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경제특보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변 전 국장은 지난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관여해 '불법' 시비에 휘말렸다가 2006년부터 시작된 검찰 수사와 재판 끝에 대법원 무죄를 선고받은 인물이다.
안 후보 측은 13일 보도자료를 내어 변 전 국장의 특보 영입 사실을 밝히며 "안 후보는 그간 '공정성장' 및 사회적 안전망 강화, 민간 주도의 경제 활력 제고 등을 구체화하면서 변 특보와의 공감대를 넓혀 왔다"고 했다.
안 후보 측은 안 후보가 직접 변 특보를 만나 영입을 제안했다며 "경제 정책의 기본 방향뿐만 아니라 가계부채 급등, 조선업 구조조정 혼선, 한미 통상마찰 위기 등 3대 위기요인의 심각성과 극복 방안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펴보고 대책을 자문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변 특보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제 자문을 맡기도 했었다. 안 후보 측은 "안 후보는 '우리 편 저쪽 편을 구분하지 않고 그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를 찾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고 강조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건에 대해 안 후보 측은 "변 특보는 외환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개인적인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언급하며 "무죄 판결로 명예를 회복했으나, 이를 계기로 공무원 사이에서는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보신주의의 분위기가 확산됐다"고 했다. 안 후보 측은 "변 특보의 영입이 현재 공무원들 사이에 만연돼 있는 보신주의 극복의 시그널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변 특보는 행정고시 재경직 수석 합격자 출신 관료로, 정·관계에서 대단히 유능한 인물로 인정받아 왔다. 그의 대법원 무죄 판결을 계기로 외환은행 매각 과정 수사 당시 그에게 가해진 비판이 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주로 보수 성향 언론과 경제지들에서는 변 특보를 '소신 있는 결단을 내린 공무원'으로 평가하며, 그에 대한 검찰 수사가 "광기"에 의한 것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변양호 신드롬' 극복? 론스타-외환은행 인수 결정은 옳았나
그러나 변 특보 개인이 형사적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당시 금융 당국의 결정에 대한 정책적 책임은 별개의 문제다. 외환은행 매각 추진 과정에서 막대한 국부 유출 우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재명 성남시장을 돕다가 이날 문재인 캠프의 '민주정책통합포럼(민주당 경선후보 싱크탱크 통합 조직)' 상임위원으로 위촉된 정승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경제학 박사)는 <프레시안> 통화에서 "변 전 국장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해도,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하기로 했던 당시 금융 당국의 결정에는 당연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외환은행은 전혀 부실 은행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는 "변 전 국장은 한 시대의 상징 같은 인물"이라며 "2000년대 초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금융시장이 미국 월가처럼 바뀌어야 한다'는 열풍이 인 적이 있었다. 한국을 미국식 자본주의로 만들자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변 전 국장이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세계 경제를 끌어갈 15인'으로 꼽힌 것도, 은행 민영화 등 당시 (신자유주의) 흐름과 잘 맞았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니 멀쩡한 은행을 매각한 것에 대해 전혀 거리낌없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비판헀다.
정 이사는 나아가 안 후보의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안 후보의 경제 정책을 보면 10년 전 미국식 자본주의로 가자는 것 같다"며 "중소기업 모델로 실리콘밸리를 자주 예로 드는데, 실리콘밸리는 월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중소기업은 실리콘밸리 모델로, 금융은 월가 모델로 하고 복지는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하자는 것 아닐까"라고 우려했다.
무죄 판결이 난 변 특보 등에 대한 형사 재판과는 별개로,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가 금융위를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2011년 11월 대법원은 결국 경제개혁연대의 손을 들어줬다. 2009년 1월 1심 판결대로였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현재 문재인 캠프에 몸담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다.
공개된 자료를 검토한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와 진보 정당에서는, 우리 금융 당국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한 것은 엉터리였다며 "(정부는) 론스타의 앵무새"라고 비판했다. (☞관련 기사 : '론스타 블랙홀'…한입으로 두말하는 정부, 입 다문 국회)
당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전성인 홍익대 교수(현 한국금융학회장)는 지난 2012년 11월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대해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제기한 이후 기고한 <경향신문> 칼럼에서 "론스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모피아'들, 그리고 론스타 앞에서 꼼짝 못하던 초라한 정권들"을 비판했다. 전 교수는 변 특보 외에도 주형환·추경호·김석동 등 전현직 고위 당국자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된 참여정부(노무현 정부)의 공직자들은 진실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촉구했다.
전 교수가 언급한 대로, 변 특보는 이른바 '모피아(재정경제부의 약자 MOFAT과 마피아의 합성어)' 인맥으로 꼽히기도 한다. 때문에 이번 영입이 안철수 후보가 2012년 대선 당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영입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 기사 : 안철수 옆 이헌재, '모피아'의 권토중래?)
다만 이 지점에 대한 문재인 후보 측의 비판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 측은 지난 7일 선대위 상임고문으로 이 전 부총리를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 전 부총리는 이에 대해 "요청한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며 문 후보 측의 일방적 발표라고 불쾌감을 보였다. 이 전 부총리는 2012년 한때 '안철수의 경제 멘토'로 불렸으나 이후 안 후보와는 거리를 뒀고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에서 활동하고 있다.
변양호, <조선일보> 칼럼에서 "의료산업 규제 완화" 주장
짚어볼 지점은 또 있다. 변 특보는 영입 발표 후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제 생각을 요새 <조선일보> 칼럼으로 쓰고 있는데, 안 후보가 그것을 읽고 '생각이 같다'고 해서 한 번 얘기해 보니 생각이 비슷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변 특보는 지난해 11월부터 총 5차례 칼럼을 썼다.
칼럼 내용은? 그는 지난 1월 14일자 <조선>에 기고한 '진짜 경제 대통령 후보가 해야 할 공약' 제하 칼럼에서 "획기적인 규제 개혁과 함께 복지 지출을 늘려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며 "일자리와 부가가치는 규제 완화와 이를 통한 혁신에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했었다.
특히 "규제 완화"의 대상이 되는 분야에 대해 그는 "여러 규제 완화 대상 중에 특히 의료산업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 의료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대선 후보라면 다른 분야의 규제 완화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 후보는 지난 10일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의사협회,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규제프리존법이 시행되면 의료 영리화의 우려가 있다며 이 법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안 후보가 과거 "의료 영리화 반대" 소신을 여러 차례 강조해 온 것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변 특보는 또 "재벌의 불공정 행위가 있다면 그 행위를 단죄해야지 출자총액규제 등을 통해 재벌의 경제 활동 전체를 규제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안 후보가 지난달 16일 발표한 재벌개혁 공약에서 "재벌의 기업 지배 구조 개선"을 강조하며 지주회사 규제 강화 등을 내세운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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