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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패배…'정치 주도'와 '분배 중심'으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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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신자유주의의 패배…'정치 주도'와 '분배 중심'으로 전환"

[전문가 분석]<1> '고이즈미'로 연명한 日자민당, 고이즈미 때문에 몰락

일본 민주당의 총선 승리는 일본의 전후 정치사를 새로 쓰는 혁명적인 사건이다. 자민당이 중의원 전체 의석의 75%를 차지하는 이른바 '1과1/2 정당 체제' 혹은 '1955년 체제'는 종말을 고하게 됐다.

사실 '55년 체제'는 1990년대 이미 그 운이 다했었다. 자민당의 의석수는 1986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줄어들었고 90년대 들어서는 다른 당과 연립하지 않으면 집권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1993년에는 비(非)자민 연립정권이 10개월 간 들어선 적도 있었다.

그런 자민당을 어렵사리 지탱해 준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개인적인 인기와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노선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정책은 소득간·도농간 부의 양극화를 확대했고, 일본인들로 하여금 고용불안에 떨게 했다.

고이즈미는 2005년 우정민영화라는 단일 이슈로 총선을 치르는 승부수를 띄워 자민당의 의석을 300석까지 늘려 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자민당의 몰락 과정에서 한 때 나타났던 예외적인 현상이었다는 게 이번 선거를 통해 입증됐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를 '민주당의 승리'가 아닌 '자민당의 패배'라고 규정하면서 고이즈미식 신자유주의가 오히려 일본 유권자들의 민심을 자민당에서 떠나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당분간은 민주당의 안정적인 정국 운영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의 30-40대 사이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정치의 모색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었다.

이번 선거의 의미와 전망, 대외정책의 변화 가능성, 한국 정치에 던져주는 의미 등을 일본 전문가 4인에게 들어봤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계 한국인), 이원덕 국민대 교수,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가 참여했다. 진창수 연구위원은 도쿄 현지에서 총선 개표 과정을 지켜봤고, 권혁태 교수는 지난주 일본에 다녀왔다.

▲ 자민당의 총선 참패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이래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의 몰락을 의미한다. 아소 다로 총리가 패배에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민주당 압승이라는 총선 결과는 자민당에 대한 전 국민적 불신이 민주당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나타난 것이다. 민주당이 자민당에 비해 정치를 잘했다기보다는, 자민당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높았던 것이다.

자민당에 대한 일본인들의 실망은 크게 세 가지 때문이었다. 먼저 자민당은 탈냉전 후 국제공조에서 실패했고, 장기 집권 과정에서 나타난 관료주의 역시 환멸을 사는 원인이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년 금융 위기 이후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이 컸다.

2001년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최근 가속화된 경기 침체와 맞물려 자민당의 지지 기반을 송두리째 붕괴시키는 원인이 됐다. 그의 후임 총리였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아소 다로(麻生太郞)도 경제 정책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역사적인 압승을 거둔 상황에서, 향후 일본 정치는 다소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현상 유지만 된 상태에서 내년 참의원 선거를 치르게 된다면 앞으로 4년 간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할 가능성이 높다.

단, 몇 가지 방해 요소는 있을 것이다. 먼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 대표(차기 총리 확실시)의 정치 자금 문제가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 문제가 부각된다면 민주당은 예상치 못한 위기에 고전할 수 있다.

또,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대행이 내년 참의원 선거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일본 정계는 또 한 번 들썩일 것이다. 오자와가 신당을 만들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정계 개편 행보가 민주당을 갈림길에 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자민당이 오자와와 연합해 영향력 있는 신당을 만든다면, 민주당은 또 한 번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가 잘 정리된다면, 아마 민주당은 최소 3년 이상은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민주당 집권 이후 일본의 경제 정책은 자민당의 신자유주의적 성장 정책과 일정한 선을 긋고, 분배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될 것이다. 특징적인 것은 관료들의 타협을 통한 정책 결정이 아니라, 정치인 주도의 정책 결정, 즉 민주당 주도의 정책으로 국면 전환이 시도될 것이다.

외교 면에서도 변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한일관계의 경우, 민주당은 과거사 문제에 있어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큰 갈등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것은, 일본의 정책 기조가 변한다 할지라도 한국이 원하는 방향대로 과거사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재일 동포의 참정권 문제나 과거사의 완벽한 청산은 민주당 내부의 반발이 정리되지 않는 한 쉽사리 성취되기 어렵다.

그러나 하토야마 차기 정권은 표면적으로는 한국 정부에 일정 정도 '립 서비스'를 할 것이다.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 있어 여전히 민주당이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음은 분명하지만.

대북정책은 자민당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 여론을 고려해서도 내년 참의원 선거 이전까지는 별다른 변화를 추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집권 이후 미일관계가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이 역시 현실적으로는 크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민주당은 내년 1월 이후 인도양에서 다국적군 함대에 대한 해상자위대의 급유 지원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는데, 설사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고 해도 다른 통로를 통해 미국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대미 외교 노선을 흔히 노무현 정부의 외교 노선과 유사하다고 말하는데, 민주당은 표면적으로 자주 외교를 내세운다 할지라도 내용 면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외교 관계를 구축할 것이다.

■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민주당의 승리는 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 사실상 처음 있는 정권교체라는 점에서 상당히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장기 집권 기간 동안 자민당이 민심에서 확실히 멀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먼저 민주당은 성공적인 선거 전략을 통해 이번 선거에서 압승할 수 있었다. 정권교체를 전면에 내세운 민주당의 캐치프레이즈에 자민당은 뚜렷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또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사임 이후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등 1년마다 총리가 바뀌는 상황도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자민당은 책임감 없는 정당이라는 오명을 굳히게 됐다.

아소 총리가 보여준 최근의 행보 역시 국민들이 자민당을 불신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중요한 연설문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고 수많은 실언을 하는 등 일본인들에게 '자민당 총리는 능력이 없다'라는 생각을 굳히게 만들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2001년 집권을 시작할 당시 자민당의 지지율은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고이즈미 정부 이후 일본 경제가 겪어야 했던 후유증은 상당히 컸다.

승자와 패자를 나눠버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인해 중앙과 지방의 경제적 격차가 상당히 벌어졌고, 사회보장 축소와 구조조정 역시 일본인들의 실망감을 증폭시켰다. 고이즈미 총리 개인은 국민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지만, 그가 남겨놓은 부정적인 유산을 이후 자민당 지도부가 극복하지 못했다.

자민당은 54년이라는 장기 집권 기간 동안 정치인과 관료, 재계가 유착하며 정국을 운영하는 시스템을 굳혔다. 그러한 유착 관계 또한 국민들의 불신을 얻는 원인이 됐다.

민주당의 압승이라는 투표 결과로 미루어 볼 때, 향후 일본 국내 정치는 민주당 주도의 안정적인 행보를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사민당, 국민신당, 일본신당의 4당 연립은 미리부터 약속된 것이었고, 이 약속은 아마 큰 무리 없이 실행될 것이다.

자민당의 완벽한 참패이기 때문에, 선거 직후 자민당이 분열될 가능성도 크다. 자민당 내부의 비판적인 인사가 탈당해 신당을 만들거나, 민주당으로 흡수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큰 위기없이 정국을 수습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제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강도높게 진행해 나갈 것이다.

민주당이 내세운 공약들 중에는 근거가 빈약한 것이 많다. 정권교체라는 획기적인 슬로건 아래 선거는 수월하게 이길 수 있었지만 대다수의 일본인 민주당의 공약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자민당은 이점을 이용할 것이다.

실현가능성으로만 따져본다면 오히려 자민당의 공약이 현실성이 더 높은 편이다. 두 당의 외교 노선만 봐도, 자민당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자주적 외교를 얘기한다. 노무현 정부와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는데, 현실화되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미국과 거리를 두는 정책에 대해 회의를 느낄 가능성이 크다. 총선에서 민주당의 승리가 예견되면서, 미국은 서서히 일본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일본 국민이 느낄 불안감도 존재한다.

경제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중학생 이하의 자녀가 있는 가정에 한 달에 2만 6000엔 씩 현금을 지급하고, 고등학교까지 무상 교육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 뚜렷한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

자민당은 분명 이 점에 대해 공격을 시작할 것이고, 재정 적자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사실 민주당의 공약 자체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상당히 포퓰리즘적인 내용으로 짜여진 측면도 있었다.

민주당 집권 이후 일본의 외교 노선은 일정 정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아시아 중심 외교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일 것으로 보인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안하겠다는 발표나, 일본 우익 역사 교과서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 등이 그것을 방증한다. 또 민주당은 독도 문제 역시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북 문제에 있어 민주당은 자민당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진 못할 것이다. 당내의 의견 충돌 문제도 있기 때문에 대북정책에 일정 정도 혼선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읿본인 납치 문제나 북핵 문제의 경우, 일본 내 여론을 고려해 큰 변화를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자민당만큼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정책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납치 문제나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은 크게 변하지 않겠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경제 봉쇄 정도는 약간 풀릴 수 있다.

이번 일본 총선은 역사적인 정권교체라는 측면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정국을 주도했던 정당이라 할지라도,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인다면 하루아침에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요구는 항상 진보하기 때문이다.

* 이원덕 국민대 교수와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의 논평은 '전문가 분석 <2>'에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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