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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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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었다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② 6.25동란과 평화세력

전쟁세력이 전쟁을 일으킨다

6.25동란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전면전은 분명 북한의 남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누가 전쟁을 먼저 시작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1945년 한반도가 38선에서 분단된 순간, 그리고 남과 북에 각기 서로 다른 체제의 미소 양대 강국의 군사정부가 들어선 순간 이미 전쟁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북의 전쟁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으며, 6.25동란은 그것을 전면화한 것이었다. 1945년에서 1950년까지 5년 동안 약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각종 투쟁과 시위, 봉기, 게릴라전, 38선에서의 소규모 전투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 2016년 6월 'AP통신이 본 6.25와 서울' 전시회 사진. ⓒgoogle.com

6.25동란은 북한 정부와 남한 정부만의 전쟁이 결코 아니었다. 더더구나 북한 인민과 남한 인민의 전쟁도 아니었다.

미소의 냉전이 없었다면, 미국과 소련, 중국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거나 동의하지 않았다면 6.25동란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만큼 6.25동란의 분명한 주체는 미군정과 소군정의 연장 선상에서 미국과 소련이었다. 남한과 북한은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한쪽을 배제하고 한 쪽만 선택한 전쟁의 피선택자이기도 했다.

물론 남북의 김일성 정권과 이승만 정권은 명확히 남조선 해방 전쟁과 북진 통일 전쟁을 공언하던 전쟁세력, 전쟁의 일차 당사자 주체였다. 특히 북한은 토지개혁의 성과를 바탕으로 남한을 압도하는 무력과 경제력을 내세워 인민 해방이라는 목적의식을 뚜렷이 가지고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로당은 남한에서 불법화되어 지하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남한 인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었고 가장 강력하게 무장투쟁을 선도하는 전쟁세력이었다. 조만식 등은 북한에서 이미 힘을 잃고 있었고, 심지어는 이들도 전쟁을 은연중 원하고 있었다는 증언들까지 있다. 현상 유지 상태에서는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태에서 현상 타파의 전쟁을 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의 승리와 베트남 등 아시아 민족해방운동의 고양 또한 전쟁 선택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외부의 원조 없이 단독으로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특히 비행기와 탱크를 움직일 석유와 각종 무기의 확보는 소련의 원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밀 해제된 소련과 중국 문서를 연구한 자료들에 따르면 스탈린은 전쟁에 소극적이었다. 중국은 미군이 소련과 합의한 38선을 넘어서 북진하는 순간 순망치한(脣亡齒寒)을 내세워 미 제국주의의 침략이라고 간주하고 참전을 결정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6.25동란은 불가능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아직도 미국의 남침 유도설을 확신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동안 이른바 국내외 진보 역사학자들의 6.25동란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대부분 미국 책임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분단과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산복합체의 무기 판매 지속과 미국 자본주의의 성장을 위한 전쟁경제 확대, 도미노이론에 따른 냉전 체제 설계와 집행에 기인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 한반도 분단과 전쟁의 주요한 책임은 분명 미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주한미군은 유엔사 이름으로 남한에 주둔하고 있다. 미군정은 아니지만 여전히 미국은 한국의 군부를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현실을 솔직하게 모두 인정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미국과 소련이 아무리 전쟁을 원하고 동의한다 해도 우리 내부에서 전쟁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인민들의 확고한 결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결사 전쟁 반대의 물리력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다면 전쟁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세력을 압도하는 평화세력의 기반과 힘이 있다면 언제든 뛰쳐나올 수 있는 전쟁이라는 우리 안팎의 괴물은 우리 모두가 달려들어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좌우합작 연립정부가 그런 사례이다.

오스트리아는 왜 신탁통치를 받아들였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좌우합작 정부를 운영하면서 10년의 신탁통치를 받아들인 오스트리아의 경험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반면교사의 사례다. 역사와 정치 문화가 다르고 유럽이라는 지정학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좌우합작이 무산되고 신탁통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전쟁으로 치달았던 한반도와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한국과 달리 2차대전 직후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4대국의 신탁통치를 받아들였다.

오스트리아는 2차대전 이전에 좌우익 간 극심한 내전까지 치른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스트리아의 좌우익 정치 지도자들은 나치 수용소에서 풀려나오자마자 곧바로 좌우합작 정부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연합국과 끈질긴 협의를 통해 분단을 막고 전쟁을 막았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미소 냉전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중립국으로서 독립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도대체 오스트리아와 한반도의 차이는 무엇일까.

불행하게도 남북한에는 그런 평화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세력과 힘이 지극히 미약했다. 여운형과 김구, 김규식 등은 좌우합작을 통한 평화와 남북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지만 결국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

아니 전쟁 이전에 그들은 전쟁세력에게 모두 암살당하고 말았다. 해방에서부터 6.25동란까지 5년의 기간 동안 평화세력은 남북 모두에서 조직된 힘이 없었다. 이들의 정치·경제·사회 기반은 지극히 취약했으며 이것이 6.25동란을 막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6.25동란은 1950년 당시 남북한 전쟁세력을 압도하면서 갈등을 조정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인민의 평화 세력이 미약했기 때문에 제어가 되지 않았던 필연의 전쟁이었다.

아무리 강대국이 한반도를 침략하고자 해도 민주주의와 평화를 실천하고자 하는 정치 세력이 확고부동하게 인민 속에서 힘을 갖추고 있고, 그 강대국 인민들과의 국제 평화 연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전쟁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친소 공산주의 세력과 친미 자본주의 세력을 대화와 소통의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는 강한 정치력과 인민 연대의 제압력이 있었다면 전쟁은 방지될 수 있었다.

평화세력이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만든다

6.25 동란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처절한 육성은 바로 이것이다.

인민이 평화 세력으로 무장해야 개죽음과 전쟁을 막을 수 있다. 핵 무장이 아니라 평화와 자유인의 삶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연대와 연합을 결의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치력 무장 말이다.

인민의 주권자 자유인으로서의 자각, 인민의 좌우 합작과 연대 정치력이야말로 평화체제 구축의 주춧돌이다.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남북 간 전쟁을 막기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온 힘을 다해 펼쳐 나갔다. 그들은 전쟁을 막고 신생 조선을 통일 독립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마침내 목숨까지 바친 진정한 애국자들이었다.

이들 선각자들의 주장은 단순했다.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죽는 것은 인민들이고, 이득을 보는 자들은 남북의 매국노들과 미국, 일본을 비롯한 외세뿐이라는 것이었다.

▲ 백범 김구 선생이 1948년 4월 평양 모란봉 극장에서 개최된 남북협상회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google.com

1948년 2월 10일 김구가 38선을 넘으면서 발표한 '3000만 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을 다시 읽어보면, 그 정확한 전쟁 예측과 전쟁을 막고자 하는 절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다.

"제2차 대전에 있어서 동맹국은 민주와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천만의 생령을 희생하여 써 최후의 승리를 전취하였다.

그러나 그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 세계는 다시 두 개로 갈리어졌다. 이로 인하여 제3차 전쟁은 온양되고 있다.
과거에 있어서 전쟁을 애호한 자는 파시스트 강도군 밖에 없었다. 지금에 있어서도 전쟁이 폭발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자는 파시스트 강도 일본뿐일 것이다. 그것은 그놈들이 전쟁만 나면 저희들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남북에서 외력에 아부하는 자만은 혹왈 남정, 혹왈 북벌하면서 막연하게 전쟁을 희망하고 있지마는 실지에 있어서는 아직 그 현실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촉발된다 하여도 그 결과는 세계의 평화를 파괴하는 동시에 동족의 피를 흘려서 왜적을 살릴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 될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새 상전들의 투지를 북돋울 것이요, 옛 상전의 귀염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이 난다 할지라도 저희들의 자질만은 징병도 징용도 면제될 것으로 믿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왜정 하에서도 그들에게는 그러한 은전이 있었던 까닭이다.

미군 주둔 연장을 자기네의 생명 연장으로 인식하는 무지 몰각한 도배들은 국가 민족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고 박테리아가 태양을 싫어함이나 다름이 없이 통일 정부 수립을 두려워하는 것이다."(1948년 2월 13일 자 <서울신문>)

김구가 개탄하듯이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한반도에는 박테리아가 태양을 싫어하듯 국가와 민족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는 매판 전쟁세력이 여전히 극단주의 기득권 세력으로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5조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조항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헌정 파괴세력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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