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이(가명) 사건'에 대해 민사 재판부가 '성매매'로 결론 내리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같은 판결은 앞서 열린 형사 재판에서 하은이의 장애를 고려하지 않았던 점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하은이 사건'이란, 13세 지적 장애 아동에게 숙박을 대가로 다수의 남성이 차례로 성관계를 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지적 능력이 7세 수준인 하은이는 2014년 우연한 계기로 스마트폰 채팅앱을 통해 '재워주실 분을 구한다'며 채팅 창을 개설했고, 차례로 남성 7명과 모텔 등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뒤늦게 하은이를 찾게 된 가족은 하은이와 관계한 남성들을 상대로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했으나, 지난 4월 28일 서울서부지법 민사 제21단독은 해당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숙박'이라는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의사 결정 능력을 가진 자발적 성매매로 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19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하은이 사건' 민사 재판에 영향을 미친 형사 재판에서 하은이의 지적 수준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서울동부지법 성폭력사건 전담 재판부 형사9단독 재판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상 성매수등 혐의로 기소된 '하은이 사건' 피의자 중 한 명인 양모(25) 씨에게 벌금 4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은 초범이고 범행 인정하며 반성하는 점, 그밖에 피고인의 연령, 직업, 성행, 가족관계, 범행 전후의 정황 등 기록상 나타난 모든 양형요소를 참작"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 판결에서 하은이가 7세 지적 수준에 해당하는 아이큐(IQ) 70의 경계성 지적장애아인 점, 성적 자기결정능력을 행사할 능력이 있는지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에 대해 동부지법 관계자는 "판사가 직접 하은이와 대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애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라며 "검찰에서 성매매로 기소했으면 재판부는 기소한 내용이 맞는지를 판단할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공판 과정에서 '하은이의 진술서'와 '진술 속기록', '아동 성폭력 사건 전문가 의견서' 등이 재판부에 제출된 것으로 확인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전문가 의견서 첫장에는 "하은이에게 경계성 지능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적혀 있었다.
또, 검찰 또한 'IQ 70에 7세 정도 수준'이라는 기록을 재판부에 보냈다고 밝혔다.
<노컷뉴스>는 "재판부가 이같은 소견을 면밀히 검토했다면 애초에 성폭행으로 고소된 이 사건이 단순 성매매로 규정되지는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며 "이를 무시한 판단은 민사재판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13세 지적장애아에게 자발적 매춘녀라는 낙인을 찍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은이 사건에 대한 형사 및 민사 판결을 두고, 각계에서는 '반 인권적'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원이 이런 판결을 해서는 안 된다"며 "만13세 2개월의 지적장애아가 어떻게 성매매를 했다고 판결할 수 있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상고심에서 적정한 결론이 도출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애인 단체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는 18일 성명서를 통해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들이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보다 강력하게 죗값을 치를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을 빌미로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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