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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엔 공적자금 수십조 뿌리더니...전국민 대상 긴급지원은 '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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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엔 공적자금 수십조 뿌리더니...전국민 대상 긴급지원은 '미적'

긴급재난지원 공전하는 가운데 전문가들 "가계부채 폭탄 코앞" 질타

긴급재난지원금 집행을 둔 정부와 국회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0일 국회 본회의장 시정연설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즉시 지급이 필요하다며 속도를 당부한 가운데, 여야는 지원금 지급 대상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야당(미래통합당)이 소득하위 70% 선별 지급을 주장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 지급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정부와 야당의 구호가 일치하는 특이한 상황을 마주한 셈이다.

지원금 지급 대상이 쟁점이 되면서 지원 제도가 공전하는 가운데, 가장 시급한 문제인 속도와 규모는 논의의 중심에서 멀어진 모습이다. '긴급' 재난지원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장 중요한 원칙이 오히려 소외되어 버렸다.

본격적인 위기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지나치게 안이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코로나19 경제충격 본격화... 수출기업도 위기

이미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충격, 가계 충격은 시작됐다. 지난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고용동향'을 보면, 취업자 수에는 포함되지만 무급이나 유급으로 잠시 쉬는 일시휴직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126만 명(363.4%) 급증해 사상 최대 규모인 160만7000명을 기록했다. 이들 대부분이 기업 상황이 더 나빠지면 실업자나 비경제활동 인구로 이동하게 된다.

지난달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인구도 전년 동월 대비 36만6000명 증가한 236만6000명을 기록했다. 역시 통계 작성 후 사상 최대 규모다. '쉬었음' 인구는 일할 능력이 있지만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이다.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들 상당수는 구직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각종 내수지표가 폭락하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기둥인 수출에서도 이상신호가 본격적으로 감지되기 시작했다.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은 217억2900만 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26.9% 감소했다. 반도체(-14.9%), 승용차(-28.5%), 석유제품(-53.5%), 무선통신기기(-30.7%), 자동차부품(-49.8%) 등 주요 수출 품목 대부분이 감소했다.

전용복 경성대 교수는 이날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코로나19 사태가 지난달부터 본격화했음을 고려하면, (이전 수출 통계에 잡히지 않은 위기가 본격적으로 잡힐) 앞으로 상황이 더 어렵다"며 "수출 대기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면 파견 기업, 하청 기업도 줄줄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 교수는 이어 "이들 기업(파견, 하청 기업) 노동자 가계가 한국 중산층의 주류고, 가계부채를 가장 많이 진 이들"이라며 "기업이 무너지면 부채 폭탄이 터지게 되고, 그 결과 금융 경색으로까지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개학이 연기됨에 따라 우유 소비도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사태는 미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한 마트에서 고객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늦었다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한 시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국회에서 공전하는 정부의 코로나19 지원안 핵심은 정부가 7조6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소득하위 70%를 대상으로 1인 가구 40만 원, 4인 이상 가구 100만 원을 지원한다는 방안이다. 일회성 지급이 전제됐다.

시기, 지급 규모, 지급 방식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일각에서 "정부가 방역 성공에 취해 코로나19 대책에 안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스위스와 독일, 캐나다 등 상당수 국가가 '선지급 후심사' 원칙에 따라 신속하게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며 "일단은 최대한 신속하게 지원한 후, 사후 피해 규모에 따라 세금을 걷거나 이자를 걷는 방식으로 지원이 가장 필요한 계층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이미 피해가 시작된 형국에 정부 대책은 실기에 가깝다고 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 교수는 "속도 면에서 정부 대책은 이미 늦었다"고 지적했다.

가계 살려야 금융경색 막는다

피해가 점차 심각해지는 만큼, 정부의 지원 규모 역시 대대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용복 교수는 "이미 해외 충격이 국내에 미친 상황에서 이제는 금융 충격까지 걱정해야 할 때"라며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정부가 대대적 재정 적자를 감수해 가계에 충분한 현금을 뿌리는 방법만이 바람직한 위기 대응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가계-금융-기업으로 이어지는 연쇄 부실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신용 경색이 우려되는 위기 시 '최후의 대부자'인 정부가 지급하는 돈(현찰)은 어떤 유동성보다 신뢰도가 높다. 예를 들어, 위기 시 개인 사업주가 발행한 자기앞 수표가 신뢰도를 가질 리 없다. 해당 사업주가 언제 파산할지, 언제 금융기업에서 자금을 빼내 현금화할 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신뢰도 높은 정부 돈이 가계에 흘러 들어가면 일단 신용 위기에 놓인 가계가 버틸 힘을 가진다. 가계대출 연체로 인한 가계 파산을 막을 수 있고, 나아가 금융기업의 부실채권 증가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금융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길이기도 하다.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가 단순히 금융기업만 지원하는 방안인 반면, 정부의 재정 정책은 가계와 금융기업을 모두 살리는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는 뜻이다.

전용복 교수는 "한국은행이 양적완화에 나서기보다, 그 돈을 정부에 빌려줘서 정부가 지출하도록 하는 방안이 더 바람직하다"며 "한은의 통화정책(양적완화)은 금융권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정부가 개인에게 지출하면 가계의 신용도도 높아지고 금융기업도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8일 현대차 울산공장 야적장에 대기 중인 완성차들. 현대기아차는 코로나19로 인해 수출 물량이 감소함에 따라 계열사 임직원 임금 삭감 등에 나섰다. 울산5공장 투싼 생산라인은 임시 휴업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구호금+대출 지원 한데 묶어야

문제는 언제까지, 얼마나 지원해야만 이번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전 세계인이 코로나19 집단면역을 가졌다는 명확한 신호가 나오거나,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이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대규모로 편성하더라도, 그 규모를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준경 교수는 긴급재난지원금, 즉 구호금과 대출 지원을 한데 섞어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편성해 일단 신속히 필요한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이후 정부가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라 피해액을 계산해 일정 규모 이상 피해자, 즉 명확히 구호가 필요했다고 판단한 이에게는 이를 구호자금으로 설정해 어떤 회수도 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을 대상으로는 크레디트 라인(credit line, 미리 설정하는 신용한도)에 따라 이자를 회수하거나 원금 일부를 탕감하는 방식으로 사후 지원금을 걷어 들인다. 피해가 컸던 이에게는 무이자 지원을 하고, 피해가 적었던 이나 자산 규모가 컸던 이에게는 해당 기금을 저금리 지원으로 향후 설정하는 식이다.

하준경 교수는 "일단 크레디트 라인을 시장금리로 설정하는 등의 지원에 나서면, 꼭 정부 자금이 필요한 이들만이 정부 재정자금 풀(pool)을 이용하게 된다"며 "당장은 급한 이들이 상시적으로 정부 돈을 쓰게 한 후, 나중에 피해액을 계산하고 그 규모에 맞춰 원금을 회수하면 된다"고 전했다.

하 교수는 아울러 "정부가 일부만 지급보증하는 식으로 금융지원에 나선다면, 예를 들어 정부가 10조 원만 써도 실질적으로는 100조 원 이상의 지원이 가계에 제공될 수 있다"며 "사후 피해규모가 확정되면 지원금 중 저금리 회수 부분은 금융 분야로 해결하고, 나머지는 정부가 재정을 들여(재정적자) 해결하면 정부가 우려하는 재정적자 급증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합해서 운용하는 길을 정부가 고민해야 할 때라는 소리다. 하 교수는 "정부가 과거 기업 위기 시에는 공적자금을 적극적으로 투입했는데, 이번 사태를 두고 이제는 사람에게도 공적자금을 투입하라는 뜻"이라며 "국회가 이 같은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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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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