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급환으로 숨진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언론에 공개된 것과 관련,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공작 정치의 부두목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11일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이 작고 후 한 언론에 의해 확보됐다"며 "어떻게 21세기 대명천지가 유신독재로 돌아갔는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최순실 사건에 버금가는 독재 만행"이라고 지적했다.
전날 TV조선은 김 전 수석의 모친으로부터 고인이 생전 청와대에 근무하던 시기에 작성한 비망록을 건네받았다며 그 내용을 공개했다. 방송 보도에 따르면, 비망록에는 비서실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長)'이라는 표기 옆에 "홍성담 배제 노력, 제재 조치 강구"라는 메모가 있었다. 이 메모는 2014년 8월 8일자로 돼 있으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김기춘 전 실장이었다.
같은해 8월 14일에는 "CJ그룹 '명량' 관련 고무", 10월 2일에는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이라는 표기가 있다. 2014년은 청와대 등 정권 핵심부가 비판적 문화예술인들의 명단을 작성해 불이익을 줬다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시점이다.
심지어 청와대가 법원을 '길들여야' 한다는 내용의 메모까지 나왔다. 비망록에 '중요' 표시와 함께 적힌 메모에는 "법원이 지나치게 강대하다", "견제 수단이 생길 때마다 길을 들이도록"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와 관련 "(법조계의 숙원인) 상고법원 등으로 협상"하라는 등 구체적 방법에 대한 지시로 추정되는 내용도 있었다.
김 전 실장은 "판사의 성향에 트집잡히지 않도록 치밀하게 준비하라"거나 "국가적 행사 때 '법원도 국가 안보에 책임이 있다'는 멘트가 필요하다"는 지시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변협 선거에도 '애국단체의 관여가 요구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고 방송은 보도했다.
또 청와대가 보수단체를 동원해 야당 의원을 고발하도록 부추겼다는 정황도 비망록에 등장한다. 박지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 정부 비선 실세는 만만회(박지만·이재만·정윤회)'라는 발언을 한 열흘 뒤인 2014년 7월 5일, 같은 '장' 표시 아래에는 "박지원 항소심 공소 유지 대책 수립", "박사모 등 시민단체 통해 고발"이라는 메모가 적혔다. 같은달 7월 17일 메모에는 "만만회 고발"이라고 기록됐다. 실제로 같은달 '새마음포럼' 등의 단체는박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왕(王)실장'으로 불린 김 전 실장이 청와대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일종의 '정신 교육'을 한 정황도 있다. 방송에 따르면, 김 전 수석의 메모에는 김 전 실장이 "5.16에 대한 평가는 공통된 인식"이 있어야 한다며 "(5.16은) 애국심 가진 군인의 구국의 일념"이었고 "당시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가난했고 안보 위기 상황"이었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적혀 있다. 김 전 실장은 그러면서 "역사적 평가에 맡길 일이긴 하지만 현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알아둬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 비망록 내용이라는 것. 김 전 실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비망록 내용 전반에 대해 "그런 말 한 일 없다"며 "그런 사실 없으니까 기자가 알아서 판단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이 보도 내용을 언급하며 "이번 사건을 '박근혜 청와대 헌정유린·정치공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며 "당에서 '김기춘 국정문란 사건 진상규명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은 이 위원회 위원장에 조배숙 의원을, 위원으로 김경진·이용주·송기석·손금주·김삼화 의원을 선임했다.
박 위원장은 비망록의 법원 관련 내용에 대해 "청와대가 나서서 법원과 사법부를 길들이고, 법조 삼륜 중 한 축인 대한변협 선거에 개입한 흔적이 나타났다. 청와대가 헌법을 유린한 또 하나의 엄청난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김기춘이야말로 태어나지 않았어야 될 사람"이라면서 "사법부까지 이용해 정적을 제거하려 했던 공작정치의 부두목"이라고 규탄했다.
대한변협은 "지난 2015년 대한변협 협회장 선거에 청와대 등 외부로부터 어떤 지시나 개입이 없었으며, 동 선거에 애국단체 등이 관여한 바 없다"고 알려왔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박 위원장은 "우리 당과 함께 (박 대통령) 퇴진운동에 나서기로 작심했다"고 전날 국민의당 중앙위가 대통령 퇴진 당론을 채택한 것을 언급하면서 "12일 이후 우리 당이 어떻게 나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전적으로 박 대통령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 사건을 묻어가려 하고 한다"며 "트럼프는 트럼프고, 최순실은 최순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이용해 박 대통령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려 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고 야당을 인정하지 않는 오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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