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농단' 사건의 주범 최순실 씨가 1심에서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 씨의 공모사실을 폭넓게 인정함에 따라 1심 선고를 한 달여 앞두고 있는 박 전 대통령 또한 중형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세윤)는 13일 오후 417호 대법정에서 뇌물·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 씨에게는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 원, 추징금 72억9427만 원을 선고했다. 지난 2016년 11월 20일 최 씨가 재판에 넘겨진지 450일 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14일 결심공판에서 최 씨에 대해 "국정농단 사태의 시작과 끝"이라고 강조하며 징역 25년과 벌금 1185억 원, 추징금 77억9735만 원을 구형했다.
검찰이 구형한 형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징역 20년은 만 62세인 최 씨를 나이를 고려할 때 사실상의 종신형에 가까운 중형이다. 최 씨 측은 지난해 12월 검찰 구형 당시 "옥사하라는 것과 같은 얘기"라며 반발한 바 있다.(☞관련기사 : 특검 "최순실은 대통령 탄핵 국가 위기 유발한 장본인")
"삼성 묵시적, 명시적 청탁은 인정 안 돼"
재판부는 재단 출연 모금 과정에서 최 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공모 관계를 인정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해 기업체에 출연금을 강요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면세점 재인가 청탁을 받고 K스포츠재단 출연금 70억 원을 받은 혐의, 최 씨가 삼성으로부터 딸 정유라씨 승마지원 형식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에 관해 유죄로 인정했다. 이외에도 현대차그룹의 최 씨 지인 회사에 일감 몰아준 점, 포스코, GKL 등이 스포츠팀을 창단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최 씨 측 회사가 이익을 보도록 한 점 등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 씨에 대해 "피고인의 범행으로 인해 국정질서가 큰 혼란에 빠졌고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까지 초래했다"며 "이러한 국정농단의 주된 책임은 헌법상 부여된 책무를 방기하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과 지위를 사인에게 나눠준 대통령과 사익을 추구한 최 씨에게 있다"고 했다.
이어 "국정 혼란과 국민들의 실망감에 비춰볼 때 죄질이 대단히 무거움에도 최 씨는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고 이 사건을 기획된 국정농단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어 책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질책했다.
재판부는 다만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후원금 16억2800만 원과 두 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 원은 모두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 씨의 딸 정유라를 위해 제공한 말 3필과 보험료 등 72억 원만 뇌물로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이 대가관계를 인지했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삼성이 출연금을 낸 행위를 청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가 내린 것과 같은 결론이다.(☞관련기사 : 법원의 '자기 부정'..."'전형적 정경유착' 못 찾아")
재판부는 "형사책임을 논하는 법정에서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승계작업은 명확해야 하고 증거에 의해 증명돼야 한다"며 "특검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포괄적 현안 내용 이룬다는 개별 현안의 진행 자체가 이재용의 안정적 승계 작업을 위해 특검 말하는 순서대로 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삼성의 '승계 청탁' 부분은 이재용 부회장 1심 판결 때 "포괄적"으로 인정됐지만 2심 재판에서 뒤집혔다. 이번 최순실 씨 판결에서도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 2심 판결과 동일한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이런식이면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이재용 부회장 1심 판결의 핵심 ‘전형적 정경유착’ 부분이 관련 재판에서 계속해 뒤집힐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앞서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와 달리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 등을 만난 뒤 한 말을 적은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은 단독면담에서 그런 대화가 있었다는 간접사실의 정황증거로 증거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수첩에 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재판부는 최 씨의 유죄 혐의를 인정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도 이날 뇌물수수 등 혐의 상당 부분에 대해 유죄를 인정받아 징역 6년 및 벌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안 수석에 대해 재판부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경제 관련된 국가 정책에 관한 지위와 권한 갖고, 무엇보다도 고도 청렴성 요구 됨에도 뇌물을 수수해 공직자로서 신뢰를 무너뜨리고 국정 질서를 무너뜨려 국정농단 사건의 단초를 일부 제공해 국민들에게 실망감 안겼다"고 했다.
다만 "아무런 형사처벌 전력 없고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을 인정하면서 그 부분 반성을 인정하고 직권남용과 관련된 통 지시 거부하기 어려웠던 점. 그 부분 범행이 사익 추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는 점, 국회 동행명령 불응했지만 그 이후 헌법재판소나 법정 증인소환에 성실히 응해 진상 밝히는 데 도움이 된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최 씨와 안 전 수석에 대한 1심 재판이 마무리되면서 재판부가 최 씨와 '공모 관계'라고 지목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 판단 결과에 귀추가 모아진다.
최 씨에게 중형이 선고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판결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 씨가 민간인인 것과 달리 박 전 대통령은 공무원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최 씨보다 무거운 형이 선고될 가능성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업 출연금을 강요한 강요 행위 등을 포함 13가지 범죄 행위에서 최 씨와 공범으로 적시됐고, 이날 재판부는 최 씨의 혐의 가운데 삼성 뇌물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이 유죄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오는 20일 최 씨에 대한 증인 신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결심 공판은 3월 초, 선고는 이르면 3월 말이나 4월 초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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