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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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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기고] 걷고 또 걷고, 대화하고 또 대화할 것이다

도법스님, 이삼열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등은 지난 3월부터 60세 이상 노년세대를 중심으로 '은빛순례단'을 꾸려 전국 순례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 경기, 인천, 충남·충북, 전북을 거쳐 최근 광주와 전남을 순례 중인데요. 글은 지난 5월 10일 광주YMCA에서 진행된 강연 순례 내용입니다. 편집자 주.

1. 들어가는 말

요즘 한반도 정세가 어찌 돌아가느냐고 말씀을 꺼내면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다고 한다. 그것도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그렇다고 한다. 물론 아주 불행하다고 낙담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해방 광복이 되고 기쁨에 겨워 장밋빛 미래를 그리던 시절 제외하고 이렇게 한반도 운명에 대해 기대와 희망을 가졌던 때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19세기 말 동학농민혁명이 처참하게 좌절당한 뒤, 20세기 내내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식민지배, 분단, 전쟁, 전쟁 위기 속에 살아오지 않았던가. 물론 6.15와 10.4 남북 정상선언으로 잠깐 쉴 틈이 있긴 했지만, 사실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런 시절이 찾아오게 된 기본조건은 한국에 촛불시민혁명이 한국의 기울어진 정치지형을 완전하지는 못해도 상당한 정도로 정상화시킨 덕택이었다.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한국의 다수 시민들이 만들어낸 변화가 만든 조건이었다. 촛불시민혁명이 한반도와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세계가 경외의 눈으로 바라본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집권자의 국회 탄핵과 헌법재판소 파면을 이끌어낸 것이다. 국민의 요구를 질서정연한 헌법과정을 밟아 성공시켜낸,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평화혁명이었다.

2. 동학농민혁명이 주는 교훈

지난 3월 24일은 전봉준 장군이 교수형당한 날이었다. 서울 종로의 영풍문고 앞에 전봉준 장군 좌상이 안치된 날이기도 했다. 지난 5월 2일과 4일에는 전북 전주에서 한반도 평화 만들기 은빛순례단 행사를 가졌다. 청년 연찬 모임과 시민사회 모임을 잇달아 가졌다. 4.27 남북 정상회담의 흥분과 감동이 고조된 직후여서 강연과 토론 모임은 뜨거웠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동학농민군의 전주 입성 직전에 진을 치고 있었던 완산7봉을 전주의 은빛순례단원들과 올라가서 느꼈던 감회를 잊을 수 없다. 용두봉, 백운봉, 장군봉 등을 오르면서 같은 산길을 120여 년 전에 오르내렸을 동학 농민군들을 생각했다. 완산7봉에서 곧 점령할 전주성을 내려다보고 있던 농민군들 머릿속 희망은 어떤 것이었을까.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 나라를 튼튼히 하고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며, 가렴주구 폭정을 제거하고 백성을 구제하라는 자신들의 요구를 조정이 들어주면, 되돌아가 농사를 짓겠다는 소박한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왕조에 대한 충성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잘못된 정치를 바꾸라고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항의집회를 열고 관찰사 관아를 점거했던 사례가 동학농민혁명 이전에 있었는지 과문한 탓으로 필자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는커녕 조정은 외국군을 끌어들여 우리 땅에 청일전쟁을 불러들이더니 승리한 일본군이 동학농민군을 신식무기로 무차별 학살하도록 만들었다. 왜군을 끌어들여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제 백성을 대량살육한 조선왕조는 더 이상 존속할 정당성을 잃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줄기가 의병투쟁으로, 만주 무장독립투쟁으로, 특히 천도교를 중심으로 해서 3.1독립운동의 구심으로 이어지고 1919년 3.1독립운동의 결과물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민주공화정'을 정체로 선포했던 사실은 이미 동학농민혁명에서 제 백성을 배신한 조선왕조가 존속할 정당성을 잃고 있었던 것임을 입증했다고 보인다. 주권재민, 민주공화정을 선포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치사적 의의는 크다. 왕정을 민주공화정으로 바꿔낸 3.1독립운동을 '혁명'으로 부르는데 부족함이 없다. 3.1독립운동은 더 큰 명분으로 반외세 민족자주독립의 기치를 높이 세웠다.

3.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의 역사적 좌표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가 왜적을 격살하고 목숨을 바치셨을 때, 민족이 둘로 갈려 서로 증오하고 전쟁을 치를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만주 중국 시베리아 미주로 떠돌면서 온갖 고초 속에 일제와 싸우다가 세상을 등진 독립지사들과 일제의 고문과 감옥살이를 겪어낸 애국지사들이 독립된 나라가 둘로 갈라져 서로 원수가 되고 전쟁까지 벌일 것으로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독립운동가들이 바란 것은 자주독립된 하나의 나라였을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점령하고 우리 국토를 남북으로 분단할 때, 이를 극복하고 자주독립통일정부를 세우려 했던 독립지사들이 여운형, 김구, 김규식 선생 같은 분들이었다. 민족이 갈라지고 국토가 두 쪽으로 분단된다는데 이를 막으려는 양심세력이 없었다면 그게 독립운동을 치열하게 벌였던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해방 광복 뒤에 남북의 분단정부가 세워진 1948년까지 벌어졌던 좌우합작운동, 남북협상운동마저 없었다면 우리 역사는 무엇으로 부끄러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었겠는가. 좌우합작파와 남북협상파가 제거되고 나자 남북의 분단주의자들은 미친 듯이 남북전쟁으로 줄달음질 쳤다. "우리의 노력이 실패하면 남북 분단세력은 전쟁으로 갈 것이고 그 비극은 오랜 세월 계속될 것"이라고 앞날을 내다본 몽양 여운형과 백범 김구의 걱정은 7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자주적 통일정부라야 한반도 평화를 지켜낸다는 그분들의 애국심을 그 평화의 가능성을 내다보는 이 시기에 다시 가슴에 담아본다. 더욱이 안중근 의사가 유언으로 남겨주신 '동양평화론'도 우리의 미래를 100여 년 전에 예견해 주었다. "조선의 평화 없이 동양평화 없고 동양평화 없이 조선의 평화도 없다"는 말씀이었다.

ⓒ은빛순례단

4. 민주화-평화통일 운동의 최고 정점이 촛불시민혁명

이승만 정권은 북진통일만이 살 길이라면서 평화통일을 주장한 죽산 조봉암 선생을 사법 살인한 극단적인 반공독재체제였다. 분단독재를 강요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민생을 억압한 이승만 독재정권은 1960년 4월민주혁명으로 타도되었으나, 200여 명의 학생 시민들이 목숨을 바쳤다. 그러나 동서냉전의 보루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5.16 군사독재는 4월혁명을 전복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31년 동안의 군부통치시대를 겪어야 했다. 유신반대, 부마민주항쟁, 80년 광주민주항쟁, 87년 6월민주항쟁을 겪었고 수많은 학생 노동자 시민들의 희생을 치러야 했다. 특히 광주항쟁은 군부의 무자비한 살육에 광주시민들이 민주화운동 역사상 처음 전면적 시민항쟁으로 맞섰다. 한국의 시대 구분은 80년 광주항쟁 이전과 이후로 나누게 되었다.

이승만 독재,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권에서 되풀이 나타나는 권력의 증상은 남북대결과 긴장 고조를 이용한 주권재민, 민주공화정에 대한 억압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군사독재의 가혹한 탄압과 남북대결의 이념 공세 속에서 막대한 희생을 겪어온 한국 시민운동은 어떻게 비폭력 시민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었는가. 한국 시민운동은 다른 어느 선진국들보다도 빨리 SNS(사회관계망)혁명을 시민운동에 접목했다. 박근혜 정권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권재민, 민주공화정이라는 역사적 성과를 짓밟고 독립운동의 대의를 깎아내리며 박정희 군부독재를 미화하려하자, 그 시대 역행의 부당성을 시민운동은 지적했다. 더욱이 시민운동은 세월호가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300여 명의 승객과 함께 침몰하는 것을 박근혜 정권이 무능하게 방치했을 뿐 아니라, 온갖 부정부패와 국민감시를 저지른 것에 대해 분노하는 국민들을 대변했다.

시민운동은 지난날의 민주화운동과는 달리 비폭력적으로 항의의 언어를 문화예술, 대중예술과 접목했다. 여성과 어린이들이 참가했고 박근혜 정권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60대 이상의 노령 층도 다수 참여했다. 촛불집회에는 진보개혁 지지자뿐 아니라 박근혜 정권에 실망한 보수 성향 시민들도 참여했다. 한국사회의 개혁 전진을 원하는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시민들이 골고루 참여했다. 주말마다 벌어졌던 대규모 집회는 거대한 문화축제로 발전했으며 SNS로 중계되는 집회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로 전달되어 세계인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한국의 시민집회는 세계 시민운동을 선도하고 있었다. 2016~17년 촛불시민혁명 기간 구속자 한 명, 부상자 한 사람, 부모 잃은 아이 한 명 없었다. 수십만, 수백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모였던 광장에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세계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 민주시민혁명은 쉬지 않고 선순환 쪽으로 진화해왔다고 하겠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쪽은 철조망 군사분계선으로 가로막힌 자루 속이나 다름없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시민들과 호흡하면서 한 발짝씩 민주주의로 평화주의로 전진해왔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은 평균적 시민의식을 담고 있었다. 촛불시민혁명은 간고한 오랜 실천철학이 빚어낸 시민평화혁명이었다.

5. 핵 완성 북한 등장, 한반도에 전쟁 위기 성큼

분단의 다른 한쪽 북한은 1945년부터 1994년 반세기 동안 김일성 주석 1인 지배체제가 지속되면서 1980년대 말 소련연방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고 중국이 개혁개방(자본주의화)의 길을 걷자 체제 위기에 직면, 그 유지 수단으로 핵 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1990년대 초반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이 추진되고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과 수교함과 동시에 미국과 일본도 북한과 수교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외면하자 핵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핵 개발의 대가는 제재와 봉쇄로 이어졌고, 100만 명이상이 굶어 죽은 이른바 '고난의 대행군'을 겪어야 했다. 2017년 9월 북한은 6차 핵실험을 실시한 데 이어 11월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호까지 시험 발사하고 '핵 무장 완성'을 선포했다. 미 본토까지 핵 타격할 수 있다는 발표도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 언제든지 선제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선언했다. 한반도는 전쟁이, 그것도 핵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6. 촛불시민혁명의 계승자 문재인 정권 한반도평화가 첫 과제

촛불혁명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문재인 정권은 정권의 존립이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생존이 걸린 운명에 마주 섰다. 2017년 4월 대선 유세에서 문재인 후보는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느 나라도 한국의 동의 없이는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계속 견지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수행하겠다는 트럼프 미국대통령에게 반대한 것이었다. 한반도와 전 세계가 숨죽이고 주시했다. "지금 바로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섰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서 "어느 누구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는데 반대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연한 자세에 양측이 동의한 셈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부닥쳤던 김정은 위원장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떤 심경을 느꼈을까 헤아려본다. 촛불혁명 이전의 한국 정권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공격을 부추기지 않았을까. 미국과의 분란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태를 무릅쓰고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반대한다"고 공표했다는 사실에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전쟁이, 그것도 핵 전쟁이 한반도에 일어날 가능성이 클 경우,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의 1차적 임무는 한반도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한미군사연습을 연기하기로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반응은 2018년 신년사로 나타났다.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하겠으며 예술공연단도 함께 보내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특사도 함께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특사단은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고 남측의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 김 위원장의 친서를 가지고 돌아왔다. 특사단은 "비핵화 의지를 피력한" 김 위원장의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이래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이 같은 사태 전개는 의외로 단순한 사건에서 출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완전 파괴 위협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전쟁 불가론'이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어린 신뢰감을 일으킨 데서 시작된 것이다. 절대로 화해할 것 같지 않았던 남북이 신뢰를 가지고 서로를 믿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이번 경우에 실감하게 되었다. 남북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를 움직이는 모습으로 입증되었다. 한반도의 위상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뜨거운 감동을 가지고 지켜봤다. 지난 1945년 해방 광복도 잠시, 우리를 덮친 분단과 전쟁의 73년 긴 세월의 통한이 녹아내리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찬찬히 살펴야한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현실을. 우리는 우리 대로, 북은 북한 대로 지난 73년의 세월이 쌓아온 제도와 감정들이 갈 길을 가로막고 있다. 우리 안에는 북을 원수로, 전쟁이라도 해서 없애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사회세력이 엄존해있다. 그들과 대화하고 남북의 평화 공존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우리의 우방인 미국도 자신의 국익에 맞아야만 한다는 강대국 논리를 고집한다. 미국뿐인가. 중국, 일본, 러시아도 새로운 변화가 혹시라도 자신들의 이익에 맞지 않을까 참견하려고 든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협상의 벽을 더 높이 쌓는 강경한 자세를 보인다. 자칫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완전무장해제를 강요당하는 북한이 그 같은 부당한 굴욕적 협상을 감내할 것인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 다행스럽다. 남북정상회담 성과와 북미 정상회담 합의 과정에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쌓아온 협력과 신뢰가 북미 정상회담의 난관을 완화시키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남북 우리끼리 싸우고 있을 때는 강대국들의 이익까지 뒤엉켜서 우리 자신의 존재는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끼리 싸우느라고 우리 자신의 몫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우리끼리 조그만 믿음을 서로에게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갸륵하고 대견한 일인가. 이 당연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소중한 기억과 경험은 앞으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준칙이 되어야 한다.

ⓒ은빛순례단

7. 남북 평화공존 시대에 시민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난 70여 년 분단냉전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그에 항거해온 중심 거점이었던 광주에서 아래와 같은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다. 그러나 남북 평화공존·수교시대를 앞으로 짧지 않은 세월 살아가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촛불시민혁명이 가져온 사회질서는 공존과 관용을 준칙으로 요구한다. 촛불시민혁명을 성공시킨 시민사회의 성격이기도 하다.

가. 이른바 민주화운동세력, 진보개혁세력은 앞으로 펼쳐질 평화공존 공동번영의 시대를 어떤 자세를 가지고 맞아야 할까.

지난 독재-반독재 대결시대처럼 보수세력 전반에 대해 적대적 대결적 자세를 아직 체질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가. 위축된는 보수세력에 대해 점령군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극우세력과 온건 개방적 보수세력을 분리 대응하는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지난 2004년 노무현 정권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개정 논쟁을 벌일 때처럼 불가능할 데도 한꺼번에 폐지하려는 급진적 기세로 덤벼들다가 국가보안법 독소조항을 거둬낼 기회를 놓치게 했던 실패의 사례를 떠올려본다. 국가보안법은 일점일획도 고치지 못한 채 온존되어 있다. 여당 내의 분열로 노무현 정권이 한순간에 레임덕에 빠졌다. 결국 정권까지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주역들은 사과 한마디 없이 지금도 건재하다. 가혹한 분단 현실에서 진보개혁세력의 폭주는 반드시 역주행을 부른다. 진보개혁세력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촛불혁명으로도,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분단시대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아직 정상화에 이르기에는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과 같은 선도 투쟁 사고에 익숙한 집권세력 내의 급진적 선명노선 집착세력은 언제 다시 고개를 들지 알 수 없다. 특히 지방자치 선거 승리 이후가 등장 시점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나. 보수세력과 평화공존·공동번영 시대에 대해 대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북한과의 화해 교류·공존 공영을 실천해야 하는데 개성공단 같은 남쪽의 투자가 여러 곳에 이루어질 경우, 북쪽의 우수한 노동력과 우리 쪽의 자본과 기술을 결합하여 기업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부나 은행의 신용을 얻어내려면 담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북한에 투자하고 이익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세력은 현실적으로 남한 내의 보수세력, 기업인들이다. 한계에 부닥친 한국경제의 활로를 열려는 것이 공동번영 화해교류 정책이기도 하다. 평화협정을 맺어 전쟁을 하지 않는(대북 투자를 위협하지 않는) 조건을 만들어 대북투자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도록 보장해주겠다는 정책이 평화공존 교류협력 정책이다. 보수세력이 남북화해 교류를 반대한다면, 그들과 대화하여 오해를 풀어야 할 것이다. 대북 투자하여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기회를 스스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지난 70여 년 동안 전쟁과 대결, 의심에 짓눌려온 한국인들이 편견 고정관념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이제 북한과 평화공존하면서 공동번영의 길을 가려면 우리 내부에서 대화하고 서로 이해해주는 도리밖에 없다. 보수정권이 몰락해서 자신들을 지켜줄 정치세력이 마땅치 않다고 방어적 심리상태에 빠져있는 온건 개방 보수세력에게 현재의 문재인 정권은 남북관계를 개선하여 보수세력의 경제활동 영역을 넓혀주려고, 남북 공생하려고 한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60, 70, 80년대 국내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이익을 축적했던 기업인들에게 다시 기회를 만들어주려는 정책을 이해시켜야한다. 이 정책 실현은 극우보수 정치세력이 감당할 수 없고 진보개혁 정치세력이 나설 수밖에 없으며 남북 평화공존·공존공영의 혜택은 보수세력을 포함한 온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다. 한반도평화 만들기 은빛순례단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무슨 수를 쓰든 막아야 하고 우리 내부의 이념 지역 계층 간의 대립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지난 3월 1일부터 순례 여행을 다니고 있다.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일제 폭압 아래서도 종교 지역 계층 이념 간의 벽을 허물고 하나로 뭉쳐 위대한 3.1독립운동을 만들어냈다.

우리 독립운동의 힘의 저수지를 만들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웠다. 비록 분단되었지만 정부도 있고 힘도 많이 생겼는데 이념 지역 계층 종교의 벽을 헐고 3.1운동 100주년 행사를 하나로 치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지난 3.1절 행사를 보수 진보로 나뉘어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100년 전 선열들에게 부끄러웠다. 은빛순례단은 하나 된 3.1운동 대열을 다시 일으켜보자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2019년 3월 1일까지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대화하고 또 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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