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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동자 외면' 정규직 파업, 설득력 있나

[기자의 눈] 조선 3사 노조, 이미 지고 들어가는 싸움을 하나?

한국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90년 18.4% 이후 계속 하락세를 보인 노조 가입률은 2015년 기준으로 12.3%, 34개국 중 31위다. 노조가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조직된 노조도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비정규직은 늘어났지만 노조 가입률은 밑바닥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2015년 8월)에서 비정규직은 868만 명(45.0%)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비정규직 노조 가입 의향과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16.9%인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2.8%에 불과하다.

ⓒ정기훈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노조
노동시장은 기업 규모, 고용 형태에 따라 분리돼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따른 대우나 혜택은 정규직에 비해 열악하기 그지없다. 비정규직 노조가 없으니 노조라는 조직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런 추세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악순환이다.

반면, 전체 노동시장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 문제 해결에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되레 자기네 기득권을 지키려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방해하는 일도 다반사다. 분절적 노동시장에서 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의 당장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을 고용의 안전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됐다. 정규직 노조 입장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지면 자신들의 고용 안전판은 사라지는 셈이다.

노동조합에는 조합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뿐 아니라 사회적 역할도 있다. 1987년 이후 민주 노조 활동이 활발할 때는 조합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역할이 가능했다. 인간다운 처우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만으로도 노조는 사회적 역할을 다했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노동자의 처우 개선, 즉 '조합원의 이해 대변'은 노조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과거와 달리 이미 기득권을 소유한 대기업 정규직 노조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노조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이익집단이기는 하나, 이것에만 매몰될 경우, 자칫 노조의 또 다른 역할, 즉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역할 부재가 쌓이면 노조에 '조직 이기주의'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그러면서 노조는 자연히 사회와 연계를 맺고 대중의 이해를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정당성에서 이미 지고 들어가는 싸움

이야기를 돌려보자. 현대중공업 그룹의 조선 3사(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조선) 노조는 10일 공동 파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그룹 전체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공동파업이란다. 이들 그룹 조선 3사 노조가 공동파업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사 노조는 공동 파업에 들어갈 경우 파업 일정 조율 외에도 합동 기자회견 및 대규모 집회, 노조 간부진 상경 투쟁도 벌인다는 계획이다. 현대중공업 그룹 내 노조 중에는 현대중공업 노조만이 6차례에 걸쳐 부분파업을 이어오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노조와 공동파업도 진행했다.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파업이다. 그들의 권리를 위한 파업이니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다만, 주변에 차별받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주장할 경우,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지금도 현대중공업에서는 하루가 멀게 하청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있다. 하청 노조가 있지만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노조 가입률이 매우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해고를 막일 길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미약한 하청 노조라도 회사는 이번 기회에 싹을 뽑아내려는 모양새다. 하청 업체 폐업을 빌미로 조합원들을 체로 걸러내듯 솎아내 공장 밖으로 쫓아내고 있다. 업체가 폐업되면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고용은 다른 업체로 승계되는 게 업계의 보편적인 상식이지만 폐업 이후 하청 노조 조합원들은 고용승계를 받지 못하고 있다. (☞ 관련기사 : "현대중공업, 하청노조 파괴 시나리오 가동")

정규직 노조가 이런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에 눈을 감은 채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파업을 한다? 이는 이미 정당성에서부터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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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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