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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노동자'는 착취당해도 그저 고마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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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노동자'는 착취당해도 그저 고마워하라?

[예술인 고용보험이 필요하다 ④] 예술인 고용보험의 올바른 시작을 위하여

2013년 가을, 창립총회를 열고 결성된 뮤지션유니온에서 활동하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가혹한 질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뮤지션이 왜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데? 뮤지션이 노동자냐?"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질문을 분해해 보았다.

뒤에서부터 '노동자'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받은 임금(賃金)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다시 말해 보수를 목적으로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력을 제공해주고 대가로 받는 임금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뮤지션(음악가)은 누구인가? 흔히들 클래식이나 국악, 대중음악 등의 장르적 구분에 따라 성악가, 지휘자, 연주자, 국악인, 작곡가, 작사가, 편곡자, 가수, 비평가 등으로 뮤지션을 분류하기도 하고, 연습과 창작, 공연, 연주 지원, 기술 지원, 음악교육 등 여러 활동방식에서 숙련도의 정도에 따라 프로와 아마추어로 구분해 음악인의 직업적 능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는 음악가(Musician)를 '음악을 전문(專門)으로 하는 사람'이라고만 설명한다.

뮤지션유니온은 '음악노동자'라는 개념으로 우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음악노동(창작, 공연, 기술지원, 교육 등)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을 '음악노동자'라고 우리 스스로부터 설득해나가기로 했다. '우리의 일은 음악입니다', 'Music is Work' 캠페인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뮤지션유니온

음악 밖 세상물정에 약한 뮤지션들

보통의 예술인들이 그러하듯 뮤지션들도 대개 자신의 음악활동 이외에 다른 것을 잘 알지 못한다. 뮤지션들은 공연비를 지급받을 때 어떤 종류의 세금을 떼는지도 모르고, 자신들의 음원을 발표할 때마다 제작 혹은 저작자로서 저작권료 분배, 음원수익분배, 세무신고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음반(음원) 유통 레이블과 맺은 음반 유통 계약을 자신들의 음반 활동에 대한 매니지먼트 계약으로 착각하는 뮤지션도 있을 정도다. 공연계약, 음원계약, 저작권신탁계약에도 익숙하지 않는 뮤지션들이 고용보험을 비롯한 사회보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매니지먼트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는 뮤지션들의 경우에도 회사와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잘 모르며, 복잡한 세무, 정산, 서류작업 등 의 모든 것을 다 맡겨두고 음악활동에 지속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한다.

음악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쏟아온 노력만은 잘 알기에 자신의 곡을 대중에게 알리고, 무대에서 공연할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다. 그 와중에 멜론 등 음원플랫폼들이 음원 총수익의 40%를 챙겨가도 내 음악이 멜론에서 검색되는 것으로 고맙고, 공연계약서도 없이 전화 한통 섭외에 달랑 이동경비 수준의 공연비밖에 못 받아도 축제나 행사 주최 측이 공연시간을 주고 포스터 라인업에 올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슬프게도 많은 음악가들은 다른 어떤 이익(공동체의 문화적 이익, 음원플랫폼의 영업이익, 행사 주최 측 영업이익 등)을 위해 그렇게 소모되고 착취되어도 문화산업의 홍수 속에서 음악을 계속 할 수 있는 것만으로 고맙고 막 그렇다.
박근혜 정부에서부터 추진되어온 예술인 고용보험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슬픈 죽음 이후 그해 11월 제정되어 2012년 11월18일 시행된 예술인복지법에는 예술인을 '예술 활동을 업(業)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자로, 창작·실연·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예술인 긴급구제 성격으로 시혜적 수준인 예술인 복지정책을 고용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과 같은 보편적 사회복지의 안전망으로 바꿔야한다는 요구가 높다. 2014년 예술인 고용보험 도입을 위한 용역조사를 했고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소속 국회의원의 입법발의를 통해 2016년 예술인 고용보험 도입을 가시화시켜 현재 20대 국회에 관련법안(장석춘 의원의 고용보험법 개정안, 조훈현 의원의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이 입법 계류 중이다.

그 법안에 따르면 '예술인'을 자영업자와 같은 방식으로 가입하겠다고 하는 사람만 고용보험에 임의가입하게 설계되어 있고 이에 대해 정부에서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예술인을 '프리랜서'로 전제한 이 법안대로 예술인 고용보험을 시행하게 되면 10여 년 동안 영화산업노조가 어렵게 만들어온 영화 스태프 단체협약 등이 후퇴할 거라든지, 가입자가 극소수에 그친 자영업자 고용보험처럼 껍데기 제도가 될 것이라는 등 여러 비판을 받고 있다.

뮤지션의 입장에서는 과거 정부에서 추진해왔던 예술인 고용보험 계획안에서 저작권자는 고용보험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을 보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뮤지션들의 경우, 거의 대다수가 저작권자이거나 실연권자로서 음악콘텐츠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고, 인디레이블로 활동하면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며 매니지먼트 기획사와 전속계약은 매니지먼트 수탁계약이지 고용계약이 아니다. 이대로 저작권자라는 이유로 예술인고용보험의 대상에서 배제된다면 음악창작자들은 예술인 고용보험에 가입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예술인고용보험?

한국형 앵떼르미땅을 공약으로 제시했던 문재인 정부라면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부터 추진되어온 허울뿐인 '예술인 고용보험'의 정책 추진계획을 깨고 실효성있는 '예술인 고용보험' 도입을 위한 진일보한 제도를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 일정이라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기존 정부의 정책에서 문구하나 바뀌는데 몇 달, 몇 년이 걸린다.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고용보험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예술인 고용보험, 당연가입' 역시 그렇다. 예술인 중에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입할 수 있게 하자는 '임의가입' 방식과 예술인이 맺는 모든 예술활동 보수계약(창작, 공연, 기술지원, 교육 등)에 고용보험을 '당연가입'하게 하는 방식 중에 어떤 정책이 더 진일보한 것일까?

다 알려져 있다시피 음악생태계 소득불균형은 여러 조사를 통해 알려져 있는 것보다 상상을 초월한다. 소득이 많은 사람들은 고용보험에 관심이 없다. 혹시 세금 더 떼어갈까 봐 오히려 노심초사한다. 그런데, 절대 다수의 뮤지션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을 충분히 얻지 못하기에 음악을 업(業)으로 삼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한국사회에서 뮤지션으로 살아가기가 비참할 정도로 힘겹지만 음악을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이들 뮤지션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안전망이다.

OST 작업에 참여하게 해주고, 공연무대에 세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는 예술인들이, 가입대상이 되는지 알 수도 없는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을 위해 계약서 제대로 써달라고, 근거자료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게 쉬울까? 공연비 올려달라고 하는 것도, 강습비 올려달라고 말하는 것도 대다수 음악인에게는 낯설고 힘든데 계약서 써달라고, 근거자료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게 쉬울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모든 예술활동 보수계약(창작, 공연, 기술지원, 교육 등의 모든 계약)에 고용보험료를 자동산정해 신고납부하게 해야 예술인 고용보험 정책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다. 예술활동 보수계약의 수입 정산에 고용보험료로 자동 몇 퍼센트를 떼어 납부하고, 수급조건이 갖추어지면 월 보험료 납부액이 일정액 이하일 때 '예술활동급여'로 얼마씩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정책인가? 예술활동 수입 액수가 적더라도 예술활동에 대한 보수계약 체결과 신고를 의무화해야 비로소 ‘예술인 고용보험’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다. 어차피 고용보험은 이중수급이 되지 않지 않는가? 다른 직장으로 고용보험에 가입된 경우,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의무 대상에서 자동 제외시킬 수 있는 전산시스템 정도는 갖추고 있지 않는가? 혹시 전산오류로 예술활동 보수계약에서 이중 납부된 고용보험료일 경우, 소득액이 일정액 이상이면 예술인고용보험 계정에 자동 산입시키거나 일정액 이하이면 환급해주는 절차 같은 것은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예술인의 고용보험 당연가입은 결코 어렵지 않고 당연가입으로 해야 거부감도 없앨 수 있다.

제대로 된 예술인 고용보험으로 시작되어야

정치일정에 밀려 서두르는 정책추진으로 설익은 밥을 꺼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서 음악노동의 형태는 지속적으로 변화해갈 것이 뻔하다. 근대적 법적 체계로만 사회질서를 관리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의 선순환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음악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이 계속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 시작은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음악활동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에게 이 사회에서 생존해갈 수 있는 안전망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예술인이라는 특수한 직업적 조건을 고려해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사회보장체계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수혜자들이 늘어나게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며 조급하게 누더기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제대로 된 설계도면을 가지고 '예술인 고용보험'이 도입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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