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건 따로 있다. 정몽준 의원이 반말까지 하며 열을 낸 사연이다. 그 사연이 참으로 원칙적인 것 같고 자주적인 것 같다.
정몽준 의원이 문제 삼은 건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시점. 세계 50여개국의 정상이 참여하는 핵안보정상회의가 내년 총선 두 주 전인 3월 26~27일에 열리는 걸 문제 삼으며 "어떻게 선거기간 중에 (핵안보정상회의를) 하겠다는 건가"라고 지적한 것이다. 얼핏 들으면 핵안보정상회의를 총선 이벤트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검은 의도를 질타한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찌감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을 두고 "김 위원장이 온다면 총선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고, 반대로 안 오면 신뢰도에 손상이 가는 것"이라고도 말했으니 더더욱 그렇다.
이뿐인가. 정몽준 의원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일정을 고려해 3월말로 개최시기를 정했다는데 우리가 개최하는 행사도 일정을 못 정해 법정선거운동 시기에 하면 우리 스스로가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 또한 설핏 들으면 국격을 강조한 발언인 것 같다.
▲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연합 |
놀랍지 않은가. 집권여당의 대표까지 지낸 인물이 자당의 정치적 득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정한 선거중립 원칙을 천명한 것처럼 들리니 얼마나 신선한가. 또한 놀랍지 않은가. 과거에는 집권세력이 북풍이니 안풍이니 하는 요상한 바람을 지펴 선거지형을 유리하게 짜려고 시도하곤 했는데 이번엔 정반대 행보를 보이는 것 같으니 얼마나 의외인가.
한데 그렇지가 않다. 다른 얘기가 들린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전부터 이런 말을 해왔단다. "선거운동기간 중에 대규모 국제회의로 교통통제가 실시되고 시민들이 불편하게 여기게 될 경우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불평을 해왔단다('조선일보' 보도).
이 말을 전해 들으니 새삼스레 떠오른다. G20정상회의 때 문제가 됐던 이른바 '쥐포스터' 사건. 이 사건 때문에 표현의 자유 위축 문제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함께 재연되는 영상도 있다. 전국의 경찰을 대거 동원해 G20정상회의장 주변을 요새처럼 만들고 시민들의 통행을 차단했던 그 때의 장면들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안과 불평이 현실화 되면 타격을 입을지 모른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민심에 불을 붙여 총선을 코앞에 둔 한나라당 의원들을 궁지에 몰 수도 있다.
이렇게 이해하고 정몽준 의원의 반말 질의를 다시 새기니 비로소 해석이 된다. 외교문제를 국내 정치와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김성환 장관의 발언에 정몽준 의원이 "그건 또 무슨 궤변이야"라고 반말하고, "외교부가 국내 정치와 관계없다는 게 자랑이 아니야"라고 역정 낸 이유가 비로소 이해된다. 정몽준 의원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초를 치느냐'는 것이었던 것 같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