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목을 받은 남북정상회담에서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판문점 선언'이 발표됐을 때 많은 국민들이 감격의 흥분을 느꼈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에서 약속된 일들이 모두 실현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 등 강대국들이 한반도 정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술수로 인해 남북이 뜻을 모아 나아가려 하는데에도 불구하고 난관에 봉착하게 될 지도 알 수 없다.
차고 넘치는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일부 회의적 시각들을 점검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전히 서구권 일각에서는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격언을 거론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모든 당사국이 '판문점 선언'이 실현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다.
트럼프 "내가 할 수 없다면, 많은 나라들에 매우 힘든 시간 닥칠 것"
28일 미국의 CNN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한반도 종전을 공식 선언하는 협상에 나설 것을 약속한 '판문점 선언'이 발표됐다"면서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쟁 직전까지 치달을 정도로 수십년에 걸친 상호불신의 역사가 있는데, 완전히 뒤집어졌다. 평화가 정말 실현될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CNN은 한반도 분쟁의 당사국인 강대국들이 회의적인 입장인 것으로 진단했다.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트윗을 통해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고 고무된 메시지를 내놓았다. 반면 백악관의 성명은 "앞으로의 회담들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진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는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한이 구체적인 행동을 하길 강력하게 희망한다. 이제부터 북한의 행동을 면밀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CNN은 "아베 총리의 발언은, 비핵화가 이뤄진 것을 봐야 믿겠다는 얘기"라고 해석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전문가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CNN은 "최소한 서방권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 비핵화 가능성의 확률을 희박하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시각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과 미국의 체제안전보장 약속 없이 비핵화를 할 의도는 전혀 없는데, 문제는 한미가 현실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수준의 보장을 요구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비핵화 과정 자체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에 꼭 들어맞는 과제라는 점에서 상당히 회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매우 세밀한 사항들이 합의가 되어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이다.
미국의 NBC뉴스도 "비핵화에 대한 정밀한 규정을 합의하고, 비핵화 절차와 검증 방식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합의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핵화의 전제 조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북한을 믿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북미정상회담이 사실상 진전 없이 끝나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 전세계에 생중계된 남북정상회담으로 김정은은 국제외교무대의 주요인사로 부각되는 목표를 달성했고, 남북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와 악수하는 장면으로 평화주의자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따라서 북미정상회담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의 장애물로 비쳐지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NBC뉴스는 "이런 상황이 되면 한미간의 갈등이 심해질 수 있고, 중국과 일본과의 마찰도 격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2000년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가졌던 매들린 울브라이트 전 국무무 장관은 일단 "판문점 선언은 범위와 목표에서 놀랄 만한 내용을 담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선언문에 담긴 모든 목표들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완료를 달성할 수 있는 시점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0년 중반 이전까지로 보고 있다. 길지 않다. 트럼프 정부가 요구하는 완전히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를 위해서는 매우 짧은 기간 내에 빈틈없는 조건과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울브라이트 전 장관은 "그럴 수 없다면, 선언문에 담긴 다른 약속들 대부분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회의적인 시각들을 인정했다. 그는 판문점 선언을 발표할 때 "폭넓은 합의가 과거에도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면서 "확고한 결의로 손에 손을 잡고 나아가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코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전인 지난 23일 칼럼을 통해 "트럼프는 천부적 협상 기술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그런 자신감은 국제무대에서는 위험하다. 외교는 부동산 개발업과 다르다"면서 "트럼프는 위험에 처할 것이며, 전쟁 가능성은 적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27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끝내고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를 이룩하려고 노력할 책임이 있다. 내가 할 수 없다면, 많은 나라들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힘든 시간이 닥칠 것"이라면서 "세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변수는 역시 미국과 중국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미정상회담 전에 평양을 방문해 북중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북미정상회담 날짜가 다가오는 가운데, 회담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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