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메시지는 강렬했다. 검찰 조사를 두 차례나 거부하고, 기자회견장에서 질문도 받지 않던 박 대통령의 태도 돌변은 드라마틱했다. 사실 그 동안 말 할 기회는 있었다. 특히 세월호 7시간 관련 의혹에 대한 해명 기회는, 참사 이후 지난 2년 8개월 동안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극구 거부한 채 특검이 시작되고, 탄핵 심판 절차가 시작되자 박 대통령은 입을 열었다. 3차에 걸친 담화에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했던 태도는 사실상 없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노림수가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머리 좀 만져주기 위해 미용사가 왔다" 시인한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의혹 설명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기억나지 않는다'던 2014년 4월 16일의 '행위'에 대한 설명은 역시 부족하다. 다만 그는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인정했고, '7시간 의혹'과 관련해 가장 터무니없는 '지라시'의 내용들을 집중 거론하며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깎아내렸다.
탄핵 소추 심판 대리인단 중 한명인 이중환 변호사는 지난 30일 헌법재판소 3차 준비기일이 끝난 후 브리핑에서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사건 결제를 많이 하셔서 기억을 많이 못하고 있다"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박 대통령은 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간담회에서 "그날 기억을 더듬어 보니까 머리 좀 만져주기 위해서 (미용사가) 오고 목에 필요한 약(가글) 들고 오고 그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실제 없고요. 그날은 다른 일을 어떻게 상상할 수가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이틀 만에 기억이 되살아 났다는 것인가? 박 대통령은 2014년 4월 16일 당일 행적과 관련해 "인후통시 사용되는(조여옥 대위 증언)" 가글을 했고, 강남의 유명 T미용실의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만졌다는 사실을 확인해 줬다. 그간 입을 다물고 있다가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밝혀진 일들이다. 평일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는 사실도 본인 입으로 확인했다. 일반 범부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박 대통령은 관저에서도 '업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머리 좀 만져 주기 위해서" 미용사가 왔다는 부분도 태연하게 말하고 있다. 긴박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변명은 초라하고 구차하다. 언론의 오보를 보고 "기뻐서 아주 그냥 마음이 안심이"됐다고 했고, 경호실이 막아서 현장에 빨리 가지 못했다고 했다. '재난 컨트롤타워'의 적나라한 모습이 박 대통령의 입에 의해 확인이 됐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정윤회 씨와 '밀회설', '청와대 굿판설'등을 예로 들며 "기가 막혔다"고 했다.
'세월호 7시간' 문제를 '비이성적 의혹 제기'로 '물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청와대 굿판설'은 기사화도 되지 않았던 '지라시' 수준이었고, 정윤회 씨와의 '밀회설'도 조선일보의 칼럼에서 나온 의혹 제기와, 그 의혹 제기를 받아 옮겼던 산케이 신문의 전 서울지국장의 주장이 전부여서, 애초 언론은 물론 세월호 특조위조차 주목하지 않았던 '풍문'들이다. 박 대통령은 2년 8개월 가량이나 '지라시' 수준의 의혹을 한결같이 언급하며 역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다음은 박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밝힌 '7시간' 관련 내용이다. 관저에서 보고를 받으면서 어떤 행위를 했는지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던 박 대통령은, 그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심경'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참 안타까웠던 일 중의 하나가 '전원이 구조됐다' 하는 오보가 있었어요. 그래 갖고 막 걱정하면서 해경한테 챙기고 이렇게 하다가, 그러면서도 저는 여러 수석실로부터 보고도 받고 일 볼 것은 보고했는데, 전원이 구조됐다 그래 갖고 너무 기뻐서, 아주 그냥 마음이 아주 안심이 되고, 이렇게 잘 될 수가 있나, 너무 걱정을 했는데, 그러고 있었는데 또 조금 시간이 흐르니까 그게 오보였다 그래 갖고 너무 놀랐어요. 내가 중대본에라도 빨리 가서 현장에서 어떻게 하는지 그걸 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가려고 그러니까 경호실에서는 제가 어디 간다고 그러면 확 가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경호하는 데는 요만한 필수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대로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중대본에도 조금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하여튼 그쪽도 무슨 상황이 생겨서 그렇게 해서 확 떠나지를 못했어요. 그 시간 준비가 다 됐다 할 때 그대로 그냥 달려갔는데. 그러니까 아침부터 중대본에 가서 또 회의하고 이런 모든 것이 대통령으로서 나름대로는, 물론 현장에서 챙겨야 될 것이 있고, 또 거기 119도 있고 다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에서 제일 잘 알아서 하겠죠, 해경이.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 '최대한 지원도 지원할 것이 있으면 하라', 또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해 달라' 이런 식으로 제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어느 날 갑자기 밀회를 했다 그런 식으로 나가니까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말도 못해요."
박근혜, '대통령직'의 언론 주목도 빌려 수사 및 재판에 영향 미치려 하나?
7시간 의혹과 함께 박 대통령이 이날 간담회를 통해 알리려 한 메시지는 '나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실을 몰랐다'는 주장이다. 대기업에 대한 모금 강제 부분은 '선의의 통치 행위'일 뿐, 사익을 추구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박 대통령과 공모관계 등으로 엮인 각종 피의자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혹은 특검 조사에서 할 이야기를 던지고 있다. 이는 '앞으로 특검 조사 과정에서 이같이 말하겠다'는 메시지로, 박 대통령과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최순실 씨나, 뇌물 수수 혐의로 박 대통령과 함께 수사 대상이 된 삼성 관련 인사들에게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떤 피의자도 언론을 이용해 자신의 입장을 전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대통령직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개혁보수신당의 장제원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수사 조사중인 관련 피의자의 진술에 가이드라인으로 작용될까봐 우려스럽다"고 논평했다.
실제 최순실 씨의 '꼭두각시' 역할을 했던 박 대통령의 측근 '문고리' 비서관이었던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의 변호인은 정 전 비서관의 공판에서 갑자기 태블릿PC의 증거 능력과 관련된 공방을 벌여 검찰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미 검찰에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연설문을 외부로 유출하는 등 '자백'을 했던 그의 변호인이 갑자기 박 대통령의 편을 드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여기가 정 전 비서관의 재판정이냐, 대통령의 재판정이냐"고 강하게 항의했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최순실 씨가 요새 뭐라고 그러냐면, 이경재 변호사가 도대체 대통령 변호인이냐 맘에 안든다 지금 이렇게 얘기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삼성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삼성 측에 보내는 메시지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말씀하셨듯이 완전히 엮은 것입니다. 어디를 도와주라 한 것과는 제가 정말 확실하게 말씀드리는데 그 누구를 봐줄 생각, 이것은 손톱만큼도 없었고 제 머릿속에 아예 없었어요. 엘리엇하고 삼성 합병하는 문제는 그 당시에 국민들, 증권사 할 것 없이 많은 국민들의 관심사였잖아요. 이게 헤지펀드의 공격을 삼성 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이 공격을 받아서 이런 것이 무산된다든지, 하여튼 이렇게 되면 이것은 굉장히 국가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손해라는 그런 생각을 국민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고, 또 우리나라의 증권사가 20여 개, 거기에서도 거의 한 군데, 두 군데 빼고는 이것을 다 해 줘야 된다 그런 분위기였거든요. 저도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그런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국민연금이 잘 대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또 당연히 국민연금이나 이런 데에서는 챙기고 있었겠죠. 거기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그것은 국가에 올바른 정책 판단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여기를 도와주라, 이 회사를 도와주라 그렇게 지시한 적은 없어요. 그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그래서 아까 말씀대로 엮어가지고 자꾸 그렇게, 그것은…."
'통치 행위'의 일환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앞뒤 정황은 매우 공교롭다. 국민연금이 삼성의 합병에 찬성키로 결정한 것은 2015년 7월 10일이고, 삼성물산 주주총회는 7월 17일이었다. 그리고 7월 25일 청와대 안가에서 박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독대했다.
2일 국민일보는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의 난데없는 역정에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삼성의 승마협회 지원이 왜 늦어지느냐'며 질책했기 때문이다. 30∼40분간 이어진 독대 중 박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약 20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삼성은 이후 3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최순실 씨 측에 지원했다. 이 신문은 "최근 특검팀 조사를 받은 삼성 고위 관계자들도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 직후 승마 지원 문제를 논의하라고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정당한 정책 결정 행위 이후 왜 박 대통령은 삼성 부회장을 '독대'하고 승마협회를 콕 찍어 지원하라고 했을까?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의 동창생 학부모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의 현대차 납품 압력 사건도 마찬가지다. 최순실 씨 등의 공소장에는 박 대통령이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에게 KD코퍼레이션이 현대차에 납품할 수 있도록 직접 '특별 지시'를 내렸고, 안 수석은 현대차를 압박했다고 나와 있다. 현대차는 '세무조사' 등 후환이 두려워 최 씨의 지인 회사에 10억 원 상당의 일감을 줬고, 최 씨는 KD코퍼레이션 대표로부터 샤넬백 등 5000만 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KD코퍼레이션을 찍어 안 전 수석에게 '챙기라'고 지시해놓고, 해당 회사가 최 씨 지인 회사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KD코퍼레이션 사건 관련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말 맞추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 간담회는, 자신의 직위에 따르는 언론의 관심을 이용, 각종 재판과 헌재 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지가 작용한 행위라는 해석이 힘을 얻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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