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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죽음을 점쳤던 사람들…다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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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죽음을 점쳤던 사람들…다 틀렸다!

[쿠바, 지구의 국경을 산책하다 ③]

아바나 공항에 도착한 너는 입국 수속을 마친 후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온다. 더운 공기가 느껴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가 서걱서걱 소리를 낸다. 너는 비로소 쿠바의 시스템 속으로 들어간다.

쿠바, 지구의 주거침입자. 지구에 생긴 흉터.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 미지의 세계. 지구별의 국경. 혹자에겐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이자 엘도라도이며, 또 다른 사람에겐 자본주의 플랜B라든지, 인류의 오래된 미래다.

7년 반 만이다. 자본주의의 물결이 쓸고 갔다거나, 개혁, 개방의 바람이 불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레토릭일 뿐인 것 같고, 1980년대 말 소련 붕괴와 1990년대 초 동구권 몰락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그것도 맞지 않다. 물론 변화는 있다.

2014년 12월 19일 버락 오바마와 라울 카스트로가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주도한 민중 혁명 이후 위태롭게 유지돼 왔던 오랜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것이었다. 7년 반 전만 해도 쿠바와 미국 간 관계가 이렇게 빨리 좋아질 것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2006년 형 피델 카스트로부터 실권을 넘겨받은 라울 카스트로의 개혁 정책이 시작되고, 2008년 부시 정권이 오바마 정권으로 바뀌면서 쿠바에 대한 부분적 제재 완화 조치가 취해진다.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이것은 결국 미국과 관계 정상화 선언으로 이어진다.

최근 쿠바 사회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꽉 막힌 쿠바 경제 문제, 그에 따른 대중의 불만을 풀어주기 위한 쿠바 정부의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었다. 그것은 쿠바인들 사이에서 개혁으로 불린다. 또한 라이프 스타일이 변했다. 즉 쿠바의 변화는, 시스템 자체의 변화보다는 외래 문물의 급격한 유입,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 때문인 탓이 크다. 체제 교체가 아니라 세대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고 할까? 피델과 라울은 나이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카스트로 형제 이후 체제를 말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그들의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쿠바의 얼굴은 바뀔 것이다. 만약, 앞으로 젊은이들이 쿠바의 권력을 잡게 된다면 쿠바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프레시안(박세열)
ⓒ프레시안(박세열)

400년이 넘는 스페인 지배. 그리고 19세기 말 두 번의 독립 전쟁.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쿠바 개입. 미국을 등에 업은 독재자, 올긴 출신의 풀헨시오 바티스타 등장. 그리고 1959년 혁명. 혁명 전까지의 대략적인 쿠바 역사다. 1959년 쿠바 혁명은 베트남 전쟁, 마오이즘과 함께, 1968년 전 세계를 휩쓴 이른바 68혁명의 상징적 모티브가 된다.

1959년부터 '다른 세계' 쿠바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피델 카스트로는 혁명 후 모든 쿠바내 외국, 특히 미국의 자산을 몰수하고 국유화 한다. 손톱 밑 가시가 된 쿠바를 상대로 미국은 금수 조치를 단행하고, 쿠바와 거래하는 모든 기업과 국가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선언하게 되는데, 이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CIA가 주도한 피그만 침공의 위기를 넘기며 위협을 느낀 피델 카스트로는 결국 '진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시스템이 그들을 구원할 것이었다. 그는 사회주의를 선언하고 미국과 관계를 단절한다. 이때 손을 내민 것이 소비에트연방, 구소련이었다. 제 3차 대전 발발 직전까지 갔다고 하는, 이른바 쿠바 핵 위기를 거치면서 미국과 쿠바는 화해할 수 없는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카리브 해의 작은 나라의 경제는 코 앞의 미국이 아닌, 대서양 건너 소련으로부터 원조를 받게 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기점으로 몰락해가던 소련은 1989년 결국 붕괴하고 만다. 그리고 그 쓰나미가 쿠바를 덮친다. 쿠바의 설탕을 비싼 값으로 사주고, 싼 값으로 화학 비료와 석유를 제공해주던 소련이 붕괴하면서 혼돈의 시기가 찾아왔다. 이른바 '평화 중 특별한 시기'다.

30년 간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던 쿠바인들에게, 소련 붕괴 후 찾아온 1990년대의 특별한 시기는 고통스러웠다. 특히 석유의 부재는, 농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을 멈추게 했다. 사탕수수 등 몇몇 작물만 키워오던 농지에 갑자기 채소를 심는다고 제대로 자랄 리가 없다. 화학 비료에 의존해오던 터라, 땅은 척박해졌고 지력은 떨어졌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다른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소련과 함께 몰락하거나 가혹한 자본주의식 구조조정을 감내할 때, 쿠바는 다른 길을 걸었다. 화학비료 없는 유기농법을 개발하고, 의약품을 자체 생산했다. 석유 없는 삶을 위해 '가난하게 살기'를 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쿠바의 죽음을 점쳤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물론 완벽하진 않았다. 식량 자립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고, 생필품은 여전히 부족하다. 2000년대 들어 특별한 시기를 벗어났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다. 가난함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조금 더 나은 삶을 찾고 싶은 욕구는 어쩔 수 없다. 네가 만난 쿠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자본주의는 거부해. 다만 조금 더 풍족한 사회주의를 바랄 뿐이야."

ⓒ프레시안(박세열)

냉혹한 국제 정치의 질서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이런 바람은 다소 나이브해 보인다. 그래도 항상 다른 길을 택해왔던 쿠바인들이 이번에도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맥도날드도, 스타벅스도 없지만, 쿠바는 변하고 있다. 2006년, 라울 카스트로가 권력을 이양받은 후 첫 개혁 조치가 나왔다. 내국인의 호텔 출입을 허가하고, 핸드폰을 포함한 가전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이 개혁은 아바나 시민들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가전 제품은 턱없이 비싸다. 낡은 가스레인지 하나에 우리 돈으로 20~30만 원 가량 한다.

이런 개혁은 외국에 친척이 없고, 관광 산업에 종사하지 않은 대다수의 국민과는 먼 얘기였다. 2011년 1월, 보다 혁신적인 2차 개혁 조치가 취해진다. 사실상 1959년 혁명 이후 처음으로 '민간 파트'를 풀어 제친 것인데, 공무원의 숫자를 대폭 줄였고, 동시에 헤어 드레서부터, 일회용 라이타 수리공까지, 178개의 직업을 민간에 풀었다. 2010년에 25만 명이 민간 영역에 종사하던 게, 2013년에는 40만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아바나 시내에는 벌써 50여 곳의 민영 식당이 생겼다고 한다. 물론 식당 주인은 모두 쿠바인이다. 관광 산업은 더욱 활성화되고, 2012년부터는 쿠바인의 외국 관광도 제한적으로 허가하게 된다. 그러나 내국인 경제의 이중화가 심해지면서, 여러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불법적인 직업'들도 늘어나게 됐다. 2013년 10월, 3차 개혁 조치가 취해진다. 자동차 매매를 합법화하고, 부동산 매매도 가능하도록 풀었다. 물론 합법화 됐다는 말이 차를 곧바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차를 매매하는 데 따른 규제들은 여전히 엄격하다. 또한 차 가격은 한화로 수억 원에 달할 정도로 매우 비싸게 책정된다. 부동산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도 2008년 말,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쿠바에 있는 친인척들의 교류와 관련된 제한을 풀었고, 금수조치도 다소 완화했다. 이런 양 측의 변화가 맞물려 결국 외교 관계 회복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지금 젊은 쿠바인들은 라울의 추가 개혁 조치를 기대하고 있다. 어떤 조치들이 나올지는 아직 모른다. 다른 한편에서는 성난 짐승같은 자본주의의 고삐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쿠바가 가진 이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프레시안(박세열)

지금까지는 대부분 사회 개혁 조치다.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외국 자본의 진출을 과연 쿠바 정부가 허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외국계 기업은 쿠바에 들어와 합작 형태로 사업을 한다. 소유와 경영은 쿠바 정부의 몫이다. 이런 강력한 규제를 완화할 수 있을까? 국민의 재산을 외국에 침탈 당했을 때 어떤 일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 쿠바는 이미 뼈저리게 경험해 왔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쿠바가 자본 시장을 개방하고 투자 유치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라울 카스트로는 스스로 2017년까지 집권하겠다고 했다. 2018년부터 쿠바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어디에선가 봤지만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말을 인용해 본다. '쿠바는 늙어가는 혁명과, 고통스러운 출구 사이에 껴 있다'고.

그동안 우리는 쿠바를 모른 체 하고 있었다. 쿠바와 같은 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금지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함부로 평가했다. 가난하고, 물자가 부족한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외면했다. 물 한통을 사러 세 곳의 가게를 돌아다니는 것을 불편하다고 했다. 한편으로 우리는 쿠바처럼 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제 쓰던 샴푸가 오늘 떨어질까 두려워 하며 살았다. 돈이 없는 것은 자존심이 없는 것과 동일시했다. 돈이 없어도 그들은 당당하다. 다른 나라를 해하지 않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생각을 위선이라 폄하했다. 우리는 밖에서 문을 잠근 것 같았지만, 사실은 저 문 지방을 넘어설 때 어떤 크기의 세상이 있는지 알지 못 한다. 이 곳은 문 바깥인가, 문 안인가?

손톱만한 해마에도 뿔이 있다. 단단하고 굳센 뿔이. 쿠바인들은 단단하게 삶을 이어간다. 혁명은 묽어졌고, '내 친구 피델'은 쇠약해졌지만,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을 지탱해 온 믿음은 아직 진행형이다.

ⓒ프레시안(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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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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