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같은 원전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찬핵이든 탈핵이든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도, 원전에서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명확히 해야 한다. 우선,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책임져야 하고, 원전 건설을 승인하고, 원전 안전을 감시하는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폐로·배상 등의 비용이 21조5000억 엔, 우리 돈으로 약 221조 원(103원/엔으로 계산)에 이를 것으로 집계했다. 일본 정부가 2013년에 집계한 11조 엔의 2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221조 원 중 원전 사업자인 도쿄전력이 부담하게 될 비용은 8조 엔(약 82조 원)으로 추산됐다. 일본 국민들이 세금이나 전기요금으로 원전 사고로 인한 비용 139조 원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 원전사업자의 원자력손해배상 배상조치액은 2013년 기준 약 1조6360억 원이었다. 221조 원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원전 사업자의 손해배상에 책임한도가 없다. 원전 운영자에게 사고 위험에 대한 책임을 무제한으로 명확하게 부여한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원전 사업자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사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정부, 즉 국민이 그 책임을 떠안게 된 것이다.
반면에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원전 운영 사업자인 한수원은 원전 사고 발생시 약 5200억 원으로 책임한도가 제한돼 있다. 또 원전 사고 피해액이 그 이상을 넘어설 경우의 책임주체는 불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5200억 원에 넘는 손해에 대해 국가가 재정을 투입함으로써 국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무한책임제도였다. 하지만 원자력사업자의 책임을 제한함으로써 원자력사업자를 보호·육성하자는 취지로 2001년 이후 유한책임제도로 전환됐다. 그러나 현행 배상조치인 원자력손해배상책임보험과 원자력손해배상보상계약은 무한책임을 전제로 하는 일본 원자력손해배상제도의 기본 구조를 답습한 것이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독일과 스위스의 경우도 사업자 책임한도를 무한대로 설정해 원자력사업자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배상조치액은 각각 약 3조9175억 원과 1조3332억 원에 이른다. 미국의 경우는 사업자 책임한도와 배상조치액이 일치하진 않지만, 배상조치액은 약 4230억 원, 사업자 책임한도는 약 11조5860억 원에 이른다.
<표 1> 주요국의 원자력손해배상 책임한도 및 배상조치액
원자력사업자의 책임한도를 대폭 높이거나 무한책임으로 전환하기 위한 원자력손해배상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2013년 당시 한수원은 "원자력 사고의 경우 사업자의 책임은 결국 유한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책임한도를 증액할 실익은 크지 않고, 국제보험시장의 인수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는데, 해외 원전 수출시 수입국의 법령모델로서 우리나라 원자력손해배상법이 인용될 가능성이 높아, 원자력사업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이상실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원자력발전은 다른 에너지원과 달리 사고 발생 시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원자력사업자로서 한수원의 책임을 명확히 묻는 무한책임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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