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제주시에 있는 청소년문화카페 '생.느.행'에서 '10대들의 열린 노래방'이라는 이름으로 연달아 세 번의 행사를 마쳤다. 10대 청소년 다섯 명이 자신에게 소중한 노래를 소개하고 정성 들여 부르는 자리다. 빔프로젝터로 노래방 반주 영상을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간소한 무대지만, 분위기는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못지않다. 요새는 스마트폰으로 가사를 보면서 따라 부르다 보니, 가사를 외워 부르는 것만으로도 큰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노래 솜씨가 너무 뛰어난 학생들은 참가자로 잘 받지 않는다. 그런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노래 부를 기회가 많다.
10대들은 대부분 노래하기를 좋아하지만, 답답한 노래방 외에는 마땅히 노래 부를 기회가 없다. 그래서 참가자 모집은 전혀 어렵지 않다. 평소 소심해 보이는 학생들도 "멋진 카페에서 노래 한번 해볼래?" 하는 제안에 솔깃해한다. 물론 설명을 잘해야 한다. "불러 봐, 어떤지 한번 봐줄게"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 누구든지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근사한 무대라는 점을 말이다. 홍보는 SNS에 포스터 한 장 올리는 것이 전부다. 그 이상 홍보를 열심히 했다간 50석 규모의 카페 공간이 부족할 수 있다.
행사를 기획하게 된 것은 10대들이 대중음악의 작품성에 민감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10대들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가? 그건 나의 10대 시절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귀에 꽂히는 순간, 두뇌의 모든 회로가 몰입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 음악은 필히 리듬과 멜로디 조합의 음악적 완성도가 높아야 한다. 어른들이 듣기에는 그저 최신 인기가요인가 보다 하지만, 10대들은 자기도 모르게 음악적 완성도를 분간하고 있다. 또한 노래와 가수의 태도에서 예술적 의지까지 느껴진다면 금상첨화다. 10대들의 두뇌는 그런 음악과 인물에 반응한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10대들을 사로잡은 밴드 혁오의 '위잉위잉', 발표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인기 있는 윤미래의 '검은 행복', 느긋한 레게 리듬에 언어적 재치를 담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ㅋ'이 그런 작품이다.
나는 2012년부터 전국의 중·고등학교, 대안학교, 청소년센터에서 대중음악 감상 수업을 해왔는데, 최근에는 대규모 강의를 할 때 사용하는 PPT에 미국 가수 안드라 데이(Andra Day)의 짧은 노래 영상을 넣어 두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과 로자 파크스(Rosa Parks)의 '버스 보이콧(bus boycott)' 운동에서 비롯된 1950년대의 비폭력운동을 설명하면서, 그 시기에 탄생한 흑인의 소울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영상 속에서 안드라 데이가 '라이즈 업(rise up)'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강당에 모인 수백 명 학생들의 눈빛은 순식간에 맑고 고요해진다. 내가 예상한 대로다. 작은 규모의 수업에서 이미 중학생들의 반응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런 요령이 붙으면, 10대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음악 영상을 찾아내고 실험하는 것이 점점 더 재밌어진다. 성공률이 높아질수록 학생들은 나를 신뢰하고 작품에 대한 풍부한 해설을 기대한다.
10대들의 감각적인 음악성
10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풍부한 해설을 덧붙여줄 수 있는 어른을 좋아한다. 가령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었던 힙합 프로그램 Mnet <쇼미더머니5>에 나오는 음악과 래퍼들의 모습에 빠져든 학생들이 많다. 이건 절호의 기회다. <쇼미더머니> 얘기만 꺼내도 많은 학생들이 귀를 쫑긋 세운다. 일부 래퍼들의 폭력적인 가사가 예술적으로 쓰인 것인지, 필요 이상으로 거칠게 쓰인 것이지 분석해보고 존중과 경쟁의 균형점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다. 한국 랩의 혁신을 이끌어 낸 래퍼 비와이가 어떤 점에서 작품성을 지니고 있는지, 또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설명하고 힙합이 탄생한 배경을 바탕으로 미국 역사 속의 주요 사건들까지 살펴본다면 어떨까? 너무 지루해지지 않도록 조심은 해야겠지만, 평소 학교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학생들도 이런 얘기에는 눈을 반짝일 확률이 높다.
구석구석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볼 여지는 있지만, 래퍼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홀로 닦아온 기량을 맘껏 발휘하는 모습들은 멋이 넘친다. 래퍼 비와이가 가수 박재범과 함께 노래한 무대에서 비와이의 옷차림은, 화려한 박재범의 패션과 대조적으로 마치 쌀가마니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래퍼의 모습은 그렇다. 연예인처럼 보일 필요 없이, 오직 혼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정면 대결하는 존재다. 반면, 예선에서 진상을 부린 것으로 화제가 된 참가자들도 여럿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서 불행해진 사람들이다. 한창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설 10대들이 조심해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10대의 감수성과 감각은 나의 생활을 신선하게 만드는 데도 무척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서른 살이 지나고 나서는 새로운 음악을 감상하기 힘들고, 음악에서 느끼는 감흥의 빈도도 예전보다 훨씬 못하다. 한 미디어 연구가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사람들은 평균 33세부터 평생 새로운 음악을 감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개 인생에서 음악에 가장 심취하는 시기는 10대인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자꾸만 옛날을 추억하며 "지금보다 예전 음악이 정말 좋았지"라는 말을 무심결에 하게 된다.
좋은 음악은 지금도 비처럼 쏟아지고 있다. 나는 서른 중반에야 번뜩 그걸 깨달았다. 10대들과 수업을 하면서 그들의 추천 음악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인 덕분이다. 추천 음악이란 '두고두고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음악'을 얘기한다. 내 안테나에는 잡히지 않았던 좋은 음악을 단숨에 알게 되니, 무척 효율적이다. 최신가요를 몽땅 들어보고 그중에 좋은 곡을 꼽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10대가 추천한 노래들은 1차적으로 필터링이 되어 있다. 말로는 가수의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썼다고 해도, 감각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게 보통이다. 제아무리 외모가 출중해도 음악적 매력이 떨어지면 10대들은 감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생 때 인기가수 룰라의 팬이었다. 새 음반이 나오자마자 아껴둔 용돈으로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골목길에서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 내 판단에 따르면 룰라는 다른 가수들에 비해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고, 그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요즘 가장 '핫'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인기 비결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추천하는 음악 수업
10대들에게 받은 추천 음악을 살펴보면, 발표한 지 2년이 넘지 않은 가요의 비중이 가장 높다. 하지만 스무 명이 넘는 교실에서 각자의 추천 음악을 종이에 받아 한곳에 모아보면 상당히 다채로운 음악들이 등장한다. 김광석과 이선희 노래도 있고, '곱등이송'처럼 유튜브에서만 들을 수 있는 희한하고 감동적인 노래도 있다. 주로 팝을 즐겨듣는 친구들의 추천 음악도 전체의 다양성을 살려준다.
그런데, 음악이란 개인 취향과 밀접해서 이런 다양성이 서로를 가르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너와 나는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가 다르니 어울리기 힘들다'는 식이다. 그러나 한 사람당 한 곡씩 추천 음악을 듣다 보면 서로 좋아하는 노래가 다른 이유는 서로가 가진 사연과 개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10대들과 함께하는 '대중음악 감상 수업'이 좋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에 일단 귀를 기울여보는 경험만으로도 무언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태도를 기르게 된다.
음악성이 높은 곡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공유되면서 전반적인 교양 수준이 한층 높아지는 경험도 무척 짜릿하다. 이런 식의 수업은 특히 비하 발언이 습관적인 학생에게 좋다. 최근 한 중학교에서 대안교실 수업을 맡은 적이 있는데, 걸핏하면 짜증을 내고 친한 친구에게도 시비조로 얘기하는 남학생 다섯 명이 그 대상이었다. 세 명이 진지해지려는 낌새가 보이면 두 명이 방해하고 수시로 성적 농담을 일삼아서 수업 분위기를 만들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러던 중 놀랍게도 영화 <노예 12년>(스티브 맥퀸 감독, 2013)에서 흑인 주인공이 '요단강아 흘러라'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다섯 명이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몰입했다.
이들의 순간적인 침묵과 집중을 불러낸 또 다른 노래는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애잔하고도 활기찬 감성을 불러오는 레게 뮤지션 스컬의 '러브 인사이드'와 '쓰레기'였다. 내 경험에 의하면 무언가 마음이 공허하고 짜증이 많아 보이는 남학생들이 스컬의 음악에 반응을 보인 경우가 많다. 자메이카 흑인들의 서글픈 역사가 깃든 음악과 어떤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을 닮은 음악에서 깊은 위안을 얻으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의 10대들이 알앤비(R&B), 소울(SOUL), 펑크(PUNK), 힙합(HIP-HOP)과 같은 흑인 음악 장르에 쉽게 반응하고 감동을 받는 현상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1990년대까지는 세계적으로 백인 뮤지션 위주의 록 음악계열이 대중음악을 대표했다. 당시의 대중음악 애호가라면 기억할 것이다. 대표적인 록과 메탈 밴드의 이름 정도는 줄줄이 읊어줘야 했다는 걸!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에게 "소울이 장난 아냐!"라고 말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일찍이 미국의 흑인 시인 랭스턴 휴스는 그의 작품에서 소울을 '흑인의 영혼'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했고, 노예 시절부터 이어온 흑인들의 창법은 소울이라는 기가 막힌 음악 장르로 탈바꿈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흑인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이렇게 높은 적은 없었다. 흑인을 닮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SNS에서는 '흑 형'과 '흑 언니'의 동영상이 화제다. 개인적 견해로는 흑인이라는 인종에 대한 호감이라기보다는 우리 안에 내재한 '아프리카성(性)'의 발현이 아닐까 추측한다. 현재의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도 있고, 아프리카 전통의 리듬 연주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도 재미있고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니까.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미국 아프리카인들의 고달픈 삶을 바탕으로 탄생한 현대의 대중음악은 늘 10대들의 환호와 지지를 힘입어 함께 성장했고 혁신을 이뤘다. 나는 이 점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예나 지금이나 10대들은 새로움을 갈망하며, 숨통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 속에서 자유를 얻으려고 음악을 듣는다. 유행에 민감한 10대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음악을 이용해서 상업적으로 한몫 챙기려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가 보기에 10대들이 호락호락 넘어가는 편은 아니다. 10대들은 아직 현실의 욕망에 찌들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돈, 돈 하지만 <쇼미더머니>를 시청하는 소년도 "머리 아닌 영혼이 가는 대로 가"라는 비와이의 래핑(rapping)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들고 만다. 나는 그런 10대들을 '문화적 협력자'로 여기며,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으로부터 예술적 욕구를 증폭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루가 멀다고 흉흉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 요즘 시대에, 우리 삶의 풍경을 변화시키려면 10대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들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여러 학교에 강연을 다니다 보면 너무나 많은 어른들이 청소년을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떤 곳에선 규율을 잘 따르면 칭찬하고 과자 같은 선물을 주기도 한다. 학생 수가 많아서 강당에 모이는 속도가 더딘 학교에서는 초반부터 윽박지르는 경우도 잦다. 난 그 모습이 10대에 대한 일종의 모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음악은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신병교육대 같은 강요된 침묵이 공기의 흐름마저 멈추었을 때, 음악이 흘러나오는 영상으로 강의를 시작하면 학생들의 눈빛은 금세 편안해진다.
며칠 전 꿈을 꾸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카세트플레이어 앞에서 얼어붙은 채 들었던 노래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듣는 꿈이었다. 지금까지 대중음악은 나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을까?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향유할 수 있는 문화 장르가 다양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는 음주·가무 유흥업소 말고, 일상적으로 가무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평범한 사람들이 존중받고 반짝일 수 있는 삶의 무대가 넓어진다.
9월에 재개할 '10대들의 열린 노래방'을 찾아올 청소년들 또한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대중음악은 누구든지 정성을 다하면 실력과 상관없이 최고로 존중해준다는 걸. 내가 대중음악을 다른 음악보다 사랑하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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