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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철도 붐이 공인회계사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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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철도 붐이 공인회계사를 낳았다

[프레시안 books]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공 재정 관리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이 개념을 '오이코노미아(oikonomia)'라고 불렀다. 경제학(economics)이라는 말의 어원이다. 경제학의 출발은 재정 관리, 곧 회계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이 회계의 중요성을 알았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도 엄격한 회계 관리와 이에 도전하는 부정부패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러나 왕정 시대에 들면서 회계의 중요함은 잊혀졌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1년에 두 번씩 왕실의 수입과 지출, 자산 내역을 기록한 회계 장부를 받았다. 왕정 시대에 이처럼 회계에 관심을 가졌던 이는 루이 14세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사치에 회계가 방해물이 됨을 알았다. 이후 보고는 사라졌다. 국고는 급격히 파탄의 길을 걸었다.

기업 재무부에서 일하지 않는 이도,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도 '회계는 기업의 언어'라는 말 정도는 안다. 그러나 회계가 실은 현대 정치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점에 주목하는 이는 얼마 없다. 이래선 안 된다. 바로 얼마 전 일어난 일이 반면교사다. 2008년 월스트리트의 탐욕적인 금융업자들이 파생 금융 상품을 이용해 카드로 만든 집을 지었으나,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증권거래위원회(SEC)도, 회계법인도 이 작당모의를 몰랐다. 세계 경제가 큰 위기에 빠진 후에도 제대로 된 회계 감사도, 강력한 규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와 회계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이제 전 지구인이 그 영향 아래에 놓여 있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제이컵 솔 지음, 정해영 옮김, 메멘토 펴냄)는 역사 연구에서, 정치에서 쉽게 간과되는 회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세상을 바라본다. 회계가 인류 문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려주는 생생한 역사적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회계가 정치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 역사는 회계로 세워졌다는 시각까지 갖게 된다.

고대 로마제국이 대표적 사례다. 중세 시대에 들어 복식부기(자산과 자본의 변화 과정을 동시에 기록하기 위해 돈의 드나듦을 대변과 차변으로 이중 기록하는 회계 방식. 현대 회계의 기본 개념으로, 가계부에 쉽게 사용하는 단식부기와 비교된다)라는 현대 회계의 기초 개념을 정립할 이 뛰어난 상인들은 일찌감치 회계로 국가 경제를 통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이에 정부 재정은 물론, 개별 가정의 가계부까지 국가가 감시했다.

아우구스투스는 회계 장부인 라티오나리움(rationarium)의 중요함을 일찌감치 알았고, 제국의 경영을 위해 국고를 제대로 관리하는 황제였다. 아우구스투스는 회계 장부가 중심이 된 <업적록>을 제국의 방방곡곡에 게시했는데, 기록에는 제국의 군대가 사용한 돈이 얼마이며, 이중 황제의 호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얼마인지, 해당 마을에 투자한 돈은 얼마인지 등이 모두 기록되었다. 아우구스투스는 회계를 제국의 관리 도구이자,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 아우구스투스 이후 제국 회계 장부 공개는 전통이 되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아우구스투스가 회계 장부를 워낙 중요하게 생각해, 친히 장부를 손수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13세기 독립적 도시 공화정을 세운 이탈리아 북부 상인들이 역사의 도약을 이끌어낸다. 1202년 피사의 상인이었던 레오나르도 피보나치는 아라비아 숫자를 활용해 산반(주판)을 상인 사회에 가르쳤다. 곧 주산은 이탈리아 도시 공화국 상인의 상식이 되었다.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 가가 피렌체를 지배할 때, 지역 학교의 절반이 주산 학교였다.

1340년 무렵 이탈리아 사람들은 복식부기와 환어음, 해상보험을 발명했다. 피렌체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피렌체의 거상 다티니는 죽을 때 12만4549부의 상업 서신과 573권의 회계 장부와 원장을 남겼다. 장부에는 그의 딸이 결혼했을 때 차린 50가지가 넘는 요리가 무엇이었는가도 세세하게 기록되었다.

재정 계산을 기록하고, 내부적 책임성을 명확히 한 복식 부기 시스템은 도시 국가 시대의 출현의 촉매가 되었다. 그러나, 이 혁신적 제도가 정부에까지 대대적으로 활용되는 데는 600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아직 신은 살아 있었고 왕의 권력은 서슬 퍼랬다.

▲ 로렌초 데 메디치. 거대한 부를 일궈낸 코시모의 손자로 메디치가의 새로운 황제가 된 로렌초 디 메디치는, 가문이 이룬 르네상스 세계에 너무 깊이 빠졌다. 그는 플라톤과 사랑하다 메디치의 비즈니스 권력을 무너뜨렸다. 3세 경영은 이 때도 통하지 않았다? ⓒwikipedia.org

16세기 들어 공화의 가치는 무너지고 전제 군주 시대가 도래했다. 비즈니스와 고전 학문이 권력이었던 시대가 지고,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스페인 왕가의 점령지가 되었다. 회계의 자리는 없었다. '회계의 아버지' 루카 파치올리는 '회계 장부의 균형이 곧 신의 도덕적 평형'인 시대에 살았으나, 기사도는 균형이 아닌 복종을 원했다. 카를 5세의 스페인 왕국은 남아메리카와 네덜란드에 이르는 막대한 영토에서 끝을 알 수 없는 부를 거머쥐었으나, 이를 잘 관리할 회계의 중요성을 몰랐다. 카를 5세가 퇴위하던 1556년, 제국은 3600만 두카트의 부채에 매년 100만 두카트의 적자를 기록하는 초라한 곳간을 후대에 물렸다. 제국이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의 68%는 외국 은행가들에게 진 대출을 갚는 데 쓰였다. 무적함대는 빚으로 휘청이다 지중해에 가라앉았다.

책은 고대부터 20세기 대공황기까지,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대차대조표로 바라본다. 메디치 가의 성공과 몰락 과정은 마치 우리나라 재벌의 족벌 경영 이야기를 보는 듯하고, 네덜란드가 종교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를 움직이는 무역 국가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복식부기를 적극 활용했다는 이야기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준다. 부채 투성이인 왕실 회계장부를 공개하자 루이 16세의 목이 떨어진 대목 역시 현대사의 여러 순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모든 챕터가 흥미롭지만, 네덜란드의 국가 주식회사 시대 이후 자리잡은 회계가 본격적으로 현대의 모습을 띄게 되는 19세기~20세기 이야기인 제11장 '철도와 공인회계사의 탄생'은 특별히 짚을 만하다. 19세기, 세계는 미증유의 기술 혁신을 마주했다. 철도의 등장이다. 대영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철도가 불과 같은 속도로 깔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기술 혁신이 너무 가팔랐다는 데 있다. 철도 사업은 막대한 돈이 투자되고, '가동률'이라는 전에 없던 개념의 회계화를 필요로 했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제이컵 솔 지음, 정해영 옮김, 메멘토 펴냄). ⓒ메멘토
이 같은 변화는 필연적으로 부패의 여지를 남긴다. 당시 세상은 감가상각비를 회계장부에 기록할 방법을 몰랐다. 이 빈 틈을 이용해 모건, 굴드, 록펠러와 같은 악덕 자본가가 큰돈을 벌었다. 그 시대 이름 있는 자본가란 곧 기업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이, 주가를 조작하는 이였다. 철도 기업가 대니얼 드루는 "내부자가 아닌 이상 월스트리트에서 투기하는 것은 암소를 촛불에 비춰 보고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할 지경이었다. 새 시대의 상징 철도는 곧 부패의 상징이었고, 영원히 굴러가야 하는 거짓의 굴레였다. 정부는 철도 회사를 잡자니 재정이 걱정되었고, 놔두자니 역시 재정 누수가 발목잡는 딜레마에 빠졌다.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이 시대적 요구가 우리가 익히 아는 새로운 직업을 낳았다. 공인회계사다. 기업의 회계 장부를 감시하고, 거짓이 없음을 입증하는 도장 하나를 쥔 공인회계사는 근대 자본주의의 공식 규제자가 되었다. '신의 도덕적 균형'을 입증하는 새 시대의 판사요, 철학자가 탄생한 순간이다.

이 이야기는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공인회계사 모델은 과연 오늘날 잘 작동하고 있는가. 오늘날 기업이 여전히 분식회계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모두가 안다. 공인회계사는 비즈니스 세계 정의의 저울추를 버리고 기업과 한 몸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1997년의 외환 위기,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정보공학, 로봇공학은 새로운 철도 산업이다. 오늘날의 주식투자는 과연 얼마나 믿을 만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지나.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했는가>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흥미로운 역사서다. 우리가 쉽게 연결하기 힘든 미지의 두 세계(회계와 정치, 회계와 역사)를 연결해 거시의 새로운 각도를 선사한다. 회계를 그저 '전문가의 영역'으로 치부한 이라면, 특히나 필히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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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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