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69) 씨는 도쿄 도의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간다(우리의 PC방과 같은 일본의 인터넷 카페 중에는 숙박이 가능하도록 젖힐 수 있는 큰 의자를 구비한 곳이 많다. 적잖은 홈리스가 이곳에서 잔다). 그가 예상한 노후는 아니다. 그는 퇴직 전 연 500만 엔(5000만 원) 이상을 벌었다. 자녀도, 아내도 없었다. 62살에 조기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포함해, 3000만 엔(3억 원) 정도의 저축도 마련해뒀다.
갑작스런 심장 질환이 발목을 잡았다. 치료하느라 7년을 보낸 후, 그는 홈리스가 됐다. 안정적인 노후의 꿈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가토(76) 씨는 사이타마 현에서 월세 3만5000엔(35만 원) 짜리 방에 혼자 산다. 결혼한 적은 없다. 그가 40대일 때 부모님이 차례로 병에 걸렸다. 10년을 간병했다. 가토 씨가 늙자, 남은 건 매달 나오는 후생연금 9만 엔(90만 원)이 전부였다. 저축액 500만 엔(5000만 원)은 늙은 제 몸에 들어가는 약값으로 모두 사라졌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산나물을 캤다. 도쿄 도에 인접한 큰 도시에서 말이다.
이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노년의 삶은 순식간에 망가진다. 삶의 조건이 조금만 어긋나면, 곧바로 '하류 노인'이 된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2013년 국민 생활 기초 조사 개황'에 따르면, 일본 전 세대의 연간 평균 소득은 537만2000엔인데 반해 고령자 세대는 309만1000엔이었다. 노인이 된다고 쓰는 돈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의료비, 요양비 등 젊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목돈이 더 든다. 삶은 자연히 빈곤해진다.
<2020 하류 노인이 온다>(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홍성민 옮김, 청림출판 펴냄)는 섬뜩한 이야기를 담았다. 고령화 문제로 가뜩이나 출구 없는 미로에 빠진 일본에 빈곤 노령의 디스토피아가 현재화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일본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5%에 달한다. 이들이 빈곤의 늪에 빠진다는 건, 곧 일본 시민의 삶이 빈곤의 덫에 빠진다는 얘기다. '생활 보호 기준 정도 소득으로 생활하는 고령자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고령자'를 뜻하는 '하류 노인'이라는 말이 신조어로 등장하는 까닭이다.
저자는 비영리 단체 '홋토플러스'의 대표로서 12년간 빈곤 노인 상담을 이어왔다. 그 경험담을 바탕에 두고 다양한 통계 자료를 얹어 쓴 이 책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하류 노인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다.' 게을렀던 사람, 불운한 가정사를 겪은 사람만 불행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복지 제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일본에선 늙으면 곧 하류가 된다. 따라서 저자는 단언한다. 조만간 '노후 붕괴' 시대가 오리라고.
병에 걸리면 삶의 질은 급전직하한다. <2014년판 고령 사회 백서>에 따르면, 2010년의 유소자율(인구 1000명당 최근 질병이나 상해 등으로 인한 자각 증상이 있는 사람 중 입원자를 제외한 비율)은 471.1이다. 전체 고령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자각 증상을 호소한다.
늙으면 우리 상상 이상으로 질병에 걸리기 쉽다. 아직 젊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병이 완쾌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를 보면 의사인 저자가 노령의 병에 관해 이야기한다. 늙으면 병은 죽을 때까지 따라온다. 완쾌란 없다. 증상을 완화하는 게 곧 치료다. 약값, 병원비가 계속 빠져나간다는 이야기다. 이를 계산에 두지 못하면 생활은 순식간에 파탄난다.
이제 자녀의 돌봄도 기대하기 어렵다. 자녀들은 흩어졌고, 그들은 제 앞가림하기도 바쁘다. 자녀의 삶 역시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일본 노동자의 37.4%가 비정규직이다.
요양 시설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일본에서 특별 양호 노인홈(사회복지법인 등이 운영하는 시설로, 요양이 필요한 65세 이상의 고령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에 입소하려면 보통 3~5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운좋게 들어간다손 치더라도 간병인이 필요하다. 집에서 살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질은 떨어진다. 좋은 병간호를 받으려면 입소료만 1000만 엔(1억 원)에 달하는 유료 노인홈을 이용해야 한다. 돈 많은 사람만 이용 가능하다.
노령 빈곤의 문제는 노령 세대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일본 전 세대의 미래다. 이대로 간다면 지금 세대가 노인이 될 때는 더 비극적 미래가 기다릴 뿐이다.
우선, 청년 세대의 수입이 감소했다. 따라서 노인이 된 후 그들이 받을 연금 수령액도 줄어든다. 지금도 연금만으로는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현재 노동 연령이 은퇴 후 연금에 의존해서 생활한다면, 하루 두 끼도 떼우기 어려우리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특히 연수입 400만 엔(4000만 원) 이하의 노동자는 은퇴 후 하류 노인이 될 확률이 크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연봉 400만 엔은 현재 일본 노동자의 평균 소득 수준이다. 이들이 은퇴 후 받을 연간 합계 지급액은 약 198만 엔(1980만 원)이다. 월 환산액은 16만5000엔가량이다. 일본에서는 확실한 빈곤선이다.
은퇴 후 노동력을 상실한다면, 그는 하류 노인이 된다. 평균 연봉 수준의 노동자 미래가 이러니, 프리터 등 비정규 노동을 전전하는 이의 미래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미 현재 일본 노동자 세대 중 저축액이 100만 엔(1000만 원) 미만인 자가 12.4%에 달한다(전체 구간 중 가장 크다). 저축액도 없다면, 미래는 뻔하다.
은퇴 후 노동력을 상실한다면, 그는 하류 노인이 된다. 평균 연봉 수준의 노동자 미래가 이러니, 프리터 등 비정규 노동을 전전하는 이의 미래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미 현재 일본 노동자 세대 중 저축액이 100만 엔(1000만 원) 미만인 자가 12.4%에 달한다(전체 구간 중 가장 크다). 저축액도 없다면, 미래는 뻔하다.
저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가난은 내 책임'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세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장 먼저 조언한다. 모두의 미래가 가난한 삶이라면, 이건 사회 탓이지 내 탓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노령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일본 정부, 점차 심화하는 자유주의적 사고의 물결은 이런 사고를 막는다.
저자는 노후 붕괴를 막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책 후반부에 제기한다. 뭔가 새로운 것부터 제시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그는 현존하는 제도를 충분히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장 상담의 경험에서 나온 제안임이 틀림없다. 책 곳곳의 사례에서 저자는 노인들이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수혜가 있는 줄도 몰라 영양실조에 걸려가는 사연을 소개한다. 제도가 효과적으로 홍보되었더라면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생활 보호를 제도화해, 이를 보험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보험화하면 이용자는 수혜를 받는다는 생각 대신 내 권리를 찾는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인식 전환이 있어야 노인의 고독사, 기아사 등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또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정책 마련, (미래에 노인이 되는) 청년 세대의 빈곤 문제 해결, 불평등 개선 등 거시적 차원의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여태 우리가 본 이야기는 모두 이웃나라 일본의 비극적 사례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한국의 독자를 위로한다. 한국의 현실은 일본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안타깝게도 한국의 노인 복지 시스템은 일본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며 "연금 제도를 정비한 일본조차 빈곤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도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빈곤율은 48.6%다. 노인 절반이 빈곤층이다. OECD 34개 회원국 중 월등한 수준으로 1위다. 우리나라 노인 10만 명 중 55.5명이 자살한다. 역시 압도적 1위다. 먹을 게 없어 교도소에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노인의 뉴스가 더는 희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가 큰 문제라며 떠드는 일본의 현실은, 이미 한국에선 당연한 일이다.
한국 청년 세대의 미래 역시 일본보다 암울하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50%로, 역시 OECD 국가 중 1위다. 이 책에서 '심각하다'며 떠드는 일본의 통계는 16.1%다. 한국의 어린이 빈곤율도 16.3%에 달한다. 2014년 기준 일본의 상위 1% 계층의 소득 비율은 10%다. 한국은 12%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2위다. 홍종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 감사에서 공개한 국세청의 2013년도 통합 소득 백분위 자료를 보면, 같은 해 종합 소득과 근로 소득을 올린 한국인의 평균 연 소득은 3036만 원(300만 엔)이었으나, 중위 소득(전체 소득자 중 정중앙에 위치한 사람의 소득)은 1948만 원에 불과했다. 충격적 수준으로 빈부 격차가 심화했음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딱 중간 정도로 돈 버는 사람은 일본을 기준으로 하면 빈곤자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첫 손에 꼽힐 정도로 빈부 격차가 큰 나라고, 노인 복지 제도는 형편없는 수준의 국가다.
책을 감수한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일본학과 특임교수는 서문에서 "일본의 상황은 그래도 낫다"고 강조한다. 1700조 엔(1경7000조 원)의 가계 자산 중 60%가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연금 모델도 월 24만 엔(240만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중위 소득을 올리는 노동자 월소득보다 높다. 반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비참함 그 자체다.
전영수 교수는 "3층 보장 체계(국민 연금, 퇴직 연금, 개인 연금)에서 한국은 1층 국민 연금뿐인데다, 그마저 생활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탄탄한 퇴직 연금이 기대되는 근로자는 전체의 7%뿐"이라며 "'아직'이라고 안심하기에는 상황 논리가 너무 나쁘다"고 설명한다.
이어 그는 2020년이면 한국에 하류 노인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리라고 전망한다. 1955~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700만 명 중 맏형 격이 1955년생이 이 해에 65세, 곧 은퇴 시기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노령빈곤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사회적 압박이 본격화한다는 뜻이다.
<2020 하류 노인이 온다>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책이 아니다. 이미 우리의 현실이 책에 비참하다고 소개되는 일본보다 더 나쁜데, 반면교사할 게 어디 있단 말인가. 늦었음을 탓하고 지금이라도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왜 노인은 이른바 '시위 알바' 현장에 나갈까. 왜 노인은 폐지를 주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할까. 왜 적잖은 노인은 약을 달고 살면서도 병원에 가길 무서워할까. 이미 한국의 노령은 빈곤의 덫에 걸렸다. 이건 '그들'의 미래가 아니다. 남의 일처럼 생각하며 넘어가는 우리 모두의 가까운 미래고, 현재로서는 확정된 미래다. 대책이 없다면, 우리 모두의 미래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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