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끝내 남측의 대화 제의를 거부했다. 북한은 19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성명을 통해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17일 제헌절 경축사에서 제의한 '남북 국회의장 회담'과 정부가 9월 서울에서 개최 예정인 '서울안보대화'에 초청한 것도 거절했다.
그러면서 조평통은 남한 측의 대화 제의는 '정치적 농락물로 이용하려는 남한의 음흉한 기도'이며 남한의 국회는 '보수 꼴통들의 집합체'라고 힐난했다. 남북 국회의장 회담이 마중물이 되어 남북 국회 본회담과 당국 간 회담까지 엮어보려는 계획이 사실상 물거품이 된 셈이다.
북한이 남한의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남한이 여전히 대결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는데, 남한이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빌미로 일과성 제의를 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째, 대결적 태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전단 살포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전단 살포 배후에 한국과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세력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셋째, 북한은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북한인권법'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 체제의 아킬레스건을 지적하는 북한인권법이 오히려 민족의 분열을 조장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동족을 적대시하는 대결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남북이 이미 합의한 남북공동선언들을 인정하고 이행하겠다는 입장부터 표명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남측이 제의한 대화의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역대 대한민국 어느 정부도 남북이 이미 합의한 공동선언들을 더는 준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어느 일방도 어떠한 조건도 내걸지 않은 채 일단 얼굴을 맞대고 앉아보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다시 말해, '대결정책'을 부각시켜 향후 회담에서 입장을 강화하려는 과거의 관성적 태도를 버리고 유연성을 보여 달라는 주문이다.
1905년 레닌은 "공산주의로 가는 길이 일직선이거나 단순하지 않고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20년 후 스탈린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굽히지 않고 계속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사정에 정통했던 미국 언론인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 역시 김일성을 "유연하고 실용주의적 정치가"로 평가했다.
북한 역시 한국 측의 회담제의를 단순히 수락하기 힘들다면, 예의 그랬듯이 자신들이 주장해 오던 것을 남측이 뒤늦게 수락한 것을 환영하는 형식으로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는 없나? 무엇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평양을 제외한 여타 지역의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유엔국제아동기금(UNICEF)은 지난 8일 앞으로 북한의 심각한 가뭄이 더 계속되면 일부 지역에서는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생명을 부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오랜 가뭄으로 이모작 수확량이 급격하게 감소하여 식량 배급량도 올해 6월까지 하루 410g씩 배급했던 것이 7월 초부터는 310g으로 줄어들었다는 세계식량농업기구 보고서도 있었다.
'요지부동'인 북한…우리라도 움직여야
북한이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라도 먼저 움직여야 한다. 이제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으로 보장돼야 할 기본권(생존권)마저 무참히 짓밟히는 북쪽의 현실에 그저 '모르쇠'로 일관해야 할지 자문(自問)할 때이다. 이는 결코 누가 옳고, 누가 그름을 따지는 이념적 문제가 아니다.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는 도덕적, 윤리적 문제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들과 가진 청와대 토론회에서 "북한 주민의 결핵, 풍진을 예방하기 위해 백신과 항생제를 지원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질병 관리 차원의 중장기적인 해결책을 모색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남북한이 함께 보건의료 협력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등 주변국들과 질병 대응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보건의료 인력을 양성해 나간다면 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동북아시아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더욱 용감해져야 한다. 그리고 과감해져야 한다.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무관심한 남한에 대해 분노와 원한의 감정을 가지기 전에 인도적 구호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뻗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길게 뻗어야 한다. 이는 결코 광기의 체제를 연장 시켜주는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를 무릎 꿇게 하거나 우리 스스로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들자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소설가 김훈은 재난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소방관의 마음을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절박한 신뢰이며 사랑"이라고 말했다. 재난 앞에 경건해야 하고 재난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은 원초적인 인지상정이다. 마찬가지로 이제라도 대한민국이 북한이라는 재난의 현장으로 사이렌을 울리며 가는 소방차를 탄 소방관이 돼야 한다. 이 임무는 쓰러져 가는 봉건적 왕조체제를 힘겹게 붙들고 있는 자들에게 자신들의 체제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깨닫게 하는 '영리하고도 울림이 큰' 자선구호 사업이기도 하다.
거칠게 말해, 보수와 진보를 떠나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독재 체제인 것이지, 그 체제 속에 살아가는 주민들이 아니다. 무너진 체제는 다시 세울 수 있겠지만 증오는 선명하게 각인돼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더욱 적극적으로 그리고 더 정교하게 북한 주민들을 지원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와의 2인3각(二人三脚)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20여 년의 신경외과 경력을 지닌 정의화 국회의장도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과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로 '남북 보건의료의 교류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을 이미 발의했다. 이 법안은 재난에 대한 남북의 공동 대응과 보건의료 분야 인력·장비 및 의약품의 긴급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내용이다. 의료 현실이 열악한 북한 주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고 북한 주민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높임으로써 남북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은 본질적으로 생명을 지키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 빈곤과 질병으로 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외면하는 것은 통일의 기본가치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통일 과정에서도 도움이 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남한의 지원을 받은 사람들이 훗날 남북 사회통합 과정에서 남한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이 어떠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지원을 받은 북한 주민들이 간직할 수 있는 그 감사의 마음들이 어떤 형태로든 그들의 가슴속에 문신처럼 오랫동안 기억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유엔 세계식량계획은 보고서에서 올해 초의 대북 식량 지원사업과 관련해서는 "한반도 관련국들 간의 정치적인 대화가 부족한 상황이 계속 (지원사업) 모금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대북 지원 사업이 남북을 포함한 동북아 역내 국가의 정치적 유불리 셈법에 좌우되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만성적인 영양결핍을 겪는 북한의 아동과 여성, 노인들에 대한 지원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관련 민간단체들의 요청사항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재난의 정도를 줄일 수가 있다. 이외에, 5세 이하의 아동 중 약 30%가 만성적인 영양실조라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이들의 뇌가 제대로 발육되지 않아 북한의 미래가 어둡다는 이야기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대북 지원이 일회성, 과시성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는 '남과 북이 서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깊이 고민해야 한다. 북한 주민이 가장 어렵고 힘들 때 도와줄 수 있음에도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동족으로서 그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만 남길 뿐이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바람개비를 들고 앞으로 달리는 일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이 그러해야 한다. 병들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조건 없이 도와주고 싶은 그런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도 가져야 통일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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