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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왜 4할 타자가 사라졌는가?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풀하우스>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고생대는 캄브리아기-오르도비스기-실루리아기-데본기-석탄기-페름기로 나뉜다. 이 가운데 동물이 육상으로 진출한 시기는?"

이 문제에 대해 고생물학을 배운 이들은 거침없이 데본기를 선택한다. 어류가 틱타알릭을 거쳐 양서류가 된 시기가 바로 이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틀렸다. 절지동물은 이미 실루리아기에 육상으로 진출했다.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까닭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인류'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박테리아에서 시작해서 인류에 이르는 어떤 한 개의 경로를 진화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화는 이런 식으로 생물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년)는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여덟 마리 새끼 돼지> <플라밍고의 미소> <판다의 엄지>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등 다양한 자연학 에세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최고의 과학 저술가다. 그는 497편의 논문과 101편의 서평 그리고 300여 편의 자연학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가 펴낸 22권의 저서는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위에 열거한 책들처럼 자연학 에세이를 엮은 것들이 상당수다. 그리고 각 잡고 앉아서 써내려간 책들이 있다.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Wonderful Life)>(1989년)와 <풀하우스(Full House)>(1996년)가 여기에 속한다.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김동광 옮김, 경문사 펴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진화는 우연의 산물이다.' 사실 이것을 인정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과학은 법칙을 이야기 하려 하는데 우리 인류를 비롯한 생명의 등장이 우연성에 의한 것이라니….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다보면 우리는 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가 던진 "만약 생명의 테이프를 되감아서 버제스 시대부터 다시 돌렸을 때 과연 인간이 나타날 수 있을까?"라는 유명한 질문에 우리는 그가 원하는 대로 "아니다"라고 대답하게 된다.

▲ <풀하우스>(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풀하우스>(이명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역시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납득이 가는가? 우리가 박테리아보다 진보하지 않았다는 말일까?

스티븐 제이 굴드는 <풀하우스>를 쓰기 위해 15년 동안 담금질을 해왔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몇 가지 갈래가 있는데 ①진화 경향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 ②통계학적 깨달음 ③야구에서 왜 4할 타자가 사라졌는가하는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그것이다. 각 단계는 '유레카'의 순간이었고 그 유레카의 순간에 눈에 끼어 있던 안개와 개인적인 선입견이 사라졌다. 그리고 '진화란 위나 아래로 움직여 가는 어떤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정도가 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독자들이 자신의 에세이집처럼 이 책도 끝까지 읽어낼지를 걱정했지만 약간의 참을성만 있으면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책은 시종일관 '야구에서 왜 4할 타자가 사라졌는가' 하는 문제와 '생명의 역사에서 진보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축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변이'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 소화가 되고 관습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모순들이 해결된다. 그리고 생명의 역사에서 진보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며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진 적이 별로 없다는 그의 이론이 납득된다.

포커 게임 용어인 풀하우스를 제목으로 삼은 까닭은 "다양한 개체들로 이루어진 전체가 자연의 참모습"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흔히 평균값이 어떤 집단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평균값이 시스템의 종류와 추상적 본질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고 인간의 복잡성 같은 극단적인 예를 들면서 세계를 서술하려고 한다. 굴드는 우리에게 이런 습성을 버리고 세계는 '변이'로 이루어졌다고 고백하라고 요구한다.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와 <풀하우스>를 통해 스티븐 제이 굴드는 우리에게 인간을 다른 생물과 분리시켜 우월감을 느끼는 전통적 관념을 버리고 인간을 생명의 거대한 역사 속에서 나타난 우연한 존재로서 다른 생물들과 하나로 보는 흥미로운 관점을 택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두 책의 제목을 이용해 하나의 슬로건을 만들었다.

"우리 행성이 거쳐 온 생명 다양성의 역사가 만든 풀하우스(Full House) 안에서 정말 멋진 삶(Wonderful Life)을 누리라."

그런데 <풀하우스>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가 주장하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말이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박테리아보다 진보하지 않았다는 말일까? 나같이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그의 주변에도 많이 있었던 듯하다. 굴드는 책에서 "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장 복잡한 생물의 정교함이 증가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단, 이렇게 극히 제한적으로 사소한 사실을, 진보가 생명 역사의 추진력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에 맹렬히 반대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굳이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플라톤적 사고를 버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고백건대, 나는 아직도 여전히 못 버리고 있다.

15개 챕터로 이루어진 <풀하우스>의 본문은 310쪽 정도지만 핵심 챕터인 '박테리아의 힘'만 읽으면 이 책을 다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챕터는 길이가 무려 70쪽이나 되는데다가 14번째 챕터로 아주 뒤에 있어서 참을성 있게 앞의 13 챕터를 읽어야 한다는 게 함정.

요지는 간단하다. '생명의 역사에서 단순한 형태는 언제나 그러했으며, 아직도 여전히 생명계 전체에서 가장 우세하다.' 여기서 단순한 형태란 바로 박테리아를 말한다. 생명은 당연히 자연발생적인 조건에서 최소한의 복잡성을 가지고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최소한의 복잡성을 그는 '왼쪽 벽'이라고 칭한다.

생명의 역사 38억 년을 1년으로 축약한다면 진핵세포가 생긴 시점은 7월초, 유성생식이 생긴 시점은 9월이고 다세포 생명이 생긴 시점은 10월 말이다. 이렇게 보면 지구 생명 역사의 절반 이상은 박테리아의 독무대라고 할 수 있다. 박테리아는 태초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평균값이 아니라 최빈값에 해당하는 박테리아는 언제나 생명의 성공을 잘 대변해 왔다. (그는 시종일관 이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38억 년 전에 살던 박테리아와 지금 살고 았는 박테리아는 전혀 다른 박테리아라는 사실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

생명이 성공적으로 팽창함에 따라 분포 곡선은 오른쪽으로 확장되어 나간다. 하지만 분포 전체의 꼬리에 불과한 최대값으로 분포 전체의 성질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가장 끝에 인류가 있다.) 왜냐하면 오른쪽 꼬리는 아주 작은 것이며 아주 소수의 종들만이 거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오른쪽 꼬리의 성장은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서 서술한 대로 우발적인 결과이지, 복잡한 형태가 가진 자연 선택적 우월성 때문에 생긴 필연적 결과가 아니다. 생명의 <풀하우스>가 결코 '박테리아'라는 최빈값의 위치에서 움직인 적이 없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우리에게 제발 인간 중심적인 편협한 사고를 버리라고 요구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편협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진화는 다양성의 증가다.' 인정한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잘 모르겠다. 진화가 다양성의 증가인 것은 확실하지만 진화가 진보다, 진보가 아니다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내 대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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