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전방위 공격이다. 법질서를 강조하면서도 법을 제정하는 정치인들과 법을 적용하는 판사들까지 싸잡아 비판했으니 전방위 공격이라 평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조현오 청장이 뭐라고 주장하든 아무 상관없다. 그건 그 사람만의 생각일 뿐이니까 그냥 '아, 그러세요?' 하고 넘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그가 내민 숫자다. 이른바 "이슈를 불문하고 반정부·반사회 성향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숫자다. 조현오 청장은 이들이 "한때 13만 명까지 올라갔으나 2008년 촛불시위 때 8만 명까지 줄었고, 지금은 2만 5000명 수준"이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숫자를 내밀었을까? 알 길이 없다. 조현오 청장은 그냥 숫자만 내밀고 그 산출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니까 알 도리가 없다.
▲ 조현오 경찰청장 ⓒ프레시안(최형락) |
그래서 추정해 본다. 혹시 과거 시위 전력자들의 숫자를 갖고 산출한 걸까? 그럴 수가 없다. 과거 시위 전력자들 합계라면 숫자가 늘면 늘었지 줄 수가 없다. 과거 시위 전력이 사라질 수는 없으니까. 그럼 뭘까?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당시(1980년대) 활동한 진보세력이 현재도 직업운동가로 노동계에 침투해 정치를 이념화하고 있고, 환경 무상급식 국방 등 각종 사회문제에 개입하고 있다"는 말이다.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적단체 회원들도 있다"는 말이다. 조현오 청장은 이 말을 앞세운 다음에 숫자를 늘어놓았다.
조현오 청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추적해 왔다는 얘기가 된다. "당시 활동한 진보세력"이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세밀히 체크해 왔다는 얘기가 된다. 숫자의 감소 추이까지 언급한 걸 보면 꾸준히 관찰해 왔다는 얘기가 된다. 완곡하게 말하면 동향 감시, 거칠게 말하면 사찰을 해왔다는 얘기가 된다.
조현오 청장이 언급한 '이적단체'가 뭘 말하는지 모호하지만, 백 번 양보해 이적단체 회원의 범죄 혐의점을 찾기 위해 동향을 감시하는 걸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이건 중대한 문제다. 너무 많다. 모두가 이적단체 회원이라고 보기에는 2만 5000명이라는 숫자가 너무 많다. 행여 그 2만 5000명 가운데 이적단체 회원이 아닌 사람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면, 단지 자신의 사상과 양심에 따라 진보 이념을 수용하고 각종 사회이슈에 적극 나서는 사람들마저 경찰의 동향 감시 또는 사찰 대상이 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노동운동이나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까지 한 데 묶어 말한 것이라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자신의 정치사회적 신념에 따라 행하는 활동을 불온시 하면서 지켜보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사상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처사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처사다.
조현오 청장은 답해야 한다. 그가 입에 올린 숫자의 산출근거가 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더불어 그가 일방적으로 규정한 '반정부·반사회 성향'이 뭔지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5공 때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건 아니라고 확인하고 싶기에 묻는 것이다. 기본권을 유린하는 망동이 되살아나는 건 아니라고 확인하고 싶기에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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