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게시판에서 심상정 후보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주요 논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홍준표, 유승민을 공격해야 하는데 왜 아군인 문재인을 공격하느냐. 아군에게 총질하는 모습이 '구태 세력'과 다를 바 없다. 둘째, 지역구는 민주당 후보를 찍었지만, 비례대표는 꼬박꼬박 정의당에 표를 줘왔는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비판하는 심 후보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 (☞관련 기사 : 송영길 "숟가락 심상정" 발언 논란)
만약 심상정 후보가 TV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터무니없는 흑색선전을 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심 후보의 질문은 주로 '공약'이나 '정책', '정치적 지향'을 담은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 글의 요지들을 읽고 든 생각은 하나였다.
'진보적인 관점에서 민주 정부의 지난 과오에 대해 비판하거나 성찰하지 않는다면, 정의당이 왜 있어야 하지?'
민주 정부 10년, 비정규직 양산 지적한 게 잘못인가?
심상정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했나. 첫째,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과업으로 삼았는데, 왜 문재인 후보는 반대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둘째, 문재인 후보 공약 이행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고, 왜 '증세'가 후순위로 밀렸냐는 점이다. 그래서 문재인 후보의 공약들이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따라가는 것 아니냐고 했다. 셋째, 문재인 후보의 복지 공약이 왜 축소했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심 후보가 과거 민주 정부의 과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두 가지였다. 김대중 정부가 정리 해고법과 파견법을 터줬고, 노무현 정부가 기간제법을 터줘서 노동자들이 고통받았다는 점이었다. (☞관련 기사 : '2약' 유승민·심상정 추궁에 쩔쩔맨 '양강' 문재인·안철수)
이 질문들이 '진보 정당' 후보로서 해서는 안 될 질문이었을까? 오히려 진보 정당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는 질문에 가까웠다. '민주 정부'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을 추진했을 때, 그래서 노동자들이 그 정부를 향해 저항할 때, 그 정부를 비판해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쪽으로 견인할 세력이 바로 진보 정당이다. 진보 정당과 민주당이 맺어야 할 올바른 긴장 관계다. 진보 정당이 있어야 민주당도 더 건강해진다.
심상정의 존재, 문재인에게 마이너스일까?
그렇다면 심상정 후보가 홍준표, 유승민을 비판해야지, 문재인을 비판한 것은 잘못인가.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심 후보의 그러한 태도가 감정적으로 서운할 수는 있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심 후보를 2012년 "박근혜 후보 떨어뜨리러 나왔다"고 선언했던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와 비교하기도 했다.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이정희 후보에게 느낀 감정만큼 심 후보가 '밉다'는 것이다.
하지만 심 후보가 문 후보와 각을 세우는 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윈윈'일 수도 있다. 중원 싸움인 대선에서 심 후보의 존재는 문 후보에게 유리한 고지를 줄 수도 있다. 중도층들이 보기에 문 후보는 심 후보만큼 '지나친 진보(?)'는 아니기에, '안정감' 있는 이미지를 준다.
심상정 후보 입장에서 보자. 정의당이 마주하는 질문은 '자유한국당과 정의당의 차이'가 아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차이가 뭐냐'는 것이다. 심 후보가 홍준표, 유승민 후보와 거리가 멀다는 점은 누구나 안다. 그런 점에서 심상정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 차이점을 부각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봐도 당연하다.
2012년 대선에서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가 최대 화두로 떠올랐을 때만 해도, 정의당은 민주당과 차이를 부각하기 어려웠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앞다퉈 우클릭 싸움을 하는 지금이야말로 정의당의 존재 이유가 잘 드러나고 있다. 심상정은 원내 후보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에 반대하고, 사회복지 목적세 신설에 찬성하고 있다.
심상정 후보가 TV 토론에서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후보와 각을 안 세운 것도 아니다. 홍준표, 유승민 후보가 해묵은 색깔론을 꺼내들자, 심 후보는 "도대체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심 후보는 때로는 문 후보와 정책적으로 경쟁하면서, 때로는 문 후보와 전략적으로 연대하는 전략을 취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돌베개 펴냄)를 보면, 이라크 파병 반대 세력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고마워하는 내용이 나온다.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파병 반대 운동이 큰 의지가 되었다. 시민 사회의 강력한 반대 운동과 매우 비판적인 국민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도 이런 수준의 파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245쪽)" 진보 세력들이 끊임없이 반대 시위를 해준 '덕분에', 미국에도 할 말이 생겼고 그 결과 더 좋은 협상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심상정 후보가 내건 슬로건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 '거침없는 개혁'이다. 심상정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한 질문은 '적폐 청산'과 '국가 대개조'를 내세운 문 후보가 발전적으로 흡수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그 질문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많은 분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우리 삶이 달라질지 의심한다. 문 후보는 법인세 인상에 대한 입장도 뚜렷하지 않고, 정리 해고 요건 강화에도 입장을 유보했다. 노동자에게 책임을 느끼면 강력한 대안이 나와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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