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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우비'와 부검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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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빨간 우비'와 부검의의 진실

[기고] '외인사' 맞지만 부검은 필요하다?

최근 여러 경로를 통해 많은 의사들이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에 사인이 병사로 돼 있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논란을 끝내기 위해 의사를 믿고 부검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걸 듣게 됩니다.


서울대학교 병원 특별조사위원회뿐만 아니라 의사협회의 발표를 포함해, 유독 주치의 한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의사들이 의학적으로든 상식적으로든 사인이 외인사, 즉 물대포가 확실하다는 데는 이론이 없는 듯합니다.


즉 일각에서 주장하듯 사인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하는 부검이 아니라 그저 논란(?)을 끝내기 위한 형식적 절차, 일종의 통과의례로서의 부검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부검이 고인에 대한 누가 될 수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남은 유족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현재 검경이 정말 논란을 끝내기 위해서, 단지 형식적으로 종결하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남발하면서까지 기를 쓰고 부검을 강행하려고 한다고 이해하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정권이 부검을 하려는 의도가 어디에 있건, 누가 부검의가 됐든 의사이기 때문에 무조건 공정하게 부검할 수밖에 없다고 국민들이 믿어야 한다는 뜻일까요? 혹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의사들 스스로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일까요?


권력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부검의가 진실을 밝힌 많은 사례들과 함께, 부검의가 결국 권력의 요구대로 의혹을 덮어버렸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례들도 한둘이 아닙니다. 본인들의 전문가적 자부심은 당연히 존중한다고하더라도, 저로서는 정작 부검을 직접 맡게 될 국과수 부검의의 공정성까지 보증하겠다는 자신감에 대해서까지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9월 25일 이뤄진 백남기 농민의 시신에 대한 검시 전 과정에 참관했습니다. 애당초 검찰이 검시를 요청해왔을 때, 유족과 대리인으로서의 변호사 및 백남기 대책위(현재는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살인정권 규탄 투쟁본부'로 전환)는 이미 사망 원인이 확실한 상태에서 만에 하나, 부검의 필요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로 이해하고 이에 협조하여 검시가 이뤄졌습니다.

당연히 검시를 통해 다른 사망 원인의 의혹이 발견되면 부검을 논의하게 되겠지만, 반대로 아무런 의혹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굳이 부검이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 상식일 겁니다. 아니, 상식일 뿐 아니라 전문적인 법의학의 영역에서도 당연한 판단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 시간 가까운 세밀한 검시 끝에 국과수 부검의는 물대포 외의 다른 원인으로 추정될 만한 근거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부검이 필요없다는 결론이 아니라, 정반대로 육안 검시로 발견하지 못했으니 부검을 해야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검시 후 검사, 법의관과 유족 대리인들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검사는 노골적으로 '제3의 외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제3의 외력이 소위 '빨간 우비'를 말하는 거냐고 묻자 묵묵부답,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빨간 우비'란 즉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을 때, 이미 쓰러진 분께 계속 직사 물대포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이를 막기 위해 달려든 사람들 중 빨간 비옷을 입고 있던 한 분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 물대포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백남기 농민의 위로 엎어지는 장면이 영상에 찍혀 있습니다. 백 번 천 번을 봐도 물대포에 밀려 엎어진 '빨간 우비'가, 누군가에게는 어설프게 엎어지는 듯 보이면서 실제로는 백남기 농민에게 치명상을 입힌 엄청난 무공과 '연기력'의 소유자로 보였나 봅니다. 아니, 그렇게 보고 싶었나 봅니다.


그것도 처음엔 주먹으로 가격했다고 우기더니, 정작 영상에서 보이듯 어설프게 엎어지는 자세로는 그 정도 충격을 줄 수 없는 게 확실해 보이자 이번에는 엎어지면서 타고 올라 무릎으로 안면부를 강타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희뿌연 물살 속에서 그걸 알아볼 수 있다니, 세상엔 600만 불의 사나이 못지 않은 초인적 시력을 가진 분들이 실제로 있나 봅니다.

이런 얘길 지어내는 인간도, 거기 조금이라도 솔깃해 하는 사람들도, 무협지를 너무 많이 읽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안면 가격으로 두개골절을 일으켜 뇌가 부풀어 올라 실제로 사망에 이를 지경이 될 만큼 부상을 입었다면, 가격 당한 안면부의 상태는 어땠을까요? 멍이 든 수준을 넘어서, 거의 바스라지다시피 했을 것입니다.

물대포가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하지만, 물대포와 무릎에 맞은 흔적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얼굴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치명적 내상을 입힐 수 있는 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협지에나 나오는 초절정 내공 고수의 영역입니다.


물대포는 짧은 순간의 충격으로 두개골 골절을 일으켰지만, 무릎으로 가격한 만큼 넓은 부위의 안면 손상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그 차이를 구분하는 게 법의관입니다. 고인에게 가해진 실제 충격의 흔적이 시신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검사와 국과수 법의관의 검시 과정에서 그대로 확인됐습니다.

어쩌면 검사와 법의관은 가족 검시를 통해 이런 안면부 함몰의 흔적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법의관은 물대포에 의한 사망 말고는 그 어떤 아무런 의혹의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설령 1년 가까운 치료를 통해 성형의학적으로 회복이 됐다고 해도, 칠순 노인의 피부에 그 흔적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분명한 것은, 상세한 의료기록 어디에도 안면부 훼손 진단이나 이런 성형 치료를 했다는 대목이 없습니다. 따라서 굳이 물대포 외의 다른 원인을 찾지 못했으므로 부검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법의관은 육안으로 찾지 못한 원인을 찾기 위해 부검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애당초부터 부검을 정해놓고 이유를 찾기 위해서 검시를 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장소가 어디가 됐든) 부검을 하게 된다면 바로 그 부검을 맡게 될 이 국과수 법의관을, 수많은 의사들이 직업적 동료라는 이유만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증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의사를 믿지 못하느냐고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국민들이 더 답답한 심정입니다.


사망진단서가 잘못됐다(물대포가 사망 원인이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어쨌든 의사를 믿고 부검으로 논란을 끝내자는 의사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경찰은 왜 죽어라고 고인의 시신을 부검하려고 들까요?


경찰 스스로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 때문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혹시나 하는 일말의 미련 때문에?


만에 하나 이런 얘기에 솔깃해 한다면, 여러분이야 말로 대책 없는 분들입니다.

탐정소설을 읽으며 범인을 추리할 때, 우리는 범죄의 동기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습니다. 경찰에게 증거 인멸(사인 왜곡)의 동기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또는, 실제로 그런 전과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스스로에게 솔직히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느냐 않느냐만 남아 있을 뿐.

더 나아가, 사인 규명을 요구하면서 부검을 거부하는 게 모순이란 주장(이라고 쓰고 선동이라고 읽어야 할 겁니다만)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국민을 바보로 아는 왜곡입니다.

지금 가족과 국민들이 요구하는 '규명'은 경찰이 규정을 어기고 살인 물대포를 쏘아댄 배경, 경위 등에 대한 것이지 백남기 농민이 왜 어떻게 죽었느냐가 아닙니다.


서울대병원 특별조사위원장 이윤성 교수가 이미 확실히 표현했듯이,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외인사(물대포)라는 건 '너 한국인 맞냐'는 질문 만큼이나 무의미한 얘기입니다. 전 국민이 알고 오로지 권력만이 부인하고 있는 마당에, 이런 걸 의혹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기나 한 것일까요?

국정감사에서 한 야당 의원이 출두한 법원장에게 '법원이 정치를 해서야 되겠느냐'고 질타했습니다. 부검과 무관하게 사인이 확실하다는 점에도 동의하면서, 단지 불순한 의도로 사인을 왜곡하기 위해 부검을 해야겠다는 주장과의 사이에 기계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형식적 절차로서 (더군다나 이미 공정성을 스스로 부정한 부검의를 믿고) 부검을 하자는 말씀은 또 다른 정치가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사인을 조작하겠다는 확실한 동기와 의도, 전과까지 갖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까요?

병사가 아닌 외인사라고 정확히 판단하는 냉철한 이성과 함께, 지록위마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 앞에 분노하고 비판하는 뜨거운 가슴을, 지성과 양식을 지닌 전문가들께 부탁드립니다. 이를 통해서만 여러분의 양식과 권위는 국민들에게 존중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존중 받게 되기를, 진심으로 우리 모두를 위해 간절히 기대합니다.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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