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만큼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가 있을까요? 우리는 화석이 발견되기 전부터 각종 신화를 통해 태고 시절 지구를 지배한 공룡에 대한 집단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원작을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스크린에 옮긴 영화 <쥬라기 공원>(1993년)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전 세계적인 '공룡 신드롬'을 낳았습니다. 20여 년 전 당시의 공룡 연구 성과를 적절히 버무린 이 영화로 우리는 감히 상상해보지 못했던 거대한 용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지켜보았죠.
<쥬라기 공원> 후 2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의 공룡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요? 10일 '독서통'은 젊은 공룡 과학자가 쓴 <박진영의 공룡 열전>(박진영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을 놓고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공룡에 대한 온갖 이야기에 넋을 빼놓고 듣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습니다.
공룡 과학자 박진영 씨와 함께한 이번 독서통은 공룡 하면 '둘리'부터 떠오르는 김종배 <시사통> 편집인과 공룡이 이토록 매력적인 줄 미처 몰랐던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10일 오전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의 전문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공룡이 좋아 도마뱀 시체 끓이며 연구하다
독서통 : 안녕하세요. 독서통입니다. 지난주에 저희는 한국 현대사를 다뤘는데, 이번에는 널뛰기해서 1억 년도 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바로 공룡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아기 공룡 둘리> 모두 아시죠? 얼마 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의 명성을 이은 영화 <쥬라기 월드>도 개봉해서 화제가 되었죠. 그러고 보니 우리가 예전 <시사통>의 꼭지 가운데 하나로 '공룡통'을 하면 어떨까도 얘기하기도 했었죠. 공룡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박진영의 공룡 열전>을 들고 왔습니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은 이 책을 두고 "드디어 공룡 책다운 공룡 책이 나왔다", "세계 최초다." 이렇게 추천했습니다. 처음엔 너무 심한 찬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읽어 보니 '이런 책은 우리만 읽을 게 아니라 세계인에게 읽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책이었어요.
지금까지 읽은 공룡 책 중에서 최신의 연구 성과를 이렇게 재미있고 요령 있게 정리한 책은 처음이었습니다. 저자 박진영 씨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진영 : 네, 안녕하세요.
독서통 : 초면에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저자 소개를 보면 1987년생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맞습니까?
박진영 : 맞습니다.
독서통 : 20대가 이런 책을 써도 됩니까? 학교 다닐 때 뭐 하셨어요? (웃음)
박진영 : 학교 다닐 때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고요. (웃음)
독서통 : 그런 것 같아요. 아니면 이런 책을 이렇게 젊은 나이에 낼 수가 없지. 저는 이 책을 읽고 '나는 이 나이 때 뭐했지?' 하며 좌절했어요.
어릴 적부터 공룡에 대해 관심을 가지셨나요?
박진영 : 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두세 살 즈음부터 좋아했나 봐요. 아버지께서 사 오신 조그마한 장난감 공룡 세트에 빠졌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도 공룡이 그려진 카드를 갖고 놀았죠.
독서통 : 전형적인 <쥬라기 공원> 세대죠? 영화 <쥬라기 공원>이 1993년도에 개봉했는데, 그 때 여섯 살이었겠네요. 그 영화는 당연히 봤죠?
박진영 : 그렇죠.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선 사실 잠깐 공룡이 무서워졌었어요. (웃음)
독서통 : 그럼, 취미 수준을 넘어서 공룡을 본격적으로 파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인가요?
박진영 : 어릴 때부터죠. 어릴 적에는 화석을 통해 공룡에 대한 모든 걸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어서 화석만으론 공룡의 모든 걸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화석으로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울음소리도 알 수도 없고, 색깔도 알 수 없고, 구애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알 수 없죠.
그런 사실에 실망을 많이 해서 그냥 (공룡을 포기하고) 살아있는, 멸종되지 않은 동물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될까 하고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즈음에 어머니께서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의 토마스 홀츠 교수가 쓴 공룡 대백과 같은 큰 책을 선물해 줬어요. 아직 번역된 책은 아닌데요, 그 책 머리말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가끔 과학에서 가장 좋은 정답은 '잘 모르겠다'일 때가 있다."
이 문구를 보고서 공룡을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했죠.
독서통 : 그러면 대학 진학도 관련 학과로 한 건가요?
박진영 : 예, 저는 지질학과로 갔습니다. 고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우리나라에서는 지질학 안에 포함되어 있거든요.
독서통 : 2012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중생대 거대 도마뱀 화석을 학계에 보고했다고요?
박진영 : 그 화석을 제가 직접 발굴한 건 아닙니다. 이게 약 12년 전에 발굴된 화석인데요, 당시 발굴자가 이 화석의 정체를 잘못 파악했어요.
독서통 : 이 화석이 얼마나 중요한 화석인지, 무슨 생물의 화석인지 제대로 파악을 못했다는 거군요.
박진영 : 그렇죠.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처럼 동물 화석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완벽히 다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머리뼈 일부만 나온다거나, 꼬리뼈 일부만 나온다거나 그렇거든요. 더구나 오늘날 살아있는 생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뼈 구조가 나오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화석만 가지고서는 정체를 파악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 화석도 처음 발견했을 때는 많이 훼손된 상태였어요. 또 첫 발견자가 고생물학자도 아니다 보니 이걸 '거북이 화석'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거북이라면 등딱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 생물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등딱지가 없는 거북이 화석'이라고 보고한 거죠. 사실은 거북이가 아니었죠.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논문으로 뭘 쓸까 고민하며 실험실 수장고를 뒤지다보니 이 뼈가 있더라고요. 제대로 화석 연구를 할 땐 화석 뼈에 대한 묘사를 해야 하는데, 이 뼈는 묘사가 잘 안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뼈와 오늘날 거북이의 뼈를 비교하기로 했죠. 지인을 통해 거북이 사체를 얻어서 직접 끓여서 뼈를 추려냈죠. 키우던 거북이의 사체를 기증해 줬어요.
독서통 : 엽기적이네요. 연구하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하는군요? (웃음)
박진영 : 냄새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 파충류를 끓일 때 그 냄새가 굉장히 역겹습니다. 그것 때문에 실험실에서 쫓겨날 뻔한 적도 있고요. (웃음)
아무튼 거북이를 끓여서 뼈를 추린 다음에 화석과 맞춰 봤는데, 도무지 맞지가 않더라고요. 그 때 깨달았죠. '이게 거북이가 아니구나!' 나중에 이 화석이 도마뱀 뼈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러니 이제 도마뱀 사체를 구해야 하거든요. (웃음) 거북이를 키우는 사람은 많은데, 당시만 해도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다행히 지인이 다른 사람이 키우던 왕 도마뱀 사체를 저한테 기증해 줬어요. 도마뱀이 1.5미터에 달하는 큰 놈이다 보니, 솥에 한 번에 못 넣어서 조각내서 끓였죠. 아무튼 그렇게 도마뱀 뼈를 추려서 화석과 비교해보니 그 뼈가 아주 유사하더라고요. 그래서 문헌을 더 찾아보고 그 화석이 거북이가 아니라 도마뱀의 것이라는 걸 알아냈죠.
독서통 : 거대 도마뱀이라고 했는데, 크기가 어느 정도로 추정되나요?
박진영 : 오늘날 인도네시아 코모도 섬에 '코모도 왕 도마뱀'이라는 생물이 삽니다. 몸길이가 2미터 정도 되는 도마뱀인데요. 바로 그 도마뱀과 친척 관계예요. 발견된 부위는 머리뼈 일부와 다리밖에 없습니다. 이 뼈로 몸길이를 추정해 보니 코모도 왕 도마뱀과 비슷한 2미터 정도 되더라고요.
독서통 : 얼마나 오래 전에 살던 도마뱀인가요?
박진영 : 후기 백악기, 그러니까 약 8000만 년~7000만 년 전에 살았죠. 그때 인도네시아에서나 볼 수 있는 큰 도마뱀이 한반도에도 살았던 거죠.
독서통 : 우리가 보통 공룡 이름에 '사우루스'를 붙이는데, 이 단어가 도마뱀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럼, 공룡이 곧 도마뱀 아닌가요?
박진영 : 아니요. 둘이 같은 조상에서 나온 동물이긴 합니다만,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어요. 종이 다릅니다.
독서통 : 그러면 공룡에 '~사우루스'라는 이름을 붙이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박진영 : 이름 자체는 동물과 연관성이 그리 높지 않아요. 예를 들어, 옛날에 살던 고래 가운데 바실로사우루스가 있어요. 발견한 화석의 머리가 도마뱀처럼 생겼다고 해서 첫 발견자가 '황제 도마뱀'이라는 뜻의 이 이름을 붙였죠.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도마뱀이 아니라 원시 고래였죠.
과학계에서는 한 번 붙인 학명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 원시 고래를 바실로사우루스라고 부릅니다. 이름은 이름뿐입니다.
독서통 : 그런데 공룡이라면 '드래곤'으로 이름을 붙여도 될 텐데, 왜 하필 '사우루스'냐는 질문이 또 나오네요.
박진영 : 공룡을 공룡이라 부르기 전부터 공룡 화석이 많이 발견됐거든요. 처음 발견된 종류 중에는 이구아나돈(이구아나의 이빨이라는 뜻)이나 메갈로사우루스(큰 도마뱀이라는 뜻)와 같은 공룡이 있는데, 당시 학자들이 이 화석을 보고 다들 '큰 도마뱀'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다보니 복원할 때도 처음에는 도마뱀처럼 복원해버렸죠.
랩터는 랩터가 아니다?
독서통 : 지금은 공룡에 대한 지식이 많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겠죠. (웃음)
책 제목이 <공룡열전>이죠. 대표적인 공룡 여섯 개만 찍어서 자세히 서술했어요.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이구아노돈, 데이노니쿠스, 스테고사우루스요. 목이 긴 초식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둘리 엄마 맞죠? 그럼, 아기 공룡 둘리도 브라키오사우루스인가요?
박진영 : 둘리 자체만 보면 육식 공룡입니다. 둘리는 두 발로 걸어 다니잖아요? 두 발로 걷는 공룡이 대체로 육식 공룡입니다. 그리고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코에 뿔도 나 있습니다. 육식 공룡 가운데 코에 뿔이 난 종류는 쥐라기 후기에 케라토사우루스(뿔이 있는 도마뱀이라는 뜻)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둘리는 케라토사우루스가 확실합니다.
문제는 둘리 엄마는 목이 굉장히 긴 브라키오사우루스가 확실해요. 이상하죠? 그래서 저는 둘리는 입양한 공룡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독서통 : 이제 이 책에 나오는 공룡 얘기를 해보죠. 티라노사우루스는 설명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고, 트리케라톱스는 말 그대로 머리에 뿔이 세 개 달렸고 머리 뒤쪽으로 방패가 있는 공룡이죠? 방금 나온 브라키오사우루스는 목이 긴 공룡으로 둘리 엄마죠. 또 <쥬라기 공원>에서 아이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데 잎을 뜯어먹는 그 공룡이 맞죠?
박진영 : 초식 공룡입니다.
독서통 : 그런데 다른 다섯 공룡은 이름과 그림을 보면 바로 알겠는데, 데이노니쿠스(날카로운 발톱이라는 뜻)는 조금 생경하네요?
박진영 : 데이노니쿠스는 우리가 공룡을 바라보는 관점을 백팔십도 바꾼 공룡입니다. 처음 보고된 게 1979년도입니다. 최근이죠. 이 공룡이 보고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공룡을 굼뜨고 느리고 멍청한 동물로 그렸죠. 그런데 데이노니쿠스 이후에 비로소 이런 인식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독서통 :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벨로시랩터, 줄여서 랩터로 불렸던 그 공룡이죠? 1편에서 주인공 아이들과 주방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무서운 공룡이요?
박진영 : 네. 정확히 라틴어로 발음하면 벨로키랍토르입니다.
독서통 : 영화에서 보면 굉장히 똑똑하게 묘사돼요. 손으로 문도 열고 집단으로 사냥하기도 하는 공룡이죠. 이번에 개봉한 <쥬라기 월드>에서는 인간이 훈련도 시키고요. 그런데 책을 보니 <쥬라기 공원>에 벨로키랍토르로 나오는 공룡이 사실은 데이노니쿠스라고 하더군요.
박진영 : 네. 처음에 데이노니쿠스 화석이 발견되었을 때, 한 아마추어 고생물학자가 데이노니쿠스를 종전에 발견한 벨로키랍토르(날쌘 도둑이라는 뜻)와 같은 종류로 보자고 묶어버렸어요. 그래서 데이노니쿠스가 잠깐 벨로키랍토르로 불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즈음에 마이클 크라이튼이 소설 <쥬라기 공원>을 쓰면서 데이노니쿠스를 벨로키랍토르로 등장시키죠. 그 오류가 영화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요.
독서통 : 데이노니쿠스를 큰 랩터로 생각한 거군요?
박진영 : 맞습니다. 실제로 벨로키랍토르는 크기가 거위만합니다. 영화에서처럼 집단 사냥했다는 증거도 없고요.
독서통 : 그럼, 데이노니쿠스는 영화와 비슷합니까?
박진영 : 사람보다 약간 작긴 하지만 영화와 비슷한 크기고요, 집단 사냥했다는 증거도 나왔습니다. 물론 손을 자유자재로 쓰지는 못했지만요.
독서통 : 영화에서는 데이노니쿠스가 떼로 티라노사우루스와 '맞짱'을 뜨는데, 그렇기도 했나요?
박진영 : 오늘날 살아있는 동물을 보면요, 자기보다 큰 육식동물이 등장하면 무조건 도망갑니다. 아무리 집단을 이루고 있더라도요. 데이노니쿠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독서통 : 하이에나나 늑대 보면 자기들보다 덩치 큰 동물도 집단으로 사냥하잖아요?
박진영 : 하이에나 두 마리가 사자 한 마리 정도 크기인데요, 데이노니쿠스와 티라노사우루스는 아예 급이 다릅니다. 데이노니쿠스가 네댓 살 꼬마라면 티라노사우루스는 코끼리입니다. 감히 비교할 수가 없죠. 데이노니쿠스가 아무리 떼로 달려들어도 티라노사우루스를 당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독서통 :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로 들어가서 질문을 던져보죠. <쥬라기 공원>을 보면 첫 편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폭군 도마뱀이라는 뜻)가 가장 공포스럽죠.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편에서는 벨로키랍토르로 묘사된 데이노니쿠스가 오히려 주인공이 되고, 티라노사우루스는 바보 같고 굼뜬 공룡으로 묘사되더라고요.
박진영 : 영화 <인터스텔라>가 그렇듯이 과학 영화를 찍을 때 과학자가 자문을 합니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에서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미지가 달라진 이유가 바로 자문하는 과학자가 바뀌어서예요. 첫 편에서는 예일 대학교 출신의 과학자 로버트 바커가 자문을 맡았는데, 그가 잘려요. (웃음)
그 때 학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대립하고 있었어요. 티라노사우루스가 사자처럼 재빠르고 사냥을 활발히 하는 동물이라는 관점과 몸이 너무 크고 둔해서 사체만 주워 먹었을 것이라는 관점이요. 지금은 거의 사냥꾼이었으리라는 의견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런데 바커가 바로 티라노사우루스가 활발한 사냥꾼이었다는 의견을 가진 과학자였죠.
그래서 <쥬라기 공원> 첫 편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빨리 달리는 활발한 공룡으로 나오죠. 그런데 영화 촬영 과정에서 스필버그 감독과 과학자 간에 갈등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이 과학자가 결국 교체됐거든요. 왜 잘렸는지 이유는 정확히 몰라요. 바커도 강연장에서 관련 질문을 받으면 이리저리 회피만 하더라고요.
<쥬라기 공원> 1편 마지막 부분과 2편부터 몬태나 대학교의 존 호너가 자문을 합니다. 그는 티라노사우루스를 굼뜬 동물로 봤죠. 그의 관점이 이후 영화에 반영된 거예요.
독서통 : 책을 보면 두 과학자가 앙숙이라면서요?
박진영 : 지금은 친구인데요, 과거 젊었을 때는 대단한 라이벌이었죠.
독서통 : <쥬라기 공원> 2편을 보면 과학자가 잡아먹히는 장면이 나오죠. 그런데 그 과학자가 바로 1편에서 자문했던 로버트 바커를 염두에 둔 거라면서요?
박진영 : 맞아요. 원래는 대본에 없던 캐릭터인데요, 호너가 '내 라이벌이 영화에 등장해서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잡아먹혔으면 좋겠다'고 감독에게 요청했다고 해요. (웃음)
독서통 :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되나요?
박진영 : 그런데 바커는 이 장면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해요. 자신과 꼭 닮은 과학자가 등장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죽으니까요. 영화를 보고 바로 존 호너 박사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얘기했데요. "영화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나를 사냥하더라. 역시 티라노사우루스는 사냥꾼이야!" (웃음)
독서통 : 역시 세상사는 꿈보다 해몽이군요. (웃음) 아무튼, 지금까지 밝혀진 티라노사우루스의 정체는 뭔가요? 달릴 수 있었나요?
박진영 : 달리지 못했어요. 컴퓨터 모델링을 이용해서 티라노사우루스 몸무게를 측정했더니 최대 9톤까지 나갔어요. 아프리카 코끼리 두 마리를 합친 정도의 크기죠. 코끼리가 뛰지 못하거든요. 엄밀히 보면 뛰는 게 아니라 빨리 걷죠. 경보입니다. 더구나 코끼리는 네 발로 걷는데, 티라노사우루스는 두 발로 걷죠. 달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뼈가 다 부서질 겁니다.
독서통 : 그럼 성큼 걷는 수준으로 사냥이 가능했을까요?
박진영 : 그래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시체나 주워 먹는 공룡'이라는 주장이 나왔죠. 그런데 최근 컴퓨터를 이용해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계산해봤더니, 1초에 8미터까지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단거리 육상 선수 우사인 볼트보다 살짝 더 빠르죠. (웃음)
독서통 : 그러면 <쥬라기 공원>에 묘사된 것처럼 티라노사우루스가 자동차를 쫓아가는 게 설득력 있는 거네요?
박진영 : 영화에서는 시속 50킬로미터 속도로 뛰는데 그건 말이 안 되고요. 시속 30킬로미터 정도 속도로 걸었겠죠.
재미있는 건,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이 살았던 초식 공룡은 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시속 30킬로미터 정도의 속력은 못 냈어요. 그러니 티라노사우루스가 굳이 빨리 뛸 필요도 없었죠.
독서통 : 정말 공룡의 제왕이었군요.
박진영 : 네. 티라노사우루스의 가장 큰 적은 다른 티라노사우루스입니다. 서로 잡아먹었거든요.
증거는 굉장히 많습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2층에 티라노사우루스의 완벽한 머리뼈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머리 뒤쪽을 보면 총 맞은 것처럼 구멍이 하나 나 있어요. 그 구멍에 다른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이 쏙 들어갑니다. 그 외에도 팔이 뜯겨나간 화석도 발견되었고요, 다른 티라노사우루스가 물어뜯어서 척추의 윗부분에 이빨 자국이 나 있는 애들도 있어요.
독서통 : 배가 고파서 그런 겁니까? 아니면 그냥 공격 본능을 주체하지 못해서?
박진영 : 양쪽 다죠. 서로 친하지 않았고, 또 때로는 배가 고파서 그랬을 수도 있죠.
독서통 : 단독 생활을 했군요?
박진영 : 꼭 그런 것도 아녜요. 티라노사우루스는 아니지만 티라노사우루스의 사촌뻘인 알베르토사우루스(앨버타의 도마뱀이라는 뜻. 캐나다 앨버타 주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가 있어요. 티라노사우루스와 똑같이 생겼지만 더 날씬해요. 그런데 이 공룡은 열 몇 개체가 한 장소에서 같이 발견되었어요. 집단 생활의 가능성을 보여주죠.
독서통 : 그런데 집단 생활하면서 서로 잡아먹을 수는 없잖아요?
박진영 : 그렇기는 한데요, 오늘날 왕 도마뱀은 따로 지내다가 사냥할 때만 같이 사냥하기도 해요. 그런데 먹이를 뜯어먹다가 옆에 조그마한 친구가 있으면 걔까지 잡아먹어요.
독서통 : 그렇게 서로 잡아먹으면 재생산은 어떻게 합니까? 서로 잡아먹는데 사랑이나 제대로 나눴겠어요?
박진영 : 이 친구들, 그러니까 티라노사우루스가 몇 천만 년 동안 지구상에 살았거든요. 어떻게 해서든 사랑하긴 했죠. (웃음)
공룡은 우리 밥상위에 오른다!
독서통 : 그런데 책을 보니 지금 우리 주변에도 공룡이 많이 있다면서요?
박진영 : 네. 공룡은 멸종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독서통 : 우리가 흔히 아는 새가 공룡에서 진화했다는 이야기입니까?
박진영 : 그 문장은 사실 반만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공룡이 진화해서 새가 되었다는 표현은 포유류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표현과 같습니다. 공룡의 부분 집합이 새죠.
독서통 : 티라노사우루스와 우리가 먹는 닭이 같은 종류라는 게 감이 안 오네요. 새는 조류고 공룡은 파충류잖아요.
박진영 : 요즘 분류 체계가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린네식 분류법(18세기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만든 과학자 칼 린네의 이름은 본뜬 생물 분류법)'이라고 해서 겉모습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생물을 나눴어요. 종-속-과-목-강-문-계 아시죠? 그러니까 동물계, 척추동물문, 파충강 이런 식이죠.
그런데 요즘은 가계도로 분류합니다. 이런 방식에 따르면 모든 조류는 파충류 안에 포함됩니다. 사람이 포유류에 포함되는 것처럼. 조류는 파충류의 한 그룹이었던 거죠.
독서통 : 그러면 우리는 맥주에 프라이드치킨을 먹을 때 사실은 공룡을 먹고 있는 거군요?
박진영 : 그렇죠. 실제로 학회에 가서 "공룡이 왜 멸종했나요?" 하고 질문하면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공부 더 하고 오게" 하고 대답을 들을 겁니다.
독서통 : 그렇게 큰 공룡이 새처럼 작아져야 했던 이유는 뭐죠?
박진영 : 공룡이 다 거대했던 건 아니에요. 절반 이상이 사람보다 조금 더 크거나 사람보다 작았습니다. <쥬라기 공원> 2편에 나왔던 손바닥 공룡이 사실 티라노사우루스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에요. (웃음) 공룡 시대에 살던 수많은 공룡 가운데 작고 깃털이 달린 공룡이 진화한 게 오늘날 새죠.
독서통 : 그러면 어떻게 하다 공룡이 날게 되었나요?
박진영 : 두 가지 설이 있죠. 나무 위에서 날다람쥐처럼 활공하다가 새가 되었다는 설과 땅을 열심히 달리다가 뛰어 올라서 날게 되었다는 설이죠. 100년 이상 두 가지 가설이 오갔는데, 최근에는 후자에 조금 더 기울었습니다. 아니, 어느 한쪽이 아니라 둘 다 원인이라는 절충설도 있고요.
독서통 : 여기서 여섯 종의 공룡을 다 훑기는 무리겠죠? (웃음)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궁금한 걸 여쭤보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면 물속에 사는 공룡이 많이 나오잖아요. <쥬라기 월드>에도 커다란 공룡이 물에서 나오더군요. 그런데 책에서는 물속에서 공룡이 살지 않았다고 했어요.
박진영 : 맞습니다. 공룡은 물속에서 살지 않았죠.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보면 악어처럼 생긴 커다란 동물이 물에서 튀어 올라서 익룡을 잡아먹죠. 그런데 그건 공룡이 아니라 도마뱀이에요. 공룡 시대에 살았던 도마뱀의 한 종류입니다. 공룡 시대에 티라노사우루스만한 악어도 있었고요,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더 큰 도마뱀도 물속에서 살았어요.
보통 공룡 시대에 살았던 큰 파충류는 모두 공룡인 줄 아는데, 공룡과 도마뱀은 다릅니다. 공룡의 가장 중요한 해부학적 특징은 다리 구조와 골반 구조입니다. 공룡의 골반에는 구멍이 나 있고, 거기 허벅지 뼈가 쏙 들어갑니다. 허벅지 뼈와 골반이 90도 각도로 만나기 때문에 직립보행이 가능하죠. 그런 식의 직립보행이 가능한 파충류는 공룡밖에 없어요.
이런 특징을 가진 척추동물은 공룡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새가 그렇습니다. 나중에 맥주에 치킨을 먹을 때, 찬찬히 골반을 한 번 살펴보세요. 그럼, 허벅지 뼈가 쏙 들어가는 구멍이 골반에 나 있을 거예요. 이렇게 새는 공룡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다 갖춘 동물이에요. 그래서 새가 공룡의 한 종류죠.
독서통 : 우리는 도마뱀과 공룡이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둘은 다른 종이고 새와 공룡이 같은 종이군요.
박진영 : 그렇죠. 물론 도마뱀과 공룡은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조상에서 나왔죠.
더 재미있는 건, 책에는 안 나왔습니다만 사람의 조상도 공룡과 같아요. 둘의 조상은 3억 년 전쯤 살던 한 동물에서 유래했습니다. 원시 양막 동물이죠. 이 동물은 방수성 피부를 갖고 있고, 양막이라는 반투과성 막이 덮인 새끼를 낳죠. 오늘날 우리의 아기들도 막에 씌워져서 태어나죠.
공룡 복원 프로젝트, 실재한다
독서통 : 책의 마지막에 흥미로운 주제가 나옵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새를 공룡의 모습을 갖고 태어나게 하려는 시도가 있다면서요?
박진영 : 맞습니다. 새가 공룡이니까요. 그러니까 새 안에 공룡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유전자가 들어 있거든요. 자연 그대로 두면 발생 과정에서 다 퇴화하죠. 그런데 유전자에 변화를 줘서 이런 공룡의 특징이 그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아까 <쥬라기 공원>의 자문으로 소개했던 존 호너가 주도하는 실험입니다. 간단히 말해 닭을 티라노사우루스로 바꾸는 거죠.
닭도 공룡이기 때문에 긴 발가락을 만드는 유전자, 이빨을 만드는 유전자, 꼬리가 길어지는 유전자를 다 갖고 있어요. 실제로 닭이 알 속에 있을 때 발달 과정을 보면 이빨이 나왔다 사라지고, 손가락도 생겼다가 융합되고, 꼬리도 길어졌다 짧아져요. 이런 퇴화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아는 닭의 모습이 나오죠.
그런데 유전자 조작으로 긴 손가락이 날개로 융합되지 않도록, 길어진 꼬리가 짧아지지 않도록, 이빨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서 우리가 상상하는 공룡의 모습으로 탄생시켜보자는 겁니다.
독서통 : 섬뜩하네요. (웃음) <쥬라기 공원>을 보면 호박에 갇힌 옛 모기의 피에서 유전 정보를 추출해서 공룡을 복원하잖아요? 이건 불가능하다면서요?
박진영 : 네. 뻥입니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독서통 : 왜 그렇죠?
박진영 : 영화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공룡을 보면 대부분이 백악기 시대 공룡입니다. 그 이전인 쥐라기 시대 공룡은 브라키오사우루스나 스테고사우루스죠. 그런데 가장 오래된 모기의 화석은 백악기 시대입니다. 즉, 쥐라기 시대 공룡이 백악기에 살던 모기에게 피를 빨렸을 가능성이 없죠.
그리고 설령 모기가 쥐라기 시대에 살았다 하더라도 모기 체내에서 다른 공룡의 피와 섞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모든 모기가 피를 빨지도 않죠. 임신한 암컷만 피를 빨고요, 다른 모기는 평소에는 과즙이나 이슬만 먹고 삽니다. 그러니 모기 유전자를 추출하더라도 공룡보다 나무가 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겠죠.
독서통 : 보존 연한, 그러니까 유통기한도 있죠?
박진영 : 예. 유전자가 그렇게 오래 보존되지 않아요. 길어야 몇 십만 년 정도입니다. 가장 최근에 살았던 공룡이 6600만 년 전에 멸종했는데, 유전자가 남아 있을 수 없죠.
독서통 : 공룡을 복원시킨다 한들, 이 공룡을 생존하게 할 방법도 마땅찮을 것 같아요? 현재 코끼리, 고래 같은 거대 포유류도 인간과 공존을 못하는데요.
박진영 : 사실 대기 환경부터 다르죠. 지구의 역사를 보면 대기 상태가 일정하지 않았죠. 공룡이 워낙 오래 살았던 터라 시대마다 대기 상태가 다 달라요.
독서통 :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공룡 시대로 가더라도 지금처럼 자유롭게 숨 쉬진 못하겠군요.
박진영 : 그렇죠.
독서통 : 산소 농도에 따라서 동물의 몸집에도 차이가 난다면서요?
박진영 : 예. 공룡보다 훨씬 이전인 3억 년 전 석탄기 시절에 살았던 절지동물들이 그렇죠. 이 동물들은 산소 농도가 증가하면 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많아져서 몸이 더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죠. 소형 자동차만한 노래기가 있었고요, 매만한 잠자리, 신발만한 바퀴벌레, 축구공만한 거미, 악어만한 전갈도 있었어요.
공룡이 살았던 시대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숨 쉬기 어려운 시기였죠.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영양가가 적은 식물이 잘 자랍니다. 그러니 공룡은 영양분을 섭취하려면 더 많이 먹어야 하죠. 그러다보니 장기가 그에 걸맞게 커집니다. 이상하게 다른 동물은 커지기 힘든 환경에서 공룡만 독특하게도 거대해진 거죠.
공룡이 환경에 적응한 중요한 증거가 또 있습니다. 공룡은 숨을 잘 쉬기 위해 독특한 폐 구조를 발달시킵니다. 사람 폐를 꺼내서 펼치면 굉장히 넓어요. 공기와 만날 수 있는 면적을 넓히기 위해서죠. 그런데 공룡은 그거로도 모자라서 폐 구조를 뼛속까지 확장해요. 뼛속을 이용해서 숨 쉰 거죠. 이런 증거가 화석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뼈를 이용하니 뼛속이 비게 되죠. 그래서 공룡은 덩치에 비해 몸무게가 굉장히 가벼웠습니다. 이런 점도 몸이 커질 수 있는 요인이 되었죠.
독서통 : '용가리 통뼈'는 틀린 말이고, 실은 공룡이 골다공증의 원조였던 셈이군요. (웃음)
박진영 : 예. (웃음) 공룡이 숨을 잘 쉬기 위해 진화한 이런 구조가 오늘날 새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기낭(조류의 폐에 딸려 내부에 공기를 채우고 있는 박막으로 이루어진 대형 주머니)입니다. 처음에는 산소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숨을 쉬기 위해 발달시킨 구조인데, 이게 비행에도 유용한 기관이 되었죠.
독서통 : 그렇군요. 그런데 우리나라도 공룡의 천국이었나요?
박진영 : 네. 특히 남해안 쪽이 대표적이죠.
독서통 :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화석 발견 보고가 자주 이뤄지지 않잖아요. 그건 화석이 없어서가 아니라, 발굴이 안 이뤄져서인가요?
박진영 : 그렇죠. 일단 발굴 지원이 잘 안 됩니다.
독서통 : 화석을 발굴하면 돈이 됩니까? (웃음)
박진영 : 연구자로서 그런 질문에 답하기 곤란한데요. (웃음) 우리나라에서는 안 돼요. 우리나라에서 화석은 매장 문화재이기 때문에요.
독서통 :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화석이 발굴된 땅의 주인과 발굴자 사이에서 소유권은 어디로 갑니까?
박진영 : 미국은 주법에 따라 다 다릅니다. 어떤 주에서는 땅주인의 것이 되고요, 어떤 주에서는 매장 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하죠.
독서통 : 우리나라에서 화석이 안 나오는 게 땅이 좁아서일 수도 있겠네요.
박진영 : 그렇긴 한데요. 일본의 경우 화산 폭발이 많아서 우리나라만큼 퇴적암 비율이 높지 않은데도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공룡 종류를 학계에 보고했거든요.
독서통 : 우리나라에서도 공룡 발자국이 자주 발견되는데, 그 주변을 발굴하면 되지 않을까요?
박진영 : 발자국 화석이 있는 곳 주변 환경은 뼈가 보존될 수 있는 환경과 달라요. 그래서 발자국 화석이 많이 나오는 곳에서는 뼈 화석이 잘 안 나옵니다.
독서통 : 우리나라 고생물학자들은 그래서인지 몽골이나 중국에서 자주 발굴 작업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박진영 : 예. 저도 운이 좋아서 재작년과 작년에 서울대학교 이융남 교수를 따라 몽골에 가서 공룡 화석을 발굴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곳은 화석을 발굴하기 굉장히 좋습니다. 조그마한 정이나 삽만 있어도 땅을 팔 수 있을 정도로 암석이 부드러워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암석이 굉장히 단단해요. 옛날 화산이 많았기 때문에 암석이 전부 구워져서 굉장히 단단해졌습니다. 그래서 화석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도구가 필요하죠.
나도 화석 한번 발굴해볼까
독서통 :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화석 발굴 팀에 꼭 전문가가 아니라도 자원 활동이 가능하다면서요?
박진영 : 맞습니다. 일반인이 원하면 발굴 팀에 끼어서 화석을 발견하는 게 가능합니다. 오히려 더 잘 찾기도 합니다. (웃음)
독서통 : 우리가 몽골에서 공룡 화석을 발굴하면 우리나라로 가져오는 겁니까?
박진영 : 가져올 순 없고요. 몽골에 있는 고생물센터에 맡겨두고, 그곳의 화석 처리 기사들이 그 화석을 깨끗이 청소해주면 우리나라 학자가 가서 연구할 수는 있죠.
독서통 : 그러면 우리만 독자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건가요?
박진영 : 요즘은 워낙 지식의 깊이와 넓이가 방대해져서요, 찰스 다윈만 하더라도 지렁이도 연구했다가 따개비도 연구하고, 모든 걸 다 했잖아요? 요즘은 그게 힘들어요. 공룡 다리만 연구하는 사람, 공룡 꼬리만 연구하는 사람, 공룡 뇌만 연구하는 사람, 공룡 똥만 거의 20년 동안 연구한 사람 등. 그래서 다른 나라 연구자와도 당연히 협업해야 합니다.
독서통 : 박진영 선생님의 전문 분야는 뭐죠?
박진영 : 저는 척추 골격의 형태적 특징을 잡아서 고생물의 가계도를 그리는 쪽입니다.
독서통 : 뇌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공룡 머리는 큰데 뇌는 왜 그리 작나요?
박진영 : 일단 클 필요가 없었죠.
다만 재미있는 게, 우리가 예전에는 뇌가 큰 동물일수록 생각을 많이 하고 창의력이 높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통념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가 파충류의 지능 연구인데요, 예전에는 파충류 아이큐를 굉장히 낮게 봤죠. 왜 그랬냐면, 20세기 초에는 모든 동물의 지능을 한 가지 실험으로 측정했어요. 그런데 그 실험이 전부 다 영장류에게 유리한 과제였거든요. 요즘에는 각 동물에 맞는 지능 테스트를 하는데, 그 결과 파충류가 은근히 창의력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멕시코 쪽에 사는 한 도마뱀은 나무 위에서 기다리다가 먹이가 지나가면 위에서 덮치는 방식으로 사냥합니다. 이 여러 마리의 도마뱀을 각각 따로 사육하면서 뚜껑이 덮인 사료 통 안에 먹이를 주고 사냥하는 방법을 실험했어요. 그랬더니 열 마리 중 일곱 마리가 각자 다른 방식을 사용해서 뚜껑을 여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창의성이 있다는 얘기죠.
독서통 :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고생물학 연구 대상이 주로 공룡에 편중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생물도 많이 연구하는데 그저 잘 안 알려진 겁니까?
박진영 : 두 가지 다 맞는 말씀입니다. 고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시작한 지 200년 정도 되었는데, 삼엽충이라든지 검치고양이라든지 하는 정말 다양한 생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은 아무래도 큰 공룡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죠.
독서통 : 왜 사람들이 공룡에 그리 큰 관심을 줄까요? 박진영 선생님은 왜 그리 공룡이 좋았어요?
박진영 : 너무 오래돼서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요, 제가 아는 어떤 학자께서 사람들이 공룡을 좋아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으셨어요. 크고, 오늘날 살아있는 동물과 너무 다르고, 지금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물론 오늘날 새가 살아있는 공룡이긴 합니다만 그건 대중이 잘 모르니까요.
박진영 : 네, 그렇죠.
독서통 : 벌써 시간이 다 되었는데, 책에 있는 이야기는 거의 못 했네요. 사실 저희가 일부러 책 이야기를 하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이 책은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무엇보다 글을 정말 발랄하게 쓰셔서 재미있습니다. 한참 공룡에 관심 많은 아이를 둔 엄마, 아빠들이 이 책을 읽은 후, 아이들에게 폼 잡고 공룡 얘기를 해주기에 정말로 좋은 책이죠.
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여쭤보죠. 대한민국에서 공룡을 접하려면 어떤 공부를 하면 됩니까?
박진영 :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무조건 지질학과를 가야 하는데요. 외국에서는 생물학에서도 고생물을 다루기도 합니다.
독서통 : 우리나라에서 공룡 화석을 잘 복원한 자연사박물관은 있습니까?
박진영 : 우리나라 자연사박물관 사정이 척박해요. 그나마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이 가장 좋죠.
독서통 : 이 책을 보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박진영 선생님처럼 어려서부터 무언가에 열정을 갖고 그걸 자신의 연구 분야로까지 연결시키는 젊은 과학자가 앞으로 더 많이 나오리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습니다. 오늘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책 내용의 10분의 1도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굉장히 유익한 자리였어요. 박진영 선생님, 오늘 감사합니다.
박진영 :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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