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민 혁명의 소강 국면이 길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는 게 지루하기만 하다. 사실 탄핵 심판은 애초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늦어도 3월 초에는 판결이 나오리라 점치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촛불 시민들에게 특별검사와 헌법재판소만 쳐다보는 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진다. 작년 11월, 12월에 겪은 너무도 긴장되고 충만했던 시간의 기억이 생생하기에 더욱 그렇다.
휴지기가 길어지니 왠지 불안하기도 하다. 탄핵 판결을 놓고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생각하기도 싫은 불길한 이야기가 떠돌기도 한다. 그러나 광장이 다소 한산해졌다고 해서 촛불 정국의 위력이 수그러든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어이없는 조기 낙마가 촛불의 여전한 위력을 보여준다.
보수파가 반기문에게 희망을 걸었던 것은 그가 보수파의 경계선 너머로 지지층을 확대할 후보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국 후 반기문은 비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는커녕 기존 보수 성향 유권자들도 다 규합하지 못했다. 단지 3주 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반기문 스스로 이 점을 확인했기에 정계 입문 3주만에 은퇴를 결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단지 반기문의 자질 탓만은 아니다. 그 정도 인물이 나서서 봉합하기에는 보수 쪽 정치 지형이 너무 심각하게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 점에서 촛불 항쟁의 위력은 대단했고, 지금도 그렇다. 12월 9일 탄핵 찬반을 놓고 새누리당을 둘로 쪼갠 이후 분열과 해체가 계속되고 있다. 사뭇 굳건했던 하나의 블록이 여러 부족들로 갈가리 찢어졌다. 적어도 조기 대선 때까지 박사모부터 바른정당에 이르는 이들 부족을 통일할 인물은 출현하기 힘들 것이다.
선거 논리 앞에 촛불이 꺼지려 하는가
정작 불길한 조짐은 반대쪽에서 나타나고 있다. 촛불 시민 편이라고 자임하는 정당, 민주당 말이다. 지금까지 여론조사 추이만 보면, 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의심하기 힘들다. 문재인, 이재명, 안희정, 김부겸 등이 벌이는 경쟁은 볼거리도 풍성하다. 그래서 모든 눈이 민주당 대선 주자들에게 쏠려 있다. 광장이 민주당을 비롯한 원내 야당들을 이끌던 형국이 민주당이 주도하는 형국으로 완전히 바뀐 것 같다.
그런데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영 석연치 않다. 광장의 외침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1, 2위를 다투는 두 후보, 문재인과 안희정의 경우 특히 그렇다. 재벌이나 사드 같은 첨예한 쟁점을 놓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 수위 조절을 한다. 아니, 확신에 차서 광장의 개혁 요구를 거스르는 입장을 천명한다. 안희정 지사의 '대연정' 발언은 그 절정이다. 궁지에 몰린 범새누리당 세력과의 공동 집권 모색은 촛불 시민 혁명의 가장 큰 성취를 부정하는 짓에 다름 아니다.
이런 민주당 쪽 움직임을 보면, 촛불이 꺼져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가? 민주당이라는 정치 세력의 기본 성격도 문제이지만,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적 계기의 특성이다.
광장의 논리와 선거의 논리는 전혀 다르다. 광장에서는 가장 적극적인 시민의 목소리가 대표성을 지닌다. 시민들도 이를 알기에 발언과 행동에 주저하지 않는다. 오래 된 관성보다는 스치듯 다가오는 깨달음이, 익숙한 우려보다는 자기도 몰랐던 용기가 대기를 지배한다. 그래서 '혁명'이라는,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사건도 터져 나올 수 있다.
선거에서는 오히려 침묵이 가장 두려운 변수다. 선거에서는 목소리 높이는 이들보다 입을 다물고 있는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들이 던진 표의 크기가 대표성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하는 이들의 생각이라고 가정되는 바에 맞춰 외침이 조정된다. 가장 소극적인 이들의 상식이라 추정되는 것이 곧 진리다. 비례대표 방식이라면 좀 다를 수 있지만, 한국은 대통령 선거에도 결선투표제가 없고 국회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 중심이어서 선거 때마다 이 논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지금 철저히 이런 승자 독식 선거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한국 정치에 익숙한 직업 정치인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행보다. 이들 입장에서는 광장의 목소리가 거세면 거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고 선거판이 열리면 다수의 생각이라 짐작되는 바에 맞추는 것이 결코 부끄러울 일도 아니고 고민할 거리도 못 된다. 저들은 저들의 직업윤리에 충실하다.
그러나 촛불 시민들은 다르다. 불과 몇 주 전에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광장 정치의 순간들을 경험했다. 그 순간들 이후 우리의 시간은 전과 같을 수 없다. 변화가 지체되고 나라 밖 각성에도 뒤처지고 있다고 생각되던 시간이 갑자기 어떤 일도 가능할 것 같은 시간으로 뒤바뀌었다. 우리 모두는 이미 느껴 알고 있다. 모처럼 열린 이 시간이 뚜렷한 결실 없이 다시 닫힌다면 우리 삶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를. 나를 포함해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이것은 분명 마지막 역사적 기회라는 것을.
그런 우리들에게 광장은 결코 선거로 대체될 수 없다. 선거는 오히려 광장 드라마의 한 막 정도로 배치되는 게 맞다. 이번에는 선거조차도 광장의 논리에 따라야만 한다. 가장 재치 있고 열정에 넘친 목소리가 계속 주인공이 돼야 한다. 적어도 끊겨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박근혜 탄핵 판결 이후 촛불 시민들이 마주할 가장 어려운 도전이다.
정의당발 이변을 꿈꾸는 '유일 40대' 강상구 후보
세인의 관심이 민주당에 쏠려 있는 가운데 정의당에서도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 중이다. 언론이 늘 정의당 대선 주자로 가장 먼저 꼽는 심상정 대표가 역시 후보로 나섰다. 하지만 의외의 인물도 출마했다. 여야 막론하고 유일한 40대 후보인 강상구 중앙연수원 부원장이 심상정 후보와 경쟁하고 있다.
강상구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이번 대선이 "30년만에 온 항쟁의 후속 작업"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재용, 정유라 등을 통해 드러난 "신분 사회"를 "평등한 연대 사회"로 바꾸는 것이 그가 제시하는 후속 작업의 방향이다. 이를 위한 첫 번째 공약은 촛불 시민 대다수가 크게 공감할 내용이다. 박근혜 정권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까지 지난 10년간의 모든 반민주행위자를 철저히 조사,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강상구 후보는 "민주주의의 적에게 관용은 없다"는 말로 반민주 행위 청산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또한 강상구 후보는 촛불 시민 혁명 와중에도 정의당이 부상하지 못한 중요한 원인이 민주당과 뚜렷이 구별되는 진보정당의 지향과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한 데 있다면서 '좌클릭' 공약들을 내놓았다. '좌클릭' 공약 중에는 특히 특권 세습 사회가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과감한 자산 재분배를 단행하겠다는 약속들이 눈에 띈다.
그 가운데에는 상속 증여세 세수를 청년들의 학자금 부채 탕감에 우선 투입하고 이후에도 청년층에게 투자하겠다는 '사회적 상속' 구상이 있다. 다주택 소유 가구가 추가 소유 주택들을 팔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집값을 내리고 집 없는 가구의 내 집 마련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주택 공개념' 제안도 있다. 또한 수학능력시험을 대학입학자격고사로 전환하고 국공립대학에 일부 사립대학까지 포함한 대학연합이 공동전형-공동학위제를 실시하게 해서 대학 서열 체제를 타파하겠다는 약속도 있다.
재벌이나 산업 문제에 관한 '좌클릭' 공약도 있는데, 내가 지난 번 칼럼에서 주장한 바와 내용이 일치한다. 유명무실한 '사외'이사 제도를 노동자, 소비자, 하청업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사회'이사 제도로 바꾸고 대기업 국유 지분을 통합 관리하면서 경영에 공적으로 개입하는 '산업혁신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한다. 강상구 후보는 이 공약 내용을 "시민이 기간 산업을 통제한다" 혹은 "기간 산업의 국민 통제"라는 문구로 요약한다.
이런 내용이라면 촛불 광장의 가장 선명한 목소리들을 대변한다 할만하다. 달리 말하면,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충실히 따르는 대선 논리와는 하나도 맞지 않는 주장들이다. 외려 거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처럼 보인다. 진보정당은 실험과 도전이 미덕이라지만, 강상구 후보의 공약은 너무 급진적이거나 도발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실은 강상구 예비후보가 정의당 대선 후보로 당선될 가능성도 지금 당장은 그리 높지 않다. 강상구 후보 스스로도 자신의 승리는 정의당의 '이변'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이변이야말로 기존 정치 문법을 충실히 좇는 대선 판에 다시 촛불의 열기를 되살리는 더 큰 이변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한다.
반란, 더 많은 반란을
정의당발 이변이 과연 촛불 시민 혁명 이후 한국 정치 전반의 이변을 불러올 수 있을까? 과장이 섞였다고 할 수도 있다. 정의당을 비롯한 한국사회 진보 좌파의 위상을 과대 평가했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정의당 대선 후보 경선은 원내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관심에서 한참 비껴나 있다.
그럼에도 강상구 후보의 익숙지 않은 도전은 촛불시민혁명 전체의 미래에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 혁명의 여진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되어야 할 게 무엇인지 선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을 시도해야 하는가? 반란이다. 광장 안에서도 그다지 쉽게 바뀌지 않는 타성과 관성에 맞선 반란. 그간 지체될 대로 지체된 한국사회의 변화를 재촉하기 위해 변혁 세력 자신의 격변을 촉구하는 반란. 1987년의 언어로부터 자립한 2017년의 언어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반란.
광장의 논리가 별 성과 없이 일상의 논리에 다시 흡수되는 상황을 막으려면 이런 반란이 꼭 필요하다. 이번 항쟁이 30년 전 항쟁의 단순한 반복에 그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도 이런 반란은 반드시 필요하다.
반란을 쉼 없이 감행해야 한다. 박근혜 탄핵 판결 이후 오히려 더 활발해져야 한다. 정당, 노동조합, 대학, 지역사회…. 곳곳에서 시작돼야 한다. 촛불 시민 혁명의 제2막은 평범한 대선이 아니라 반란들의 국면이어야 한다.
정의당에서는 강상구 후보의 도전으로 이런 반란이 시작됐다. 이 반란이 정말 이변으로, 격변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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