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23일 그리고 8월 12일은 삼복(三伏)의 날이다. 복날 우리는 무얼 하는가. 먹는다! 농업이 사실상 모든 산업을 대표하던 시대의 삼복은 한창 농번기였다. 그때 잘 먹는 건 몸을 보해 1년 먹을거리를 만들 노동에 투자하려는 가치 있는 섭식 행위였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노동을 하지 않는 인구가 90퍼센트(%)에 가까운 시대를 산다. 그럼에도 우리는 복날 먹는다. 고기를! 닭을 먹고, 돼지를 먹고 소를 먹고, 그리고 여전히 개도 먹는다. 복날을 고기 먹는 날로 기념하는 세태를, '세태의 수동적 참여자'인 바로 우리 자신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우리 잘 먹고 잘 살고 있는가?
1592년 5월 25일. 왜군 제1선봉장 고니시 유키나카가 이끄는 1만8000명은 부산 동래성으로 진격해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조선군과 교전했다. 반나절의 전투로 5000여 명의 조선군과 백성들이 학살됐다. 살해된 주검들이 성 밖 해자에 던져졌다. 2005년 4월. 부산 지하철 3호선 수안동 역사 공사 예정지에서 동래성의 해자가 발견됐다. 발굴된 것은 유물뿐만이 아니었다. 최소 112구가 넘는 인골들이 발견됐다. 조총에 맞아 뚫린 두개골을 비롯한 참혹한 유골들. '하악골과 두개골에서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을 때 나타나는 에나멜 질감형성(Enamel Hypoplasia)이 70퍼센트가 넘는 비율로 발견됐다. 조선인 남성 사망자들의 평균키는 163.6센티미터, 여성은 153.4센티미터로 동시대 왜인들보다 8~10센티미터 컸다.'
- 2008년 11월 22일 자 <경향신문> 보도 편집
임진왜란 발발 초기전투이니 전쟁으로 인한 영양실조가 아니라 당대의 일상적인 조선 백성들의 영양상태로 봐도 무방하리라. 한국이 못 먹고 살던 시절인 1960~1970년대에 소년기를 보낸 오늘의 40~50대들은 일본인보다 작다. 그러나 그 이후 출생한 한국사회의 경제적 성장에 따른 섭생 개선의 시혜를 받은 세대들은 한일 두 나라 국민들의 유전적 체격 차이(키 6㎝)를 찾아가고 있다. 오늘날 평균 키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3㎝ 크다. 그러니 420년 전과 비교할 때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클까? 2012년 병무청 징병검사기록에 의하면 평균 키는 173.7㎝였다. 420여 년 전 동래성의 군인과 비교하면 10㎝나 크다.
동래성 전투가 벌어진 임란의 시대, 임금은 선조였다. 한의학의 경전 중 하나인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쓰이기 시작한 건 1596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였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우리나라 의서들을 허준이 자신의 의학적 시각으로 발췌하고 재정리한 것이다.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맥을 조절한다.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한다. 골수를 채워주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한다. 남성을 세우고 기력을 증진시키다'고 동의보감은 적고 있다. 비록 동래성 전투 사망자의 경우이나 70%가 넘는 성인이 영양실조였던 시대의 개고기가 가진 의미는 동의보감이 전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럴까? 2013년 체질량지수(BMI, kg/m²)가 25 이상인 우리나라 성인 비만자들은 남성의 31.8%, 여성의 37.6%(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 「국민건강영양조사」, 2013년)나 된다. 영양학적으로 과잉상태인 21세기의 평균남녀들에게서 여전히 개고기는 탐식된다. 개고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돼지, 소, 닭 다음으로 많이 먹는 육류이며 특히 복날 즈음의 소비는 인상적이다. 2011년도 농림수산식품부 통계연보에 의하면, 2010년 12월 말 전국적으로 식용견 개체는 170여만 마리였다. 모자라는 개고기는 수입된다. 2013년 '휴대 개고기'의 수입량은 19만5900톤(t)이었는데, 말복이 있는 8월의 수입량이 2만8300톤으로 가장 많았다. 법적으로 개고기는 불법이 아니라 축산물로 인정되지 않는 무법의 육류다. 장기적인 소비인구의 축소에 기대 자연스러운 인구학적 소비 소멸이 정부의 방침으로 보인다. 축산업으로 인정되지 않으니 식용대상 축산물이면 받는 사육실태조사나 사육 사료의 의약학적 제한 따위는 없다. '뜬장'이라 불리는 육면의 철망 큐브에서 밀집 사육되면서 '불결한 환경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질병 때문에 일상적으로 항생제 섞인 사료를 먹일 수밖에' 없다고 동물보호단체들은 고발한다(동물자유연대 2014).
우리나라의 육류소비는 비만의 확대와 비례되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돼지고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육류인데, 2013년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이 20.9㎏(2013 농림축산식품 주요통계)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편식하는 삼겹살의 경우 수입량이 늘고 있다. 지난 3월 3일 관세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4년 냉장·냉동 돼지고기 삼겹살 수입량은 11만6034톤으로 2013년보다 26% 늘어났다. 닭도 다르지 않다. 2013년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11.5㎏이었다(2013 농림축산식품 주요통계). 연간 소비량은 약 6억 마리 수준인데 삼복 시기의 한 달여 동안 소비되는 양이 총소비의 40%에 육박한다. 놀라운 탐식, 더 놀라운 몰아 먹기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정책으로 인한 촛불시위 당시 우리 사회는 미친 소고기를 안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소고기 소비를 비롯한 육식의 절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도달했다. 그러나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사태 이후 8년 만에 미국산 수입 소고기는 다시 수입량 1위인 호주산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물량이 늘었다. 2014년도 우리나라 1인당 소고기 소비량은 14.61㎏으로 세계 23위의 소비량을 보이고 있다.
1970년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육류소비량은 5.2㎏이었다. 33년 만인 2013년에는 42.7㎏으로 늘었다. 육류 소비 증가와 유사하게 비만율도 높아졌고 그 결과 10명 가운데 3명 이상이 비만인 사회가 됐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삼복의 한 달 동안 고기 먹는 이 오래된 기념일을 조선 중기 단백질과 지방 결핍에 시달리던 선조들 이상으로 열정적으로 지킨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섬유질 풍부한 현미밥과 제철 채소와 과일을 중심으로 한 식사가 올바르다. 그러니 고기 탐식은 사실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먹는 즐거움을 위한 것, 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입맛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살기 위해 먹지 않고 나아가 건강하기 위해 먹지 않고 즐기기 위해 먹는다. 식사가 쾌락의 방법이 된 것이다.
음식 포르노 VS 생태윤리적 쾌식
먹는 일이 쾌락의 대상이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경생리학자 장 디디에 뱅상은 <뇌 한복판으로 떠나는 여행>(이세진 옮김, 해나무 펴냄)에서 의미심장한 한 실험에 대해 적고 있다. 어떤 동물에게 단물과 맹물을 골라 먹게 하다가 일단 그가 단물을 선택하면, 점점 더 달게 당을 강화해 먹인다. 이후 그 동물은 단물로 인한 쾌락이 최대로 강해질 때까지 계속 먹다가 수용한계가 지나면 싫증을 내고 먹지 않는다. 쾌락의 증가와 싫증이라는 상승과 하강의 선호곡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동물의 식도에 튜브를 꽂아 먹은 단물이 위로 가기 전에 빼돌리면 그 동물은 만족 없이 점점 더 강해지는 단물을 싫증 내지 않고 끊임없이 먹어댄다는 것이다. 맛은 느끼나 위로 가서 몸에 흡수되지 않으니 뇌는 만족을 표하지 않는 것이다.
기름진 것, 육식에 대한 우리의 탐식은 사실상 몸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 것, 그러니까 기름진 것을 먹었을 때 느낀 포만의 쾌감을 재현하라는 뇌의 요구에 굴복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뇌가 그렇게 육식에 중독된 까닭은 포만이라는, 겨우 5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획득하기 어려웠던 쾌감을 오늘의 우리들은 싼값에 손쉽게 소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과 항생제 사료가 가져온 싼 고기의 소비는 사실은 싸지 않다. 고기값에 포함되지 않은 값비싼 비용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 비용은 우리 몸과 지구에게 청구된다. 비만을 비롯한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등등 수많은 성인병의 창궐과 이를 치료하기 위한 진료, 치료비는 탐식의 대가로 우리가 치르는 비용이다. 2014년 '14가지 세계의 우환거리에 대한 보고서'를 낸 컨설팅기업 맥킨지에 따르면, 인류 72억 명 중 비만인구는 21억 명이며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2조 달러. 9억 명이 굶주리는데 그 2배가 넘는 사람들이 비만 때문에 병을 얻고 그 병을 고치려 다시 돈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 청구되는 비용은 더욱 혹독하며, 근본적인 파국을 부른다. 기후변화는 화석연료 남용 때문이라는 것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5차에 걸친 보고서의 결론이다. 기후변화를 부른 산업별 기여도에서 축산업은 18%(유엔식량농업기구, 2006)를 차지했다. 그러나 유엔식량농업기구 조사에서는 고려되지 않은 더 많은 축산업 관련 온난화 기여도가 있다. 방목을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을 뒤엎는 것과 같은 토지변경으로 인한 탄소 손실과 저평가된 메탄가스의 온난화 기여도 등의 요인들을 고려하면, 축산업의 온난화 기여도는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육류 생산은 총온실가스의 51% 이상을 방출(월드워치, 2009 No 11/12)한다고 월드워치연구소는 보고했다.
IPCC부의장 이회성 박사는 기후변화 대응 비용이 연간 세계경제성장률의 0.06%라고 지적했다. 한편 세계은행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ppm으로 안정화시키기 위해 개도국들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연간 최대 6750억 달러로 추정(World Developmen톤 Repor톤 2010)된다고 밝힌 바 있다. 세계에너지기구(IEA)가 발간한 '2009 세계에너지전망보고서'의 예측으로는, 2010~2030년까지 향후 20년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지구 전체 에너지 생산의 6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10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모두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비용만 기후변화로 돌려도 해결할 수 있는 액수다.
빈 의자에 지구를 초대하라
타자와 나라는 주체 사이의 관계론적 맥락이 거세된 단지 신체와 정신의 말초적 쾌감만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는 포르노가 된다. 바야흐로 음식조차 포르노의 대상이 된 시대다. 여전히 육식 중심 식사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몸과 정신의 터전인 지구조차 굽고 쪄서 잘라먹는다. 육식의 절제는 그래서 지극한 윤리적 행동이 된다. 달리기처럼 몸을 움직이는 이들이 고통 뒤에 찾아오는 보상(러너스 하이, Runner's high)에 중독되듯이, 이런 윤리적 행동은 되풀이되며 나와 타자, 세계 전체를 구하고 다시 그들이 나를 이롭게 하는 진짜 쾌감을 불러온다. '고기 빼고, 삼복에 뭐 먹을까?' 궁리하고 궁리하라. 1년 내내 즐거이 고민하라. 식탁의 빈 의자에 지구를 초대하라. 참 기쁨이 그대와 함께하리라.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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