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갈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에서 '과거처럼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경제이론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갈파하였다. 1970년대 초에 발생한 석유파동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고 보고 있다. 최근엔 이에 더하여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사태가 자주 발생하면서 '초(超)불확실성(hyper-uncertainty)'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에게 있어 지난해 후반기부터 지금에 이르는 과정은 국내외적으로 사면초가의 상황이 이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일본 아베 정권의 '위안부' 소녀상 갈등,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인한 경제보복 조치 등은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는 냉전 시대의 모습과 닮은 형국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저버릴 수가 없다.
한국과 미·일·중 간의 관계 변화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중국 등 3국 간의 관계를 하나의 잣대로 살피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방법론이 등장하면서 보다 용이하게 조망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래 표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 서비스를 이용하여 얻어진 결과이다. 분석에 활용한 데이터는 1990년 1월 1일 ~ 2016년 12월 31일까지 주요 신문과 TV 등 42개 언론사의 뉴스에서 한미관계, 한일관계, 한중관계라는 키워드로 추출하였다.
그에 비해 한일관계는 여러 개의 봉우리가 연속되고 있는데, 이는 한일관계가 몹시 복잡하고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편으로는 정부의 명쾌하며 지속적인 대응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이르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92년부터 시작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1994년 무라야마 총리의 사죄 담화, 1996년 하시모토 총리의 '사죄의 편지' 등의 사건이 있었고 2001년에는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2005년에는 독도 영유권 문제, 2008년에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린 G8 정상회담 중 후쿠다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간의 회담에서 불거진 학습해설서 독도 영유권 명기의 문제 등이 있었다.
이후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일왕에 과거 일본 강점기 시대의 잘못을 사죄하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후 한일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지속적으로 높아진 봉우리는 2011년 12월 14일 수요시위 1000회를 기념하며 제막한 위안부 소녀상 문제가 국내외적으로 여러 곳에 설치되면서 발생했다고 본다.
한편 한중관계는 도표상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완만하게 변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최근에 불거진 사드 문제를 제외하고는 주로 동북공정에 따른 역사문제가 있어 왔다. 2007년 이후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한국사 왜곡 정책을 발표하면서 작은 변화가 있었으며, 2011년 말 중국 관영 CCTV에서 백두산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발해를 당나라의 지방정부로 왜곡했던 일 등이 있었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볼 때 올해 한중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3국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정확한 분석과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한중관계의 역주행
그런데 2017년 1월 1일부터 4월 27일 현재까지로 빅카인즈에서 검색해 보면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한미관계 214건, 한일관계 439건, 한중관계 774건이다.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올 연말엔 한중관계는 2300건이 훌쩍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데이터는 물론 대부분 사드와 연관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동력은 2014년부터 시작되어 올해 정점에 이른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은 법이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관계로 이어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9월에 있었던 중국의 전승절에 참석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연말에 있었던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타결과 사드는 그 간의 한중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중일관계에서 한국과 보조를 맞추었던 중국으로서는 전광석화처럼 위안부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을 보고 난감했을 것이다. 특히 하얼빈 역사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했고, 이외에도 중국 여러 곳에 흩어진 임시정부 등의 시설을 허용하는 조치를 통해 대일관계에서 한국과 신뢰 관계가 형성됐다고 생각했는데, 중국 입장에서는 이런 신뢰가 무너졌다고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사드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말하려는 자세가 중국의 화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과거 우리 정부가 대만과 외교단절에서도 경험하였던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중국 매체들에서 '기분이 상했다' 라든가 '중국을 무시했다'라는 감정적인 말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내에서도 사드는 군사 문제니 이를 경제적 보복으로 푸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군부개혁과 시진핑 2주기 개편을 위한 세력 간 경쟁이 있었다. 결국 이것이 강경한 대응으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
한국의 대응
이제 열흘 정도 후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그렇지만 과연 각 대선 캠프가 충분한 논의와 준비가 돼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캠프마다 밀물처럼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누가 전문가이며 적임자 인지를 검증할 시간도 부족하다.
여유가 없는 정권 인수 기간이지만, 각 캠프에서 한중관계는 반드시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현재 한중관계는 심각한 국면에 처해 있으며, 갈수록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우선 한국과중국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어떤 기업에서 특정한 사건이 발생해서 그것이 악화되는데 3개월, 그리고 회복되는데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중국에서 기업을 꾸리고 있는 경영자들은 1년이나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기업뿐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은 당 국가 체제라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며, 중앙과 지방이라는 점도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둘째 장기적으로 중국 전문가의 양성과 활용이 정부와 민간이 화학적 결합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중국과 여러 일을 추진하다보면 왜 한국은 매번 사람이 바뀌냐고 말한다. 우리도 중국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라오펑요(老朋友·오래된 진짜 친구)'를 육성해야 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이후 특사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보냈다. 그는 올해 94세로, 중국과 약 60여 년의 인연을 맺고 있다. 2011년 중국 '시나닷컴'에 게재된 한 기사에서는 1949년부터 2010년까지 중국 <인민일보>에 실린 기사를 중심으로 '중국인민의 라오펑요(中国人民的老朋友)'를 선정했다.
기사는 여기에 123개국의 601명이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 중 한국은 단 2명으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여기에 포함된다. 국가별로 따져보면 일본은 111명, 미국 55명, 영국 24명, 프랑스 23명, 독일 18명 등이다. 중일 간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슬기롭게 풀리는 것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라오펑요들이 국가적 이익을 도모하는데 노력하기 때문이다.
셋째, 국가성장 과정에서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절차와 과정'을 보다 지혜롭게 안착시키고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한중관계가 역주행의 가속페달을 밟은 것은 지난해 황교안 국무총리가 사드배치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자마자 바로 한미 간에 전격적으로 배치결 정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높아진 갈등의 봉우리에 비가 내리고, 골짜기에 물이 흘러, 수목들이 하나씩 둘씩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자연의 이치대로 한중관계의 역주행을 정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 공통의 목표를 함께 설정하며, 단계적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관계 회복해 나서기를 새 정부에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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