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자칫 동북아의 전면전으로 번질 이런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스스로 언급했듯 일차적으로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에 대한 대응 조치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보다는 향후 미국과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 입에서 '핵·미사일 활동 동결'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이라는 주제로 회담을 시작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길 바랄 수 있다. 북한은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계속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지금 미국을 옥죄어 들어가면 어차피 군사적 행동이 어려운 미국은 협상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고, 그 때를 대비해 지금 될 수 있는 대로 몸값을 높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대화 쪽으로 확실하게 방향을 틀었다면, 대화의 시작 시간을 당기고 상황 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 기존보다 더 센 군사적 행위로 미국을 위협하겠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북미 양측이 물밑 접촉을 이어가고 있을 것으로 관측하면서, 이에 맞춰 한국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며 전략을 준비해야 하지만, 전쟁보다는 전투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청와대에서 남북관계나 대외 문제 등에 대해 합참의장이나 야전군사령관 급이 구상할 수 있는 '전략'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고, 대위나 중위 정도 계급의 전투 개념이 탑재돼 있는 작전 참모만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북에서 뭔가를 쐈으니 그에 대응할 화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은 너무 직선적인 반응"이라고 꼬집었다.
정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아닌 미국의 입장에서 북핵 문제의 '레드라인'을 이야기했고, 제재를 강조하면서 북한에 '극한'의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건 지금 대통령 참모들이 문 대통령을 다시는 북한과 만날 수 없도록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는 "미국과 북한은 서로에게 험한 말을 쏟아 내면서도 비공개로 물밑접촉을 하고 있다"며 "우리도 접촉 시도를 해야한다. 그래야 나중에 미국과 북한 대화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남북대화도 함께 진행될 수 있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30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4일 괌 포위사격 보고를 받았지만, 미국의 태도를 지켜보겠다면서 발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답이라도 하듯이 22일(현지 시각) "김 위원장이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아마 긍정적인 무언가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하며 한반도 긴장이 다소 누그러드는 모양새를 보였는데요.
하지만 북한이 지난 29일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일본 상공을 통과해 발사하면서 긴장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발사가 괌을 견제하기 위한 '전주곡'이었다면서 태평양을 향해 추가적으로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북한이 이런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22일 발언을 보면 미국과 북한 사이에 물밑 접촉이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괌 포위 사격 계획을 보고 받으면서 미국의 행동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걸 보고 북한이 자기들의 말을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미국은 북한과 물밑접촉을 통해, 만약 북한이 정말 괌 인근에 미사일을 발사하면 더 이상 외교적인 방법은 어렵고 군사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게 행동을 잘 하라고 말했을 겁니다.
그런 이야기가 북한에 전달됐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일단 미국의 태도를 지켜보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양측이 유엔의 뉴욕 채널을 비롯해 양자 접촉 과정에서 이미 상당한 정도의 물밑대화가 오갔고,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양 지도자의 발언이 나왔다고 봐야죠.
그런데 지난 26일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29일에는 IRBM까지 쐈습니다. 우선 26일 발사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분석한 것처럼 (☞ 관련 기사 : 핵심 벗어난 방사포·미사일 논쟁, 北은 사드를 겨냥했다) 사드가 배치돼있는 경북 성주를 때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26일이라는 시점에 주목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 때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비록 예년보다 훈련 규모는 축소됐다고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이 훈련이 자기들이 죽고 사는 문제랑 연결돼있기 때문에 훈련 내용을 상당히 면밀하게 체크했을 겁니다.
훈련이 민간인에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으나 북한이 위협을 느껴 반발할 정도의 훈련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사일 발사로 이어졌을 수 있죠.
29일 IRBM 발사 역시 UFG에 대한 대응의 차원도 있을 겁니다. 괌에서 미국의 전략 자산이 움직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발사는 사실 방향만 남쪽으로 틀었다면 괌 인근으로 가는 미사일입니다. 즉, 북한이 괌을 포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아직 나이가 어리고 혈기왕성해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고들 말을 많이 하지만 실상은 가진 것이 별로 없는 곳의 지도자입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아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UFG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번 발사에는 미국과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습니다. 미국 입에서 '핵·미사일 활동 동결'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이라는 주제로 회담을 시작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길 바랄 수 있죠. 북한은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계속 미사일을 발사할 겁니다.
북한은 지금 미국을 옥죄어 들어가면 어차피 군사적 행동이 어려운 미국은 협상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고, 그 때를 대비해 지금 될 수 있는 대로 몸값을 높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 대기권에 재진입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말이 미국 입에서 나올 때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본 것이죠.
미국은 북한에 대해 압박과 제재를 강화하면 이를 견디지 못한 북한이 회담 테이블에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북한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미국을 상대로 계속 미사일 사거리를 연장시키고 괌을 포격할 것처럼 위협적인 무력시위를 이어가면 오히려 미국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북한이 제시하는 조건으로부터 회담을 출발할 거라고 계산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유엔 주재 북한 대사관의 관계자들이 워싱턴에 방문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정도로 북미 간에 접촉이 진행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 발언도 나오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역시 대화를 강조하다보니 북한은 "드디어 미국이 대화로 방향을 틀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자기들 페이스대로 들어왔다면서 몸값을 더 높이려 할 겁니다.
북한은 미국에 빨리 협상 테이블로 나오든지, 아니면 나중에 보상을 더 크게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한미 연합 훈련 축소는 가능하고, 자신들이 더 세게 밀어붙이면 중단까지도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이번에 UFG 훈련의 규모가 실제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이건 지난 6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미국에서 이야기했던 사항과 유사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지금 정세가 나쁜 상황만은 아닌데, 그럼에도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정세현 : 훈련 규모가 축소됐음에도 북한이 더 세게 나오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확실하게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북한이 판단하기에 미국이 대화 쪽으로 확실하게 방향을 틀었다면, 대화의 시작 시간을 당기고 상황 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 기존보다 더 센 군사적 행위로 미국을 위협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만약 그렇게 해서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진다면, 이는 "김정은이 이룩한 것"이라는 식으로 기록에 남기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을 겁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위협 시위이자 일종의 협상전략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굳이 남한에 대해 군사적 위협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백령도와 연평도를 점령하는 훈련을 한다면서 남한을 적대시하는 것이 북한 입장에서 유리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정세현 : 이 부분 역시 UFG에 대응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서해 5도는 물론 우리 영토지만, 한미 연합 훈련이 되면 해상 작전이 전개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UFG를 경계하는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F-15K 띄우는 것이 북한 미사일 대응?
프레시안 : 결국 최근 북한의 행태를 보면 목적은 미국과 협상에 있는 것 같은데요. 우리는 마치 북한 위협의 대상이 우리가 된 것처럼 다소 과도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어제는 공군 F-15K가 출격해 폭탄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정세현 : 지금 청와대에서 남북관계나 대외 문제 등에 대해 군단장이나 사령관 급이 구상할 수 있는 '전략'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고, 대위나 중위 정도 계급의 전투 개념이 탑재돼 있는 작전 참모만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북에서 뭔가를 쐈으니 그에 대응할 화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은 너무 직선적인 반응입니다.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보보좌관은 국제정치나 외교의 개념에서 국가 안보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안보는 '방어'라는 개념밖에 없어 보입니다. 근데 이렇게만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상황이 바뀌었을 때 대통령이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아닌 미국의 입장에서 북핵 문제의 '레드라인'을 이야기했고, 제재를 강조하면서 북한에 '극한'의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건 지금 대통령 참모들이 문 대통령을 다시는 북한과 만날 수 없도록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물론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제재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또 북한의 행태에 대해 미국이나 일본이 취할 조치라거나 반응은 비슷할 수 있고 우리도 동맹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동조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반응이 이들 국가와 완전히 같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떻든 북한과 만나야 한다는 고유한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우리는 언젠가 남북 간에 대화도 하고 서로 왕래도 해야 합니다.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좋지만, 북한과 언제든 '맞붙겠다'는 식으로만 나서는 것도 곤란합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 하자고 제안할 수 있겠습니까?
프레시안 :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역할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하게 되면 한국이 어떤 위치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북미대화와 남북대화가 반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 대화가 시작되면 남북대화의 틈새가 열릴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북미 대화를 격려한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북한이 우리와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북한은 올해 미국과 관계를 결판내겠다는 입장 아래, 남북관계는 좀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7월 4일까지는 교류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은 남측에 중앙당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며 일체의 남북 민간교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앉아서 북한에 "판문점 연락 채널 열고 전화 받아라"라고 외치는 것만 해서는 안됩니다. 뭔가 대화를 위한 시도를 해야 합니다. 북한과 미국이 물밑 접촉을 하며 서로의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데, 우리도 대화 시도를 계속 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미국과 북한 대화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남북대화도 함께 진행될 수 있는 겁니다.
게다가 미국과 북한은 서로에게 험한 말을 쏟아 내면서도 비공개로 물밑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도 충분히 상황관리 차원에서라도 물밑접촉을 시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판문점에서 응답이 없다는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제3국에서라도 접촉해보려는 시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도 정확히 따져야 합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우리 민족 끼리'를 강조하더니 정작 우리가 대화하자고 제의한 것은 왜 피하냐고, 그게 너희들의 '우리민족끼리'냐고 지적해야 합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쐈지만 북미 간 접촉은 계속 이어질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여기에 일정 부분 발을 맞추면서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북쪽의 언어를 그래도 가장 잘 알고 있는 통일부에서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3국에서 만난다고 할지라도 통일부와 국정원이 북한의 행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접촉에 나서는 것이 좋습니다.
프레시안 : 북미 간에 협상을 위한 물밑대화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지금 북한이 막판 몸값 높이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도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전략을 세워 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큰 그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만약 북한과 회담이 성사된다면 핵과 미사일 동결 전에 미사일 발사 유예와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축소를 우선 논의하고, 이후에 핵 미사일 활동 동결과 훈련 중단으로 넘어가는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UFG 때 한미 양국이 군 병력을 줄였기 때문에 북한의 발사 유예라도 받아내야 합니다.
동결과 중단으로 진입했다면 이후 북한은 평화협정과 핵 군축을 요구할 것이고, 한미는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할 겁니다. 이렇게 서로 목표가 엇갈려 있으면 그걸 병행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합니다. 또 이러한 협상 과정에서 남북관계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도 잘 구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는 아직 방향성이 뚜렷한 큰 그림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개별 사안에 대응하는데 급급해 보입니다.
외교나 정치는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대책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혹시 여전히 박근혜 정부 때의 매뉴얼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면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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