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검색 화면에 '글쓰기 강의'를 입력하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저자부터 각 분야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책 좀 써봤다는 이들을 앞세운 강좌가 참 많습니다. 글쓰기 강의를 연 관공서도 많습니다.
강의 분야도 다양합니다. 자서전 글쓰기, 서평 글쓰기는 물론, 심지어 소셜 미디어(SNS) 글쓰기 강좌까지 있습니다. '글쓰기로 당신의 경쟁력을 키워라'거나 '인생 2막을 글쓰기로 준비하라'는 식의 실용적 목적을 분명히 한 강의 홍보문이 생각 이상으로 많습니다.
강의뿐만이 아닙니다. 글쓰기 관련 서적도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제 유명 글쓰기 강사로 인지되는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의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 펴냄)를 비롯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유시민 지음, 생각의길 펴냄), <글쓰기로 나를 찾다>(숭례문학당 엮음, 북바이북 펴냄), <글쓰기 비결 꼬리물기에 있다>(박찬영 지음, 리베르 펴냄), <글쓰기의 최전선>(은유 지음, 메멘토 펴냄) 등 총론적 글쓰기 책부터 테크닉 설명 위주의 책까지 종류가 다양합니다. 글쓰기 관심은 분명 붐이라 부를 만합니다.
글쓰기 붐이 인다는 건 그만큼 저자가 되고픈 이들이 많음을 입증합니다. 실제 평범한 우리 이웃이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는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 퇴사 공부법>(박재현 지음, 더시드컴퍼니 펴냄), <야밤의 공대생 만화>(맹기완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 <퇴사의 추억>(장수한 지음, 렛츠북 펴냄), <회사언어 번역기>(Peter 지음, 흐름출판 펴냄), <책 낸 자>(서귤 지음, 디자인이음 펴냄) 등은 언론과 대중이 주목한 '초보 저자'의 책이라 부를 만합니다.
자연히 궁금해집니다. 왜 이토록 내 책을 내려는 이들이 늘어난 걸까요? 탁월한 문학가나 연구자, 자기 분야 일가를 이룬 극소수 사람 정도가 책을 내는 것 아니었나 싶은데 그건 아닌 듯합니다.
11월의 '표지 너머 책 세상'은 글쓰기 강의 열풍의 이유를 알아보고, 이 현상이 전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출판문화연구소에서 열린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와 이홍 한빛비즈 편집이사의 대담을 정리했습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 우리 모두가 이미 저자
-글쓰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글쓰기 관련 책이 쏟아지고, 관련 강의도 봇물입니다.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의 책 <대통령의 글쓰기>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이 현상을 상징한다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소설가, 전문직 종사자, 한글 연구자, 교수 등 다양한 분야 종사자들의 글쓰기 강좌가 개설되었고, 심지어 소셜 미디어 글쓰기 강의도 만들어졌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장은수 : 엄밀히 말해 글쓰기 열풍이 아니라 '저자 열풍'이 분다고 봐야할 듯합니다. 저자가 되려는 이들이 크게 늘어났으니, 이에 맞춰 글쓰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원래 사람은 책 읽기보다 쓰기를 좋아합니다. 음악 듣기보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아니라고요? 맞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린 내 글에 누군가가 '좋아요'를 누르는 걸 보면 기쁘지 않습니까? 인터넷 카페에 올린 내 글에 누군가 댓글을 단 걸 보면 곧바로 확인하고 싶어지지 않나요?
그렇다면 왜 저자 되기 열풍이 요즘 불고 있느냐를 알아볼 차례입니다. 과거에는 다른 이에게 내 글을 알리기 어려웠습니다. 읽어줄 이를 찾기 힘들었죠. 지금은 아닙니다. 내 글의 독자를 찾기가 매우 쉽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거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누군가 와서 내 글을 봅니다. 종이로 된 서적은 글쓰기 행위의 결과일 뿐입니다. 인터넷 덕분에 사람들의 자기표현 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됐습니다. 토대가 마련되었으니 이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더 좋은 글을 쓰려는 욕구도 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최근 웹 소설 서비스 기획자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저도 시대를 온전히 읽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같은 출판계 출신은 일단 글이란 돈을 주고 청탁해야 나온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기획자는 글쓰기 필드만 잘 설계하면 글쓴이가 알아서 모인다고 봅니다. 실제 웹 소설이 그렇게 탄생했으니까요.
요즘 저자란 돈을 받고 글 쓰는 이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중 자기 독자를 확보한, 내용이 좋은 사람이 종이 서적까지 낼 뿐입니다. 필자의 리그가 형성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이제 누구나 상위 리그(종이책 리그)에 오를 수 있게 된 셈입니다.
특히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생각해 보면, 저자가 되어 제2의 삶이 가능합니다. 내 원래 업을 이어갈 시기는 끝났지만, 내 경험과 삶을 온전히 되살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저자되기야말로 은퇴자의 삶으로서 가장 우아하고 확실한 길이죠.
이홍 : 장 대표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여기에 설명에 덧붙이자면, 지금까지 대중은 대체로 독자로 머무는 데 만족했습니다. 자발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학창시절의 숙제나 일기가 고작이었죠. 전문 작가의 꿈을 가졌던 문학청년이 아니라면 나와 글쓰기는 대체로 무관했습니다.
출판 트렌드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글쓰기 관련 책 대부분은 기획서 쓰기 책이었습니다. 실무 목적을 지닌 글쓰기 필요성만 존재했다는 거죠. 하지만 인터넷이 이 모든 흐름과 욕구를 흔들었습니다. 인터넷이 쏟아내는 정보와 지식은 기본적으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합니다. 텍스트 생산의 주체는 대중입니다. 대중은 새롭게 열린 공간에서 글을 통해 소통하는 기쁨을 누리게 됐죠. 글쓰기가 현대의 보편적 소통 방식이 된 겁니다. 많은 사람이 매일 같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글을 쓰지 않습니까?
이 욕구를 잘 파악한 이들이 글쓰기 교실을 비즈니스화하고, 글쓰기 책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게 오늘날의 글쓰기 열풍의 시작점이라 생각입니다. 글쓰기가 일종의 사교육화한 겁니다. 이제 웬만한 자기계발 프로그램 운영 기관 치고 글쓰기 관련 프로그램을 개설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글쓰기 강좌가 사교육이라면 글쓰기 책은 자습서로 볼 수도 있겠네요. 글쓰기 대중화의 저변에 인터넷이라는 기술 발달이 자리한다면, 이는 비단 우리만의 현상은 아닐 것 같은데요?
장은수 : 당연합니다. 세계적으로 글쓰기 책이나 편집 및 조판 관련 책은 물론, 실용적인 책 만들기 관련 실용서가 예전보다 많이 나옵니다.
편집적 글쓰기에도 '나'는 살아 있어야 한다
이홍 : 구조적으로 누구나 글쓰기를 할 수 있고, 누구나 내 책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인터넷 못지않게 대중의 글쓰기를 가능케 한 중요한 기술이 하나 있습니다. 워드프로세서입니다.
현재 대중의 글쓰기 중심은 어디까지나 방대한 자료를 나름대로 정리해 체화한 형태입니다. 채사장을 일약 출판계 스타로 만든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한빛비즈 펴냄) 시리즈가 대표적이죠.
문학 장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글쓰기에 중요한 과제는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고, 내 것으로 인용하느냐 입니다.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는 시대에 대중이 이런 글쓰기를 시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완전히 체화하지 못한 지식, 불확실하게 아는 지식을 일일이 손으로 정리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워드프로세스는 복사-붙이기로 이를 매우 편하게 해줍니다. 여기에 적극적 편집을 가하면 내 살을 붙여 이 세상 모든 지식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게 가능합니다.
글쓰기 강좌가 늘어났고, 대중이 저자가 되는 현상이 강화되었다고 해서 문학적 형태의 책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은 상징적입니다. 대중적 인문서적, 자기계발서 분야에서 대중의 글쓰기 현상이 특히 두드러집니다. 이 현상은 단연 워드프로세서가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은수 : 이를 '편집적 글쓰기'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태 우리가 생각한 글쓰기는 은유 선생이 수유너머R과 학습공동체 가장자리 등에서 강의하는 글쓰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만의 독창적 눈으로 나의 생활을 담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한 일종의 서술형 글쓰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반면, 최근 무명 대중의 글쓰기 주류는 편집적 글쓰기입니다. 기존 지식 클라우드를 바탕으로 정보를 가져와서 편집을 가미한 글쓰기가 많죠.
물론 편집적 글쓰기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편집적 글쓰기의 시작은 클라우드와 저자 인생의 접점을 찾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저자가 커리어를 쌓아야만 합니다. 최근 무명 저자의 상당수가 직장이나 자영업 등에서 일을 해본 다닌 사람이나 취미 등에서 전문적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란 점이 특징이죠.
이홍 : 편집적 글쓰기의 역할이 있습니다. 대중의 눈과 대중의 언어로 된 책이 더 많이 출판될 수 있게끔 하죠.
하지만, 최근 이 유행에 편승해 저자가 되려는 이들 중에는 오리지널리티를 갖지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 책 내용의 70%를 편집했다손 쳐도 나머지 30%는 자기만의 내용이 확고해야만 합니다. 이 30%가 없다면 70%를 아무리 잘 채운들 반복재생산에 불과합니다. 출판사에 투고되지만 반려되는 대부분의 원고 중 편집에만 치중했지, 진정한 글쓰기를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기만의 정체성 30%가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장은수 : 누구보다 이홍 이사께서 이 현상을 깊이 체감하실 듯한데요? 한빛비즈에 특히 투고자가 몰린다고 들었습니다.
-무명 저자의 원고가 어느 정도로 많이 들어오나요?
이홍 : 특별한 경우이지만 20건이 넘게 투고되는 날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특히 원고가 월요일에 몰린다는 점입니다. 일요일 새벽부터 월요일 오전까지가 투고가 가장 몰리는 때입니다. 아무래도 현업을 가진 분들이 주말에 원고를 보내는 경우가 잦아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직업 분포도 다양한데, 최근에는 주부와 현직 교사의 투고가 많습니다. 분야로 보면 역시 자녀교육과 자기계발서가 많고요. 출판사가 기대하는 것은 전문 분야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친절하고 개성 있게 정리한 원고들인데요,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완성도가 높지는 않습니다.
-반면 자기만의 30%를 잘 채운 무명 저자의 원고는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얻기 좋을 듯합니다. 그야말로 대중의 언어로 생생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장은수 : 그렇죠. 독자에게 친숙한 책이 가능하죠. 무명 저자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를 보면 편집적 글쓰기가 탁월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대중 저자 시대
-혹 우리 사회의 전반적 학력 수준 향상이 글쓰기 열풍, 나아가 저자되기 붐에 영향을 미친다고 봐도 될까요?
장은수 : 당연히 그렇습니다.
이제 학교에서 생산되는 지식보다 학교 밖에서 생산되는 지식이 더 많습니다. 과거와 달리 회사와 전문 연구소, 자영업군, 기업 등도 신지식 생산의 주체입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고등교육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고등교육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첫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스스로 공부가 가능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식을 스스로 생산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이들이 꾸준히 자기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면, 자신만의 언어로 자기 경험을 객관화해서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저자가 될 잠재력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이런 잠재력이 인터넷 발달과 맞물려 폭발한 겁니다.
특히 최근 저자가 되려는 이들 중 상당수가 40~50대 베이비붐 세대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들은 고등교육이 일반화한 첫 세대입니다. 책으로 지식의 기초를 다진 이들이 은퇴에 앞서, 혹은 경력의 절정기에 내 이름으로 나의 지식을 공유하려는 욕구를 갖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이홍 :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투고자 중 50대가 가장 많습니다.
자기계발서 트렌드의 흐름을 살펴봄으로써 최근 글쓰기 열풍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자기계발서의 주류는 조직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IMF 사태 이후 평생직장이 사라지자 자기계발 시장에 퍼스널 브랜드 시대가 열렸습니다. 자신을 브랜드화해야 내 몸값을 높일 수 있다는 거였죠.
2008년 리먼 브러더스 발 금융위기 이후로는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자기계발서 시장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살아남는 걸 떠나, 자존감을 가진 절대 유일의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거죠.
자존감을 지키려면 내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래를 잘 부르거나, 춤을 잘 추거나, 연설을 잘 하거나, 요리를 잘 해야 합니다. 글을 잘 쓰는 것도 나를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이처럼 큰 시대 흐름으로 보자면, 지금 부는 글쓰기 열풍은 결국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교육 수준 향상, 소득 향상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정말 가난하고 힘든 이는 글 쓸 여유도 없습니다.
이 점에서 미뤄보자면, 글쓰기 시장은 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열렸다고 보는 게 옳을 듯합니다.
장은수 : 동감합니다. 지금이 콘텐츠 빅뱅 시대임은 확실합니다. 누구나 자기표현이 가능해진 덕분에 시민의 민주적 주체성이 더 커지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라고 봅니다.
누구에게나 글을 써 보라고 권합니다. 글을 써보면 누구나 자기만의 지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의 특징은 인간이 남이 만든 서비스를 쓰기만 하는 존재로 전락하기 쉽다는 겁니다. 예전 우리 주변에는 고장 난 라디오를 잘 고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자기 차를 자기가 수리하는 이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우리를 수동적 소비자로 만들어버립니다.
책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나의 삶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공부하는 능력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합니다. 단순히 책을 읽기만 하는 걸 좋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른 이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의 지식을 만들고, 주변인과 이를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책을 씀으로써 우리는 단순한 지식 소비자에서 능동적 생산자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홍 : 이웃 일본의 출판에 관심 있는 이라면 아실 겁니다. 일본의 서점에 가 보면 '이런 이야기도 출판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이 많습니다. 오래 전에 나온 책입니다만 긴자의 한 유명 요정 마담이 지난 20~30년간 만난 손님에 관한 이야기를 묶은 책도 있었지요. 경험 많은 마담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다양한 글쓰기의 힘은 이런 책에서 나옵니다. 아주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책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이 쓴 책도 많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일본의 경우 대중이 저자가 되는 통로가 매우 넓습니다. 이는 오롯이 출판사의 에디팅 아이디어에 출판이 의지하지 않았기에 가능합니다. 각 분야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자기 생각을 책으로 쓰는 문화가 매우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의 저변에는 탄탄한 책 읽기 습관이 자리하고 있죠. 책을 안 읽는 이가 좋은 책을 쓸 수 없습니다.
-올해 국내 출판계에서 화제가 된 <힐빌리의 노래>(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흐름출판 펴냄)가 나온 미국이나 훌리건 서적이 쏟아지는 영국 역시 일본과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기본적으로 대중이 내 삶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가 출판 선진국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한데요?
장은수 : 물론입니다. 이들 사례를 볼 때,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출판 콘텐츠 개발 전문 에디터입니다. 필자를 스카우트하는 에디터, 에이전트형 에디터가 필요하다는 거죠. 조금 완성도가 부족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담은 무명 저자의 콘텐츠를 책으로 개발하는 게 에디터의 중요한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홍 : 제가 개인적으로 지난 6개월에 걸쳐 투고자 200명 정도의 프로필 모았습니다. 이게 뭔 소용이 있겠느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 그 프로필에서 유의미한 가능성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 직원들에게도 단순히 투고자의 원고 수준만 보지 말고, 이분들 프로필을 유심히 보라고 주문합니다. 그들 중 괜찮은 잠재 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진 이야기는 충분히 괜찮은데 글을 잘 못 쓰거나, 자기 아이디어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분이 많습니다. 장 대표 말씀처럼 이런 잠재 필자와 출판사 사이에서 둘을 연결하고 원고를 잘 정리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대중 저자 시장이 훨씬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앞서 제가 한 말을 뒤집는 듯해서 죄송하기는 하지만, 출판업자 입장에서 조금 딴지를 걸자면 '당연히 글을 써야 할 사람'이 아직 저자로 데뷔하지 않은 사례가 한국에는 여전히 많습니다. 대중이 만든 책도 중요하지만, 충분히 전문적 책을 낼 소양을 가진 많은 이가 아직 책을 내지 않았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 출판사는 여전히 전문적 필자에 목마릅니다.
출판사가 좋아하는 원고는?
-출판업에 오래 종사하신 두 분께 내일의 저자를 꿈꾸는 이를 위한 질문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출판 에디터로서 어떤 원고가 나쁜 원고인가요?
장은수 : 크게 세 가지 원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일단 내 원고 내용과 맞는 출판사에 투고해야 합니다. 문학 출판사에 자기계발 원고를 보낸들 에디터가 이를 채택할 리 없죠. 의외로 많은 투고자들이 이 점을 무시합니다.
둘째로 내용이 좋더라도 에디터가 도저히 도와줄 수 없는 수준의 원고가 있습니다. 문장이 너무 나쁘거나, 구성이 지나치게 엉망이라면 출판사로서는 해당 원고에 공을 들일 수 없습니다.
셋째로 그런대로 잘 쓴 원고이지만 신선함이라곤 전혀 없는 원고도 채택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앞서 강조한 30%가 없는 원고죠. 이런 원고는 전문 에디터가 보면 곧바로 해당 내용을 어디에서 긁어다 붙인 건지 알 수 있습니다.
이홍 : 장 대표께서 말씀하신 거절 목록에 하나를 더하자면, 기존 베스트셀러를 흉내 내는 원고입니다. 이런 원고가 정말 많습니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베스트셀러의 성공 요인을 대놓고 흉내 내는 원고는 매력이 없습니다.
-글쓰기 붐이 일어나면서 저자되기 열풍이 일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내용이 부족한 저자의 원고가 많고, 이런 원고는 살아남기 힘든 현실도 함께 확인했습니다. 혹 현 글쓰기 열풍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면을 확인할 수 있지 않나도 싶습니다.
이홍 : 글쓰기 열풍의 문제 중 하나는 글쓰기의 본질을 오도하게끔 한다는 겁니다. 특정한 스타일의 이른바 먹히는 글이나 특정 공식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듭니다. 이는 자연스럽고 진지한 글쓰기라 할 수 없습니다.
문장이 부족한 건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출판사에 에디터가 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현장의 경험으로는 '이렇게 목차를 짜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이들이 많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내용은 부족한데 형식은 패턴화한 원고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대중의 글쓰기에 관한 관심이 커지는 건 좋습니다. 모든 국민이 나만의 책을 한 권씩 가지는 건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상업출판의 공식이 있다는 가르침이 난무하고, 이 공식에 내 글을 욱여넣으면 책이 된다는 생각을 좋은 글쓰기인양 호도해서는 안 됩니다.
장은수 : 아마 이런 글쓰기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이는 저자가 된 후 추가로 얻고자 하는 바가 뚜렷한 이들일 것입니다. 명예욕을 가진 이나 강의 등을 위한 프로필 만들기 목적을 가진 이들 말이죠.
글쓰기 목적은 저자 되기 아닌 '나의 발견'
-글쓰기 열풍의 부작용을 우리가 앞서 언급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누구나 저자가 되는 사회는 바람직함을 우리는 전제했습니다. 글쓰기의 긍정성을 설명해주셔야 할 때입니다.
장은수 : 내 삶을 정리하는 데 글 이상의 수단이 없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때를 발견하고, 이를 정리한다는 겁니다. 그 힘으로 글쓴이는 자기 삶의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만의 글을 쓰려면 내 인생, 내 앎, 내 지식을 적절하게 분류하고 잘 배열해야 합니다. 이는 결코 남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잘 배열하는 기술은 남에게 배울 수 있지만, 배열의 진실함은 온전히 내 인생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진정성이 없는 글을 매끄럽게 쓴들, 그 글이 오히려 자신을 배반할 것입니다.
최근 은유 선생의 강의를 들었는데 재미있는 문답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강생 누군가가 "10년 정도 매일 자기 인생에 관해 글 쓰면 좋은 책을 낼 수 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은유 선생은 "아니"라고 답하더군요. 그리고 "대신 인생이 변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책 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글쓰기를 통해 내 삶의 가치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책이란 오롯이 그 부산물로 나타나는 결과일 뿐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꾸준히 글을 쓰는 이라면 결국 자기 이름을 건 책을 내게 될 것입니다.
-글쓰기의 목적을 책 내기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으로 들리네요.
장은수 : 그렇죠.
글쓰기의 효과를 다섯 가지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자기 삶을 보존합니다. 내 삶이 기록으로 남죠. 둘째로 치유의 효과가 있습니다. 과거 내가 나쁜 일을 겪었더라도, 글로써 이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성찰의 계기가 됩니다. 우리 누구나 당시에는 의미를 몰랐으나, 돌이켜 보면 내가 어떠했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내 삶을 반추하는 행위입니다.
넷째로 글쓰기를 통해 현재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죠. 마지막으로 창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의미는 다른 누군가가 부여해주지 않습니다.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글로 내 삶을 정리하고, 다른 이의 경험과 내 경험을 비교하면 나만의 독특함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홍 : 내 글에는 내 인생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 체화 과정이 빠진 상태에서 글을 쓴다면 나를 과대포장하기 마련이고 그에 따른 무리수를 두기 마련입니다. 이는 글에 오롯이 반영됩니다. 이런 글은 읽는 이를 감동케 하지 못합니다.
글쓰기는 테크닉이 아닙니다. 처음 글을 쓰는 이가 테크닉에만 몰두해 저자 타이틀을 따내려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글쓰기는 마라톤
-두 분께서 좋은 글쓰기 단기 강좌를 이 자리에서 열어 보시죠. 나만의 책을 만들고자 하는 이에게 바람직한 조언을 해 주신다면요?
장은수 : 몇 가지 중요한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책 쓰기는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과 비슷합니다. 매일, 꾸준히, 같은 장소에서, 정해진 분량만큼 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둘째, 자신이 잘 아는 것을 써야 합니다. 책은 아이디어나 줄거리가 아니라 디테일에서 가치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세부까지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잘 쓸 수 없습니다. 셋째, 좋은 책에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과 독자가 해결하고 싶은 고통이 겹치는 아주 좁은 지점(진실)이 존재합니다. 좋은 책은 독자를 간절하게 만듭니다. 이러려면 저자가 혼자 말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말하게 하고, 저자는 답해야 합니다.
넷째, 책은 독자와 동행해야 합니다. 따분하지 않게, 그러나 충분히 천천히, 이게 서술의 비결입니다. 좋은 저자는 속도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섯째, 무엇이든 써먹어야 하고 무엇이든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책을 쓰다 보면, 자신한테 가장 애착이 가는 것과 서술이 충돌하는 지점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것을 버릴 줄 알아야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책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책 쓰기 강좌에서 대중성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고 있는데, 꼭 바로잡고 싶습니다. 대중적으로 쓴다는 것은 "평범한 것들을 비범한 쪽으로 가져가는 것"(이성복)입니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라고 느끼는 것을 아주 특별하게 보이도록 하는 거죠.
이홍 : 처음부터 완성작을 한 번에 쓰려고 하지 마세요. 한 꼭지든, 두 꼭지든 조금씩 꾸준히 쓰세요. 그리고 다른 이에게 읽히고 피드백을 받으세요. 쉽게 내 글을 공유 가능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을 활용하세요. 출판을 목표로 하는 이라면, 반드시 내 원고를 여러 사람에게 피드백 받아야 합니다.
출판업자 입장에서 추가 조언을 하자면, 투고 시 원고 전문을 보내려 하기보다 내 의도를 정리하고 출판 기획을 명확히 밝히되, 원고의 꼭지 일부만 보내는 게 더 좋습니다. 그렇다면 출판사가 에디팅 방향을 가이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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