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제기된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 박현정(53·여) 전 대표의 직원 성추행·성희롱 의혹이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박 전 대표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로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부인 구모(67)씨를 이달 중순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구씨는 '박 대표가 성추행과 성희롱, 폭언을 일삼았다'는 내용의 투서를 작성하고 배포하도록 남편 정 감독의 여비서 백모씨에게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애초 박 전 대표의 성추행 의혹으로 시작된 이번 사건이 오히려 박 전 대표를 모함하기 위해 정 감독 측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건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모양새다.
박 전 대표는 2013년 1월, 3년 임기인 서울시향 대표로 취임했다. 당시 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과 석·박사 과정 졸업, 삼성생명 경영기획그룹장·마케팅전략그룹장(전무) 역임 등 화려한 경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절반에도 못 미치던 서울시향의 유료티켓 판매율을 90%대까지 높이는 등 나름대로 경영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임기 2년차를 마칠 즈음인 작년 12월2일 서울시향 직원 10명이 박 전 대표가 성희롱을 비롯한 인권 유린, 인사 전횡 등을 일삼았다는 호소문을 발표하며 그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서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박 전 대표는 "음해"라고 맞서며 경찰에 명예훼손 혐의로 진정서도 냈다.
그러면서 "직원들의 배후에는 정 감독이 있다"고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계약기간 만료를 앞둔 정 감독이 순조로운 재계약을 위해 자신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는 게 박 전 대표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해 12월23일 서울시 인권담당관실은 박 전 대표가 여성 직원들에게는 "마담 하면 잘하겠다", "짧은 치마 입고 다리로라도 음반 팔아라" 등의 발언을 했으며 남성 직원에게도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을 하고 고성과 폭언을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더해 직원 가운데 일부는 박 전 대표를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박 전 대표는 이때도 "사실과 다르다"며 거듭 반박하고 맞섰지만, 자신의 해임을 논의할 이사회가 가까워지자 그해 12월29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사퇴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던 '서울시향 사태'는 박 전 대표가 제기한 진정 사건과 직원들이 접수한 강제추행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다른 국면을 맞았다.
올해 8월11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박 전 대표의 강제추행 혐의 등을 조사한 결과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의견으로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어 지난달 11일 서울청 사이버수사대는 박 전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온 서울시향 직원 곽모(39)씨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한 곽씨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되는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경찰은 곽씨가 2013년 9월 회식 자리에서 박 전 대표가 자신을 더듬으며 성추행했다는 투서를 작성하고 박 전 대표를 고소했지만, 조사결과 곽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어 그 주장이 '거짓말'인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관련자들의 진술이 명확하지 않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그만큼 관련자들의 진술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경찰은 서울시향에 대한 3차례의 압수수색 등을 통해 곽씨의 투서·고소 과정에 정 감독의 비서인 백모씨가 연루된 정황을 발견하고 백씨를 출국금지했다.
그리고 정 감독의 부인 구씨가 백씨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잡고 구씨를 이달 중순 입건했다.
경찰은 "정 감독 부인이 연루됐다는 얘기가 이전부터 계속 있어 확인을 위해 입건했다"고 밝혔다.
지난 1년간 '진실게임' 양상으로 진행된 서울시향 사태의 진실은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구씨와 최근 출산한 백씨 등에 대한 경찰 조사가 이뤄지면서 점차 그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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