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내세우는 정책
그간 '모극장(공정영화협동조합 모두를위한극장)'에서 격월간 <민들레>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파고르 사람들, 브란트 사람들>(위그 페이렛 아르구스 감독, 2007), <행복의 경제학>(노르베리 호지 감독, 2011), <다음 침공은 어디?>(마이클 무어 감독, 2015)와 같은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세계화'라는 경제적 화두를 비판적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다큐멘터리의 주제적 경향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창조적으로 표현한 매체"라는 존 그리어슨 감독의 말대로 '세계화'는 인류의 보편적인 현실이며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이야기하고자, 이번에 소개할 작품을 선정하던 중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8일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이 결과를 두고 많은 분석이 있었지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중서부의 쇠락한 제조업 지대 '러스트 벨트(Rust Belt)'를 지목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주요 공약은 '새로운 보호무역'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그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고용 창출을 이끌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그것이 산업 중심지에서 러스트 벨트로 전락한 이곳 노동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 패권을 쥔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 세계화에 대립하는 공약을 내건 부동산 재벌에게 정권을 내주었다는 사실은 무언가 부조리한 느낌이다. 경제적 문외한이라도 트럼프의 보호무역이 미국의 패권을 내려놓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미국의 영향력을 실용적 차원으로 활용해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려는 것은 그동안 알면서도 당했던, 예측 가능했던 세계화에서 혼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화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다큐멘터리 <탐욕의 별>(공귀현 감독, 2015)은 해외의 투기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계의 변화로 이 영화의 주장과 내용이 앞으로도 유효한지는 알 수가 없다. 사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별반 새롭지 않을 수도 있으나, 우리가 쉽게 지나쳐온 상황들을 조목조목 상기시키고 있다. 지난해, 많은 국내 다큐멘터리가 그러한 기조를 유지했다. 해결하지 못한 채 지나온 것들의 누적이 현재 시국의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미국에 대해 낙관적 결말을 그리지만 동시에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고 대선이 끝나기도 전에 <마이클 무어 인 트럼프 랜드>(2016)라는 작품의 제작발표회를 했다. 그런 면에서 <탐욕의 별>은 조금 철 지난 이슈를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철 지난 이슈'를 또다시 지나쳐서는 안 된다.
부자가 되기 위한 소양, 탐욕
감독은 쌍용자동차 사태의 궁금증을 하나둘씩 파헤치며, 그 뒤에 해외 투기자본 이와 결탁한 대한민국 정부의 관료들과 제도권이 숨어 있었음을 객관적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대한민국 전체를 움직이는 자본의 보편성임을 확인해간다. 꼼꼼한 취재 방식으로 이어지는 이 영화는 소수가 부(富)를 축적하는 현상의 반대급부로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이들은 왜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지를 역설한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경제용어들도 등장하는데, 세세히 설명해가며 관객들을 이해시키고자 노력한다. 언뜻 이러한 전개는 '부자가 되는 가이드북'을 보는 듯도 하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통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그건 바로 '탐욕'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론스타 사건'이다. 미국의 금융회사인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각해 하나은행에 비싸게 되파는 과정에서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기게 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잘못된 정보 중 하나는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되는 데에 심각한 경영난이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해외 투기자본이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 정보가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외환은행은 IMF 당시에도 자체적인 경영 노력으로 그 위기를 잘 넘겼고 이후 안정적 성장세를 보여준, 망할 이유가 없는 회사였다. 그러나 자본 규모를 키우려는 이강원 행장의 욕심이 무리한 인수합병을 추진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론스타가 주가를 조작하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 의도적으로 회사를 위기에 빠지게 만들어 기업의 가치를 헐값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행동들은 모두 '탐욕'에서 출발한다.
당시 국내법상 은행의 매각은 자기자본 비율이 8퍼센트 미만인 경우에만 허용되었으며, 인수하는 당사자도 금융자본에 한해 인정되지만, 론스타 건은 두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았다. 외한은행은 10퍼센트가 넘는 자기자본을 보유하고 있어 인수 자체가 불가능했고 론스타 역시 금융자본이 아닌, 여러 생산업체를 인수한 산업자본이었다. 원칙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이 일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경유착을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진로그룹, 쌍용자동차 등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다. 영화가 주목하는 '탐욕'의 주체는 해외 투기자본인 듯하지만, 사실은 공동정범이 된 한국 사회의 대기업으로 초점이 돌아간다.
진로그룹의 지분을 확보하여 하이트에 되판 '골드만삭스'의 경우는 처음에 진로그룹의 경영컨설팅으로 참여하여 경영정보를 취득한 후, 이를 이용해 진로그룹의 지분 인수를 시작해 결국 도산하게 만드는 악랄함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수많은 정관계 인사가 골드만삭스에 정보를 넘긴 정황이 담겨 있다.
IMF 시절, 어쩔 수 없이 해외자본이 개입된 듯이 포장되었던 경제 상황의 이면에는 타인의 고통으로 자기 이득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자본의 '탐욕'이 숨어 있었다. 영화의 후반부는 골드만삭스와 론스타가 한국에서 했던 짓을 한국의 투기자본이 대만과 다른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탐욕'은 학습되고, 그 수단은 복제되는 것이다.
여전히 유효한 현재형 다큐멘터리
그러고 보면, 미국의 전유물인 듯했던 세계화 전략을 이미 한국에서도 습득해 사회 곳곳에 복제하고 있다. 이러한 '탐욕'의 학습은 예상보다 빨리 확산되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이란, 이제 한계에 다다른 지금의 세계화 전략을 복제 불가능한 미국만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재편하는 과정일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시의적 가치는 철 지난 이야기가 아닌, 새롭게 조망되어야 할 이슈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리는 알면서도 당하고 있으며, 국민은 부정과 축재의 반대급부로 쓸쓸히 남겨졌으니 말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사이, 다시 론스타의 이야기, 재벌의 이야기, 기득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가는 이 작품은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재형 드라마다. 어쩐지 트럼프의 당선보다도 더 부조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탐욕의 별> 공동체 상영
개봉 극장이 없더라도 전국 어디서나 이 영화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함께 보고 싶은 이들을 10명 이상 모아 연락주세요.
* 팝업시네마는 다양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제작된 공동체 상영 신청 사이트입니다. http://popupcinema.kr
문의 :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 02-2632-5800 admin@popupcinem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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