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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다움'이 사라지고 있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장민수 서촌주거공간연구회 인터뷰

'우리 동네다움'을 발견하다

서촌과 인연을 맺은 건 10년째입니다. 주민이 된 건 8년이 넘어가고 있네요. 도시계획을 전공했고 지금도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도시계획이란 시선으로 마을을 보게 되더라고요. 주민들 의사와 상관없이 마을이 바뀌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해요.

동네 변화는 이유 없이 이뤄지지 않거든요. 서촌이 지금 같은 형태를 갖춘 것은 도시계획에서 고도제한이라든가 문화재보호구역 지정 같은 법적 장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정 높이를 넘는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제한 탓에 어쨌든 동네가 보존된 측면이 있어요. 예전에는 규제로만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그것이 동네에 이로운 조건일 수 있는 겁니다. 마을이나 도시는 일정한 변화 흐름이 있기 때문에 주민 스스로 동네를 조금 더 탐구하고 알아야 합니다.

▲ 서촌주거공간연구회 장민수 씨. 마을 역사성에 대한 인식과 자부심은 '우리 동네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마을 특성을 없애는 개발욕구에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우리 동네다움'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기돈

지금 서촌 모습을 잘 들여다보면, 과거 지형을 거꾸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동네에 물길이 많이 있었어요. 그 물길이 마을을 나눠 다리로 지역을 연결할 수밖에 없었지요. 서촌에 다리가 굉장히 많았던 이유입니다. 서촌은 작지만 '우리 마을'이라는 영역성이 단단했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이 세대를 잇고 쭉 살아온 건 아니지만 그런 흐름을 이어왔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역사를 들여다보니, 이곳은 궁이 많았던 곳이에요. 서촌 인왕산 기슭에 광해군이 인경궁을 세웠는데, 그때 권력자들이 살았던 곳이더라고요. 거슬러 가면 서촌은 세종이 태어난 곳이고 한글 창제정신 기초가 만들어진 곳이기도 해요. 6.25 한국전쟁 때 이 동네는 폭격도 안 맞았어요. 1950년에서 1953년 즈음 사진을 보면 집들이 거의 다 건재해요. 아시안게임, 올림픽, 재개발 열풍으로 없어질 요인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어려운 과정들을 겪어내고 한옥마을이라는 지역 특성이 남았다는 게 의미 있는 거죠. 서촌에 주거 건물이 1200채인데 40%가 한옥으로 남아 있어요.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668채라고 해요. 체부동 쪽은 한옥 밀집도가 높아요. 한옥은 모여 있어야 의미 있죠. 조선시대 골목이었던 곳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물길과 골목 흐름에 따라 집이 있고, 수백 년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인 거예요. 골목 구석구석 찾아보면 100년 가까운 근대 건물도 있고, 70년 넘는 붉은 벽돌집이 모여 있는 곳도 있어요. 이런 것들이 다 이야기를 담은 공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촌이라는 장소의 역사성이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런 역사성에 대한 관심 없이 겉모습만 보고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런 의미 있는 곳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역사성에 대한 인식과 자부심은 '우리 동네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마을 특성을 없애는 개발욕구에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동네다움'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리더라도 동네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주민들이 늘어나도록 하는 게 '서촌주거공간연구소'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고민 없이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음식도 생산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면 밥풀 하나라도 남기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그런 심정으로 마을을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달리 보이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서촌다움'이 사라지고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하긴 어렵지만, 2010년 또는 2011년부터 몸으로 느낄 정도로 속도감 있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가속이 붙어 더 빨라졌어요. 저는 동네 산책을 굉장히 자주 하는 편인데, 마을을 걷다 보면 '언제 생겼지? 벌써 나갔네!'라고 할 정도니까요. 보통 직장인들은 평상시 출퇴근만 하니까 한두 달 만에 애들 손잡고 동네를 돌다 보면, 가게 몇 개가 확 바뀐 것을 발견하는 거죠. 최근 상업하는 분들 가운데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겉으로는 활력이 있어 보이죠. 가게에서 이벤트도 하고 모임도 하지만, 대부분 동네에 거주하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서촌을 바라보는 시각이 주민들과 다를 수밖에 없어요. 초기엔 활력을 주는 변화로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단지 상업만을 위한 공간, 마을과 겉도는 공간이 되고 있는 거예요. 서촌이 알려지면서 젊은 친구들이 카메라 들고 데이트하며 여기저기를 찍지만, 마을 속 이야기는 담지 못하고 구경꾼으로만 남는 겁니다.

원래는 경북궁 역 옆 시장은 '금천교'라고 하는 다리가 있던 곳이에요. 조선시대 궁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내자시(內資寺)'로 연결된 길이었어요. 역사가 있는 곳이지요. 동네에서 '금천교 시장'이라고 불렀던 곳인데, 지자체가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라는 뜬금없는 이름으로 바꿨어요. '세종'을 거기에 갖다 붙인 것이 안타깝죠. 세종이란 이름을 그렇게밖에 쓰지 못하는 것이 마을을 바라보는 인식 수준이라고 봅니다. 금천교 시장은 마을 초입 골목에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시장이었어요. 주민들이 오가며 살 수 있는 생활에 필요한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는데, 지자체의 접근 방식이 작은 가게를 내쫓고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마을과는 무관한 낯선 섬 같은 공간으로 만든 겁니다. '젠트리피케이션' 책임이 누구 하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자체 책임도 크다고 봐요. 지역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주민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촌은 여전히 작은 가게들이 더 많아요. 동네도 큰 집들이 별로 없어요. 장사도 경쟁이 너무 무한대로 벌어지면 경쟁력도 떨어지고 업종도 중복되잖아요. 작더라도 특별함이 있으면 주목을 받게 된다고 봐요. 지금은 서울시에서 서촌 주거공간을 가게로 바꾸는 용도변경을 못 하게 건축제한을 해놨어요. 그걸 좀 더 일찍 해야 했죠. 동네다움을 지키는 것은 주민들과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 모두 의미 있어요. 동네다움을 통해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서촌 주민들, 마을을 공부하다

2011년 5월에 서촌주거공간연구회 모임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학자와 전문가들이 한옥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며 모이기 시작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죠. 이 동네에 사는 분들이 이끌었던 것이 아니라 한옥과 건축 분야에 대한 경력 쌓기가 우선인 사람들도 있었고, 논문만 쓰고 나간 사람들, 단지 숙제를 위해 온 학생들도 있었고요. 나름대로 욕심을 가지고 시작했던 거예요. 빨리 성과를 내고 유명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들이 급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시간 내서 마을 소개도 하고 할 수 있는 지원을 다 했는데, 목적만 이루면 떠나버리는 것에 실망감이 컸죠. 우리는 동네 좋은 것 말고는 더 고민을 안 했는데, 저마다 많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때는 주민도 몇 명 없고 외부인이 동네를 고민하는 꼴이 된 거에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은 주민들 중심으로 모이고 있어요. 95%가 주민입니다. 남이 우리 문제를 대신 풀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됐어요. 마을이 잘 되어야 한다는 목표와 바람은 있지만, 당장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최근에는 마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친일답사'를 했습니다. 초등학생 학부모들과 연구도 했어요. 이곳에 친일 했던 사람이 많이 살았어요. 돈이 있었으니 장소가 남아 있고, 항일(抗日)했던 사람은 다 잡혀가고 없잖아요. 후손들이 미술관을 만들었지만, 결국 친일의 결과물인 거예요. 더 살펴보니,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실패했거나 주목받지 못한 항일 활동도 있었으니까요. 만주에서 독립운동 하던 조직이 무기를 은닉한 장소가 이 동네에요. 주소 찾아서 아이들한테 알려주고 그 집 앞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퍼포먼스도 했어요. 아주 작은 것부터 자부심을 갖게 하는 거죠. 그저 낡은 집인 줄 알았는데, 그 속에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배우면서 모두들 만족했어요.

이런 행사를 떠벌리듯 알리지 않았어요. 오는 사람들은 사진이나 찍고 갈 일이지만, 우리 입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 전 횡단보도를 건너다 꼬마가 아는 체해 주는데 고맙더라고요. 조금 늦더라도, 이런 것들이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 친목도 다져요. 얼마 전 카메라를 잘 아는 분과 필름 사진을 찍는 공부 모임도 진행했어요. 서촌주거공간연구회 회원은 30여 명쯤 되고, 15명 정도는 꾸준히 회비를 내고 모임에 참여해요. 가장 좋은 게 편한 복장으로 가볍게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가끔 '번개 모임'도 해요. 인왕산 밤 산행을 한다든지 하는 거죠.

▲ '동네다움'을 지키는 것이 주민들에게나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 모두 의미 있고,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김기돈

같이 사는 가게, 같이 사는 마을

마을로 들어오는 큰길에서 '커피공방'이란 가게가 있어요. 오랫동안 가게를 하면서 마을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해왔어요. 해마다 5월 1일에 작은 공연도 하고 커피를 무료로 나누기도 했어요. 서촌주거공간연구회와도 좋은 관계를 이어왔는데, 가게에서 인쇄비와 기타 비용을 대고 저희가 인터뷰를 해서 마을의 작은 가게를 소개하는 팸플릿을 만들기로 했어요. <같이 가게>라는 책은 그렇게 나왔어요. 어떤 가게를 할지 기준도 함께 정했어요. 마을이 변해가면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던 가게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상업화와 밀접하지 않은 작은 가게들을 소개했어요. 주민들이 일상에서 이용하거나 더 오랫동안 마을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공간을 담았죠. 인터넷 카페나 페이스북에도 내용을 올리고, 인쇄물을 커피공방이나 통인시장 같은 곳에 꽂아놨어요. 마을 이야기니까 더욱 정감 있게 봐주시더라고요. '내자땅콩가게', '청용건재', '옥인문구'를 비롯해 '뽀빠이화원'까지, 반년 동안 모두 가게 다섯 곳을 인터뷰했어요. 대상이 될 가게도 많지 않았고 어수선한 동네 분위기를 부추길까 걱정하며 인터뷰에 부담을 갖는 곳이 많아 마무리하게 됐어요.

서촌주거공간연구회가 가지고 있는 작은 목표는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주거지가 충분히 유지되어야 합니다. 사실 불편할 수도 있는데 골목이 있는 한옥이 좋아 이사 오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 사람들로 채워져야 해요. 오래되고 좁은 골목이지만 아이를 잘 키우고 공동체와 소통할 수 있는 곳, 집 뒤에 인왕산이 있어 환경도 좋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곳, 이것이 주거 공간의 본질입니다. 본질이 축소되고 약해지면 모든 것에 영향을 줍니다. 마을이 굳건해야 작은 가게들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가게는 외부인들에게만 기대서는 안 됩니다. 급격한 상업화 확산을 막기 위해 일정한 원칙과 지켜야 할 선을 그을 필요가 있어요. 이미 상업화된 공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서촌에 있는 오래된 통인시장은 원래 건물 사이 마을 길이었거든요. 더 거슬러 가면 일제 강점기 때 공설시장 자리였어요. 시장에서 가파른 경사가 있는 부분은 원래 길이 아니었는데 공설시장으로 자리 잡으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길이에요. 경복궁과 조선총독부 곁에 있던 도심지라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기는 어려웠던 곳이에요. 그 뒤로 오늘과 같은 마을형태가 되면서 건물도 생기고 사람들이 통행하면서 주민들에게 필요한 가게들도 생기기 시작했어요. 쌀가게나 채소가게, 생선가게가 생기고, 맞벌이가 많아지면서 반찬가게도 생기고, 도시락 만드는 가게도 생기고, 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가게들이 생기면서 지금 같은 시장으로 안정화되었어요. 주거공간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낯설지 않게 천천히 변하게 된 거죠. 역사 배경과 삶의 궤적 속에서 필요에 의해 변화하면서 만들어진 특별한 곳이에요.

마을 속 주거공간이나 상업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 갈라서 빨리 알 꺼내먹으려고 하지 말자'는 겁니다. 지금 세대도 먹고 자식들도 손주들도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겁니다. 지역에서 '지구단위계획'이란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구가 있었어요. 물론 풀어주지 않았지만 규제가 풀리면 건물도 더 넓고 높이, 조밀하게 지을 수 있거든요. 지금은 필지 두 개를 합쳐 200제곱미터(㎡), 60평 넘는 집은 못 짓게 막아놨어요. 대형화를 막기 위한 겁니다. 다른 곳에서는 큰 땅이 아니지만 여기서는 큰 땅입니다. 그나마 규제가 있어 지켜지는 겁니다. 지자체 정책 입안자 가치관이 서촌 앞날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겁니다.

제 아이가 일곱 살인데, 골목길을 자주 다니며 함께 사진을 찍어요. 아이가 컸을 때 이 동네가 또 어찌 될지 모르지만, 기억 속에 남았으면 좋겠어요. 동네 골목길에서 아저씨들 만나 인사하고 서서 얘기할 수 있는 곳, 골목에서 일어난 교류들이 소중하다고 봐요. 우리가 더 늙으면 우리 아이들이 서촌주거공간연구회 회원으로 동네를 기억하고 연구하고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가장 큰 바람은 지속가능성, 내 관심에서 끝나지 않고 훗날 지금 마을 공간을 고민하고 지켜왔던 발걸음과 흔적을 기억하며 같이 사는 가게, 같이 사는 마을을 만들어가려는 마음을 아이들도 이어가면 좋겠어요.

▲ 서촌은 주거 공간이 본질입니다. 본질이 축소되고 약해지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급격한 상업화 확산을 막기 위해 일정한 원칙과 지켜야 할 선을 그을 필요가 있습니다. ⓒ김기돈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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