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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시대의 정신과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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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연극은 시대의 정신과 눈이다"

[인터뷰] 창작극 '화사첩'의 작가·연출가 김상수

지금으로부터 100년에서 150여년쯤의 중국, 또는 조선을 배경으로 가상의 나라를 소재로 한 연극 <화사첩>이 8일부터 15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에서 공연된다. <프레시안>에 고정칼럼을 연재하는 작가이자 <화사첩> 극본을 쓰고 연출하는 김상수는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르네상스적 문화예술인이다. 그는 수평적으로 연극, 영화, 드라마, 문학, 설치미술, 사진, 문화기획을 아우르며, 수직적으로 연극이라는 고전적 예술에 천착하면서도 사진과 영화라는 첨단 테크놀로지를 자신의 예술영역 안으로 아우르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이 "김상수는 우리시대의 종합예술가다"라고 평가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장르의 경계를 넘어 문화예술이 펼쳐 보일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을 그만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술가는 드물다.

그는 우리시대의 문화가 마땅히 지향해야할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문화기획자이면서 동시에 한국사회의 몽매와 무지를 일깨우는 사회비평가이기도 하다. 지난 2년간 그는 <프레시안>에 약 100여편의 칼럼을 통해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일반에 대한 논설을 쓰기도 했다.

김상수, 그의 예술작업은 하나같이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고 새로운 진경을 펼쳐 보이면서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경계와 장르를 지우고 부수며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펼쳐 왔다. 문화계의 방외인(房外人)으로서, 고졸의 학력만을 가진 채 어떠한 연줄도 인맥도 없이 독자적인 세계를 그는 구축했다.

김상수는 만 열아홉 살 때인 1978년 연극 <환(環)>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면서 예술계에 데뷔했다. 이어 1982년, 1983년 <191931>을 무대에 올렸고, 1984년 가톨릭 200주년 기념 대공연 <사람(人間), 1985년 <포로교환>, 1988-1989 <TAXI TAXI>, 1992년 <섬>, 1993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개관 기념 공연 <짜장면>, 2001년 <섬> 등의 작가이자 연출가로 번역극이 중심이던 불모의 한국연극계에서 창작연극의 길을 고집스럽게 걸어왔다. 특히, 2001년 일본 오사카, 2003년 도쿄에서 무대에 올린 그의 연극 <섬, ISLE>은 아사히 신문, 요미우리 신문 등이 톱기사로 다루면서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한류의 원조'로서 평가받아 왔다.

김상수는 그의 이름으로 된 <김상수 희곡집>(1992, 청하), <김상수 연극책>(1996, 박영률 출판사)의 저자이면서 영화 시나리오 작가(1996년 대종상 작품상 각본상)로 이름을 높이기도 했다. 설치미술 작업과 함께 1996년 문화체육부 문화의 달 기획 총연출, 1999년 문화부의 의뢰를 받아 국립극장개혁안, 2000년 문화관광부 새로운 예술의 해 문학분과 위원장, 2001년 문화관광부 지역문화의 해 추진 운영위원 등 문화기획자로서도 성가를 높였다. 또한 노무현 정부에서는 '새 예술정책' '총론'작업을 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과 파리, 베를린 등지를 오가며 예술작업을 하고 있는 그가 9년 만에 그의 창작연극 <화사첩>을 선보인다. 막바지 연습중인 그를 4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편집자)


▲ 연기 지도를 하는 김상수 작가(왼쪽) ⓒ프레시안(최형락)

연극 줄거리 - 이 연극의 이야기는 동북아시아의 어느 한 나라. 지금으로부터 100년에서 150여년쯤의 중국, 또는 조선을 배경으로, 서른 살의 국왕 '모본'(牟本)이 다스리고 있으나 왕은 국정을 팽개친 채 배 탱크 포클레인 등의 장남감, 그리고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는 장난에 몰두하고 있는 왕국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이 나라를 움직이고 있는 권력은 3대째 섭정을 이어가고 있는 대왕대비 자운(磁耘)이다. 오랑캐에 둘러싸여 있는 이 나라는 강대국인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고 있으며 현재 잉글랜드와 불평등한 통상협정을 막 맺었다.

어느 날 국왕 모본은 관공서의 표준어를 '잉글리쉬'로 바꾸고, 국사교육을 폐지한다는 칙령을 발표한다. 대왕대비 자운의 권력을 전복시키려는 왕비 화희(華姬)는 대신들과 함께 대비의 권력에 대한 역모를 꾀한다. 이들의 역모를 눈치 챈 대비 자운은 화희의 왕비자리를 폐하고, 후궁 경(瓊)을 간택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화희를 비롯한 역모세력은 자운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후궁 경을 살해하려 한다. 후궁 경의 처치계획은 미수에 그치고 후궁 경은 외딴 무인도로 유폐된다.

궁궐에서 권력을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는 사이, 오랑캐가 침입한다. 자운은 왕을 대신하여 대신회의를 소집하나 예부대신, 대학자, 통상협상 대사 등, 주요 대신들은 동맹국 잉글랜드의 군사지원에 의지하려 하고, 통상협상도 이전에 서둘러 추진했다. 오랑캐와 싸우기 위해 자국의 전시작전지휘권도 잉글랜드에 이양하려 한다. 오직 겸재(謙齋) 장군만이 통상협정과 전작권 이양에 반대하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한국 창작연극의 정신 김상수, 9년만의 연극으로의 귀환

프레시안 : 서울에서 연극을 만 9년 만에 다시 시작했다. 왜 오랫동안 한국에서, 서울에서는 그간 연극을 하지 않았는가?

김상수 : 지난 2001년 국립극장에서 연극 <섬>을 쓰고 연출한 이후, 지난 9년 간 서울에서는 안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2001년 오사카, 2003년에 도쿄에서 일본어로 작품을 번역, 일본배우, 일본스탭들과 같이 공연을 했다. 작년부터는 독일에서도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내 극본이 독일어로 번역이 끝났다. 독일배우들, 독일스탭들과 같이 공연할 것이다. 그럼? 왜 나는 그동안 서울에서 연극을 하지 않았던가? 사실 우리사회는 어떤 다른 나라의 사회보다 진실한 연극예술을 더 필요로 하는 사회다. 인간의 직접적인 만남과 대화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사회다. 연극은 인간의 존중과 인간의 위엄과 인간의 예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나라에서 내 모국어인 한국어로 연극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한시도 잊지는 않았다. 그러나 9년간 하지 않았다. 왜? 작업환경이나 조건이 너무 나빴다. 제작지원을 받기 어려웠고 스폰서나 제작자를 만나기가 어려웠다.

▲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역사가 중요한 연극 작업 대상이었고, 대본, 음악, 소리, 심지어는 포스터 한 장까지도 철저한 창작의 정신을 함유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줄곧 지녀 왔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연극 작품 연보를 보니까 꽤 일찍 연극작업을 시작했다. 1978년 열아홉 살 때 첫 작품을 하고 군대를 갔던데...

김상수 : 군대 제대 후에 20대 초반부터 연극 제작을 하곤 했었는데, 그 때마다 빚을 졌다. 80년대 중반 서울 외곽에 소형 아파트 값이 4, 5천만 원 할 때, 연극 때문에 천만씩 빚을 진적도 있다. 그 빚을 갚는데 시간을 보낸 적도 있고, 연극을 할 때마다 지인들의 신세를 많이 져야만 했다. 그러니 연극을 자주 할 수 없었다. 1984년 천주교 200주년 공연 <사람>은 천주교회가 제작했으니 나는 작품에만 전념했다. 이런 경우가 드물었다. 그 이전해인 1983년에 <191931>이란 연극을 할 때도 제작자를 만났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직접 제작비를 감당해야만 했다. 이처럼 연극 제작비를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리가 따랐다. 내가 우리 사회에서 연극작업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막막한 현실에 가위눌리는 처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또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렇다 치고, 사회적으로 연극에 대한 인식조차 전혀 자기 정체성이 없다. 10대 후반에 연극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연극 환경이나 풍토가 철저하게 신식민지적인 지경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보였다. 서양 연극을 흉내 내고 남의 나라 작가 작품을 허락도 없이 그냥 조악한 번역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당시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창작이 없는 모방의 풍토에서 연극을 하고, 서로가 자리 매김을 한다는 것이 당시 어린 내 눈에도 한없이 유치하고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럼 이후 오늘은 상황이 나아졌을까? 글쎄다.

"창작이 위축된 연극계는 썩었다"

프레시안 : 연극예술이 우리사회에 튼실하게 자리 잡고 있지 못한 이유는 뭔가?

김상수 :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는 연극을 하는 이들에게서 창작의 정신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작품의 연보를 보니까 줄곧 극본을 직접 쓰고 창작연극을 연출했다.

김상수 : 창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걸 실천했다. 먼저 나는 연극을 철저한 창작의 작업으로 받아들였다. 세익스피어도 몰리에르도 피터 한트케도 나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역사가 중요한 연극 작업 대상이었고, 대본, 음악, 소리, 심지어는 포스터 한 장까지도 철저한 창작의 정신을 함유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줄곧 지녀 왔다. 그러니 작업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제작비 마련 때문에 몇 년에 한편씩 무대에 올리는 악전고투였다. 문예회관(현 아르코극장) 등의 공공시설 사용 신청을 내면 연극계 기득권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문예진흥원(현예술위원회)에 진흥기금은 한 번도 받아 본적이 없다. 후회는 없지만 젊은 청춘을 너무나 소모했다. 보다 다른 사회적 일에 그 많은 노력을 바쳤다면, 보다 뜻이 넓은 효과적인 일을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지성의 풍토, 지적으로 연극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풍토가 우리사회에는 부족하거나 없다. 연극작업이 지적 인식의 체계와 지적 대상일 수 있는 작업이 아니고, 창작 정신을 존중하는 환경은 아직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연극예술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만…"

프레시안 : 9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연극을 하는데 현실이 많이 달라졌다고 보지 않는 것 같다.

김상수 : 더 썩어있다.

프레시안 : 어떤 면에서 썩었나?

▲ "연극 정책이 잘못됐다. 하드웨어는 전국에 깔려있다. 구민회관, 문예회관 등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 안에 컨텐츠가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김상수
: 연극계는 정신도 태도도 상업주의에 함몰되어 썩어 있다. 대학로에 와서 연극 포스터를 보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업들을 연극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거의 '개그판'이다. 허나 젊은 사람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젊은 사람들이 연극이라는 본원적인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예술적 경험이나 감동을 받는 작품을 본 사실이 드물거나 거의 없다. 7, 8년 까지만 해도 개그 연극은 대학로 뒷골목에 있었는데, 이것이 대학로 중심으로 들어와 개그 연극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빌딩을 사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개그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획일화돼 있다는 게 문제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연극 자체가 소외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레시안 : 연극보다 뮤지컬, 개그 공연 등이 성행하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 아닌가. 문제는 돈이 안 되더라도, 제도를 잘 만들어 연극을 지원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왜 안 되고 있나?

김상수 : 정책이 잘못됐다. 하드웨어는 전국에 깔려있다. 구민회관, 문예회관 등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 안에 컨텐츠가 없다. 일률적인 디자인으로 공연장은 지어놓기는 했지만 예비군 훈련장으로 쓰인다. 가장 문제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없다. 시설은 만들어 놓았는데, 그 시설을 운영하고 내용으로 채워야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지원이 너무 부족하거나 없다. 지금 대학에 연극과가 60개가 넘는단다. 졸업하면 바로 실업자다.

프레시안 :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연극을 보지 않고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김상수 : 좋은 연극을 접할 수 있었던 경험들이 없어서 그렇다. 연극이라는 것은 가내 수공업적이고 인간적인 호흡과 가장 가까운 현장의 직접적인 예술 형태다. 연극은 응집력이라든지 사회성이 강한 예술이다. 전 세계적으로 연극은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인간과 직접 밀착되는 예술이 아쉬워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연극예술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만 가라앉고 있다.

"1999년에 내가 작업한 <국립극장개혁안>은 실패했다"

프레시안 :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제도 개혁에 나서본 적도 있지 않나?

김상수 : 그랬다. 나는 개인의 연극 제작보다는 국공립극장의 연극제작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1999년에 당시 김대중 정부 때 문화부의 의뢰를 받아 <국립극장개혁안> 작업을 했다. 국립극장은 제도로서 연극기구다. 제도를 먼저 살려야 한다는 의미에서 개혁 작업에 참여했다. 국립극장 개혁안을 단기, 중기, 장기로 10년짜리로 짰다. 당시 나는 노무현 정부 때 장관을 한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이 야인으로 연극을 하고 있을 때, 국립극장장으로 강력하게 추천했고, 김 전 장관에게 내 계획안을 줬다. 김 전 장관이 그 계획에 박차를 가해야 했는데, 그 사람 스스로가 자기 작품 '우루왕'을 먼저 했다. 거기에 국립극장의 물자와 자원과 인력이 동원되다 보니 개혁이 제대로 안 되는 현실이었다. 개혁안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명곤씨가 극장장을 하고 난 이후, 그 다음 극장장으로 들어선 이는 정말 개혁이라는 개념조차도 전혀 없는 인물이 극장장이 되었고 이명박 정권 초기까지 극장장을 맡았다.

프레시안 : 결국 국립극장 개혁의 청사진은 실현이 안됐나?

김상수 : 그렇다. 청사진이 실현됐다면 오늘날 국립극장장 자리에 동아일보 출신 대통령후보 언론특보 뉴라이트 인물이 극장장으로 치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국립극장이 가부키 극장인데, 가부키 극장장을 신문사 기자 출신이 와서 한다? 일본이 뒤집어질 일이다.

프레시안 : 한국의 연극 환경, 제도 등이 그래도 과거보다 지금은 더 나아졌지 않았나?

김상수 : 더 악화됐다. 지원은 있는 대신, 지원이 합리적이고 공정한가는 의문이고, 심지어 지원이 없을 때보다 못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썩었다. 나름대로 정부의 연극 제작지원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작되어 여러 가지 지원시스템은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원방식은 더 민주화되어야 하고 반듯하고 투명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조금 전에 언급했지만 지금 당장 이명박 정부가 국립극장장으로 신문사 출신, 대통령후보 언론특보 출신을 국립극장장으로 앉혔다. 말이 되는가? 툭하면 인용하는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다시 일본의 현실을 빗대어 말하지만, 일본의 국립극장이나 신국립극장장이 권력의 전리품 자리로 추락한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가 없다. 극작가도 아니고 연출가도 아니고, 도대체 평생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던 사람이 왜,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연관계 논문 두어 편 썼다고? 자기 분수도 모르고 있다. 결국 이것은 연극인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까닭이 있다.



일그러진 전통, 무자각의 연극계 현실

프레시안 : 왜? 그런가?

김상수 : 그럼? 왜? 오늘 날 연극인들은 자신들 자리도 제대로 못 지키는가? 긴 시간 한국연극은 소외의 역사였고 지금도 그렇다. 무엇으로부터 소외인가? 이는 연극 자체로부터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로부터도, 연극은 계속 소외되어 왔다. 이는 곧 한국 현대 예술사의 전반적인 문제지만, 특히 연극의 소외는 한국 연극의 일그러진 전통과 무자각의 현재가 반증한다.

프레시안 :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는가?

김상수 : 나는 먼저 한국 연극사에서 식민지 연극사를 이제 적극적으로 판별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식민지연극사의 영향아래 위치하는 오늘의 연극현실이 신(新)식민지화로 얼마나 왜곡됐고, 그로 인해 오늘에까지 한국연극의 정체성마저 혼돈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결정적인 폐단이 무엇인가를 이제부터 세세하게 질문했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한국연극계의 반지성(反知性)의 원인에는 우리나라 연극에서 신극사의 출발이 식민지 상황이었고, 식민주의는 침략적 지배문화의 침탈과 피식민지 경험으로 인한 내적인 붕괴는 이후 분열과 갈등, 심지어 부패를 유발하게 됐다. 한 때 우리는, 어쩌면 이 시간까지도, 식민지 종주국의 연극 이미지를 받아들였고 그것을 우리 자신들의 자화상으로 내면화하였다. 이는 우리 자신의 괴멸과 붕괴에 다름 아니다.

프레시안 : 흡사 한국의 정치사와 판박이다.

김상수 : 그렇다. 이 내면의 괴멸이 우리 현대연극사의 출발이었고 그 괴멸을 도리어 이용하여 식민주의의 싸구려 껍데기가 연극행위로 긴 시간 질주해 왔다. 신식민주의로 식민지 종주국 흉내 내기가 현대연극의 출발이었음을 냉정하게 직시할 때가 이젠 지났다 말이다. 반민족 친일연극인의 그 제자들이 해방이후 냉전 군사독재의 하수인으로 뻔뻔하리만큼 예술행위의 일방적 향유자였고, 그들 스스로 정체성이 불분명했기 때문에 이들의 삶이나 연극 또한 조악하기 그지없었고 당연히 창작의 정신보다는 조잡한 번역연극에 기대어 연극을 삶의 방편으로 일관했다. 권력에 기생하고 아부하는 식으로 연극인들이 행세를 했으니, 대통령후보 언론특보 출신이 국립극장장이 되도 찍소리 못하는 지경이 됐다.

▲ "권력에 기생하고 아부하는 식으로 연극인들이 행세를 했으니, 대통령후보 언론특보 출신이 국립극장장이 되도 찍소리 못하는 지경이 됐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연극이란 예술장르야 말로 사회성이 가장 강한 분야인데, 어떻게 사회의식이나 정치의식, 역사의식이 연극인들에게서 이렇게 결격되었나?

김상수 : 지난 시대 가장 근본적인 개혁이 친일 연극사를 대대적으로 정리했어야 했다. 우리 연극계가 왜 이렇게 황폐해졌나. 연극사가 그렇게 흘러왔던 것이다. 지금 연극계 원로연하는 이들의 작품 연보를 보면 창작물이 거의 없다. 즉 창의성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연극을 좀 했다는 나이 드신 분들 연극 연보를 보면 거의 어설픈 번역 연극들이다. 당시 저작권이 제대로 정립 안됐기 때문에 뉴욕에 있는 유학생이 엉터리 번안을 해서 써주면, 서울에서 바로 무대에 올렸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았다. 그 뿌리가 소위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신극 1세대의 문화다. 이들이 일본에서 리얼리즘을 받아들였는데, 형태만 받아들였다. 일본에서 리얼리즘 연극을 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사회의식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사회와 충돌하는 이슈, 정치 경제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식이었는데, 식민지 종주국으로 유학을 간 사람들이, 일본말은 잘 안되고, 어디 갔더니 재밌는 것을 하더라, 그래서 우르르 몰려갔단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연극의 형태만 받아들였다. 그게 우리 신극 1세대 친일연극의 역사다. 그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군부독재시대의 연극인들이었다. 당연히 시대정신은 실종되고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과 타협하는 연극 사기꾼들이 대거 연극계 현실 권력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친일 연극 1세대의 후배들이 군림하면서 줄을 세우고 독재에 기생하면서 독재에 아부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연극의 본원적인 비판정신, 고발정신이 다 증발해버렸다. 대중들의 삶의 절실한 문제를 얘기 해주는 연극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시민대중과 연극예술은 거리가 멀어졌다. 정치 시회 비판은 연극의 출발이다. 그런데 그런 연극들은 지원을 받을 수 없고, 무대에 올려 지지 않았다. 그래서 연극이 특별한 소수의 취미로, 놀이로 빠지게 된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줄곧 이어져왔다.

프레시안 :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그런 개혁이 왜 안됐나?

김상수 :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나는 굉장히 비판적이다. 그 실정(失政)의 반동이 이명박 등장 아닌가. 대단히 죄송한 얘기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문화 예술을 풍류문화쯤으로 이해하는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다. 문화예술이 삶의 근간이고 한 사회를 떠받치는 구조고 또 산업이고 한 사회의 철학이라는 인식은 부족했다. 그 정도 깊이까지는 못 갔던 것 같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 이창동 장관이 짠 '새예술정책'은 우리 사회 문화 예술의 발전을 의식한 중요한 작업이었지만 이 정권 들어서서는 폐기되다시피 했다.

프레시안 : 민주화 정부 들어서서도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들린다.

▲ "이건 한 국가의 정부라고 볼 수 없다. 나는 이명박 정권이 임기를 다 채우면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김상수
: 그렇다. 시스템과 교육에 변화를 줬어야 했고 삶 속에 그것을 제도화시켜야 하는 구체적인 것이 있어야 했다. 정치적 의지, 문화 예술을 보는 정책적 시각, 그것을 제도화하는 문제, 이것이 예술을 꽃피게 하는 것인데, 전부 시장의 논리로 몰아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예술에 대한 인식이 관념적으로만 있었지, 개혁, 집행 의지가 없었다. 영국에서 토니 블레어 수상이 창의 산업(크리에이티브 인더스트리)을 일으켰다. 이게 거대한 인프라가 되면서 오늘날 영국의 산업과 고용을 뒷받침하는 데 종사자가 300만 명이 된다. 영국경제가 지금 어려운 현실인데도 이전 정부의 문화정책이 고용과 산업을 받치고 있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문화의 시대니, 창의의 시대니 떠들었지만, 그야말로 떠들기만 했다. 창의를 만드는 인프라 구축이 없는데 무슨 그게 가능한 소린가? 한 사회에서 문화 예술을 진흥시키는 시스템을 간과했다. 이후 정부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프레시안 : '크리에이티브 인더스트리'가 1, 2년 사이에 된 게 아닌 것 같다.

김상수 : 그렇다. 적어도 20년, 30년이 걸린다. 또 고전이라는 '문화'가 있다. 결국 우리도 시스템,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영국은 10년 넘게 인프라를 충실히 구축했다. 결국 지금 미국의 대중문화는 영국의 문화예술계가 이끌고 있다. 시스템이 개인의 탁월성을 뒷받침해준 것들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문화 예술 정책은 어떤가?

김상수 : 이건 한 국가의 정부라고 볼 수 없다. 나는 이명박 정권이 임기를 다 채우면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항간에 국가발전을 20년 지체시키고 후퇴시키는 집단이라고 하는데, 남북문제 전반을 비롯해서, 그야말로 지체, 정체된 시기다. 나는 그래서 다음 정권이 들어선다면 우리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를 복원시키는 문제도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본다.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도 문화예술계 보직을 전리품 취급을 하기는 했지만, 김대중 시대 때는 보혁 단체별로 배분이라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문화예술계 자리가 전리품처럼 취급됐고 이 정권에 와서는 거의 100% 뉴라이트다.

프레시안 : 그동안 연극작업을 외국에서 했다.

김상수 : 나는 우리 현실에 절망했다. 좋다. 이런 현실이라면 차라리 나는 잠시 내 나라에서 연극작업을 중단해야 하겠단 결심을 했다. 어차피 연극 제작이 어려운데, 그나마 연극을 할 정열이라도 남아 있다면,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외국에서 세계를 대상으로 내 열정으로 작업을 하겠단 생각을 한 것이다. 세계와 먼저 소통하겠단 말이다.

프레시안 : 2002년 1월 4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는 당신의 연극을 "문화와 국경을 넘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표현했다고 전면 톱기사로 상세하게 다루었다. 또 2003년 일본 공연에서는 일본의 신문 텔레비전 등, 전 미디어가 당신의 연극을 큰 기사로 취급하면서 특히 요미우리신문 4월 9일자는 "일본에 마음을 심으러 온 한국예술가"라는 기사가 났다. 이후 작년부터는 독일에 열중하기 시작하고 있다.

김상수 : 나는 내 나라의 연극 환경을 보다 민주적으로 바꾸기 위한 제도적인 개선을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동안에 내 연극작업은 나를 작가로 연출가로 받아들여주는 나라에서 세계와 소통하는 연극을 해야 하겠단 생각을 했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 연극이 질적으로 상당히 빈곤하달까, 연극을 위한 창조적 재능을 가진 사람을 사회적으로 제대로 지원하는 시스템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보인다. 그래서 2001년에 한국에서 연극을 마지막으로 공연하고 2010년 오늘 '화사첩'이라는 연극을 9년 만에 하게 됐는데, 어떤 계기로 갑자기 만들어진 연극인가?

김상수 : 사실 나는 조만간 서울에서 연극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서울에서 연극을 당장 하겠다는, 또는 하고 싶다는 마음은 강하게 일지 않았다. 이번은 갑작스런 경우다. 원로배우 김금지 선생은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배우이고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다. 김금지 선생과 과거에 5년 전, 그리고 7년 전 쯤, 두어 번 작업을 같이 하자는 바램은 서로 간에 있었다. 그런데 자꾸 세월이 지나고, 내가 자주 외국으로 나가고, 그래서 같이 작업할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건 아닌가 해서, 갑자기 6월 중순에 선생을 만나 하순까지 일주일간 대본을 썼다.

프레시안 : 연극을 한국에서 다시 하고자 하는 내적인 큰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닌가?

김상수 : 다시 말하지만 이명박 정권 하에서는 국립극장을 개혁한다거나 하는 제도 개혁도 당장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이 정권이 끝나야 한국에서, 서울에서, 연극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김금지 선생이 자기 자비를 투입하면서 제작을 결심할 때, 나도 뭔가 변화를 일으켜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배우, 김금지 ⓒ김상수

프레시안 : 이번에 올리는 '화사첩'은 어떤 연극인가? 가상 역사로 정치권력을 비판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김상수 : 사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차원은 넘어선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까지, 정부라는 게 뭔지, 국가는 뭔지, 백성은 뭔지, 국민은 뭔지, 시민은 뭔지, 그 관계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것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100년 전, 또는 150년 전 중국이 외세 침탈 위기에 놓인 상황과 비슷하다고 나는 본다. 지금이 그 정도로 심각한 위기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으니 결국 이명박까지 등장하지 않았나.

프레시안 : 그렇다면 단순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은 아닌 것 같다.

김상수 : 그렇다.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비판이다. '화사첩'은 100년이나 150년 전, 조선이나 중국이 외세의 침략 와중에 휘말렸던 현실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화사첩'은 가상의 왕국에서 벌어지는 궁중암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초점은 궁중내의 권력투쟁이 아니다. 이 작품의 스토리와 구조, 이미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다층적이며 복합적이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표층의 차원에서 하나의 절대권력과 그에 도전하는 또 다른 권력 사이의 대립과 갈등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심층의 차원에서 그것은 권력의 존재방식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다. 어떠한 권력이어야 선(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국가권력은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또한 포클레인과 삽질, 전시작전권 이양, 통상협상 등의 우리시대의 쟁점들을 작품 내에 배치함으로써 지금 여기 이곳에서의 권력에 대한 비판도 아울러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2010년의 한국사회에 대한 알레고리이자 우의적 풍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연극 대본의 내용을 보니까, 가상의 역사 속에서 궁이 오랑캐에게 함락당하고 섭정을 하던 대왕대비가 피난을 가는 내용이 나오더라. 끝 부분에 대왕대비가 '내가 지킨 게 뭔가. 내가 지킨 권력이라는 게 뭔가. 심지어 손주까지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그 지킨 권력이라는 게 뭔가'라는 취지의 독백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주인공 대비가 몸종 하나를 데리고 황야를 지나는데, 나중에 '돌아가자'는 말을 한다. 궁궐은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는 상황인데 궁궐로 가자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꿈 얘기를 한다.

김상수 : 섭정을 하던 대왕대비가 왕궁이 오랑캐에 함락되고 탈출 도피 끝에 바다에 닿았다. 몸종으로 따르는 조미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만나지는 인간적인 조건들에 새삼 눈을 뜨고, 대왕대비 자운은 몸은 비록 지쳤지만 바닷가에 핀 꽃들이 있는 자연 앞에서는 자유로워진다. 이곳은 모든 것이 평화롭고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고 모든 것이 믿기고 모든 것이 타당하고 진실하기 때문이다. 왕조사직을 지키기 위한 간계와 무참한 살인들, 심지어 핏줄인 손주까지 죽음으로 내다 몬 섭정의 일대기에 대한 깊은 회오, 인공의 세계인 왕조를 구축하기 위한 삶과 비로소 하나의 자연으로 인간으로 눈을 뜨는 현실, 그리고 꿈결에서 만나진 흰 옷 입은 백성들과 조우, 왕조를 제대로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 하지만 대비 자운은 왕국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면서 백상들의 안내로 다시 왕궁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자운은 그녀 곁에 혼자 남은 몸종 조미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자, 이제 돌아갈 때가 됐다. 가자!" 과연 자운의 발길은 어디로 향할까? 무사히 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자운의 발길은 또 다른 어딘가로 떠나게 될까? 여기서 나는, 꿈속에서 백성들을 만나는 대왕대비의 진술을 썼는데, 백성들 몰골이 처참하고, 언변도 어눌한데 대비에게 호소를 한다. 결국, '궁궐로 가자'는 것은 이 인물의 의지가 아니라. 백성들의 힘이다. 그것이 대비를 궁으로 끌고 가도록 하는 것이다. 대비가 궁궐로 가도록 하는 힘, 이것이 민초들에게 있다. 백성들, 지금으로 치면 국민들이 비록 벙어리처럼 하소연하는 힘이 대비를 궁궐로 이끄는 것이고, 이것은 그녀의 능력을 넘어서서 권력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나는, 꿈속에서 백성들을 만나는 대왕대비의 진술을 썼는데, 백성들 몰골이 처참하고, 언변도 어눌한데 대비에게 호소를 한다. 결국, '궁궐로 가자'는 것은 이 인물의 의지가 아니라. 백성들의 힘이다. 그것이 대비를 궁으로 끌고 가도록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권력 문제라면 단순히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김상수 : 그렇다. 오늘날 이명박 정부가 왜 나오게 됐는지, 앞 정권 관계자들이 정말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이해찬 전 총리같은 분은 자신이 참여한 정권의 실정과 관련한 정직한 백서라도 하나 제대로 내놓는 것이 바른 태도라고 본다. 지난번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을 참패시킨 것은 국민들이 민주당에게 보내는 경고다.

프레시안 :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었던 노무현 정부 탄생은 어떻게 봤나?

김상수 : 나는 처음부터 굉장히 불안정하게 봤다. 나는 노정권 2년차에 그 당시 광복 60주년 기획위원을 하라고 해서 갔다가, 두 달 만에 뛰쳐나왔다. 나오면서 '누가 노무현을 고립과 위기로 빠뜨리나'라는 글을 공개적으로 썼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두관 경상남도 도지사처럼, 남해 군수 정도, 경남도지사 정도의 단계부터 거치는 과정이 있었다면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는 정치라는 냉혹한 역학관계, 그런 현실을 마주하기에는 너무 나이브하고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다는 인상이다.

프레시안 : 본인이 생각하는 연극의 사회적 역할은 어떤 것인가?

김상수 : 대화다. 대화고 만남이다. 추상적인 게 아니라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교회도 있고 학교도 있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은 탁월하다. 상상력이 빚어내는 공공적인 만남의 장소다. 그런데 그것이 위축돼 있다는 것은 대화의 통로가 위축돼 있다는 것이다. 극장이라는 공간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시민들 삶을 서로 격려하며 끝없이 배워나가는 장이며 또 다른 의미의 학교다. 그리고 연극이란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어떤 게 정상적인 것이냐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2002년 대선 때 문성근, 명계남 씨 등이 전면에 나섰었다. 그런 것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던 것 같은데?

김상수 : 나는 예술인들이 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정파적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 분들(노사모 활동 예술인)이 가진 일정 성과도 있었지만 정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보다 민주주의 가치를 현실에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적인 노력을 하고 제도적인 싸움을 하는 것에 힘을 쏟았어야 했었다. 예술과 정치는 역사 이래로 긴밀하다. 프랑스에서 정권이 바뀌면 문화예술 관련 인사들도 다 바뀐다. 우리는 전리품으로 바뀌지만 프랑스는 집권 정부의 이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바꾼다. 그 쪽은 예술을 공공복지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좌파가 집권하면 예술기구는 여하히 시민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정책은 그 방향으로 잡는다. 그러나 우리현실은 그야말로 이명박 인간 관계의 동호회 멤버들이 전리품으로 예술기구의 자리들을 챙기는 것이다. 이들은 이념 추구도, 가치 추구도 아닌, 사익 추구집단이다.

프레시안 : 우리는 바뀌긴 바뀌는데, 가치나 이념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인가?

김상수 : 그렇다. 독식이고, 패거리화다. 얼마전에 연극계 원로연 하는 사람이 공금 착복 의혹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일이 터지면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연극계에서 추방된다. 창작극보다는 번안물을 해왔고, KBS방송국 출신이기도 해서 그런 과정에서 거대한 연극계 인맥을 만들어 놓았다. 너무 썩었다.

프레시안 : 국가에서 나름대로 문화 예술 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이라고 보나?

김상수 : 문화라는 것은 하나의 공동체가 구축한 결과물들이다. 그런데 그게 갑자기 구축되는 게 아니다. 결국 우리가 가진 역사에 대한 이해, 미래에 대한 이해, 비전, 제반 문제는 무엇인지, 그런 장치들, 국가의 역할이 매우 절실해졌다. 더 나아가면 근본은 민주주의의 문제다. 문화의 DNA가 예술이다. 예술은 우리가 세계인식을 하는 방식이다. 또한 삶의 방식이며, 그 삶의 가능성까지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성숙한 시민 사회와 민주주의의 실질적 가치를 배양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또한 예술은 대화의 방식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치인 상호 이해와 신뢰의 토대를 제공해 준다. 이를 토대로 예술 정책도 수립되야 한다.

프레시안 : 최근 한국에 들어온 지 8개월 쯤 됐는데 앞으로 한국에서 더 활동할 것인가?

김상수 : 일단 독일에서 벌려놓은 설치미술 계획이나 연극 등, 일들을 좀 더 진전시켜야 한다. 이 연극을 끝내는 다음날 다시 독일로 나간다. 그러나 한국에서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 사람도 만나고 싶다. 여기(대학로) 근처를 보면 술집 음식점 등 유흥가가 됐다. 대학로가 일본의 신주쿠 환락가 거리처럼 됐다.

프레시안 : 얘기를 듣다보니 새삼 연극은 인간과 사회, 인간과 인간 자체, 인간과 역사, 인간과 정치의 관계에 관심을 확장시키는 예술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인간과 예술의 위치에 관심을 두어 작품을 당 시대 현실에 비추어 해석하는 작업방식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됐다.

김상수 : 이 연극 '화사첩'은 현실에 비추어 해석되고 있다. 텅 빈 무대공간은 배우들의 연기의 열정으로 채워진다. 그것들은 연극기호들의 체계로 구축된다. 공연의 리듬과 조명이 여기에 투입된다. 이 연극은 3개의 고리, 첫 번째 고리는 이야기와 인물들의 직접적인 현실을 상기하게 된다. 두 번째 고리는 그것들을 사회 역사 정치적으로 컨텍스트화 하게 되고, 세 번째 고리는 그것들에 보편적 가치를 부여한다.

프레시안 : 예리한 현실인식, 치밀한 실천의지가 큰 기대를 낳는다.

김상수 : 바쁘실텐데 연습장까지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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