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기업들의 신천지 = 세계화된 지구**
지난 10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부결 기사를 톱기사로 다룬 신문 가판대를 보면 "농민"은 이 나라 국민이 아니었다. 농민들은 한국을 세계 경제에서 '미아' 내지는 '왕따'로 만든 장본인이며, 여의도를 폭력으로 물들인 폭도들이자, '농민당' 의원들과 공모 '주식회사 한국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원인 제공자였다. 도대체 한국의 농민들은 몇 번이나 죽임을 당하는 것일까. 세계 어느 나라도 '농업'을 버리지 못해 이처럼 안달하는 나라는 없다. 제 생명줄을 이미 '카길'이라는 곡물메이저에게 저당 잡혀있다는 사실을 우리만 모른다. 우리만.
초국적 자본이 중심이 된 세계화는 '카길'과 같은 공룡기업들의 신천지를 만들었고, 그 신천지에 농민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2004년 세계사회포럼이 열린 인도 뭄바이에서는 이처럼 '신천지'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이 한데 모여 살아남을 방법을 도모했다.
***세상의 밥상을 장악한 '파이브 브라더스'**
식량과 농업에 대한 미래를 토론하는 자리에서 반다나 시바는 1998년부터 인도의 안드라 프라데쉬 지역에서 시작된 농부들의 자살이 2001년까지 모두 2만 명에 달했다는 조사결과를 보여주었다. 무역자유화 여파로 프라데쉬의 전통농업은 지난 30년 사이에 가격 경쟁력이 높은 목화로 완전히 재편되었는데, 1997년과 98년 사이에 기상이변과 병충해로 수확량이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병충해를 막기 위해 과도하게 사용한 농약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단일재배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또한 종자회사로부터 높은 가격에 씨앗과 농약을 구입해야 하는 농부들의 부채는 늘어만 갔다. 농부들이 빚을 갚기 위해 신장을 팔고 급기야는 농약을 마시고 자살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반다나 시바는 "남반구 시장을 개방하고 '농민 농업'을 "기업 농업"으로 바꾸는 것이 카길이 주도하는 WTO 농업 협정의 주요 목표다"라고 역설했다. 반다나 시바는 "WTO 농업 협상은 '카길 협상'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전 세계 곡물 교역량의 80%는 미국의 카킬과 아처 다니엘스(ADM), 프랑스의 드레퓌스(12%), 아르헨티나의 붕게(7%), 스위스의 앙드레(5%)로 대표되는 "파이브 브라더스"라고 불리는 5개의 곡물메이저들이 차지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세계 농산물 생산지와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곡물을 사들이고, 이를 각국 정부와 기업에 판매해 엄청난 이윤을 거두어들이는 농업 분야의 공룡들이다. 이들 메이저가 손대는 것은 밀 같은 곡물만이 아니다. 씨앗에서부터 농약·살충제·가공 식품·생명공학에 이르기까지 식량과 관련된 분야 전체는 물론 선박 회사나 저장 시설까지 두고 있다. 다른 운송 회사나 물류업체는 곡물 거래에 파고들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한국 수입 곡물 시장에서 카길은 점유율 60%를 자랑한다. 식량 자급률이 30% 이하인 나라에서 전체 수입 곡물의 60%를 단 하나의 곡물 기업이 공급하고 있으니, 한국인의 먹는 문제는 사실상 카길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은 농업 개방이 불가피하다며 공산품을 수출해서 경제도 살리고 농업도 지원하겠다고 공약한다. 하지만 농촌 공동체를 해체하고, 수많은 농민을 도시 빈민으로 만들고, 우리의 밥상을 외국 기업에게 맡기는 것이 과연 안전한가. 곡물 메이저들은 구호 기관이 아니다. 곡물 메이저들은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 농산물 작황을 수시로 파악해, 흉작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해당 곡물을 매점하고 가격을 올리는 작업에 들어간다. 실제 세계 식량 수급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중국·인도·인도네시아·러시아·동유럽 등 식량을 자급했던 인구 과밀 국가들이 식량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이상 기후가 세계 곡물 시장을 흔들고 있다.
식량문제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몬산토를 빼놓을 수 없다.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악명 높은' 몬산토는 세계 50여 개국에 공장을 두고 유전자 조작 곡물의 90%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총수입의 대부분은 농약 판매를 통해 벌어들인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 콩은 자사 제초제인 라운드업에 내성을 지니도록 유전공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모든 잡초를 죽일 수 있는 라운드업 제초제를 개발하고, 이어서 그 제초제에 견딜 수 있는 콩 종자를 개발해 몬산토는 종자와 농약 둘 다 판매함으로써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 있다.
이처럼 유전자조작은 '전 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기업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있다. 그래서 인도 농민들은 유전자조작 목화밭에 불을 지르고 몬산토를 인도에서 몰아내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고, 필리핀에서도 농민들이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뽑아내고 몬산토 보이콧 운동을 시작했다. 반다나 시바는 식량을 몇몇 곡물기업이 좌지우지하고, 유전자조작식품을 퍼뜨리는 식량 전체주의에 맞서 나브다냐 운동을 벌이고 있다. 9개의 씨앗을 의미하는 나브다냐는 인도 고유의 종자를 보호하고 농촌을 지킴으로써 환경을 살리자는 운동이다.
***코카콜라에 저항하는 사람들**
세계사회포럼에 낯익은 상표가 등장했다. 코카콜라.
전 세계를 통틀어 하루 동안 팔리는 코카콜라는 10억 잔. 10초마다 세계 12만6천 명이 코카콜라를 마시는 셈이다. 하지만 인도 남부 플라치마다 마을에서 온 주민들이 코카콜라를 '킬러콜라(Killer Colar)', '톡식콜라(Toxic Colar)'라고 외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살아남기 위해 코카콜라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플라치마다 마을에서 코카콜라사가 지하 관정 여덟 개를 뚫어 지하수를 마구 퍼올린 결과, 땅이 황폐해지면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논밭이 쩍쩍 갈라지고, 푸른 잎의 야자수는 시들어가고 있다. 마실 물이 부족하다. 주민들은 '코카콜라 공장이 날마다 1백만 리터나 되는 지하수를 훔쳐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1백만 리터면 2만 명이 하루 동안 생활할 수 있는 양이다. 1998년 코카콜라 공장이 들어선 뒤로 마을 부녀자들은 매일 5킬로미터나 떨어진 다른 마을까지 물을 길으러 다녀야 했다. 물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코카콜라 공장에서 나온 오염 때문에 모든 우물이 음용수로 마시기에 부적합하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마을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코카콜라사에서 코카콜라를 만들고 난 찌꺼기를 농부들에게 퇴비 명목으로 제공했는데 그 찌꺼기 속에서 납과 카드뮴과 같은 독성물질이 나온 것이다. 사실 코카콜라사는 인도에서 콜라만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생수시장에도 진출했다. 인도의 보통 식당에서 탈리 정식이 25루피라면 코카콜라사가 만든 1리터 짜리 생수 킨레이(KINLEY) 한 병이 18루피다. 인도의 지하수를 리터 당 1센트도 채 안되는 값에 사들여서는 약간의 정수처리를 한 후 플라스틱 병에 담아 몇 배나 비싼 값으로 되파는 것이다.
플라치마다 마을 사람들의 코카콜라에 대한 저항은 전 세계 곳곳에서 물을 이윤 창출 수단으로 삼는 '물 민영화'를 상징한다. 그래서인지 "세상의 물"을 지키기 위해 환경운동가들은 세계사회포럼이 열리기 바로 전 델리에서 세계민중물운동(People's World Water Movement)를 결성하고 물은 곧 생명이며, 인간 생존의 기본 권리임을 선언했다. 세계의 물이 말라갈수록 물 기업들의 수익은 올라간다.
***우리 밥상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세계 1백대 기업에 물장사를 하는 프랑스 다국적기업 수에즈와 비벤디가 들어가 있다. 물 대기업들이 한해 2천억 달러(약3백20조 원) 이윤을 남기는 반면, 이들에게 물 공급권을 넘긴 나라들은 갑자기 인상된 물 값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각 나라의 운동가들은 물민영화가 가져온 결과들을 공유했다. 볼리비아의 수돗물 공급권은 벡텔이 인수하면서 3배 상승했고, 프랑스에서는 민영화된 후 수도요금이 1백50%, 잉글랜드에서는 1백6%나 올랐다. 인도의 일부 가정은 수입의 25%를 물을 사용하는데 지출해야 한다. 요하네스버그의 흑인 빈민 밀집지역 알렉산드라에서는 수도요금을 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물 공급이 갑자기 중단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출루 주민들은 살인적인 수돗물 값을 견디다 못해 다시 강으로 가서 물을 길어먹고 있는데, 물을 뜨러갔던 마출루의 아이들이 악어에 물려죽는 일도 있다.
지금 세계는 물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앓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둔감하다. 물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가 변기 물을 한번 내리는 양(13리터)은 개발도상국에서 평균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씻고 마시고 청소하고 요리하는데 드는 양(7.6리터)과 맞먹는다. 세계사회포럼장을 오가는 도로변에서, 집도절도 없이 길거리에 사는 인도인들의 이부자리 근처에는 플라스틱 물통이 몇 개 놓여있다. 그 작은 물통에 든 물이 온 가족이 쓰는 물의 전부인 것이다.
세계화된 지구에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먹고', '목을 축이는' 문제에 있어 위기에 직면해있다. 그런데 이 위기 원인 제공자는 몇 마리의 초대형 공룡들과 공룡들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WTO, IMF, 지적재산권과 같은 복잡한 제도들이다. 전 세계 10대 종자기업, 제약기업, 식품-음료기업, 동물약품기업, 농화학기업 리스트를 살펴보면 노바티스는 식품만 빼고 10위안에 다 올라가 있고, 몬산토, 듀퐁, 바스프, 파이저, 아스트라제네카, 아벤티스, 아벤티스가 적에도 두세 군데에 걸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10대 종자회사는 2백47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종자시장의 3분의 1을 지배하고 있다. 엄청난 독점이다. 결국 세계의 밥상은 단지 몇몇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물도 마찬가지이다. 수에즈, 비벤디 그리고 독일의 RWE가 1백50개 국가, 3억명에게 물을 공급하고 있다.
덩치 큰 공룡들의 세상에서 인간들이 살아남으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을 목이 쉬도록 외치며 뭄바이 광장을 가득 채운 10만이 있으니, '저항의 세계화'가 멀지 않았다. 다만 저항의 방법이 보다 체계적이고 통합되어야 한다.
우선은 도대체 우리의 밥상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고, 농민단체, 환경단체, 소비자, 건강의료단체가 각자의 역할을 찾아 협력해야 한다. 우리의 조직적인 저항만이 초국적 자본에 저당잡힌 생존권을 되찾을 수 있다. 지난해 브라질에서서 노암 촘스키 만큼이나 열렬한 박수를 받았던 인도의 소설가이자 평화운동가 아룬다티 로이는 개막식에서 "이라크전쟁으로 최대 수익을 얻고 있는 기업 두개를 선정해서 문을 닫는 활동을 시작하자"라고 제안을 했다. 그녀는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가 회의장 안의 활동가 보다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세계사회포럼이 이젠 전 세계 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단계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합의를 통해 '대안 모색'과 '실천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추신 : "코카콜라 반대운동에 대한 글은 '창작과 비평' 웹진에도 올라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