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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겸 체포영장으로 본 '노동판'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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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장겸 체포영장으로 본 '노동판'의 불편한 진실

[기자의 눈] 대한민국 수많은 '김장겸'들에 대한 엄정 법집행 계기 되길

10년 전, 대구에 있는 작은 공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노동자 한 명이 온몸에 아세톤을 뿌리고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도 회사 사무실 내에서. 10살 딸과 6살 아들을 둔 젊은 노동자였다. 왜 이토록 잔인한 죽음을 택했는지 궁금했다.

고인이 된 A씨는 26살에 생산직 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 A씨 인생이 순탄치 않게 된 건 회사 내에 노조가 만들어지고 부터였다. 당시 중간간부직인 직장을 맡고 있던 A씨도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노조원으로 가입했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노조가 설립되자 사측에서는 노조 와해 공작을 시작했다. 당시 회사는 현장 간부직책인 7명의 직장을 포섭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을 탈퇴시킬 것을 강요했다. 그 7명의 직장에는 A씨도 포함돼 있었다.

회사 명을 받은 A씨는 주로 회사 밖에서 조합원들을 만나 밥, 술 등을 사주며 자신들의 회사 자본이 미국임을 언급하며 '노조가 활동하면 미국 자본은 철수할 수밖에 없다. 회사가 지금 많이 힘드니 노조활동을 해선 안 된다'고 설득했다.

ⓒ정기훈

회사에 이용당하다 결국...

회사는 A씨가 노조원과 만나 사용하는 자금을 통장으로 지급했다. 또한 월별 노조 탈퇴 인원을 할당하는 등 직장들의 노조와해 공작을 물심양면 지원함과 동시에 압박했다. 직장들 중 A씨는 특히 사측 말을 충실히 실행했다고 알려졌다. 그의 노력인지 아니면 사측의 노력인지 모르겠으나 결국 112명이었던 조합원이 69명까지 줄어들게 되었다. 회사의 노조활동 방해가 제대로 먹혀들어 간 셈이다.

하지만 A씨는 노조의 미움을 제대로 사게 된다. 철저히 노조파괴에 앞장선 그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결국 그를 비극으로 몰고 가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어느 날, 한창 노조설립 방해에 열을 올리던 회사가 갑자기 노조와 화해했다. 점점 커가는 노조 힘을 회사에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노조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당황스러운 것은 A씨를 비롯한 노조탄압에 나섰던 직장들이었다. 특히 가장 앞장섰던 A씨가 제일 힘들어했다. 노조에서는 A씨를 지목해 노조결성을 방해한 것에 대한 징계를 내려줄 것을 회사에 강력히 요구했다. 회사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는 A씨였다. 사측은 노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기에 자신들이 종용한 노조탄압에 앞장선 그의 존재가 껄끄러웠다. 졸지에 주변인이 되어버린 그는 가족들에게 가슴을 치며 답답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다 일이 터지고 말았다. 회사 회식자리에서 노조위원장과 회사 임원 간 화목한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게다가 믿고 따랐던 총무이사마저도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 택시에 몸을 싣고 회사로 향했다. 그는 택시 안에서 직장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회사로 가고 있으니 사장이랑 총무이사, 이 새끼들 다 모이라고 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라고 말했다.

회사에 당도한 그는 총무이사 사무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동료들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몸에 아세톤을 뿌리고 분신했다. 3도, 전신 60%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된 그는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이 사건을 조사한 대구노동청에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혐의, 즉 부당노동행위로 업체 대표를 구속했고, 총무이사와 나머지 직장들은 불구속 입건했다.

그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업체 사장이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을.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당노동행위로 구속영장은 단 한 건에 불과

이야기를 돌려보자. 노조활동을 한 PD, 기자들을 스케이트장 관리직으로 발령냈다는 혐의(부당노동행위)로 김장겸 MBC사장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물론, 김 사장이 자진출두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에서는 "문재인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의도"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현재 국회 의사일정까지 보이콧하면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근거로 삼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사측 대표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그게 사실이다. 여기에서 한국 노동 현실의 참담함을 엿본다. 부당노동행위는 중죄이고, 엄벌에 처해져야 할 일이지만,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

장석춘 새누리당 의원이 7일 공개한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고용노동부가 신청해 발부된 노동관계법 위반 혐의 관련 체포영장은 총 3684건이었다.

발부된 체포영장을 사유 별로 살펴보면, 근로기준법 위반이 3,502건(95%)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했고, 최저임금법 위반이 9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이 163건,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 1건, 임금채권보장법 위반이 5건이었다.

반면. 부당노동행위, 즉 노조법 위반은 4건에 불과했다. 산업안전법, 파견법, 기간제법 위반은 전무했다.

구속영장 관련해서는 총 119건을 신청했고 이 중 55건(46.2%)이 기각됐다. 64건(53.8%)만 발부되었는데, 이 역시 근로기준법 위반이 55건이었고, 노조법(부당노동행위) 위반은 1건에 불과했다.
그간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으로 지목되는 자유한국당이 할 말은 아니지만, 김장겸 MBC 사장의 체포영장 발부가 이례적인 일이긴 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그간 고용노동부, 그리고 검찰이 유독 노조법과 관련된 위법 행위에 관대하게 대응해 온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애초 법과 원칙대로 해 왔다면 김장겸 사장을 둘러싼 논란 따위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자유한국당 같은 집단이 '체포 영장은 과하다'라는 비정상적 주장을 할 빌미도 주지 않았을 터다.

사업장 내에서 부당노동행위는 비일비재하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는 일상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조 만들었다고, 그리고 노조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것은 하루가 멀게 발생한다.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은 복직을 요구하며 107일 동안 고공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 구조를 그대로 내버려 둔 게 고용노동부와 검찰이었다. 그나마 사람이 죽으면 겨우 움직이는 식이다.

대표적인 노조탄압 사업장으로 분류되는 유성기업의 경우, 사업주가 부당노동행위로 지난 2월 법정 구속됐다. 결과만 이야기하면 간단하지만 구속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검찰은 유성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입증하는 자료를 확보하고도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잇따라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급기야 노조에서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고, 법원에서 이를 일부 인용함으로써 겨우 유성기업 대표가 기소됐다.

이후 3년여간 재판 끝에 유성기업 대표는 1년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나마도 검찰은 1년 형을 구형했지만 법원이 이를 더 올렸다. 고용노동부에서 밝힌 2015~2017년 동안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단 한 건의 사례가 바로 유성기업 대표 건이다.

'공영방송 장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건가

이야기를 다시 MBC로 돌려보자. 결국, 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고용노동부, 그리고 검찰 때문에 김장겸 사장이 정권의 탄압을 받는 인물로 그려지는 형국이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유독 노동자에게만 가혹하게, 그리고 사업주에게는 가볍게 적용돼 왔다. 지금의 '김장겸 논란'이 생기는 이유다.

그렇기에 앞으로가 중요하다. 김장겸 사장에 발부된 체포영장을 바로미터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필요하다. 그러지 않는다면 결국, 김장겸 사장에게 발부된 체포영장은 자유한국당 말마따나 문재인 정권에서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수를 쓴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장겸 체포영장 발부는 옳다. 그리고 앞으로도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대한민국 사업장의 수많은 '김장겸'들에 대해서도 엄정한 법집행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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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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