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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넘버 3.5%보다 '비폭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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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넘버 3.5%보다 '비폭력'이 중요하다

[스켑틱] 테러리즘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규탄하는 촛불 집회가 이어지면서 "국민 3.5%가 집회에 참여하면 정권을 끌어내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11월 17일 이관후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175만 촛불이 나서면 박근혜는 물러날까"에 소개된 것처럼, 이 내용은 지난 2012년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베스가 20세기의 시민 혁명 사례 323개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다.

여기서 중요한 건 '3.5%'라는 숫자가 아니다. 비폭력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시민의 힘을 이끌어내는 요인임을 주장했다. 이관후 연구원의 글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스켑틱>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 박사 역시 이와 같은 주장을 했다. 대통령이 3차 대국민 담화에서도 기만적 내용으로 일관해, 이에 분노한 시민이 이번 주말(3일)에도 대규모 촛불 집회를 열 예정인 가운데 <프레시안>은 <스켑틱> 한국어판을 펴내는 바다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스켑틱> 2호(2015년 6월호)에 실렸던 셔머 박사의 글 '테러리즘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싣는다.

이 글에서 셔머 박사는 비폭력 투쟁이야말로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지 않는, 진정한 시민 집회라는 점에 주목했다. '인구의 3.5%'가 몰려나올 정도로 집회가 커지기 위해서는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를 무너뜨리는 집회 참여자 숫자는 비폭력 집회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실제 세르비아 독재자 밀로셰비치를 집회로 끌어내린 비폭력 저항 운동 단체 '오트포르!(otpor!)'의 리더였던 스르자 포포비치가 쓴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박찬원 옮김, 문학동네 펴냄) 역시 유머와 재기발랄한 저항이 정부를 무너뜨리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촛불 집회는 그에 완벽히 상응하는 본보기일 것이다.

셔머 박사는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캘리포니아 대학교 풀러턴 캠퍼스에서 실험 심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과학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여 년 동안 교수로 있으면서 옥시덴탈 칼리지,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글렌 데일 칼리지에서 심리학, 진화론, 과학사를 가르쳤다.

주요 저서로는 '믿음의 3부작'이라 불리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우리는 어떤 식으로 믿는가>, <선악의 과학>이 있다. 1997년 과학주의 운동의 본거지인 미국스켑틱학회(The Skeptics Society)를 설립하고 과학 저널 <스켑틱>을 창간하여 현재까지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고 있다.

<모럴 아크>에서 살펴본 여러 분야의 도덕적 진보와 마찬가지로, 비폭력적인 형태의 정치 변혁이 폭력적인 변혁을 사실상 추월하는 추세다.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베스(Erica Chenoweth)와 마리아 스테판(Maria Stephan)은 이런 변화를 연구했다. 그들은 1900년 이후의 모든 폭력 및 비폭력 혁명과 개혁의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1900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적으로 비폭력 투쟁의 성공 가능성은 폭력적 투쟁의 두 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체노베스는 이어서 "이런 추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된다. 지난 50년 동안 시민 저항 운동은 그 효과도 강력해지고 빈도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던 반면에 폭력적 투쟁은 점차 횟수도 줄고 대부분 실패했다. 비폭력 저항이 실패할 것으로 여겨지는 극도로 억압적인 권위주의 독재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폭력이 폭력보다 목적 달성이란 측면에서 더 뛰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민중의 힘"이라고 체노베스는 말한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민중이 저항에 참여해야 하는가? 그녀의 데이터에 따르면 "일단 전 인구의 3.5%가 능동적이고 지속적으로 참여한 저항운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으며, 많은 경우 그보다 작은 참여율로도 성공했다." 또한 "실제로 3.5%의 문턱을 넘어선 모든 투쟁은 비폭력적인 것이었다. 순전히 비폭력 수단에 의지한 투쟁의 규모는 평균적으로 폭력적 투쟁의 네 배였다. 그리고 성별, 연령, 인종, 정치세력, 사회계층, 그리고 생활 영역권에서의 대표성도 훨씬 높았다."

이런 비폭력 전략이 어떻게 정치적 변혁으로 이어질까? 폭력에 기초한 투쟁은 젊고 강인하고 폭력 성향이 있으며, 술을 좋아하고 호전적인 남성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반면에 "시민 저항 운동은 다양한 신체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가 허용된다. 여기에는 노인, 장애인, 여성, 아동 등 원하는 사람 모두가 포함된다." 낮은 장벽으로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3.5%라는 매직 넘버를 넘는 지름길인 것이다.

더욱이 비폭력 투쟁에는 비싼 총이나 여타 무기도 필요하지 않다. 시민 불복종 운동은 흔히 파업, 불매 운동, 재가 시위(stay-at-home demonstrations), 냄비나 프라이팬을 두드려 소음을 내기, 그리고 1951년 영화 <지구 최후의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에서처럼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 전기를 끄는 것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억압적인 정권으로서는 도시 전체에 분산되어 이런 전술을 구사하는 독립적인 시민 집단을 막기 어렵다. 더욱이 다수의 시민이 참여함으로써 시위대 중에 진압 부대원의 친지나 가족이 포함될 가능성도 커진다.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의 경우에 "밀로셰비치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하여 베오그라드에 모인 세르비아 인이 수십만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자, 경찰은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무시했다. 한 경찰관은 명령에 불복종한 이유가 시위대 중에 자신의 아이들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폭력 저항에는 또 하나의 이점이 있다. 비폭력 저항은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 비폭력 저항은 폭력적 투쟁에 비하여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내전이 재발할 가능성은 15% 낮다. "데이터는 명백하다."라고 체노베스는 결론짓는다. "더 많은 사람이 시민 저항 운동에 의존할수록 운동의 규모는 점차 확대된다. 그리고 많은 수의 사람이 그들을 억압하던 체계를 버리기 시작하면 승산은 그들에게로 기운다." 그림 1과 그림 2에서 이런 추세를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데이터가 보여주는 결론은 명백하다. 우리가 두려움 자체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 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테러리즘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며, 인류가 추구하는 정의와 자유를 훼손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1940년대 이후의 정치적 변혁을 위한 폭력 및 비폭력 투쟁의 성공률을 비교한 결과, 폭력은 실패한 전략이며 비폭력이 바람직한 선택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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