문명과 그 편리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너무 쉽게 망각하게 하는 구조다. 수도권의 불편 없는 전기 이용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의 외로운 싸움과 희생의 산물임을 잊는다. 아니 외면한다. 그러니 전기를 타고 흐르는 눈물은 마르는 것이 아니라 외면된 것일 뿐이다.
동해안권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신한울에서 신가평까지 219킬로미터(㎞)구간 500킬로볼트(kV) 초고압직류송전망(HVCD) 건설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애초에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송전하기 위한 망은 765kV로 계획한 바 있으나, 전자파 피해가 적고 송전탑 크기를 줄일 수 있는 500kV HVCD로 변경하여 추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건설비가 두 배 이상 비싸지만 철탑의 크기를 줄이면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기에 용이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주민수용이 쉬운 것은 아니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부구간 노선이 윤곽을 드러냈을 때 지역별, 권역별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서부구간의 노선 역시 만만치 않은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게다가 이 송전선로 사업은 기술적으로도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전에서 선택한 전류형 HVDC는 공진현상 문제로 주변 발전소 터빈의 비틀림이나 균열, 파손 위험을 내재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원자력발전소 신한울 1, 2호기와 신규로 건설 중인 민자석탄발전 삼척포스파워 1, 2호기(현재는 삼척블루파워로 이름을 변경했다), 강릉안인화력발전소 1, 2호기에서 생산된 전력을 송전하는 임무를 갖고 있으나, 기후위기와 미세먼지를 고려했을 때,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 가동하는 것이 타당한가의 논란이 여전히 남아있다. 세계적인 탈 석탄의 흐름 속에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도 퇴출되는 마당인데, 신규로 진입시키는 것은 퇴행적 흐름임에 분명하다. 더군다나 500kV HVCD가 기술적, 주민수용성 등의 이유로 지연될 경우 지어진 발전소가 계통 제약으로 인해 발전을 못하면 그 손실을 보전해줘야 하는 등 문제가 상호 얽혀있는 상황이다. 발전소와 송전선은 필요 충분 조건이지만 둘 다 서로의 발목을 잡는 격이다.
정부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우면서 최초로 분산형 전원 확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분산형 전원'의 정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면서, 송전선로 건설을 최소화하는 22.9kV배전선으로 연결하는 40메가와트(MW)이하의 소규모전원, 154kV 송전선로에 연결하는 500MW이하의 수요지 전원으로 명시했다. 물론 이 분산형 전원의 정의가 사회적으로 논의, 합의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500kV 초고압직류송전망 사업은 분산형전원이 아니며, 원자력과 석탄화력으로 생산한 전력을 장거리 송전하는 기존의 중앙집중 방식을 그대로 온존함은 분명하다.
소규모 지역 분산형, 재생에너지 확대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함이며, 이는 지속가능한 송전과 뗄 수 없다. 원자력과 석탄발전이 특정 지역의 피해와 눈물을 타고 장거리 송전을 하는 방식이라면, 재생에너지 발전은 해당 지역의 전력을 해당지역에서 생산해서 공급하는 방식이다. 특정 지역의 위해 송전하는 과정에서 전력이 소모되고 눈물도 사라진 채 지금 쓰는 전력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출처에 대한 질문도 없이 코드만 꽂으면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 사용하는 전력이 어디에서 어떤 발전원으로 생산된 것이고, 나는 소비하는 당사자로서 이 전력의 생산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묻는 전력이다. 공급 안전성과 송전 안전성을 먼 지역에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이 사용하는 전력의 공급과 송전 안전성을 지역 스스로가 책임지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래야 장거리 고압 송전선을 타면서 손실되는 전력도, 눈물도 줄일 수 있게 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