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3일 베트남 주석궁에서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파병 당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대해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대해 꽝 주석은 "베트남전 과거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진심을 높이 평가한다"며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양국 간 우호 관계를 공고히 하며 상생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더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번 유감 표명에 대해 "(과거사에 대한) 진상 조사와 그에 따른 사과, 배상 문제가 따르는 의미에서의의 공식 사과는 아니다"라면서도 "베트남 과거사에 대해서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 이어서 발언한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에는 호치민 묘소를 참배하며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줘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우리 국민은 마음에 빚이 있다"고 발언했다. 문 대통령도 2017년 11월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이날 유감 표명이 '마음의 빚' 표현에서 진전된 내용이 아니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베트남이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 수위를 어떻게 조절할지 고민했다"며 유감을 표명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문 대통령 "호치민, 베트남을 넘어 전 인류의 위대한 인물"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호치민 전 주석 묘소에 헌화한 뒤, 호치민 전 주석의 거소를 방문하며 그의 삶에 대해 호평하는 등 '파격 행보'를 보였다.
그동안 베트남을 방문하는 한국을 포함한 외국 정상들은 관례적으로 호치민 전 주석 묘소에 방문해 왔지만, 한국 대통령이 호치민 전 주석에 대해 예우를 다하며 극찬한 것은 이례적이다. 베트남전을 이끌었던 호치민 주석의 의미는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전에 파병한 한국 대통령에게는 남다르다.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은 베트남 주석궁에 있는 호치민 동상을 문 대통령에게 소개하며 "날씨가 좋으면 나는 혼자서 이 주변을 산책하면서 호치민 동상을 바라보고는 한다"고 말했다. 꽝 주석은 이어 문 대통령을 호치민 전 주석이 11년 묵었던 거소 쪽으로 안내했다. 길가의 망고나무를 가리켜 "이 망고는 베트남 남부에서 가져온 것들로 호치민이 이 망고나무들을 보며 조국이 갈라진 현실을 잊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거소를 둘러본 문재인 대통령은 "호치민의 가장 위대한 면모는 거소에서 드러난다. 정말 검소하게 살았다. 국민과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자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추앙을 받은 것이다. 호치민은 베트남을 넘어 전 인류의 위대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호치민 주석의 거소를 항상 보며 마음에 새기겠다"고 다짐했고, 꽝 주석은 "호치민의 도덕을 전체 국민이 따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 세상의 정치인들이 호치민을 본받는다면 부패가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호치민이 살던 모습을 보니 숙연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소를 다 둘러본 문 대통령은 호치민이 평소 정치국원들로부터 보고받던 응접실 테이블에 앉아 방명록에 "국민과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한 호치민 주석님의 애민정신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2018. 3.23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서명했다.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모두 호치민 묘소에 간 바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달리,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과거사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꽝 주석이 편리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해 주시기를 희망하며 방한시 최상의 예우로 대접하도록 하겠다"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꽝 주석은 가급적 이른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답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